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다, 여유를 안다_중세문화 상표로 내세운 체코 즈노이모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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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44회 작성일 10-10-0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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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인들은 일상에서 축제 기분을 느끼길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계절별로 수많은 축제들이 벌어진다. 제주축제육성위원회 위원의 일원으로, 제주의 지역적 특성과 환경을 고려하여 경험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해 프라하 동쪽 모라비아 지역에 있는 즈노이모(Znojmo)의 와인축제를 찾았다. 안내를 잠시 맡았던 현지 교포는 이 와인축제가 다른 유명 축제에 비교해 해외에서 일부러 찾아와 경험해야 할 축제인지 의아해 했다. 물론 무엇을 경험하고자 하느냐에 따른 기대가 다를 수 있기에 그런 안내인의 실망스런 반응에 큰 동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단지 축제를 경험할 수 있는 일정이 몹시 짧은 점이 이 축제를 온전히 느끼고 체험하기에 부족할 수 있다는 불만과 불안으로 작용했을 뿐.
체코는 보헤미아(Bohemia)와 모라비아(Moravia)와 실레시아(Silesia)라는 세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즈노이모는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체코의 동쪽지역으로 포도원이 많아 포도주 생산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중세시대에 아주 번창했던 곳으로 지리적 여건으로 외부와 전쟁의 소용돌이에 여러 번 휩쓸렸고, 또 좋은 기후 여건 덕분에 과일과 농산물, 특히 포도 생산이 풍성하여 과거 상인들의 교역이 활발한 지역이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환경적 요소를 주요 배경으로 하여 3만7천여 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에서 와인 페스티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곳을 찾기 전 잠시 체코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기본상식을 갖추기 위해 뒤져본 책자에 따르면 체코는 16세기에 시작된 주변 강대국의 압력에서 20세기 초에야 겨우 벗어났다. 그러나 경제적·문화적 번영을 구가하기 시작하자마자 다시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으며, 이후 1948년부터 1989년까지 공포정치의 시기를 겪게 된다. 특히 1968년의 ‘프라하의 봄’은 이 어두운 시기에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란 기치 아래 촉발된 유일하게 희망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즈노이모 와인 페스티벌은 1966년부터 시작되었다. 뭔가 독특한 것을 만들고자 1327년 즈노이모를 방문한 왕을 위해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바탕이 되어 오늘날의 즈노이모 포도수확축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앞서 말한 공포정치의 시기에 계급적 신분이 뚜렷한 중세사회를 문화적 배경으로 이 축제가 시작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일 수는 없지만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온 문화적 배경에 대한 존중이며, 동시에 이를 이용한 축제를 만들어내는 유연성이면서 축제를 즐기는 그들의 자연스런 일상의 귀결일까?
처음 이 축제는 이곳 포도생산자조합에서 준비했으나 1997년부터는 즈노이모 시에서 ‘ZV-Znojmo Vinibrani’라는 이름으로 주관한다. 1900년대부터 ‘베세다’라는 문화단체가 동네마다 조직돼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즈노이모 베세다’라는 문화단체가 이 축제를 기획한다고 하니, 이런 변화는 포도와 와인 생산을 바탕으로 한 산업에 중심을 둔 축제 기획에서 중세문화를 배경으로 일상 문화체험 축제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지역민이 자연스럽게 축제의 주역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그 접근방법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박하지만 실용적인 축제 현장
