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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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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37회 작성일 10-10-0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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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차이나타운(Chinatown)을 중국어로 ‘탕런제(唐人街)’라 부른다. 이렇게 부르게 된 역사적 유래를 따지자면 중국 한 무제 때의 서역 원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열린 실크로드를 따라 외국 상인이 중국으로 들어가고, 반대로 중국 상인은 해외로 나가 가까운 동남아시아에서 멀리 북아프리카까지 이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외국인은 이러한 중국인을 ‘탕런(唐人)’이라 불렀으며 그들이 모여 사는 곳을 탕런제라 부르기 시작했다.
과거 차이나타운은 재외 중국인이 험난한 이민사를 겪으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성공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곳이자, 예전 중국영화에서처럼 이소룡과 성룡과 홍금보가 나와 악당을 무찌르고 편안하게 쉬는 위로와 온정의 터전이었다. 오늘날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탕런들은 보통 화교(華僑)라 부르며 그 호칭도 참 다양하다. 화인(華人), 화예(華裔), 화상(華商) 등 각각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찌 됐든 중국이 아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의 워싱턴?LA샌프란시스코, 캐나다 몬트리올, 일본 요코하마, 영국 런던, 한국의 인천 등지에 사는 중국인들이 돈을 대하는 반응이나 태도는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어느 민족, 어떤 사람이 돈을 싫어할까마는 돈을 대하는 중국인의 태도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사뭇 다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錢可通神)’는 속담이 있을 만큼 중국 사람들은 돈을 좋아한다. 중국인이 ‘쯔(面子)’, 즉 체면을 몹시 중시한다지만 돈 앞에서는 체면도 판다는 ‘마이쯔(賣面子)’라는 말도 있을 만큼 돈에 집착이 강하다.

경제력 이용, 상업적 관광활동 펼치는 아시아 차이나타운
전 세계 화교 인구 중 동남아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지역 화교의 비율이 70~80%로 절대다수를 점한다. 이들의 이주 역사를 들여다보면 복잡하고 다양한 많은 역사가 있지만, 명 초기를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상술이 뛰어난 강남 상인의 후예들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해 지금의 화교로 커나가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현재도 그 상업적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 세계 화상 기업 중 과반이 넘는 수적 우위를 차지하며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한다. 아시아에 분포한 차이나타운을 통한 화교 네트워크는 중국의 문화와 언어, 혈연으로 연결된 ‘차이니스 커넥션’, 일명 ‘대중화경제권(大中華經濟圈)’을 일으키는 근간이 되었다.
상호 경쟁과 협력의 동반자적 차이나타운을 형성하는 아시아의 화교들은 현지인들과 마찰을 빚는 것을 우려해, 굳이 차이나타운이라고 명확히 분리하여 끼리끼리 모여 사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상부상조하며, ‘세계화상대회(世界華商大會)’와 같은 구체적이며 공개적인 대회를 통해 중국 해외동포의 막강한 조직력을 과시한다. 아시아 중국계 기업인의 경제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화상대회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가와 투자자,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 모아 그들의 상술과 문화, 전통을 골고루 맛보게 하는 장을 여는 것이다.


새 이미지 창출하는 유럽 차이나타운
유럽 각지 중국인의 사회적 지위가 격상하는 가운데, 차이나타운 이미지 또한 새롭게 부각하고 있다. 유럽에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시기는 19세기 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헝가리 등 20개국에 형성되어 있다. 이곳의 차이나타운들은 과거와 비교할 때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차이나타운의 위치도 도시 근교의 후미진 거리에서 사통팔달의 도시 중심부로 이동했고, 그 영역도 매우 확대되어 과거의 단순히 중국인 거주 지역에서 다문화가 존재하는 관광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발전해왔다.
