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지역 표정 바꾼다_독일 괴팅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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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138회 작성일 10-10-0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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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지역사회의 문화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거든 괴팅겐(Gottingen)에 가보라. 독일 중부 니더작센 주(州)에 있는 괴팅겐 시와 괴팅겐 대학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구 13만 명의 작은 도시 괴팅겐의 존재 이유를 대학에서 찾을 수 있다. 괴팅겐 대학에서 축제가 열리면 도시 전체가 흥에 겨워 들썩이고,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기간이 되면 도시는 금세 적막에 빠져든다. 목로주점과 상가에는 젊은이들의 물결로 가득 차 도시의 얼굴에 그대로 투영된다.
대학 없이 괴팅겐도 없다
대학의 움직임에 따라 도시의 표정이 바뀌는 도시 괴팅겐. 이곳에서는 대학과 관련 없는 산업이 없고, 어느 한 집이든 대학과 관계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심 상가의 주 고객은 대학생과 그 가족들이고, 자취생들에게 방을 내주는 가정도 적지 않다. 괴팅겐 시 주민 절반이 35세 이하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이다. 독일 여느 도시보다 젊은 이곳은 대학으로 인한 경제적, 문화적 특별함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괴팅겐 시의 행정도, 정책도 모두 대학과 학생 위주로 편성돼 있다.
이 같은 괴팅겐 시와 대학의 공존은 27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이네(Leine) 강에 접해 있는 지금의 괴팅겐에 도시가 형성된 것은 10세기. 작은 촌락에 불과한 괴팅겐은 1210년 비로소 도시가 된다. 괴팅겐 대학 설립은 1737년 선제후 게오르게 아우구스투스(George Augustus: 영국왕 조지 2세)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이 대학의 정식 이름은 게오로크 아우구스트 괴팅겐 대학교(Die Georg August Universitat zu Gottingen)이다.

괴팅겐 대학의 가장 큰 자랑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건물도, 산학 협력을 처음 시도한 대학 정책도, 규모가 큰 도서관도 아니다.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이곳에서 학문을 탐구해 세계와 조국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자 자산이다.
변방에 있는 괴팅겐 대학의 존재를 독일 전역에 알리게 된 것은 ‘괴팅겐 7교수사건’이다. 1837년 당시 독일 연방국가 중 하나인 하노버에서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7월혁명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자유주의적 헌법을 폐지하고 과거 헌법으로 회귀시켰다. 자유주의 헌법 제정 때 큰 역할을 했던 F. 다르만을 비롯하여 게오르크 G. 게르비누스(Georg G. Gervinus), 야코프 그림(Jacob Grimm)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형제, 물리학자 W. 에두아르트 베버(W. Eduard Weber), 법학자 W. 에두아르트 알브레히트(W. Eduard Albrecht) 등 이 대학 교수 7명이 시민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왕의 횡포에 맞서 싸웠다. 왕은 이들 교수 7명을 파면했다.
이 사건은 곧 독일에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7명의 교수들은 다른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이 사건은 독일 자유주의의 진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44명의 노벨상 수상자 배출한 괴팅겐 대학
하지만 괴팅겐 대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계기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대학이 다시 명성을 되찾고,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수학과와 물리학과의 발전 때문이다.
괴팅겐 대학은 지금까지 4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대학을 거쳐간 학자까지 포함해 68명이 노벨상을 탔다는 통계도 있다. 괴팅겐 대학이 이처럼 학문연구의 선두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로렐라이’로 잘 알려진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대학 법학박사 과정을 수학한 하이네는 ‘도서관 없이는 어떤 연구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며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이네가 주축이 돼 건립된 도서관이 오늘날 괴팅겐 대학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미국 하버드 등 많은 대학 도서관의 모델이 됐다. 하이네가 관장으로 재직 당시 수집한 장서는 무려 20만 권에 달했다. 현재 이 도서관은 독일에서 다섯 번째 규모로 524만 권의 장서를 자랑한다. 독일은 유럽의 다른 나라의 국립도서관 체계와 달리 주(州)마다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주립도서관을 갖고 있다. 괴팅겐 대학 도서관도 니더작센 주립도서관을 겸하고 있다.
괴팅겐 대학을 말할 때 또 한 명의 석학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가운데 한 명이며 근대 수학의 완성자로 불리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가 바로 그 사람이다. 1807년 괴팅겐 대학 수학교수 겸 천문대장으로 임용된 그는 30년 동안 수학과 천문학에 매진했다.
가우스는 정수론, 대수학, 복소수론, 무한급수, 타원함수, 확률통계 등 수학의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탁월한 업적을 냈다. 가우스는 나아가 자신의 전문 분야인 수학뿐만이 아니라 물리학, 천문학, 굴절광학, 전기공학 등에도 수준 높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가우스가 물리학에서 이룬 업적은 주로 빌헬름 베버(Wilhelm Weber)와의 협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 같은 이유로 신시청사 인근에 두 사람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는데, 지금은 괴팅겐을 찾는 과학도들의 성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도 괴팅겐 대학이 자랑하는 사람이다. 1921년 괴팅겐 대학 이론물리학연구소장에 부임한 그는 ‘괴팅겐학파’라 불리는 과학자 군을 이끌며 양자역학의 발전과 핵물리학 개척에 공헌했다.