투명하고 따스한 이른 가을 기운이 가득한 날, 3만7천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부근 여러 지역 사람들이 이 축제장에 다 나와 있는 듯, 공식적으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삼삼오오 참가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행사 준비자들과 다양한 먹을거리, 마실 거리, 팔 거리를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 축제 준비에 들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채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는, 온갖 화려한 외양을 갖춘 요란한 놀이기구들을 만나게 된다. 어린이나 젊은 연인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로 어느 나라, 어느 축제에나 이런 놀이기구들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곳을 지나 이 축제의 본 행사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성문 모양의 입구를 지나야 한다. 우린 공식적으로 축제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도착했기 때문에 무료 통과! 입구는 아치 모양의 간판 같은 성문 형태를 본떠 만든 구조물로 돌을 쌓아 성문을 만든 듯이 보이도록 칠을 한, 아주 단순한 구조다. 오래된 축제인데도 이런 물품들을 소박하게 준비하여 쉽게 설치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모습에서 그들의 실용성을 느꼈다. 입구를 들어서자 그 지역의 문장을 새긴 깃발들을 고풍스런 건물과 잘 어울리게 장식해놓아 이 축제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중세의 느낌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준비로 바쁜 마을길들을 따라 유유히 걸어가다 보면 조그마한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고 이곳에는 이 축제와 즈노이모 시와 그 지역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는 여러 가지 브로슈어들이 준비되어 있다. 인포메이션 센터와 각 광장의 이름과 주요 건물이 표시된 지도가 따로 있어서 행사가 열리는 장소를 쉽게 찾아다닐 수 있지만 영문 안내 지도는 양이 충분하지 않아 여럿이 공유해야 했다. 뭐든 넘치기보다는 다소 부족하고 소박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동선이 자연스럽게 입장료도 받으면서 관광객들로 하여금 온 마을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먹고 마시고 구경하며 구입할 수 있는 다양한 가판대
축제장에 삼삼오오 주도로를 따라 죽 늘어선 가판대는 가히 시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왁자지껄하다. 모든 축제에서 그렇듯 음식과 음료, 기념품 등을 조그맣고 다양한 모양의 가판대에서 판매한다. 전통 과자류뿐만 아니라 소시지와 볶음면에 닭고기·돼지고기 바비큐 등 온갖 음식이 즐비하다. 그 지역의 고유한 음식도 있지만, 베트남이나 터키 등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판매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중국과 인도 등지에서 건너온, 값싸고 흔하며 잡다한 물건들이 기념품으로 판매되기도 하고, 예전부터철강산업이 발달한 지역에 걸맞게 대장장이 옷차림의 사람이 풀무까지 동원해 직접 철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판매하기도 한다. 그 외에 중세의 기사의 칼을 나무로 복제한 나무칼이며 문양이 새겨진 여러 가지 제품들이 있어 중세적 분위기를 한껏 풍긴다. 특히 이런 물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중세 복장으로 그 분위기를 더한다.
음료는 역시 그해에 수확한 포도를 이용해 만든 ‘부르차크’라는 음료와 체코의 유명한 맥주를 주로 판매한다. 부르차크는 그해 수확한 포도로 담근 포도주로 아직 숙성하기 전의, 막 발효되기 시작하는 음료. 단맛이 아주 강하다. 그곳 사람들은 큰 플라스틱 병에 와인을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마시기도 하고, 가판대 옆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공연을 구경하면서 마시기도 했다. 즈노이모에서는 유로화가 통용되지 않아 체코화만 사용해야 하는데다 언어 역시 체코어 이외의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드물어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었다. 이 와인축제는 외부 관광객을 위한다기보다는 마을 주민 자신들과 한 해 동안 와인을 만들기 위해 수고한 와인조합들 스스로 즐기고 축하하기 위한, 더욱 진정한 의미의 축제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그리고 아직 이 지역까지는 현재 진행되는 유럽 통합과 세계화 영향이 덜 미친다는 의미가 아닐까? 다행히 영어를 잘하는 와인 판매자를 만나 간단히 참여하는 방법을 들을 수 있었는데, 와인을 파는 자신은 축제 기간인 이틀 동안 가판대를 여는 조건으로 1천200코루나(약 4만 원)를 주최 측에 지불했고, 수입의 10%는 그곳에 있는 중세 초기 고성인 로툰다(Rotunda) 유지와 수리비로 지불한다고 한다.
매년 9월 셋째 주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에 걸쳐 열리는 이 축제는 오후 2시 마사리크(Masaryk) 광장에 있는 축제 주 무대에서 축제를 알리는 밴드의 연주와 즈노이모 시장의 간단한 인사말로 시작된다. 정각 2시가 되자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음악이 연주되고 바로 시장이 짧은 인사말을 하는가 싶더니 아주 싱겁게 축제가 시작되어버렸다. 연단을 중심으로 관람의자를 배치하고 축하인사(격려사·대회사·환영사·축사 등의 아주 관료적인 진행)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지루한 우리 축제의 개막식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아주 신선하게 보였다.

