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의 성지_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 이탈리아 베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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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99회 작성일 10-10-0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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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오페라가 도시를 지탱한다‘아름다운 도시 베로나에서 가문을 자랑하는 두 집안이 해묵은 원한을 불씨로 서로 싸우나니, 시민의 피 묻은 손이 시민의 손을 더럽힌다. 숙명적으로 두 원수의 집안에서 불운한 두 연인이 한 쌍 태어나니 이들의 불행한 사랑은 애틋한 죽음으로 두 집안의 갈등을 메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막엔 분명히 이탈리아의 베로나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영국인 극작가의 작품의 배경이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라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 도시가 베로나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베로나는 각종 도로와 철도가 이탈리아 북부의 평야에 들어서는 곳에 위치해 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교통의 요지, 상업의 중심지로서 발달했다.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아레나와 아디제 강의 다리 등이 남아 있어 도시의 역사성을 더해준다. 12~13세기에는 롱고바르드(롬바르디아)의 지배 아래 번영했으며, 13~14세기에는 겔프 당(黨)과 기벨린 당 사이의 투쟁이 있었다.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이 투쟁을 배경으로 한다.
이탈리아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알프스를 넘는 관광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도시 베로나. 오늘날에는 중요한 곡물을 조달하는 주요 시장이며, 기계·제지·인쇄 등이 발달한 공업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날 베로나를 지탱하는 중추 동력은 원형극장 아레나와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대표되는 문화다.
베로나의 문화는 문학과 오페라로 집약된다. 도시 어디를 가든 로미오와 줄리엣을 등장시킨 다양한 관광명소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로마의 콜로세움 다음으로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아레나 원형극장이 있다. 아레나 원형극장은 부가적인 음향기기의 도움 없이도 오페라 공연이 가능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실외 오페라극장으로 이름 높다.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아레나 원형극장은 베로나의 문화적 가치를 높여주는 두 줄기 빛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사랑을 믿는다면, 베로나로 오세요
영화와 연극, 애니메이션,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여러 장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베로나에서 벌어진 두 당파의 투쟁을 소재로 한다. 그 주인공 줄리엣이 살았다는 집이 바로 베로나 시내에 자리하고 있다. 카펠로가 21번지, ‘카사 디 줄리에타’(Casa di Giulietta, 줄리엣의 집)라는 팻말을 단 고풍스런 13세기 벽돌 저택이 바로 줄리엣의 집이다. 아니, 문학 속 허구의 인물에 불과한 줄리엣이 살았던 집이라니!
줄리엣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그러한 의문은 사라지고 만다. 세계 각국어로 쓰인 영원한 사랑의 맹세가 온 벽을 뒤덮은 것을 보노라면 전설 속 혹은 과거 역사 속에 살았을 법한 줄리엣이 사랑을 지켜줄 것이란 강한 믿음에 휩싸인다. 변하지 않는 사랑을 위해서인지 낙서가 지워지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들이 엿보이고, 이 흔적들이 신기한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대문을 지나 자그마한 정원으로 들어서면 찾아온 손님을 환영하듯 따뜻한 미소를 띤 한 여인의 동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줄리엣이다. 유독 오른쪽 가슴을 반짝반짝 빛내며 황동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수줍은 듯 서 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은 늘 13세기 벽돌 저택보다도 오히려 이 여인에게 더 관심이 많다. 언제 누가 지어낸 말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그 가슴을 한 번 만지면 영원한 사랑을 얻게 된다는 속설은 30년이 넘어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줄리엣 동상을 보는 이들을 때로는 부끄럽게 만든다. 오늘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줄줄이 서서는 줄리엣의 가슴을 탐하려(?) 지루한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는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누구 하나 이러한 속설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 무엇에 홀린 사람들처럼 그저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릴 뿐이다. 좀 더 대담한 손님은 가슴을 쓸어안고 동행한 이들이 연거푸 카메라 셔터를 눌러댈 때까지 뿌듯한 미소와 함께 포즈를 취한다. 영원한 사랑을 믿는 사람들의 성지이기 때문에 허락되는 모습일 게다.

