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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도시의 아름다움_수백년 이야기가 살아있는 풍경 피맛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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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72회 작성일 10-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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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대로 뒤쪽에 있는 ‘피맛골’. 조선시대부터 그야말로 장구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서민의 애환이 곳곳에 녹아 있는 대표적인 우리네 골목길이다. 양반과 서민의 신분 구별이 뚜렷하던 그 옛날, 말이나 가마를 탄 관리가 행차할 때면 살아보겠다고 무거운 보따리를 이고 지고 가다가도 길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서민들이 피마로(避馬路)로 애용하던 이 길은 지금은 지친 도시인의 삶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서민형 맛집 거리로 남았다. 그런데 그렇게 수백 년 세월의 거친 풍파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던 이 길이 최근 강북 도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조선시대의 계급보다도 군사정권의 무력보다도 무서운 것이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돈의 위력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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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사라지는 슬픔
시대가 달라지면 건물과 거리와 도시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하루하루 달라지는 종로 대로와 달리, 마치 그대로 박제된 듯 늘 똑같았던 피맛골은 그만큼 낯설면서도 동시에 지난 시절에 향수를 품게 했다. 무엇보다 스피드 시대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마치 몹시 빠르게 내달리는 도시의 속도를 늦춰주는 든든한 과속방지턱인 양.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사람들은 서울 중심지 노른자위 땅에 위치한 피맛골의 열악한 환경이 왜 개선되지 않는지, 또 피맛골 거리를 깨끗하게 탈바꿈시켜 새로운 시대의 ‘한국인의 길’로, 관광자원으로 거듭나게 할 수는 없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사실 도심 재개발의 역사는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피맛골을 비롯해 도심 골목길이 있는 구도심은 도심재개발구역 대상지로 지정되었고, 대기업형 재개발을 추진하느라 개별 소유자의 신축과 개축을 규제해왔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맞아 재개발을 주도할 대기업의 사업이 위축되면서 대형 재개발은 꼬리를 감추었고, 그러는 사이 개인이나 공동의 자치개발을 모색하게 되었다. 하지만 건폐율, 용적률, 주차 대수를 포함한 당시의 건축법규가 개인과 공동 자치개발의 사업성에 한계를 드리웠고, 결국 건물 보수 수준의 미미한 환경 개선만이 산발적으로 시도되었다. 최근의 도심 재개발 사업은 경기 회복에 힘입은 대기업들의 사업 확대 추진과 궤를 함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피맛골은 지금, 오랜 토박이들이 이미 삶의 터전을 옮겼거나 조만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그 존재가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질 것을 예고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저분하고 으슥한 골목길이 사라지는 반가움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싸고 푸짐한 맛집 골목이 하나 없어지는 아쉬움으로, 또 어떤 이들에게는 때 묻은 청춘의 추억이 사라지는 슬픔으로 남을 일이다. 필자는 개인으로서나 건축가로서나 마지막의 경우에 해당한다. 누군가 “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올라갈 텐데 건축가로서 좋은 일 아니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대답할 작정이다.
피맛골은 각박하고 건조한 도시의 습성을 잠시 피할 수 있는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해주었으며, 비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옷깃을 스치며 인간적 유대감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고, 오래된 저층 건물들이 모인 골목길에서 조용한 서울 하늘을 바라볼 수도 있었고, 좁은 탁자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손맛이 묻어나는 우리네 음식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걸치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곳이었다고 말이다. 이렇다 할 문화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거리이자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 있는 문화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장소임은 부정할 수 없다.

삶이 고스란히 담긴 거리의 미학
도시의 활력을 단순히 공간의 사업성과 기능성에서만 찾으려는 시각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피맛골처럼 거리의 존재감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무형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거리와 도시의 모습으로 만들어버리면 문화는 없고 산업만이 지배하는 그저 그런 자본도시로 전락해버릴지도 모른다. 도시가 그저 소비를 위한 장소일 뿐 삶의 체취가 없다면 과연 우리는 우리의 도시를 사랑할 수 있을까.
가까운 일본에서 정부와 기업의 개발 움직임에도 오히려 지역주민의 강력한 반대로 구도심 거리와 골목길들이 보존되고 가꿔지는 것을 보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지금도 100년은 된 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는 도쿄의 옛 골목들은 일본인들에게 탐방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중심가에 위치한 마요르 광장(Plaza Mayor) 주변에는 우리네 피맛골 같은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거기엔 수백 년 된 건물에 몇 대씩 이어져 내려오는 레스토랑과 가게들이 즐비하고 저마다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이탈리아의 명물 물 위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는 미로 같은 수많은 골목길마다 빨랫줄에 각양각색의 옷들이 춤을 추듯 널려 있고, 그네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발코니와 창들이 골목길에 액자인 양 걸려 있다. 거기에 노 젓는 배 곤돌라(gondola)가 다니는 작은 골목 물길이 서로 엇갈리면서 환상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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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있어 도시는 아름답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골목길이 있다. 그네들 역시 우리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구도심과 골목을 보는 애정 어린 시각과 남다른 발상으로 오히려 관광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지금 값비싼 돈을 들여 해외여행을 가는 이유는 살 거리(buy street) 때문이 아니라 색다른 볼 거리(feel street) 때문이다.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거리, 이야기가 있는 골목길은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관광자원의 보고가 아니겠는가.
필자 역시 스페인에서 유학하며 인근 유럽을 여행할 당시, 그네들의 삶이 담긴 골목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골목이 있어 도시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아주 소박한 진리를 깨달았다. 한편으론 우리의 도시 서울을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삶의 흔적이 담긴 거리를 지워버리고 천편일률적인 빌딩 숲을 만들어가는지’ 자문하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우리의 도심 재개발 정책 관련 논문을 보던 중 우리의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을 발견했다.
‘도심 재개발 사업은 영세한 필지와 협소한 도로가 불규칙하게 조합된 기존의 도시 구조를 전면적으로 철거하고 새로이 정연한 대형 부지로 다시 구획함으로써 도로시설의 확충을 도모한다.’
부디 도로는 많아도 사람이 거닐 수 있는 길은 없는 도시가 되지 않길 바라며, 우리의 일상이 반듯하고 큰 대형 콘크리트 건물에 함몰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더불어 더 늦기 전에 우리 골목길의 가치에 눈을 뜨길 바란다면, 그래서 재개발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길 바란다면 그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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