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문호 둘러보는 작은 여행_문학도시 가나자와 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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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704회 작성일 10-10-0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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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도시·공예도시·예술도시·학술도시 등으로 잘 알려진 가나자와는 이러한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문학이다. 그러나 지면 관계상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분야(소설)를 중심으로, 가나자와에서 태어난 작가와 가나자와에서 어떤 형태로든 한 시절을 보낸 작가를 다루고자 한다. 물론 가나자와를 작품의 무대로 삼은 작가도 많고, 그것이 문학도시 가나자와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는 생략하기로 한다. 더 나아가 역부족이지만 가나자와가 문학도시인 까닭을 밝히는 데 도전해보려 한다.
이시카와 근대문학관에서 시작해보자
가나자와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하면 이즈미 교카(泉鏡花, 소설가·극작가)와 도쿠다 슈세이(德田秋., 소설가),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 소설가·시인)다. 가나자와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을 가나자와의 ‘3대 문호’라고 하는데, 이들이 가나자와의 걸출한 작가임에는 문학사적으로도 이론이 없다. 이 3대 문호는 각각 단독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즈미 교카와 도쿠다 슈세이는 아사노(.野) 강을, 무로 사이세이는 사이(犀) 강을 끼고 있다. 아사노 강을 ‘여자의 강’, 사이 강을 ‘남자의 강’이라 하는 것도 세 작가의 작풍을 이해하는 데 흥미를 더해준다.
그러나 가나자와 문학 산책의 첫발은 이시카와(石川) 근대문학관(2008년 4월 말부터 이시카와시코石川四高 기념 문화교류관 내)에서부터 시작한다. 도심에 있는 이 문학관은 가나자와 사람들에겐 넓은 의미에서 학술과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며, 일본 근·현대문학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피해갈 수 없는 곳이다. 유서 깊은 건축물에 문학도시 가나자와의 정수(精髓)가 집약된 이곳이 가나자와의 관광 메카라는 것은 모두 인정한다.
문학관에 소개된 저명한 작가들을 살펴보자.
_ 소설가(고인): 이즈미 교카, 도쿠다 슈세이, 무로 사이세이,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등
_ 소설가(현존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寬之), 가가 오토히코(加賀乙彦), 소노 아야코(.野綾子), 후루이 요시키치(古井由吉) 등
_ 시인: 오리쿠치 시노부(折口信夫), 쓰보노 뎃큐(坪野哲久), 나가세 기요코(永瀨淸子), 오야마 도쿠지로(尾山篤二郞), 나가사와 미쓰(長.美津), 쓰루 아키라(鶴彬) 등
_ 사상가: 아케가라스 하야(.烏敏),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후지오카 사쿠타로(藤岡作太郞), 미야케 세쓰레이(三宅雪嶺), 나카니시 고도(中西悟堂), 나카야 우키치로(中谷宇吉郞) 등
이 목록은 문학관에 등장하는 인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가나자와를 문학도시라고 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것이다. 1990년대 이후에도 가나자와 출신으로 중앙(도쿄)에서 인기 작가가 된 인물이 여럿이니 언젠가 이 문학관에서 검증받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3대 문호에 이어 기념관이 만들어질 인물도 있을지 모른다.
근대문학관 건물은 구 제4고등중학교로, 빨간 벽돌 건물이 인상적이다. 전국을 다섯 개로 구분하고, 호쿠리쿠(北陸) 지역에 세운 고등중학교로 전국에서 우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에 세운 것은 토족 가문의 자제를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제1고등중학교는 지금의 도쿄(東京), 제2고등중학교는 센다이(仙台), 제3고등중학교는 교토(京都), 제5고등중학교는 구마모토(熊本)에 있었다. 이 제4고등중학교가 문학도시 가나자와를 세운 작가와 사상가들의 인큐베이터이자 요람인 것은 앞서 소개한 작가 대부분이 제4고등중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학도시 가나자와의 초석은 근세다
가나자와는 에도시대에 천하의 도서관으로 칭송받던 가가햐쿠만고쿠(加賀百万石)가 있는 마을이었지만, 현대 문학도시에 이르는 노정은 평탄치 못했다. 에도의 도쿠가와(.川) 가문과 거리를 미묘하게 유지하면서도 교토의 천황 가문과 조정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마에다(前田) 가문은 무력 대신 문화와 공예에 주력했다. 3대 마에다 도시쓰네(前田利常), 5대 마에다 쓰나노리(前田綱紀)가 가가한(加賀藩) 세공소를 정비하고, 마에다 쓰나노리는 손케이카쿠(尊.閣) 문고, 코히쇼(百工比照), 쇼부쓰루이산(庶物類纂)을 완성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지원했는데, 이것이 가나자와의 문화와 공예가 발달하는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가가한 세공소는 병기와 갑옷, 투구 따위를 수선하고 관리했던 기관으로, 나중에 다도 도구와 서폭(書幅), 인장 등도 제작하여 옻칠기, 상감 등 현대 가가 공예(加賀工芸) 기술 연구가 시작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손케이카쿠 문고는 학자이기도 했던 쓰나노리의 수집 장서로, 특히 당시 몰락해가던 황족과 조정, 절이나 신사 등이 보유한 귀중한 자료의 유실을 막아 후세에 전한, 역사적으로 유익한 사업이었다. 핫코히쇼와 쇼부쓰루이산은 쓰나노리의 박물 취미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러 공예 제품과 기법을 수집하고 비교한 것이 핫코히쇼다. 한편 쇼부쓰루이산은 본초학을 중심으로 한 동식물도감이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 당시 최고 권력층에도 바쳐졌다고 한다.
