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케로 지역문화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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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10회 작성일 10-10-0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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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술은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그 맛과 종류가 다양해졌는데, 그런 만큼 술에는 각 시대, 각 나라의 문화가 담겨 있다. 지방 고유의 문화가 상품이 되고 중요시되는 현대에 술은 중요한 문화상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지역 고유의 토속주는 한 지역을 대표하는 명물이기도 하다. 토속주가 우리보다 발전한 일본의 각 지방의 술을 말하는 ‘지자케(地酒)’가 한 지역의 대표 브랜드가 되어가는 과정과 지자케의 현황을 ‘구보타(久保田)’라는 일본 술의 예를 통해서 살펴보고 문화상품으로서 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지역의 토지가 만들어낸 일본 지자케
일본의 술집에서 술을 마셔본 사람들은 한번쯤 다양한 술의 종류와 맛에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본의 술은 흔히 우리나라에서 ‘사케’라고 부르는 쌀을 주재료로 한 청주와 고구마·보리·메밀·사탕수수를 증류해서 원료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 있도록 빚은 쇼추(燒酒)로 나눌 수 있다.
사케와 쇼추의 종류는 모두 원산지에 따라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현재 일본 전국에 2,000여 곳의 사케 메이커가 있는데, 그 규모와 경영방침은 물론이고, 제조방법이며 품질관리, 가격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그 맛이 매우 다양한데, 예를 들면 세토(瀨戶) 연안 지역은 부드러운 맛의 사케로 유명하고, 니가타(新潟)와 고치(高知) 지방은 강한 맛의 사케로 유명하다. 이처럼 사케의 맛은 그 토지의 풍토와 습관, 음식의 기호 등의 다양한 요소에 따라 지방마다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일본에서 지자케가 처음부터 순조롭게 지역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이후 주조법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생산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전국적으로 주조기술이 향상했지만, 대다수 메이커가 대중이 마시기 쉬운 술을 만들면서 일본의 술은 맛과 향이 획일화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술의 대중화는 한편으로 다양하고 색다른 맛과 향을 원하는 새로운 소비자층을 탄생시켰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미각을 만족하기 위해 지역의 희소성 있는 술을 찾기 시작했다.
또 이와 더불어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 캠페인인 ‘디스커버리 재팬 캠페인’, 지방자치단체 진흥운동인 ‘고향으로의 귀향’ 과 같이 지방의 고유문화를 다시 돌아봄으로써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사업들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것과 맞물려 지자케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지역에서는 지역 브랜드로서 지자케를 강력하게 선전하게 되었고, 순수한 쌀로 만든 순미주, 정미 비율 60% 이하의 백미를 사용하고 누룩과 물이나 양조 알코올을 원료로 제조한 음양주, 정미 비율 70% 이하의 백미에 누룩, 양조용 알코올과 물을 원료로 하여 제조한 본양조주 등 다양한 상품을 전략적으로 내세우면서 각 지역의 많은 지자케가 대도시의 음식점에 진출하게 되었다. 또 특정 루트로만 판매된다는 희소성이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해 지자케는 더욱 각광받았다.
술로 빚어낸 지역 브랜드
지역 브랜드란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 어류, 과일 등의 특산품과 이러한 특산품을 전통기술로 제조한 가공식품을 말한다. 이 상품들은 지역명과 상품 서비스가 연관되어 하나의 브랜드명을 갖게 된다. 이러한 지역 브랜드 창조와 관계 깊은 것 중 하나가 지자케다. 그 지역의 전통주는 관광의 커다란 매력 중 하나인 식도락과 연관된 아이템으로 특산품으로 판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국으로 퍼져 특정 지역을 선전하는 도구로도 쓰인다.
