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선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의 해양과 옛 감옥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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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67회 작성일 10-10-0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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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Ushuaia)는 남극 가까이 있는 세계 최남단의 작은 도시다. 이 도시에는 어디에나 ‘세상의 끝(Fin Del Mundo)’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어 세상의 끝임을 실감하게 한다. 우리의 겨울은 그곳의 여름에 해당하며, 11월에서 3월 사이 바다가 얼지 않아 항해가 가능하다. 3월의 우슈아이아는 서늘하고 냉기가 돌았다. 이러한 휑한 느낌에 꼭 어울리는 박물관이 있었는데 옛 교도소 건물을 박물관으로 꾸민 ‘해양과 옛 감옥 박물관’(Museo Maritimo y ex Presidio, www.museomaritimo.com)이다.

교도소 건물은 그 규모가 대단했다. 큰 건물 다섯 동이 중앙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이어져 있다. 두 층으로 되어 있으며 이 안에는 현재 네 개의 박물관이 들어와 있다. 이 지역 원주민에서부터 선박에 이르기까지 우슈아이아 관련 자료를 보여주는 해양박물관, 이전의 교도소를 보여주는 감옥박물관, 남극 탐험대와 선박에 관한 자료를 모아놓은 남극박물관, 해양 관련 작품과 우슈아이아의 예술과 문화를 보여주는 해양예술박물관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감옥박물관이다. 건물 자체가 우슈아이아 초기 역사를 담고 있어 매우 의미 있고 독보적이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외부와 교류하기 어려운 이곳을 죄수 유형지로 사용기로 계획했고, 1902년 인근 지역의 교도소를 우슈아이아로 옮겼다. 이때부터 우슈아이아에 교도소를 짓기 시작했고, 죄수들의 노동력으로 1920년 지금의 건물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재범자가 수감되었고, 이후에 군 감옥이 합쳐지면서 정치범을 포함한 위험한 죄수들이 이곳에 오게 되었다. 큰 건물에 각각 76개의 감방이 지어졌고, 총 380개의 독방이 만들어졌으며 한번에 600명의 죄수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 규모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다섯 개의 건물이 이어지는 중앙 홀은 강의, 행사, 영화 상영 등의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이곳은 1947년까지 감옥으로 운영되었고, 1997년에는 역사 기념관으로 지정되어 돌 벽과 쇠창살로 된 건물들은 대부분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땅 끝의 해양성 기후는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도 쨍한 날씨를 선사해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듯했다. 박물관에서 처음 들른 곳은 2층 우체국으로, 창살 안의 잡화점은 서울의 가게 같아 친근감이 들었다. 소박한 공간에 우체국 용품들이 여기저기 진열되어 있었고, 탁자가 있어 엽서를 쓰기도 좋았다. 이곳에서 특별한 것은 ‘Fin Del Mundo’라는 펭귄이 그려진 고무도장이었다. 다 쓴 엽서에 찍힌 펭귄 그림을 보니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찍어주던 고무도장이 생각났다. 감옥이라기보다 휴게실처럼 편안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느낀 것도 잠시, 창문마다 쇠창살이 있어 창살 너머 바깥 풍경은 단절되어 보인다. 게다가 눈 덮인 산봉우리는 차갑게 느껴졌다.
감방은 마치 예술가들이 자신의 스튜디오를 공개하듯이 방마다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떤 방에는 죄수의 모형이 설치되어 있어 당시 분위기를 그대로 전했다. 발목을 쇠로 죄고 묶인 죄수들의 사진도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국민가수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이 그려진 방도 있었다.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있었는지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정확한 기록은 없고 이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만이 전해진다고 했다. 작은 창문이 이중 철창으로 막혀 있었고 그 앞 뿌연 유리창이 교도소의 스산함을 더했다. ‘역사 전시관’이라 불리는 건물의 한 동은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냉기가 돌고 음침하여 당시의 처량한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죄수들을 추모하는 듯 현대예술가의 작품도 한쪽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감옥에 갇힌 이들이 간절히 원했을 여성의 품과 진한 커피가 담긴 조그만 커피 잔이 감방 바닥에 외롭게 놓여 있었다.
모범수들은 감옥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작업장에서도 일을 할 수 있었고 급료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인쇄, 사진, 신발 수선, 재단, 목공, 베이커리, 의료 서비스, 약국 등의 서른 종류도 넘는 다양한 작업장에서 일했다.
‘땅 끝 기차’라는 이름으로 현재 공원 내의 자연 풍광을 보여주는 증기기관차의 관광 코스도 사실은 이 죄수들이 닦아놓은 철도 노선을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죄수들 가운데는 철도 작업 도중 추운 날씨 탓에 동상에 걸리고, 심지어 목숨을 잃은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기차역에는 죄수복을 입은 마네킹이 서 있었고, 예전 상황을 재연하듯 실제로 작업자가 죄수복을 입고 일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죄수들이 지금의 기차 길로 그들이 쪼갠 장작을 싣고 와 마을에 전했다고 한다. 당시 외부의 선박이 한 달에 한 번도 우슈아이아에 들르지 못했기 때문에 죄수들이 생산한 생필품과 이들의 노동력은 마을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세상의 땅 끝자락까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죄인으로 보내졌고, 이들이 수감되었던 감옥은 이 지역 개발의 중심이 되었다.감옥박물관은 깔끔함과 아름다움으로 떠오르는 일반적인 박물관 이미지와 동떨어져 오히려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우슈아이아는 남극을 가기 위한 출발지로 대륙 남단의 자연과 해양 풍경, 바다동물을 보여주며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죄수들의 사회공헌이 밑받침이 되어 우슈아이아가 이렇듯 세련된 관광도시가 된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하다. 어려운 여건을 잘 극복한 이 도시의 모습은 화려한 탱고와 유럽풍의 도시로 상징되는 아르헨티나의 표면적인 인상에 깊이를 더하는 듯했다. 텅 빈 감옥 그 자체로 우슈아이아의 역사성과 쓸쓸한 정서를 잘 보여주는 이 박물관은 치장 없이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진실한 감동을 전하는 길임을 깨닫게 했다.
홍미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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