이러한 업적을 통해 볼 수 있는 문화예술에 치우친 태도가 오히려 메이지유신 때에는 시대를 보는 눈을 흐리게 하여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 때문에 근세에 번성했던 가나자와가 새로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같은 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또다시 발생했다. 가나자와는 근세 이래 문화도시라는 정체성 덕에 전쟁의 재해를 모면했다고들 하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전후 부흥기의 도시개발에서 가나자와를 뒤처지게 한 것이다. 문학도시는 그런 가나자와에 남은 선택지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으나 전쟁의 재해도 겪지 않고 중앙의 정책과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근세의 마을 구획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고, 그 환경이 문학자들을 자극한 것은 아닐까.

3대 문호 찾는 여행을 떠나보자
그럼 이제 가나자와에서 태어난 3대 문호를 찾아나서 보자. 시내에는 조카마치 가나자와 순환버스(전 구간 200엔)가 운행되는데 교카 호, 슈세이 호, 사이세이 호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역 앞에서 그 버스를 타고 6번 하시바초(橋場町) 정류장에서 내려 벚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아사노 강가를 걸어가면 도쿠다 슈세이 기념관이 있다.
도쿠다 슈세이 기념관은 3개 기념관 중 가장 최근인 2005년에 개관했다. 3개 기념관 모두 건물이 자그마해 좋고 정성을 들인 전시와 자료에 호감이 간다. 창문으로 아사노 강이 보이고 제비들이 날아온다. 막 새 단장한 매화 다리를 건너면 교카의 세계다. 다키노시라이토(.の白.) 비를 뒤로하고 아사노 강 대교로 되돌아가 길을 건너면 가즈에마치(主計町) 찻집 거리에 들어선다.
골목길 안 권번 앞에는 가나자와 근대문학관 설립에 크게 기여한 근대문학관 초대 관장인 신보 지요코(新保千代子) 선생이 이름 붙인 데리하 벚꽃(照葉.)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옆을 빠져나가 구라야미(暗闇) 고개를 오르면 이즈미 교카가 어렸을 때에 놀던 구보이치오토쓰루기구(久保市乙劍宮)가 보인다. 그리고 다시 뒷길을 따라 걸으면 이즈미 교카 기념관이 있다. 생가 터에 있는 집이 기념관(1999년 개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도가 발달한 가나자와의 다과점과 기념품점 등이 있는 과자문화회관 부지 내에 있다.
하시바초 사거리 끝에는 은행 건물을 활용하여 소설가 이쓰키 히로유키의 저작을 모아 2005년에 개관한 가나자와 문예관이 있다. 그 앞에 있는 7번 하시바초 정류장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12번 무로 사이세이 문학비 앞으로. 벚나무 아래에는 가나자와 출신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로(谷口吉郞)가 만든 기념비가 서 있다. 기념비에는 있는 무로 사이세이의 자필로 새긴 글이 있는데, 이를 읽어보고 사이 강가를 걸어간다. 언제 오더라도 물새가 있고, 운이 좋으면 물총새도 만날 수 있다. 무로 사이세이가 단 한 번 올랐던 이오(.王) 산이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사이 강 대교를 건너 무로 사이세이가 자란 우호원(雨.院)으로 가보자. 도로와 사이 강 사이의 한구석에 남아 있는 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3분 정도 떨어진 곳에 2002년 개관한 무로 사이세이 기념관이 있다. 유리로 된 시원한 건물로 2층에는 사이세이의 목소리가 담긴 시 낭독 테이프가 있어 헤드폰을 끼면 무뚝뚝한 그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참으로 무로 사이세이다워 저절로 웃음이 난다.