줄리엣의 집은 줄리엣의 집이 아니다
입장료를 지불하면 줄리엣의 집 현관을 지나 4층짜리 벽돌 저택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1층 아트숍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재로 한 다양한 기념품들로 가득하지만, 2층으로 올라가면 그때부터는 줄리엣의 흔적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줄리엣이 쓰던 침대가 맞느냐는 관광객의 반신반의하는 질문에 곳곳에 서 있는 관리인은 넉살 좋고 노련하게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야릇한 미소로 답한다. 수도 없이 받았을 같은 질문에 심신이 지칠 법도 한데, 일말의 짜증도 섞이지 않은 얼굴이다. 전혀 에너지 소모가 없는, 그렇지만 아무나 흉내 내기 어려운 미소로 답례하는 것이다. 소소한 소임이지만 관광객을 대할 줄 아는 관리인의 모습에서 베로나의 문화적 역량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안내 표지판도 구체적인 설명을 회피한다. 줄리엣의 방이 아니고 그저 방일 뿐이고, 발코니의 표지판도 줄리엣의 발코니가 아니고 발코니라고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관광객은 이 발코니를 단순한 발코니로 보지 않는다.
연인들은 갑자기 호들갑이다. 이탈리아 중산층 가족이 살던 벽돌 저택에 있는 일반적인 발코니일 뿐인데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행복해 한다. 로미오가 발코니에 선 줄리엣을 향해 사랑에 빠졌음을 고백하고,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주저 없이 올라갔던 바로 그 발코니가 되어버린 것이다. 문학 속 허구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사람들이 줄리엣이 서 있던 발코니로 아무 의심 없이 인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줄리엣의 집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발코니에 이르기까지 관광객은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그보다 대중화한 영화 속 로미오와 줄리엣에 동화되어간다. 잠시나마 내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베로나는 ‘영원한 사랑’을 믿는 사람들의 성지다. 베로나를 찾고 줄리엣의 집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연간 600만 명을 넘는다. 2007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600만 명을 조금 넘어선 사실을 상기하면, 문학을 통한 지역의 문화와 관광 활성화라는 다소 딱딱한 말들이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문학작품 하나로 작은 도시에 불과한 베로나가 먹고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수준인 것이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베로나에 있는 줄리엣의 집은 줄리엣의 집이 아니다. 베로나가 문학작품의 배경이 된 것은 틀림없지만 줄리엣은 문학 속 허구의 인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베로나 시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고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베로나 중심가에 줄리엣의 집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영원한 삶의 주제와 그리움의 노스탤지어를 간직한 관광객은 사랑이라는 향수를 품고 호기심에 줄리엣의 집을 찾는다. 줄리엣이 진짜로 살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순례자들에게는 중요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줄리엣이 살았으면 어떻고 또 살지 않았으면 어떤가. 사랑을 갈구하는 전 세계 남녀에게 베로나는 그들 스스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된 양 발코니에서 서로 상대를 갈구하는 행동으로 감동과 행복과 충만감을 느끼게 하는 성소다.

베로나에는 로미오도 줄리엣도 없다
장 보들리야르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현상으로 시뮬라시옹 개념을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실체가 아니라 실체와 유사한 모조품들 속에서 살고 있고,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모조품들이 실체보다 더 본질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현대문화와 여가 현상을 설명할 때 시뮬라시옹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문화도시를 지탱하는 문화 콘텐츠는 눈에 보이는 경쟁력 있는 문화자원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력이 동반된 작은 소재를 통해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체든 실체와 유사한 모조품이든 감동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같이 베로나에는 로미오가 없다. 줄리엣도 없다. 그러나 줄리엣의 집이 있고 줄리엣의 무덤이 있으며 아레나 원형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레나데는 분명히 있다. 또 영원한 사랑을 믿으며 사랑의 성지를 찾아 전 세계에서 모여든 로미오와 줄리엣의 추종자들도 있다.
오늘날 베로나 사람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탄생시킨 셰익스피어의 업적에 고마워하며 안주하지 않는다. 베로나가 가진 로미오와 줄리엣의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려는 아름다운 노력이 예술과 문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결국 아름다운 도시는 아름다운 소재를 그들만의 격조 높은 문화로 만들고 스스로 문화를 가꾸며 꾸준하게 이어가는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한국판 러브 스토리의 고전 <춘향전>이 있다. 최근에는 모 업체의 우유광고에서도 패러디할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스토리는 명성만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춘향 테마파크 입구에 두 줄로 늘어선 수많은 상가들과 그 가운데 자리 잡은 ‘로미오와 성춘향’이라는 카페 간판을 보면서, 30년을 반 토플리스로 서 있는 줄리엣 동상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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