예술적 흥취가 일상인 삶
퍼포먼스들은 마을 곳곳에 있는 광장에 만든 아주 소박한 무대 위나 광장 바닥에서 펼쳐진다. 일상과 문화적 흥취가 겹쳐 있는, 그러면서도 소박하게 향유하고 즐기는 그들 삶의 모습이 이 축제 행사들을 통해 느껴진다. 민속의상을 입고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은 소박한 무대를 사용하고, 그 외에는 노천 광장에서 바로 공연을 한다. 공연이 펼쳐지는 곳 주변에 의자와 테이블이 간단히 마련되어 있기도 하나 대부분 서서 공연을 구경한다. 청소년 그룹이 학예회에 나가듯 소박하게 준비한 컨트리댄스 공연이 몇 차례 펼쳐지고 여성들로 이루어진 벨리댄스 그룹의 공연도 진행된다. 평소 ‘베세다’라는 문화단체를 통해 일상에서 즐기는 그들의 춤을 마을에서 선보이고 있는 듯했다. 마치 어렸을 적 온 마을의 축제가 되는 학교 운동회 날 같은…. 그런데 이곳도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여학생들이 행사 참여 비율이 높고, 좀 더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을 가장 중심의 광장에서 펼쳐진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의 연주와 아주머니 두 분의 노래였다. 이 축제에는 마을 사람들이 평소 즐기는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이 축제를 위해 좀 더 갈고닦아 참여하고 있었는데, 특히 노년에 백발을 반짝이며 광장 가운데에서 진지하고 즐겁게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은 삶에 예술이 녹아 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가장행렬은 이 축제가 중세문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청각과 시각적으로 바로 느낄 수 있는 이벤트다. 이 행렬은 작은북 연주자들을 맨 앞에 내세우고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의 걸궁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관심과 흥을 돋우며 분위기 조성에 한몫한다. 주변이 어스름해지기 시작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면서 마을 주도로를 중심으로 도로 양쪽으로 사람들이 늘어선다. 이들은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그날 밤의 대규모 퍼레이드를 기다린다.
와인축제인 만큼 와인 시음은 빼놓을 수 없다. 와인 시음 행사는 와인을 판매하는 건물 안에서 열리는데,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표를 구입하여 테이블에 놓인 와인들 중에서 선택하여 맛볼 수 있다. 와인의 질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비싼 와인을 마실 경우 표에 빗금을 4개 치고, 저렴한 와인일 때는 한 번 빗금을 쳐 표에 빗금이 다 찰 때까지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와인을 구입할 수도 있다. 와인의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한국에서 구입할 때와 비교하여 저렴하지만 비행기 탑승 액체 총량 규칙 때문에 사 올 수 없어 안타까웠다. 그저 맛보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와인 시음 행사 장소 옆에는 간단히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고, 전통 복장인 듯 귀여운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와인과 함께 먹거나 구입해 갈 먹을거리들을 판매한다. 말을 걸거나 질문을 하면 어린 친구부터 성인, 노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무척 수줍어하는데, 아직은 자본의 논리 아래 치열한 경쟁을 일상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의 천진난만함이 느껴진다.

축제장 주변의 볼거리와 연계하는 관광
축제 행사 이외에도 교역이 활발하던 당시 생산물 보관창고로 사용되었던 지하도시와 와인축제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걸린 갤러리, 중세 원형 건물 등을 연계한 볼거리들이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Rotunda of the Virgin Mary and of St. Catherine’은 중세 건축물로 축제장을 더욱 중세적 분위기로 이끌고 있었는데, 이 축제와 직접 연관은 없었지만 성 마당에도 테이블을 넓게 펴놓아 맥주와 바비큐를 즐길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한쪽에는 소박한 무대를 꾸며 날이 저물면 음악공연을 펼친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나 연인과 함께 이곳을 찾아 아름다운 풍광을 내려다보며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뒷마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흥겹게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이 축제를 경험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넘침이 아니라 소박한 흥겨움, 축제기획팀에서 일률적으로 통일된 양식의 가판대나 공연무대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파는 물건이나 공연의 성격에 맞게 독특하고 다양하면서 소박하게 개별적으로 준비함으로써 자신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는 점, 자본의 경쟁 속에서 눈치 빠르게 판매수입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여전히 일상에서 여유롭게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축제와 주변의 여러 가지 시설과 연계하여 체험 거리들을 제공함으로써 관광과의 연계도 놓치지 않은 점 등이다.
그렇지만 축제가 진행되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지난해 정보가 인터넷 사이트에 제공된다든지, 궁금한 점을 묻는 사이트 방문자들에게 아무런 답변도 해주지 않는 모습 등은 여전히 지난 시대의 느슨한 관료적 습성의 잔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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