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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과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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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73회 작성일 10-10-0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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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의 다른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관광산업은 글로벌 초경쟁 시대의 ‘블루칩’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베트남의 관광산업이 지니는 독특성의 한 가지는 관광의 영역에서 전쟁의 상징들이 보존 또는 재생산되고,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하여 재활용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또한 탈사회주의적 전환기의 상황에서 글로벌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재의 베트남 사회의 문화적 지형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멀지 않은 과거의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전쟁터 및 이와 관련된 여타의 사회적 공간들에서의 관광을 통해 기억이 재생산되고 또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마케팅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등장하였다고 해서 전쟁과 관련된 모든 공간과 기억들이 관광의 대상으로 개발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강조되는 요소가 있는 반면에 무시되거나 배제되는 요소도 있다. 베트남의 관광지가 외부의 관광객들의 상상을 충족시켜 주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전쟁의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들이 서로 경합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이 실시되고 개방과 함께 탈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하면서 곧바로 전쟁이 관광 상품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유구한 역사, 전통왕조의 유물, 다양한 소수민족의 민속, 식민 시대의 유산, ‘때 묻지 않은’ 자연생태 등의 요소들에 비해 전쟁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상품화의 중심요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외국 관광객이 급증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베트남 문화의 독특성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상품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베트남 관광 개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관광정책의 결정과 시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문화통신부 산하의 베트남관광총국(VNAT: Vietnam National Administration of Tourism)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외국의 관광객에게 전쟁을 직접 마케팅하고자 하는 노력을 그다지 뚜렷하게 전개하지 않았다. 베트남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대미항전’ 또는 ‘아메리카 전쟁’을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러한 명칭과 관련된 문화적 생산과 상품화는, 일반적으로 국내 청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일례로 베트남관광총국이 1990년대 후반에 발행하여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구 전쟁터 방문 관광>(Paying Visit to the Old Battlefield)이라는 제목의 홍보용 팸플릿은 영문으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분명 외국관광객을 위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국내 청중들에게 이념적으로 친숙한 어휘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팸플릿은 베트남 전쟁유적지의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전쟁은 끝이 났다. 과거는 닫혔고 나라는 산업화와 현대화의 노정에 있다. 베트남의 역사는 새로운 광명의 시대에 들어섰으나, 고난과 역경의 시대의 증거들은 항상 새로운 세대들에게 위대한 과거를 상기시킴으로써 조상의 전통을 개발하고 전승하도록 해준다.”

전쟁유적 속에 잠재된 투쟁과 혁명