니가타 현은 예부터 쌀로 유명한 지역이다. 니가타의 브랜드화한 쌀은 그 쌀로 만든 구보타라고 하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지자케를 탄생시켰다. 구보타는 1985년 아사히주조에서 만든 술로 판매방식을 달리했는데, 상품 콘셉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직접 판매점을 찾아가 설명한 뒤 구보타의 성격을 충분히이해하는 판매점에만 ‘구보타회’ 회원 자격을 주고, 그 회원 점포에만 상품을 납품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같이 구보타는 기존의 유통 경로를 따르지 않고 직접 소매상과 계약 다. 팸플릿 등을 동원한 일반적인 광고는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소문에만 의존하는 마케팅 전략을 택해 그 희소성과 가치를 높였다. 그리고 항상 소매점과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소매상을 대상으로 구보타 연구회를 개최하는 등 소매상과 신뢰를 쌓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소비자에게 구보타를 판매하는 가게는 질 높은 주류 전문 매장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전략으로 구보타와 소매상들은 서로 윈-윈 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구보타만의 독특한 판매방식과 품질 개량으로 지금은 니가타라고 하면 쌀과 동시에 구보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구보타 외에도 오키나와(沖?)의 인디카 쌀을 원료로 한 증류주인 아와모리, 고구마 산지로 유명한 가고시마(鹿?島)의 고구마소주 등이 그 지역의 특산품과 함께 지역 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술로, 지금은 도쿄의 작은 술집에서도 이 술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다시 한 번 지자케의 붐이 일고 있다. 2006년 도쿄의 최첨단 문화지역인 오모테산도(表?道)에 새롭게 등장한 오모테산도힐에는 문을 열기 전부터 일본의 가장 유명한 가게와 레스토랑 등이 입점하기 위해 경쟁했다. 그중 눈에 띄는 가게 중의 하나가 ‘하세가와’라고 하는 주점이다. 밝고 화사한 분위기의 이곳은 카운터 자리가 열 개 남짓 있는 작은 곳이지만, 독특한 영업 방침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오모테산도 힐이라는 장소의 특성을 살려, 기존의 남성 회사원이 주로 찾던 사케를 여성과 외국인에게 어필하기 위해 이들을 대상으로 사케 소믈리에를 기용해 여러 가지 사케를 즐기는 방법을 설명하기도 하고, 수차례 일본 술 미니 세미나를 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또 일본주조조합중앙회는 2002년 10월부터 ‘오사케 테라피(Osake Therapy)’를 테마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케의 혈액순환 등 건강에 사케의 좋은 측면을 강조한 ‘신체 테라피’와 사케를 마시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정신 테라피’,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다는 ‘미용 테라피’ 이 세 가지를 어필해 기존의 남성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도 고객층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지자케는 기존의 지방의 값싼 술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급스럽고 세련된 토속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한국 지방화 시대의 작은 불씨 향토주
우리나라 백제의 수수보리(須須保利)라는 사람이 누룩으로 술을 빚는 법을 일본에 가르치면서 사케가 탄생해, 수수보리는 일본에서 주신(酒神)으로 받들리는데, 이것은 일본 역사책 고지키 (古事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의 청주가 사케의 기원인 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향토주는 1907년 일제강점기에 공포된 주세 징수와 자가 양조 금지를 목적으로 한 주세령에 따라 가정에서 술을 만드는 것이 엄격히 금지됨에 따라 자취를 감추었다. 그 뒤 개량식 소주가 일반화하고,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면서 향토주는 거의 맥이 끊겼다.
1980년대에 들어와 불합리한 제도와 제약이 조금씩 풀리면서 민속주 50여 종이 재현했고, 향토주 제조도 허가되어 향토주 문화 복원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음모로 맥이 끊긴 우리의 전통 향토주가 복원되기 시작한 것은 우리의 지역문화가 부활할 수 있는 희망의 불씨라 생각한다. 앞으로 일본의 구보타나 아와모리 등과 같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지역 고유의 향토주를 서울의 작은 술집에서도 손쉽게 음미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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