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로이트 음악축제가 부러운 또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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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36회 작성일 10-10-0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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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지내다 보면 연중 크고 작은 축제가 이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축제는 도시를 활기차게 하고 이방인을 끌어 모으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유럽인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축제 중에서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영국의 에든버러, 독일의 바이로이트 축제를 3대 음악축제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100년 이상 이어져오는 이들 음악축제에는 후세에까지 큰 영향을 주는 예술가와 다양한 공연이 그 중심에 자리한다. 그래서 해가 거듭할수록 역사성을 갖춰가고 정통성을 얻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가장 성공한 지역축제를 가다
독일 남부의 뉘른베르크에서 지방 연결 철도인 RE를 타고 북동쪽으로 한 시간가량 가면 바이로이트(Bayreuth)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이 도시를 관광하는 데는 불과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중앙역에서 도심이라 할 수 있는 마르크트광장(Marktplatz)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다다를 수 있다. 그리고 서너 시간이면 오페라하우스, 바이로이트박물관과 대학교를 둘러보고, 작곡가 프란츠 폰 리스트(Franz von Liszt)와 작가 장 파울(Jean Paul)의 묘지까지도 갈 수 있다. 관광객이 인구 7만4,000명인 이 도시를 그냥 지나쳐 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단지 작고 오래된 오페라극장이 있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예술가가 130여 년 전에 살았던 생가가 있다는 정도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오페라 애호가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 사람들에게 이곳은 빨간 지붕을 인 우중충한 대리석 건물이 줄지어 선 볼품없는 작은 도시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축제가 열리는 음악의 성지다. 이곳에서 열리는 바이로이트축제야말로 유럽에서도 가장 성공한 지역축제로 꼽힌다.
독일이 낳은 위대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를 기리기 위해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매년 10만 명이 넘는 외지인이 바이로이트에 찾아온다. 외지인들에게 바이로이트는 도시 이름보다 바그너 음악축제 극장이 있는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이로이트가 독일 어느 주에 속하는지 모르는 유럽인이 적지 않지만, 바그너 음악축제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이곳 사람들의 설명은 결코 과장된 얘기가 아니다.
지난 7월 25일 바이로이트축제 극장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바그너 오페라가 펼쳐졌다. 97번째 바이로이트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축제 개막일에는 바이로이트 중심가 반프리트 하우스(Haus Wahnfried)에서 축제 개막 이벤트가 열린다. 반프리트 하우스는 바그너가 말년에 살았던 곳으로 현재는 바그너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정원에 마련된 바그너 무덤 앞에 세워진 흉상을 둘러싸고 합창 연주회를 한다. 연주자들은 짧은 연주가 끝나면 바그너와 후손들의 무덤에 화환을 놓고 축제가 펼쳐지는 극장으로 향한다.
반프리트 하우스에서 열리는 합창연주회 말고도 이 축제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리는 것은 따로 있다. 공연 시작 15분 전 바그너 음악축제 극장 발코니에 몇 명의 연주자가 등장해 공연할 곡의 모티브를 한 차례 연주한다. 그리고 10분 전에는 두 차례, 5분 전에는 세 차례의 팡파르가 울려 퍼진다. 그때부터 검은색이나 흰색 턱시도 차림의 남성들과 목이 훤히 드러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성 관객이 줄지어 들어선다. 이것이 1876년 바그너가 바이로이트에 극장을 설립한 때부터 이어진 불변의 전통이다.
입장권 확보, 10 대 1 경쟁을 뚫어라
거창하기 그지없는 오페라축제가 열리는 극장에는 사실 1,800명밖에 들어갈 수가 없다. 축제 기간에 판매하는 입장권도 모두 합해 5만5,000장 정도. 극장에 들어간 이들만이 위대한 독일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해 처음으로 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뉘른베르크의 마스터징어’가 야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중계될 정도로 축제 운영은 그동안 아주 폐쇄적이었다.
바그너 오페라를 보기 위해서는 수년 전에 입장권을 예매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에 개설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극장표를 주문하면 2016년 7월 이후에나 초대받을 수 있다. 실명을 밝히고 8년을 기다려 10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극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바그네리안(Wagnerian)’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축제는 점점 더 열광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음악제 기간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도시 전체가 마치 마비된 듯하다.
축제에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와 <파르치팔>(Parzival)은 매년 빼놓지 않고 연주된다.
바그너의 많은 음악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것이 <니벨룽의 반지>.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4부작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는 북유럽 바이킹 신화를 각색한 것이다. 이 공연은 3일 밤과 하루의 낮과 밤을 위한 오페라라고도 불린다. 이 때문에 <니벨룽의 반지>를 감상하는 데는 4일간, 무려 15시간이 필요하다. 음악평론가들은 이 공연이 가극 사상 최대 규모인데다 문학성과 음악성이 뛰어난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준다.
사실 130년간이나 지속되는 음악제는 바그너가 1851년 무렵부터 구상하기 시작했던 극장 운영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바그너는 ‘시와 음악 연극을 연결하는 총체극’이라는 악극을 공연하기 위해 극장을 설계했다. 1872년에 착공해 3년 만에 완공된 이 원형극장에서는 1876년 8월 13일 바그너가 자신의 56세 생일에 맞추어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초연했다. 이렇게 시작된 음악축제는 제2차 세계대전 뒤 7년간 중단됐다가 1951년부터 재개됐다.
1883년 바그너가 숨진 이후 아내 코지마(Cosima), 아들 지크프리트(Siegfried), 그리고 손자 볼프강 바그너(Wolfgang Wagner)와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 등이 대를 이어 예술감독을 맡아왔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lem Furtwangler),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카를 뵘(Karl Bohm) 등이 이곳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무덤에 있는 바그너가 도시 먹여 살린다’
바이로이트축제가 매년 연인원 10만 명이 넘는 음악 애호가를 끌어 모으는 데는 독특하고 환상적인 소품과 각종 광선을 이용한 빛의 예술이 녹아든 무대가 한몫한다. 실험적인 무대는 곧바로 세계 오페라 공연장의 전형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음악가는 물론이고 무대예술 전문가들의 관심이 바이로이트축제에 쏠린다.
바이로이트축제에는 재정을 떠맡은 두 개의 큰 축이 있다. 주로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바이로이트 프렌드’는 축제 전반을 책임진다. 그리고 시·주·연방 정부는 재정의 40%를 지원하고 재단 운영에도 깊이 관여한다. 연간 예산은 한화 140억 원에 달한다. 바그너가 극장을 지을 때도 음악 애호가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지금도 많은 동호인들이 축제를 후원한다. 1909년 설립된 독일의 바그너협회를 비롯해 전 세계 110여 개국의 바그너를 기념하는 협회가 후원한다. 독일 사람들은 바이로이트 음악축제를 빗대 ‘무덤에 있는 바그너가 도시 전체를 먹여 살린다’고 말한다.
이처럼 바이로이트축제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데는 나름대로 뜻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지역축제가 있지만 이처럼 성공한 행사를 아직 찾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지역축제는 고만고만한 동네잔치로 전락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역사성이 미약하고 지역 특색은 찾아볼 수 없는 급조된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 축제가 적지 않다.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바이로이트축제는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 지역축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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