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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박물관의 힘, 지역 활성화를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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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53회 작성일 10-10-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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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의 고카쇼마치의 문화유산을 활용한 지역 활성화의 현장 중
주요한 몇 가지를 방문해 보기로 하자.


역사민속자료관(歷史民俗資料館)
고카쇼(五個莊)의 호상 후지이 히코시로(藤井彦四郞)는 1899년 그의 나이 23세에 분가해서, 1909년에 직조용 실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점포를 열었다. 그는 조선에도 점포를 열어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또한 꼰 실을 제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특허를 얻었고, 인조견사를 생산해서 자신의 브랜드로 발매하였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의 경영 스타일로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의 옛 저택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는 ‘역사민속자료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 자료관은 본채, 방문객을 맞기 위한 건물, 서양식의 건물, 창고 그리고 거대한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료관에 들어서면 오미상인들이 전국적으로 장사에 나설 때 사용했던 각종 도구와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이 자료관은 고카쇼상인들의 역사적인 자료나 생활문화자료, 민속자료들을 풍부하게 전시하고 있어서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면서 살아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토노무라 우헤에(外村宇兵衛) 고택
고카쇼(五個莊)상인의 전통가옥박물관으로 대표적인 것이 토노무라 우헤에(外村宇兵衛) 가문의 고택이다. 이 가문은 1800년대 초에 다른 가문과의 공동사업에서 독립해서 상가를 이루어낸 이래로 번성해서 도쿄, 요코하마, 교토, 후쿠이 등지에 지점을 내고 포목상을 중심으로 상권을 넓혀가면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메이지 시대에는 전국적인 부자로 이름이 오를 만큼 오미(近江)를 대표할 만한 호상(豪商)으로 지위를 굳혔다고 한다. 이 고택은 고카쇼(五個莊)상인의 본가의 생활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 고택의 정원은 이 고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회자되고 있고, 입구에는 ‘가와토(川戶)’라고 불리는 마치 샘과 같은 것이 있는 바, 이는 건물의 밑으로 바깥의 개울물을 끌어들여서 물고기를 키우기도 하고 불이 났을 때에는 방화수로 사용하기도 하는 등의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토노무라 시게루(外村繁) 문학관
이 마을의 거상 토노무라 우헤에(外村宇兵衛) 가문에 서양자로 들어와서 분가해 일가를 이룬 한 거상의 셋째 아들인 토노무라 시게루(外村繁)의 생가를 개조해서 세워진 ‘문학관’은 이 마을의 다른 박물관 또는 자료관들과는 좀 색다른 특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토노무라 우헤에 본가의 교토점에서 근무하다가 이 가문의 딸과 결혼해서 메이지 40년에 독립, 도쿄에 면직류 전문의 포목점을 열고 활약했다고 한다.
이 가문의 셋째 아들인 시게루는 교토제3고등학교를 거쳐서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에 진학하였으나 그는 집안의 사업보다는 문학에 더 관심이 있어서 여러 문인들과 힘을 모아서 동인잡지를 창간하는 등의 문화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잠시 가업을 이어서 장사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가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문학에의 길에만 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오미상인들의 근원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것도 있다고 하는 바, 그의 고향 고카쇼(五個莊)는 장사꾼들의 세계에서 고고하게 피어난 한 문학도 세계를 기리면서 토노무라 시게루의 생애와 관련된 것들을 가능한 대로 많이 모아서 문학관을 열어 결과적으로는 오미상인 문화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Akindo 타이쇼관(大正館)
고카쇼의 미나카이(三中井) 가문은 타이쇼(大正, 1912~1926) 기간으로부터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식민지 조선으로 진출해서 백화점들을 설립하여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면서 ‘백화점 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에 이르렀다. 즉 노·일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05년에 대구에 ‘미나카이 포목점’을 설립하였고, 6년 후(1911년)에는 서울의 중심부에 근세 르네상스 양식의 철근 콘크리트 6층 건물을 신축하여 경성 본점을 열었다고 한다. 그 후 1934년에는 주식회사 ‘미나카이 백화점’으로 본격적으로 백화점 경영에 뛰어들었다. 1940년에는 13개의 점포를 거느린 최대의 백화점 체인사업체가 되었다.
이 백화점사업의 중심인물이 나카에 카츠지로(中江勝治郞)인데, 1924년 그가 미국을 시찰하면서 자원, 건축, 자동차 등 현대도시의 장관에 감탄한 나머지 귀국 후에 백화점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미나카이 백화점’ 그룹을 창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백화점사업은 거의 해외에 세운 것이어서 1945년 종전과 함께 ‘미나카이 백화점’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Akindo大正館’은 ‘미나카이백화점’을 창립한 나카에 카츠지로의 셋째 아들 쇼지가 아버지로부터 분가해 나와서 살았던 저택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전시된 내용 중에는 조선의 부산, 대구, 평양의 미나카이백화점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어서(사진 참조) 이 가문의 영업 무대가 조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 시설의 명칭 Akindo大正館 중 ‘Akindo’는 ‘상인(商人)’을 의미하고, 아마도 ‘타이쇼’ 시대에 활발하게 사업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大正館’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Akindo大正館은 여느 다른 고저택과 마찬가지로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또 상설전으로 이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각종 진귀한 인형을 한자리에서 전시하고 있어서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기도 하다.