실제 프랑스 파리 13구의 차이나타운은, 중국다운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정갈한 한자 간판들과 중국 전통 공예품과 토속 음식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과거 이곳은 파리 시 이미지와 차이가 큰 모습으로 불안한 치안 아래 아프리카 이주민, 아랍인이 함께 섞여 있었던 곳이었지만, 막강한 경제력의 중국인이 이곳에 고층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 눈에 띄게 활발한 거리로 변모했다. 대표적 다국적기업 맥도널드가 ‘마이당라오(麥當勞)’라는 중국어 간판을 내건 곳이기도 하다.
독일의 차이나타운 역시 ‘뉴 차이나타운(New Chinatown)’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아시아 식당가, 중의학을 이용한 건강 웰빙센터, 중국문화센터, 상업센터, 중국정보센터 등 현지 독일 기업이나 개인과 연계된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그들이 경영하는 사업도 전통 식당 일색이던 과거에서 벗어나, 호텔·무역회사·보험회사·회계회사, 면세점부터 고도의 과학기술을 요하는 첨단 영역까지 등장했다. 한편 독일의 베를린 시는 과거 군용 비행장으로 방치되었던 베를린 서북부 지역에 새로운 차이나타운을 건설할 계획을 진행 중이며 201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 차이나타운은 영국에 있다.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 뒤편의 제라드 가(Gerrard Street)와 샤프츠버리 가(Shaftesbury Avenue)에 걸쳐 있는 이곳에는 중국 냄새 물씬 풍기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특히 저녁이 되어 불빛들이 하나 둘씩 켜지면 더욱 중국다운 풍경을 자아내는데, 이런 풍경과 런던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지리적 이점 덕분에 영국을 방문한 관광객이면 누구나 한번쯤 들르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한편, 한때 영국은 베이징올림픽 불참 문제로 중국과 관계가 껄끄러웠다. 그러나 찰스 황태자를 총책임자로 내세워 런던의 차이나타운 재건축 계획을 발표하는 등 왕실 건축가를 동원해, 빅토리아풍과 중국풍이 잘 조화를 이룬 차이나타운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물론, 중국과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다문화 속 중국 전통 명맥 잇는 북미의 차이나타운
다문화를 표방하는 캐나다의 차이나타운은 캐나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익성 문화사업의 폭넓은 지원과 지지를 받는다. 캐나다 차이나타운은 ‘중국평화촉진회(中國平和促進會)’나 ‘화인연합총회(華人聯合總會)’ 같은 기구를 통해 중국문화를 전파하고, 차이나타운이 중국 대륙과 캐나다 양국의 문화 교류 창구 구실을 하도록 문화활동 서비스를 전개하는가 하면, 중국의 춤·서예·무술과 영어·프랑스어를 배우고, 인터넷과 오락·취미·모임 등이 가능한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양국 공연단을 초청해 공연을 선보이는 등 다채로운 문화활동을 벌인다.
이러한 캐나다 차이나타운의 다문화 활동은 지역과 국경을 뛰어넘어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서로 문화 기원과 배경이 다른 지역사회를 존중하는 창조적 문화활동의 지원을 받는 곳이 바로 캐나다 차이나타운이다.
워싱턴의 차이나타운 등 미국의 차이나타운 역시 중국인의 과거 문화유산과 전통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혼란과 폭동의 시절을 지나 소수 다원 문화를 인정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미국 차이나타운의 중국인들은 새로운 중국식 건물을 증축하는 등 부동산에 열중하고 있다. 또 과거와 달리 ‘화 인문화중심(華人文化中心)’과 같은 기구를 창립해 과거의 모습을 보전하며 중국문화 전통과 중국문화 역사를 이어가려 한다.
한편 우리나라 인천광역시는 인천 차이나타운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2005년 ‘한중문화관’을 건립하고 매년 10월 ‘인천 중국의 날 문화축제’를 여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행사에 참석해 보면 어쩐지 중국인의 참여가 많지 않고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느낀다. 언젠가 ‘한국 차이나타운에는 중국인이 없다’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과거 한국 정부의 제한정책으로 많은 중국인이 이곳을 떠나 활기가 없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한국 내 중국문화 일번지로, 중국의 문화와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며, 중국인이 한국을 방문하여 꼭 한번 가고 싶어 하는 차이나타운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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