베트남 정부는 13개 전쟁터를 국가의 중요 전쟁유적지(War relics of Vietnam)로 지정하고, 이 유적지를 포함한 17개의 패키지 관광 코스를 개발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13개 전쟁유적에는 북부 라이쩌우(Lai Chau)성의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유적단지, 하노이의 호아로(Hoa Lo) 감옥박물관, 군사박물관 및 B-52기 격추기념관, 하떠이(Ha Tay) 성의 호치민루트 박물관(Ho Chi Minh Track Museum), 중부 하띤(Ha Tinh)성의 동록교차로(Dong Loc Cross-Road), 꽝찌(Quang Tri)성의 케산(Khe Sanh) 기지, 벤하이(Ben Hai) 강의 히엔르엉(Hien Luong) 다리, 그리고 호치민시의 구찌(Cu Chi) 터널, 전쟁기념 박물관(War Evidence Museum), 통일궁, 떠이닌(Tay Ninh)성의 베트민 남부중앙위원회 본부, 그리고 꼰다오(Con Dao)섬 감옥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유적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공식적인 수사에는 여전히 사회주의 혁명 시기의 역사 인식이 유지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가령, 디엔비엔푸 전쟁유적단지는 ‘베트남 민족해방을 완수하는 승리를 거둔 역사의 현장이자 베트남 북서 지역의 울창한 산림과 훌륭한 경치와 함께 독특한 전통음식과 무용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설명되고 있다. 베트남의 6개 국립박물관 중 하나인 하노이 군사박물관은 ‘베트남 군사력과 인민군의 웅장하고 생생한 역사를 전시하여, 방문객들에게 민족의 평화와 독립 및 자유를 위해 투쟁한 베트남 인민군의 발전 과정을 알려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노이 도이껀(Doi Can) 길에 위치하는 ‘B-52기 격추박물관’은 1968년 초 미국의 북폭에 대한 하노이 인민군의 ‘영웅적인 불굴의 저항’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록 교차로는 ‘미제국주의에 대한 인민의 위대한 항전의 역사가 수많은 젊은 열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반영되어 있으며, 특히 10명의 소녀 전사는 혁명 영웅 열사의 모범으로 하나의 전설이 되어 베트남 사람의 가슴속에 역사를 따라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외국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미국과 유럽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로 변모한 관광지에 대해서도 투쟁과 혁명의 수사가 유지되고 있다. 가령, 케산 기지는 원래 미군 기지였다가 결국 북베트남 인민군에 의해 함락된 곳인데, 최근에는 특히 미국의 참전용사를 비롯한 외국 관광객의 주요 관광 코스가 되었다. 베트남관광총국은 ‘케산 기지는 결국 함락되었고, 베트남의 해방기가 따꼰(Ta Con) 고지에 자랑스럽게 휘날리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호치민을 비롯한 남부 베트남을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는 구찌 터널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남부 베트남이 미국과 꼭두각시 괴뢰 정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이후 1979년 4월 29일 문화정보부에 의해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 유적으로 공인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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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관광객들에게 팔기 위한 ‘베트남 전쟁’
그러나 베트남 관광산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시장경제와 세계화에 직면하여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과거의 상품화 방식이 꾸준히 변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특히 남부 베트남에 소재한 국영 관광기관은 미국 등 외부가 지속적으로 개념화해 온 ‘베트남 전쟁’의 담론적인 구성과 관련된 시장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시도는 특히 남부 베트남에 소재한 국영 관광기관과 새롭게 설립된 사영 관광업체가 중심이 되었다. 시장경제의 확산에 따라 사영 관광업체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업체들이 ‘베트남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과 여타의 국제 관광객들에게 팔기 위한 것이다. 정부기관은 국내외 투자 업체와 함께 ‘미국 전쟁’의 역사에서 의미가 깊은 사건들과 케산 기지와 같은 장소들에 대한 관광을 상품으로 구성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장소들에 친근한 미국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China Beach, DMZ와 같이 미군들이 즐겨 사용하던 군사 용어의 이름을 재생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관광 개발의 영향과 결과는 베트남 국가와 인민들에게 새로운 딜레마를 던져주고 있다. 베트남 문화통신부, 관광총국(VNAT), Hanoi Tourism, Saigon Tourist 등의 정부기관, 지방 사무소 및 국영기업, 각급의 지방 인민위원회, 그리고 민간기업 등은 관광 개발을 둘러싼 상호보완적이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주체들이다. 관광 개발의 전략적인 기획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주체들은 서로의 이해를 위해 갈등을 빚게 되고 또 그러한 이해는 조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베트남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와 현재의 관광 마케팅적인 서사 간에는 일정한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 현재의 베트남 관광은 여러 층위에서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베트남의 공식 이데올로기와 상충되는 면이 분명 있기 때문에 관광 개발을 통해 다양한 주체들이 각각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충돌에 대한 협상이 필요하다.