오미상인박물관(近江商人博物館)
이 지역사회의 종합문화 공간의 시설이라고 부를 만한 ‘텐빈노사토 문화학습센터’는 고카쇼(五個莊)의 행정부인 야쿠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텐빈(天秤)노사토(里)’라는 말은 오미상인의 모습인 행상들이 짐을 운반하려고 어깨에 막대기를 걸치고 그 양쪽에 짐을 걸어놓은 모습의 그 막대기를 일컫는 ‘텐빈(천칭)의 고향(里)’이라는 뜻이다. 즉 이런 ‘텐빈’에 짐을 싣고 행상행위를 하는 오미상인의 상징을 내세운 지역사회의 문화시설인 것이다.
이 문화학습센터의 3층에 ‘오미상인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에도와 메이지 시대(1603~1912)에 시가현의 오미에 있는 고카쇼를 베이스 캠프로 삼아 전국 각지로 행상에 나선 오미상인들의 족적을 알기 쉽게 보여주고 있다. 더러는 영상자료를 사용하기도 하고 모형과 차트를 사용하기도 하며, 실물을 전시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오미상인들의 생활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어깨에 텐빈을 메고 짐을 운반하면서, 땀과 먼지로 얼룩졌지만 풍채가 당당한 젊은 오미상인들이 긴 줄을 이루면서 마치 실크로드의 대상행렬을 연상할 정도의 모습으로 가파른 산의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는 모형에서 이들의 강인한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오미상인의 문화는 단지 텐빈을 메고 돈벌이에 나서는 상인들의 생활양식만이 아니다. 이는 그들의 경영 방식, 교육, 자녀 양육 방식, 음식문화, 예술, 정신문화 등 생활문화의 다양한 영역에까지 걸친 하나의 문화복합(Complex culture)이라는 점을 이 박물관의 전시내용이 잘 보여주고 있다. 오미상인들은 단지 행상행위만이 아니라, 전국의 각 도시에 거점으로서의 가게를 내었고, 더러는 가게에서 판매할 생활용품들을 직접 생산하는 등의 사업영역을 넓혀나갔다. 남성의 장정들이 도시로 진출해서 사업 전선에 몰두하던 기간에 오미의 여성들은 고향마을에 남아 자녀양육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는 한편, 음식문화의 개발에도 많은 노하우를 축적해서 오미상인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자녀교육에서는 앞으로 도시로 나가 사업전선에 종사할 인재를 키우기 위해 독립성과 창의성이 강조되었고, 소년기에서부터 도시의 가게로 ‘인턴’ 형식으로 내보내서 장차 사업에 눈을 뜨게끔 주선하는 등의 훈련 방식이 오미상인 문화에 뿌리를 깊이 내렸다고 한다.
또한 ‘오미상인박물관’의 전시는 이 상인문화가 등장하게 된 초기부터 시대별로 어떤 변화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줄 수 있도록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오미상인 문화의 진화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돋보였다.

오미 고카쇼마치(五個莊町)의 교훈
오미 고카쇼마치의 상인문화와 관련된 시설들은 위에서 살펴본 것들만이 아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문화·관광시설들이 있지만 거의 모두가 ‘오미상인’이라는 키워드 하나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고카쇼마치(五個莊町)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그런 부류의 타운은 아니다. 타운은 조용하고 깨끗하며 어디를 둘러봐도 예술작품들 같다. 고카쇼마치의 공식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biwa.ne.jp/~tenbinst/)는 그 타이틀 페이지에서 이 타운이 ‘통째로 박물관’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또한 “‘오미상인’의 발상지이고, ‘흰 벽과 창고, 그리고 전통가옥의 마을’, ‘텐빈의 고향’인 고카쇼로 오세요!”라는 문구를 자랑스럽게 올려놓고 있다. 옛날 일본의 부유한 가정의 상징은 흰 벽으로 담을 친 저택과 거대한 창고(藏)였다. 주로 목재로 집을 짓는 일본문화에서 화재로부터 귀중한 재산을 지키는 길은 철저하게 화재나 다른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창고를 가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창고의 규모는 거의 부의 척도였고, 상징이었다.
우리가 지역 활성화의 차원에서 고카쇼마치로부터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는 이 타운의 수많은 문화관광 인프라들이 그 어느 것 하나도 각기 별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이루면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고카쇼마치 행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고카쇼마치 관광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양 축을 이루면서 전체의 시스템을 관리해 나간다. 이 양자가 운영 주최가 되어 이 타운의 얼굴인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이 타운에 관한 모든 것, 즉 문화관광시설들에 대한 소개, 각종 이벤트에 관한 정보 등이 여기에 올려지면서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지역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인프라로 활용하고 있는 점은 아주 인상적이다.
또 하나 필자가 고카쇼마치에서 얻을 수 있었던 교훈으로 들고 싶은 것은 지역주민들의 참여이다.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지역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이지만, 지역사회를 위하는 일에는 ‘관’과 ‘민’의 구분에 대한 관념이 훨씬 약한 것 같다. 고카쇼마치의 상공관광과가 행정적인 측면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여기에 관광협회가 또 다른 축을 이루면서 전체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관’과 ‘민’의 구분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일반 지역주민들은 정상적인 생업에 종사하면서 이 타운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마치 ‘오미상인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재확인하는 듯한 태도로 임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필자는 강하게 받았다.
오미의 고카쇼마치는 관광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당국자가 제시하는 통계(개인적으로 이메일을 통해 얻었음)로는 최근에 연간 30만 명 정도가 이 타운을 찾아온다고 한다. 물론 규모로 봐서 그리 많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높은 자긍심을 유지하면서 외부로부터의 방문객들과 교류하는 과정 그 자체가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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