전국에 문학의 마을, 문호의 마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자와만큼 정성스럽게 자료를 모아 기념관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은 없지 않을까? 물론 전용할 수 있는 건물이 남아 있고 문화를 중시하고 자료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편찬하는 기술과 전통이 있다. 경제성장과 조금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온 시민들이 사는 방식도 있다. 그런 인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가나자와라고 하는 문학도시를 낳았을 것이다.

이시카와 근대문학관에서 시작해보자가나자와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하면 이즈미 교카(泉鏡花, 소설가·극작가)와 도쿠다 슈세이(德田秋., 소설가),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 소설가·시인)다. 가나자와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을 가나자와의 ‘3대 문호’라고 하는데, 이들이 가나자와의 걸출한 작가임에는 문학사적으로도 이론이 없다. 이 3대 문호는 각각 단독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즈미 교카와 도쿠다 슈세이는 아사노(.野) 강을, 무로 사이세이는 사이(犀) 강을 끼고 있다. 아사노 강을 ‘여자의 강’, 사이 강을 ‘남자의 강’이라 하는 것도 세 작가의 작풍을 이해하는 데 흥미를 더해준다.
그러나 가나자와 문학 산책의 첫발은 이시카와(石川) 근대문학관(2008년 4월 말부터 이시카와시코石川四高 기념 문화교류관 내)에서부터 시작한다. 도심에 있는 이 문학관은 가나자와 사람들에겐 넓은 의미에서 학술과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며, 일본 근·현대문학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피해갈 수 없는 곳이다. 유서 깊은 건축물에 문학도시 가나자와의 정수(精髓)가 집약된 이곳이 가나자와의 관광 메카라는 것은 모두 인정한다.
문학관에 소개된 저명한 작가들을 살펴보자.
_ 소설가(고인): 이즈미 교카, 도쿠다 슈세이, 무로 사이세이,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등
_ 소설가(현존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寬之), 가가 오토히코(加賀乙彦), 소노 아야코(.野綾子), 후루이 요시키치(古井由吉) 등
_ 시인: 오리쿠치 시노부(折口信夫), 쓰보노 뎃큐(坪野哲久), 나가세 기요코(永瀨淸子), 오야마 도쿠지로(尾山篤二郞), 나가사와 미쓰(長.美津), 쓰루 아키라(鶴彬) 등
_ 사상가: 아케가라스 하야(.烏敏),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후지오카 사쿠타로(藤岡作太郞), 미야케 세쓰레이(三宅雪嶺), 나카니시 고도(中西悟堂), 나카야 우키치로(中谷宇吉郞) 등
이 목록은 문학관에 등장하는 인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가나자와를 문학도시라고 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것이다. 1990년대 이후에도 가나자와 출신으로 중앙(도쿄)에서 인기 작가가 된 인물이 여럿이니 언젠가 이 문학관에서 검증받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3대 문호에 이어 기념관이 만들어질 인물도 있을지 모른다.
근대문학관 건물은 구 제4고등중학교로, 빨간 벽돌 건물이 인상적이다. 전국을 다섯 개로 구분하고, 호쿠리쿠(北陸) 지역에 세운 고등중학교로 전국에서 우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에 세운 것은 토족 가문의 자제를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제1고등중학교는 지금의 도쿄(東京), 제2고등중학교는 센다이(仙台), 제3고등중학교는 교토(京都), 제5고등중학교는 구마모토(熊本)에 있었다. 이 제4고등중학교가 문학도시 가나자와를 세운 작가와 사상가들의 인큐베이터이자 요람인 것은 앞서 소개한 작가 대부분이 제4고등중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학도시 가나자와의 초석은 근세다
가나자와는 에도시대에 천하의 도서관으로 칭송받던 가가햐쿠만고쿠(加賀百万石)가 있는 마을이었지만, 현대 문학도시에 이르는 노정은 평탄치 못했다. 에도의 도쿠가와(.川) 가문과 거리를 미묘하게 유지하면서도 교토의 천황 가문과 조정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마에다(前田) 가문은 무력 대신 문화와 공예에 주력했다. 3대 마에다 도시쓰네(前田利常), 5대 마에다 쓰나노리(前田綱紀)가 가가한(加賀藩) 세공소를 정비하고, 마에다 쓰나노리는 손케이카쿠(尊.閣) 문고, 코히쇼(百工比照), 쇼부쓰루이산(庶物類纂)을 완성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지원했는데, 이것이 가나자와의 문화와 공예가 발달하는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가가한 세공소는 병기와 갑옷, 투구 따위를 수선하고 관리했던 기관으로, 나중에 다도 도구와 서폭(書幅), 인장 등도 제작하여 옻칠기, 상감 등 현대 가가 공예(加賀工芸) 기술 연구가 시작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손케이카쿠 문고는 학자이기도 했던 쓰나노리의 수집 장서로, 특히 당시 몰락해가던 황족과 조정, 절이나 신사 등이 보유한 귀중한 자료의 유실을 막아 후세에 전한, 역사적으로 유익한 사업이었다. 핫코히쇼와 쇼부쓰루이산은 쓰나노리의 박물 취미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러 공예 제품과 기법을 수집하고 비교한 것이 핫코히쇼다. 한편 쇼부쓰루이산은 본초학을 중심으로 한 동식물도감이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 당시 최고 권력층에도 바쳐졌다고 한다.
