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의 문명은 시대를 초월한다: 페루 리마의 라르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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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93회 작성일 10-10-0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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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를 소개하는 책에서 리마의 에로틱박물관을 꼭 들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시간을 쪼개어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에 이르니 대저택으로 일일이 도어맨이 문을 열어주었다. 에로틱박물관이라 알려진 이 박물관의 본래의 이름은 창설자의 아버지의 이름을 딴 ‘라파엘 라르코 에레라 박물관(Museo Rafael Larco Herrera)’이었다. 문에 들어서니 녹색의 정원이 펼쳐져 있고 왼편으로 멋진 카페가 있었다. 여느 박물관보다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였고 평온한 정원을 만끽할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었다. 정원에 있는 석상들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본 듯하고 소박하면서도 친근감이 들었다. 이 박물관 터에는 7세기경의 피라미드가 있었고 18세기에 이르러 왕가 귀족의 저택이 그 위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정원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 흰색의 박물관은 과거의 자취가 남아서인지 우아하면서도 현대적이었다.
라르코박물관은 4만5,000여 점의 토기, 수천 점의 직물류와 장신구들을 포함하여 고대 페루 지역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장신구들과 토기들이 특징적이었다. 투명한 자연석과 조개를 재료로 한 목걸이가 눈을 끌었다. 자연 소재를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과거의 시대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단순하고 과감한 디자인은 현대 작품보다 훨씬 개성 있게 보였다. 특히 머리에 쓰는 관과 함께 귀, 코, 가슴을 장식하는 거대한 황금 장신구들은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더욱 화려해 보였다. 
이러한 멋스러운 장신구들로 치장하였을 안데스인들의 위엄과 기상이 그대로 전해졌다.
토기들은 문명별,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중미 지역에 마야문명 이전에 다양한 문명이 있었듯이 남미에서도 잉카문명 이전에 여러 문명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기원전부터 800년 사이, 페루 해안 지역에서 번성한 나스카문명과 모체문명이었다. 나스카문명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인 사막 위에 대형 드로잉 ‘나스카라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나스카의 토기들에서도 나스카라인에서 보이는 자연의 모티브를 볼 수 있었다. 토기에 그려진 그림들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처럼 코믹하면서도 대상의 특징들을 디자인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반면에 모체문명의 토기는 토기 자체가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들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 표정이 자연스러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외의 다양한 토기들이 각 문명마다 구분되어 있었고 고유의 색과 특징을 보여주었다.
수장고 느낌의 공간이 개방되어 있어 가보니, 벽의 천장에서 바닥까지 선반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여러 방들이 있었고 각기 다른 무수한 토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새나 동물의 형상을 한 토기들로 가득 찬 방도 있었고, 남성들의 얼굴 형상을 한 토기들로 가득 찬 방도 있었다. 고대 시대에 이렇게 입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토기작품들이 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하도 토기가 많아서 방마다 둘러보려면 한두 시간은 족히 이 공간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공간은 자료실로서 관객들에게 언제나
공개되어 있었다. 용감하게 에로틱 토기가 있는 곳을 안내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안내인은 박물관이 끝날 시간이라면서 본 건물이 아닌 박물관 정문 옆에 전시실이 따로 있다고 한다. 아마 너무 인기가 있어 특별히 공간을 준비해 놓았나 보다. 다른 관람자들도 나하고 같은 마음이었는지 다들 서둘러서 에로틱 전시장으로 이동하였다. 에로틱 전시실에는 당시의 성생활을 엿볼 수 있는 모체문명의 토기들이 단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성교 장면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전혀 외설적이지 않았다. 이곳의 작품들은 농경사회의 생산과 번식을 권장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후세학자들은 에로틱 토기가 일반 토기들에 비해 적은 숫자이기에 이들이 특별한 제례를 위해 사용되었다고 추정하였다. 남근을 곡선으로 부드럽게 표현한 토기도 있었는데 이 그릇은 예식 때 액체를 담았다고 한다. 인도의 카마수트라의 삽화처럼 다양한 성행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토기들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적절하지 못한 성관계로 인한 질병과 처형을 형상화한 작품도 있었고 동성애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었다. 동물이나 죽은 자의 성교를 표현한 토기도 있었는데 이는 신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과도한 성행위를 경고하듯 해골의 모습을 한 토기도 있었다.
이 박물관의 창설자인 라파엘 라르코 오일레(Rafael Lorco Hoyle)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수집한 고대 토기에 둘러싸여 성장하였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 건너가 농경과 공학, 경영의 학문을 두로 섭렵한 후 고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사업인 사탕수수 농장 일을 하였다. 농장의 기계화를 이루고 노동자들을 위한 학교와 병원 등의 복지시설을 운영하였다. 그의 이러한 경영 스타일은 페루 농장의 모델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으로 그는 고고학적인 관심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라르코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자신과 가족의 토기 소장품을 시작으로 친지들의 소장품을 연이어 기증받았고, 고대 페루의 유물들을 계속 수집하였다. 1926년 페루 북부 지역의 농장에서 문을 연 이 박물관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수도 리마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사업과 함께 고고학적인 연구도 병행하였으며 말년에 집필한 에로틱 토기에 관한 ‘CHECAN’(모체어로 사랑을 의미)을 포함하여 다수의 고대 페루문명에 관한 저서를 남겼다.라르코 박물관은 에로틱 토기를 포함하여 고대 페루의 막대한 토기 소장품만으로도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이 미술관의 세련된 장신구들과 자유자재로 형상화한 토기들을 보면서 고대 페루인의 넉넉한 기질과 섬세한 예술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고유의 문명은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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