사실성, 진정성 있어야 전쟁터가 관광지로서 매력 갖게 해
사회경제적인 변화가 지속되고 사람, 지식, 자본의 글로벌한 움직임이 확대, 강화되면서 초국가적인 행위자들이 새롭고 차별적인 방식으로 역사(해석이나 재현)를 다양화하고 초국가화하는 기억의 실천들에 참여하게 하는 특정 사회적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베트남 관광 개발이 곧 그러한 공간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는 것은 베트남의 지배 엘리트 내부에서는 여전히 베트남 역사에 대한 단일하고 고정된 내러티브를 견지하고 있을 것으로 보거나, 새로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획일적인 통제를 관철하기 위한 기본적인 정치적 조건들은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도입을 통해 탈사회주의적 전환기 상황에 있지만, 사회주의 완수를 위한 핵심적인 국가이념과 민족주의적 정체성은 국가의 정책적인 담론과 공식 학계의 담론에서 지배적인 형태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이미 일부 연구자들이 설명하였던 바와 같이, 베트남 공산당 내부에도 이념적인 갈등이 표출되어 왔고, 국가의 공식적인 기억과 대중의 기억 간의 갈등의 결과로 베트남의 역사적 기억은 변환과 재서술을 겪어왔다.
이와 관련된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는 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전쟁 당시 미국군이 자행한 잔인한 폭력의 잔재들이 전시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와 함께 의문을 제기하는 관광객이 늘어나자, 박물관에 전시된 참혹한 학살의 증거들을 더 이상 전시하지 말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호치민 시의 ‘전쟁범죄 박물관’은 ‘전쟁기념 박물관’으로 개명하였다. 즉, 지구화에 직면하면서 역사적 상징의 재현방식과 관련하여 기존의 이데올로기와 소비자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마케팅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베트남 전쟁 관광이 관광객의 시선과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딜레마가 될 수 있다. 베트남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베트남의 ‘본색전통’과 ‘낭만적인 식민지 유산’뿐만 아니라 ‘고통이 제거된 과거’로서 재현되는 베트남 전쟁의 기억과 역사를 답사하고자 한다. 대개 체험을 통해 역사와 직접 대면함으로써 과거를 ‘실제의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외국 방문객들에게 베트남은 매력적인 대상이 된다. 하지만 관광객은 단순히 수동적인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관광지에서 재현되는 전쟁의 이미지와 향수에 관하여 능동적으로 나름대로의 해석을 부여하기도 하고, 여타의 관광 경험과의 비교를 통해 베트남 관광지의 특색을 정의하기도 한다. 관광객은 대개 객관적 사실로서의 베트남 역사나 문화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기보다는, 주관적으로 관광 대상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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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전쟁을 체험하고자 기대하고 베트남을 방문한 관광객 중에는 베트남의 관광지가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지 않다고 평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구찌 터널, 전쟁기념 박물관, 군사박물관, 혁명박물관 등에 방문한 일부 외국인들은 종종 전쟁의 기념 및 기억과 관련된 시각적인 자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이전의 미군 기지나 외국군 주둔 지역을 비롯한 전쟁터나 박물관에 “볼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며 실망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에 캄보디아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전쟁의 흔적이 보다 뚜렷하게 남아 있는 캄보디아와 비교하기도 한다. 관광객들은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비교하고, 격렬했던 과거를 보다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곳이 전쟁지로서는 최고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전쟁터가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갖는지의 여부는 ‘사실성’ 혹은 ‘진정성’에 기초하여 평가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은 후 급증하고 있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이런 감상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다. 전쟁의 상처가 어디서나 쉽게 발견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관광객들은 특히 그러하였다. 한국인들은 더구나 베트남 사람들이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적군으로 참전하였고, 게다가 일부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인들의 태도가 매우 친절하고 우호적인 것에 놀라기도 하였다. 사이공 근처의 구찌 터널을 제외하고 북베트남 인민군과 베트콩의 활동의 흔적도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는 사회주의 국가가 전쟁의 잔혹성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한국군이 주둔하고 한국군이 주로 전투에 참여하였던 중부 및 중남부 해안 지역은 외국인을 위한 관광 지역으로 개발이 되지 않았다. 다낭, 후에 근처나 DMZ 등의 전쟁을 기념을 할 만한 지역이나 장소는 대개의 경우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는 유럽의 배낭족들의 여행지가 될 뿐 그곳을 방문하는 한국의 여행자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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