이러한 업적을 통해 볼 수 있는 문화예술에 치우친 태도가 오히려 메이지유신 때에는 시대를 보는 눈을 흐리게 하여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 때문에 근세에 번성했던 가나자와가 새로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같은 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또다시 발생했다. 가나자와는 근세 이래 문화도시라는 정체성 덕에 전쟁의 재해를 모면했다고들 하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전후 부흥기의 도시개발에서 가나자와를 뒤처지게 한 것이다. 문학도시는 그런 가나자와에 남은 선택지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으나 전쟁의 재해도 겪지 않고 중앙의 정책과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근세의 마을 구획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고, 그 환경이 문학자들을 자극한 것은 아닐까.

3대 문호 찾는 여행을 떠나보자
그럼 이제 가나자와에서 태어난 3대 문호를 찾아나서 보자. 시내에는 조카마치 가나자와 순환버스(전 구간 200엔)가 운행되는데 교카 호, 슈세이 호, 사이세이 호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역 앞에서 그 버스를 타고 6번 하시바초(橋場町) 정류장에서 내려 벚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아사노 강가를 걸어가면 도쿠다 슈세이 기념관이 있다.
도쿠다 슈세이 기념관은 3개 기념관 중 가장 최근인 2005년에 개관했다. 3개 기념관 모두 건물이 자그마해 좋고 정성을 들인 전시와 자료에 호감이 간다. 창문으로 아사노 강이 보이고 제비들이 날아온다. 막 새 단장한 매화 다리를 건너면 교카의 세계다. 다키노시라이토(.の白.) 비를 뒤로하고 아사노 강 대교로 되돌아가 길을 건너면 가즈에마치(主計町) 찻집 거리에 들어선다.
골목길 안 권번 앞에는 가나자와 근대문학관 설립에 크게 기여한 근대문학관 초대 관장인 신보 지요코(新保千代子) 선생이 이름 붙인 데리하 벚꽃(照葉.)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옆을 빠져나가 구라야미(暗闇) 고개를 오르면 이즈미 교카가 어렸을 때에 놀던 구보이치오토쓰루기구(久保市乙劍宮)가 보인다. 그리고 다시 뒷길을 따라 걸으면 이즈미 교카 기념관이 있다. 생가 터에 있는 집이 기념관(1999년 개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도가 발달한 가나자와의 다과점과 기념품점 등이 있는 과자문화회관 부지 내에 있다.
하시바초 사거리 끝에는 은행 건물을 활용하여 소설가 이쓰키 히로유키의 저작을 모아 2005년에 개관한 가나자와 문예관이 있다. 그 앞에 있는 7번 하시바초 정류장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12번 무로 사이세이 문학비 앞으로. 벚나무 아래에는 가나자와 출신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로(谷口吉郞)가 만든 기념비가 서 있다. 기념비에는 있는 무로 사이세이의 자필로 새긴 글이 있는데, 이를 읽어보고 사이 강가를 걸어간다. 언제 오더라도 물새가 있고, 운이 좋으면 물총새도 만날 수 있다. 무로 사이세이가 단 한 번 올랐던 이오(.王) 산이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사이 강 대교를 건너 무로 사이세이가 자란 우호원(雨.院)으로 가보자. 도로와 사이 강 사이의 한구석에 남아 있는 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3분 정도 떨어진 곳에 2002년 개관한 무로 사이세이 기념관이 있다. 유리로 된 시원한 건물로 2층에는 사이세이의 목소리가 담긴 시 낭독 테이프가 있어 헤드폰을 끼면 무뚝뚝한 그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참으로 무로 사이세이다워 저절로 웃음이 난다.
전국에 문학의 마을, 문호의 마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자와만큼 정성스럽게 자료를 모아 기념관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은 없지 않을까? 물론 전용할 수 있는 건물이 남아 있고 문화를 중시하고 자료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편찬하는 기술과 전통이 있다. 경제성장과 조금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온 시민들이 사는 방식도 있다. 그런 인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가나자와라고 하는 문학도시를 낳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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