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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장에 장보러 오냐? 사람구경하러 오지!_수원 문전성시 못골시장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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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44회 작성일 10-10-08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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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문전성시 못골시장 프로젝트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 장날은 특별한 잔칫날로 기억에 남는다. 집안 여자 어른들이 나물과 생선 좌판 앞에서 흥정을 벌이는 동안에 나는 뽑기 좌판 앞에 앉아 설탕과자에서 마름모꼴 무늬를 떼어내느라 씨름을 하고(대부분 실패했지만), 가축시장에 나온 강아지와 한참을 놀기도 했다. 약장수 아저씨의 쇼를 구경하다가 구충제 실험대상이 될까봐 심장이 콩닥거리기도 했다. 천막을 친 노천식당에서 먹던 국수와 부침개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즐거운 것은 친구들과 마주치는 일이었다. 이웃 마을로 이사 간 친구, 시집간 동네 언니,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이 갈린 친구들을 대부분 시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소금집 아줌마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 연탄집 아들이 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 고깃간 막내딸과 대장간 큰아들이 정분났다는 소문도 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구석에 앉아 계시기만 하는 동네 할머니께 어린 나는 눈치 없이 물었다.
“할무이는 암것도 안 사시모(사시면서) 만다꼬(뭐 하러) 이 멀리까지 나오셨어예?”
그러자 할머니는 퉁명스럽게 대답하셨다.
“야, 이년아! 누가 시장에 장 보러 오냐? 사람 구경하러 오지!”



사람 구경 오고 싶은 시장
예전에는 장 보러 가는 것이 일종의 ‘놀이’이자 ‘축제’였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려도 흥정하는 재미를 누렸고, 조금 손해를 봐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에게 이제 장보기는 ‘놀이’가 아닌 ‘노동’이 되었다. 가능한 한 신선한 것을 싸게, 빠르게, 편리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이랑 부대끼는 게 싫어서 아예 대형 마트에 전화로 주문을 하거나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기도 한다.
눈비가 들이치고, 바닥은 질척거리고, 가격은 천차만별이고, 상인들은 퉁명스럽고, 포장도 엉성하고, 영수증도 발행되지 않고, 신용카드도 통하지 않는 재래시장이 이러한 대형 마트와 정면승부를 벌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재래시장 시설 현대화사업이다. 비가 들이치지 않게 아케이드를 씌우고 주차장을 만들었다. 어떤 시장은 백화점처럼 카트를 들여놓기도 하고, 할인쿠폰이나 상품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상인들의 서비스 교육도 강화했다. 백화점 점원들처럼 양손을 배에 대고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하는 흉내까지는 못 내도 까다로운 손님을 친절하게 대하는 자세를 배우도록 했다. 그런데 시장이 깨끗하고 현대화해도 어딘가 2% 허전한 부분이 있다. 그게 무엇일까?
“야, 이년아! 누가 시장에 장 보러 오냐? 사람 구경하러 오지!” 그렇다. ‘사람’이 빠졌다. 예전의 북적거리고 축제 같은 시장에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장엔 ‘사람’은 없고 ‘상인’과 ‘고객’만 있다.
어릴 적 만난 그 할머니 말씀대로 시장은 단순히 물건 사러 오는 곳이 아니다. 사람 만나러 오는 곳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라도 나물 한 줌 듬뿍 더 얹어주는 인심이 고맙다. 크고 작은 인간사 소식 들으며 괜히 정이 들고 한 가족처럼 울고 웃는 곳이다.
‘사람 구경하러 오고 싶은 시장을 만들자’. 이것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는 ‘문전성시 프로젝트’(문화를 활용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의 핵심 정신이다. 기존 시장 시설 현대화 작업이 우리 재래시장의 건축, 환경 같은 기능적 면을 보완하고 강화했다면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그 초석 위에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얹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가 있는 시장을 찾아서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 4월, 건축·문화기획·공공디자인·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컨설팅단이 꾸려졌다. 그리고 각 지자체에서 추천받은 수십 곳의 재래시장 가운데 후보군을 추려 냈다. 그 다음 다시 하나하나 현장답사한 끝에 수원 못골시장을 시범사업 대상 시장으로 결정했다. 선택 기준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 만한 이야기가 있을 것’, ‘근처에 관광지를 비롯해 사람들을 유인할 만한 요소가 있을 것’, ‘전통시장의 원형을 갖추고 있을 것’ 등이었다. 수원 못골시장은 수원의 번화가인 팔달문 상권에 속해 있다. 점포 수 87개의 작은 규모 때문에 ‘팔달문 막내시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못골시장이 선정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전통시장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시장이 비디오 대여점이나 슈퍼마켓 등이 뒤섞여 있는 데 반해, 못골시장은 87개 점포 대부분이 음식 재료를 판다. 게다가 고만고만한 크기의 점포들이 줄줄이 어깨동무를 하고 골목 형태로 늘어선 모습이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아기자기하다. 전통시장의 형태를 고스란히 갖추었으면서도 번화가에 위치하고, 근처에 화성행궁을 비롯한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는 것도 강점이다
그러나 수원 못골시장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그 시장이 가진 ‘이야기’다. 못골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하는 ‘선희 엄마’는 선희에게 젖만 먹이고 나면 장사에만 신경을 쓸 수 있다. 근처의 식당 아주머니, 채소 가게 아저씨, 생선 가게 할머니 등이 돌아가며 선희를 봐주기 때문이다. 엄마가 장사를 하는 동안 선희는 여러 상인들 손을 거치며 놀다가 점심때가 되면 잠깐 엄마 품으로 되돌아오고, 다시 엄마가 아닌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잠이 든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못골시장 상인들이 가진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못골시장은 30년 전 외지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골목길에 함지박을 놓고 나물류를 팔면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인 상인들이 오늘날 점포 형태를 갖춘 시장을 형성하며 거의 그대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가 장사할 때 함께 어울려 놀던 자식 세대가 부모의 뒤를 이어 점포를 경영한다. 그래서 시장 전체가 한집안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오랜 세월을 함께 이웃하며 지내온 이들이기에 못골시장 상인들에게는 공통의 추억과 이야깃거리가 많다. 그래서 시장 안에는 늘 웃고 떠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른다. 바로 이 분위기가 손님들을 이끄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주변에 큰 시장이 많은데도 손님들이 그냥 재미 삼아, 구경 삼아 못골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상인들의 수다를 엿듣다가 반찬거리를 사 간다면.