이와 함께 18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수학실험물리학과 교수였던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Georg Christoph Lichtenberg), 전기학의 거두 빌헬름 베버(Wilhelm Weber) 등도 이 대학이 배출한 자연과학 분야의 빼놓을 수 없는 석학이다. ‘철의 재상’이라 불리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역시 괴팅겐 대학 출신이다.
괴팅겐 대학은 신학대학·법과대학·사회과학대학·수학대학·물리대학 등 13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돼 있다. 학위 과정은 디플롬, 마기스터, 국가시험(Staatsexamen)과 박사학위로 100개 이상의 학위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그림 형제의 도시는 자건거를 타고
괴팅겐에서 추억을 만들려면 구시청사 앞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작은 분수로 가야 한다. 분수 가운데에는 청동으로 된 거위를 안고 있는 소녀상이 있다. 이 조형물이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림 형제가 이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비교언어학의 창시자인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가 쓴 동화에 등장하는 ‘거위를 지키는 리첼 공주’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형제는 괴팅겐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어른이 읽는 동화로 잘 알려진 《그림 형제 동화》는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로 통한다.
괴팅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예외 없이 거위소녀 리첼에게 꽃을 바치고 입술에 입맞춤을 하는 전통이 있다. 박사들의 헌화는 일년 내내 계속된다. 리첼을 두고 괴팅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가장 키스를 많이 받는 소녀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누구에게나 입술을 허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괴팅겐을 둘러보는 데는 자전거가 제격이다. 중앙역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구시청사 방향으로 달리면 여행객들이 보고자 하는 명소들이 몰려있다. 중앙역 인근이 관광안내소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뻗은 괴테알레를 지나면 작은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 프린첸 거리로 직진하면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괴팅겐 도서관이다. 인근 고트마르 거리 안쪽에 있는 두 개의 높은 탑으로 된 오래된 건물이 성요한 교회이고 바로 옆에 있는 것이 구시청사이다. 구시청사는 고대 교역의 중심지로 상인들의 길드하우스 역할을 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바르퓌서 거리에 있는 독일 전통 목조가옥 아벨보르네만하우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하지만 괴팅겐은 다른 도시와 달리 시내 곳곳에 대학 강의실과 연구실이 흩어져 있어 딱히 어디를 가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다만 철학가와 과학자의 이름이 빼곡히 쓰여있는 연구소와 도로 이름을 빼놓지 말고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곳에 이름이 올라있는 그들은 한평생을 곁눈질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연구소 벽에 걸린 교수들의 이름과 그들의 업적을 듣는 것만으로도 괴팅겐을 방문한 충분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대학 없이 괴팅겐도 없다
대학의 움직임에 따라 도시의 표정이 바뀌는 도시 괴팅겐. 이곳에서는 대학과 관련 없는 산업이 없고, 어느 한 집이든 대학과 관계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심 상가의 주 고객은 대학생과 그 가족들이고, 자취생들에게 방을 내주는 가정도 적지 않다. 괴팅겐 시 주민 절반이 35세 이하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이다. 독일 여느 도시보다 젊은 이곳은 대학으로 인한 경제적, 문화적 특별함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괴팅겐 시의 행정도, 정책도 모두 대학과 학생 위주로 편성돼 있다.
이 같은 괴팅겐 시와 대학의 공존은 27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이네(Leine) 강에 접해 있는 지금의 괴팅겐에 도시가 형성된 것은 10세기. 작은 촌락에 불과한 괴팅겐은 1210년 비로소 도시가 된다. 괴팅겐 대학 설립은 1737년 선제후 게오르게 아우구스투스(George Augustus: 영국왕 조지 2세)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이 대학의 정식 이름은 게오로크 아우구스트 괴팅겐 대학교(Die Georg August Universitat zu Gottingen)이다.

괴팅겐 대학의 가장 큰 자랑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건물도, 산학 협력을 처음 시도한 대학 정책도, 규모가 큰 도서관도 아니다.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이곳에서 학문을 탐구해 세계와 조국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자 자산이다.
변방에 있는 괴팅겐 대학의 존재를 독일 전역에 알리게 된 것은 ‘괴팅겐 7교수사건’이다. 1837년 당시 독일 연방국가 중 하나인 하노버에서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7월혁명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자유주의적 헌법을 폐지하고 과거 헌법으로 회귀시켰다. 자유주의 헌법 제정 때 큰 역할을 했던 F. 다르만을 비롯하여 게오르크 G. 게르비누스(Georg G. Gervinus), 야코프 그림(Jacob Grimm)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형제, 물리학자 W. 에두아르트 베버(W. Eduard Weber), 법학자 W. 에두아르트 알브레히트(W. Eduard Albrecht) 등 이 대학 교수 7명이 시민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왕의 횡포에 맞서 싸웠다. 왕은 이들 교수 7명을 파면했다.