시설물도 이야기를 한다
이번 사업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중소기업청과 협력관계를 맺은 점이다. 중소기업청에서는 지난해부터 재래시장 시설 현대화사업에 힘쓰고 있다. 그러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는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호응하여 시설 현대화사업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시장을 편리하고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아케이드를 씌우고 주차장 만드는 것에 집중해 사업을 전개해왔는데, 이번에는 ‘문전성시 프로젝트’에서 이끌어낸 문화적 콘셉트에 맞춰 아케이드를 디자인하고 간판을 교체한다. 서로 다른 성격의 정부기관이 ‘재래시장 활성화’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손을 잡았다는 것도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특징이다. 이번 사업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못골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식들이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고, 이웃 어른을 부모처럼 존경하는 못골시장의 콘셉트는 ‘효(孝)’다. 더욱이 수원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개혁정신을 잇기 위해 천도하기로 한 유서 깊은 도시다. 못골시장 상인들 역시 부모의 꿈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점에서 정조의 마음과 닿아 있다.
‘효’가 못골시장의 대외적인 콘셉트라면, 대내적인 콘셉트는 ‘가족’이다. 못골시장은 시장 전체가 한집안처럼 똘똘 뭉쳐 있다. 피를 나눈 가족관계도 와해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남남이 모여 가족 이상의 관계를 이어가는 못골시장의 매력은 고독한 현대인의 감성을 울리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못골시장 아케이드는 바로 이러한 못골시장의 이야기를 담은 디자인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할 이야기를 가진다’는 것이다_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
못골시장을 이루는 것은 87개의 점포다. 그 점포 하나하나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과일을 파는 며느리, 아버지를 도와 교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채소를 배달하던 아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점포…….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울릴 만한 각 점포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책으로 발간한다. 관행적인 용역보고서가 아닌, 사람 냄새 나는 한 권의 책으로 말이다. 이 ‘못골시장 스토리 북’은 상인들에게 자부심을 줄 것이다. 아울러 현대인에게는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점포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발굴하면 그 이야기에 맞추어 가게마다 개성 있는 간판을 만든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도와 자전거로 채소를 배달하던 아들의 점포 간판에는 고등학교 교모(校帽)가 걸린 자전거 모형이 붙는다. 손님들은 당연히 그 사연을 궁금해할 것이고, 사연을 알고 난 뒤에는 그 가게에 더욱 친근감을 느껴 단골이 된다. 이제 손님들은 그 가게에 채소를 사러 오는 게 아니라 효자의 이야기를 경험하러 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포장지에도 담을 수 있다. 각 점포는 각자의 사연을 재미있는 글과 사진으로 꾸민 포장지를 갖게 된다. 이 포장지에 물건을 포장해주면 손님들은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그 가게의 이야기를 접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다양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날 수도 있다. 시장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각 점포가 가진 스토리를 짧고 재미있는 영상으로 보여준다. 장을 보다가 잠시 쉬던 손님들이 그 화면을 보며 ‘어? 저 가게 재미있구나. 오늘은 저기서 생선을 사볼까?’ 하고 발길을 돌리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못골시장 활성화사업은 ‘차가운 시설물도 이야기를 하는 따뜻한 시장’을 목표로 한다.
전통적인 시장에는 반드시 ‘마당’이 있었다. 오늘날로 치면 ‘광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인데, 이곳에서는 약장수나 차력사의 쇼가 벌어지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두서없이 웃고 떠들기도 했다. 바로 이 광장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시장의 코어 어트랙션(Core Attraction)이다. 이를 위해 못골시장 입구의 빈 공간을 활용해 ‘주민 쉼터’를 만든다. 못골시장에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은 옥상정원처럼 꾸민 이 공간에서 차를 마시며 쉴 수도 있고, 못골시장 방송국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옥상정원은 근처 주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약속 장소로 자리하게 된다. 또 상인과 주민 사이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된다.

다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으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사실에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인간미를 잃어가고 고독감을 느끼는 현대인은 이제 ‘편리한 것’보다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것’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상품 수급, 가격, 각종 서비스 면에서 재래시장은 여전히 대형 마트나 백화점과 정면승부를 벌이기에는 불리하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재래시장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아니, 다른 길이 아니라, 원래의 길이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야, 이년아! 누가 시장에 장 보러 오냐? 사람 구경하러 오지!”
멍하니 시장 구석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시던 할머니의 이 한마디에 재래시장 활성화사업의 방향이 담겨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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