이 사건은 곧 독일에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7명의 교수들은 다른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이 사건은 독일 자유주의의 진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44명의 노벨상 수상자 배출한 괴팅겐 대학
하지만 괴팅겐 대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계기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대학이 다시 명성을 되찾고,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수학과와 물리학과의 발전 때문이다.
괴팅겐 대학은 지금까지 4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대학을 거쳐간 학자까지 포함해 68명이 노벨상을 탔다는 통계도 있다. 괴팅겐 대학이 이처럼 학문연구의 선두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로렐라이’로 잘 알려진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대학 법학박사 과정을 수학한 하이네는 ‘도서관 없이는 어떤 연구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며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이네가 주축이 돼 건립된 도서관이 오늘날 괴팅겐 대학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미국 하버드 등 많은 대학 도서관의 모델이 됐다. 하이네가 관장으로 재직 당시 수집한 장서는 무려 20만 권에 달했다. 현재 이 도서관은 독일에서 다섯 번째 규모로 524만 권의 장서를 자랑한다. 독일은 유럽의 다른 나라의 국립도서관 체계와 달리 주(州)마다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주립도서관을 갖고 있다. 괴팅겐 대학 도서관도 니더작센 주립도서관을 겸하고 있다.
괴팅겐 대학을 말할 때 또 한 명의 석학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가운데 한 명이며 근대 수학의 완성자로 불리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가 바로 그 사람이다. 1807년 괴팅겐 대학 수학교수 겸 천문대장으로 임용된 그는 30년 동안 수학과 천문학에 매진했다.
가우스는 정수론, 대수학, 복소수론, 무한급수, 타원함수, 확률통계 등 수학의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탁월한 업적을 냈다. 가우스는 나아가 자신의 전문 분야인 수학뿐만이 아니라 물리학, 천문학, 굴절광학, 전기공학 등에도 수준 높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가우스가 물리학에서 이룬 업적은 주로 빌헬름 베버(Wilhelm Weber)와의 협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 같은 이유로 신시청사 인근에 두 사람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는데, 지금은 괴팅겐을 찾는 과학도들의 성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도 괴팅겐 대학이 자랑하는 사람이다. 1921년 괴팅겐 대학 이론물리학연구소장에 부임한 그는 ‘괴팅겐학파’라 불리는 과학자 군을 이끌며 양자역학의 발전과 핵물리학 개척에 공헌했다.
이와 함께 18세기의 천재라 불리는 수학실험물리학과 교수였던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Georg Christoph Lichtenberg), 전기학의 거두 빌헬름 베버(Wilhelm Weber) 등도 이 대학이 배출한 자연과학 분야의 빼놓을 수 없는 석학이다. ‘철의 재상’이라 불리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역시 괴팅겐 대학 출신이다.
괴팅겐 대학은 신학대학·법과대학·사회과학대학·수학대학·물리대학 등 13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돼 있다. 학위 과정은 디플롬, 마기스터, 국가시험(Staatsexamen)과 박사학위로 100개 이상의 학위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그림 형제의 도시는 자건거를 타고괴팅겐에서 추억을 만들려면 구시청사 앞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작은 분수로 가야 한다. 분수 가운데에는 청동으로 된 거위를 안고 있는 소녀상이 있다. 이 조형물이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림 형제가 이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비교언어학의 창시자인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가 쓴 동화에 등장하는 ‘거위를 지키는 리첼 공주’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형제는 괴팅겐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어른이 읽는 동화로 잘 알려진 《그림 형제 동화》는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로 통한다.
괴팅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예외 없이 거위소녀 리첼에게 꽃을 바치고 입술에 입맞춤을 하는 전통이 있다. 박사들의 헌화는 일년 내내 계속된다. 리첼을 두고 괴팅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가장 키스를 많이 받는 소녀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누구에게나 입술을 허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괴팅겐을 둘러보는 데는 자전거가 제격이다. 중앙역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구시청사 방향으로 달리면 여행객들이 보고자 하는 명소들이 몰려있다. 중앙역 인근이 관광안내소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뻗은 괴테알레를 지나면 작은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 프린첸 거리로 직진하면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괴팅겐 도서관이다. 인근 고트마르 거리 안쪽에 있는 두 개의 높은 탑으로 된 오래된 건물이 성요한 교회이고 바로 옆에 있는 것이 구시청사이다. 구시청사는 고대 교역의 중심지로 상인들의 길드하우스 역할을 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바르퓌서 거리에 있는 독일 전통 목조가옥 아벨보르네만하우스도 눈여겨볼 만하다.하지만 괴팅겐은 다른 도시와 달리 시내 곳곳에 대학 강의실과 연구실이 흩어져 있어 딱히 어디를 가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다만 철학가와 과학자의 이름이 빼곡히 쓰여있는 연구소와 도로 이름을 빼놓지 말고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곳에 이름이 올라있는 그들은 한평생을 곁눈질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연구소 벽에 걸린 교수들의 이름과 그들의 업적을 듣는 것만으로도 괴팅겐을 방문한 충분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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