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이스터 아일랜드의 '사제 세바스천 잉글러트 인류학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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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731회 작성일 10-10-0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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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아일랜드는 남태평양의 외딴섬이다. 스페인어로는 ‘이슬라 데 파스쿠아’라고 하고, 현지에서는 ‘라파누이(Rapa Nui)’ 라고 부른다. 라파누이는 타이티를 항해하는 이들이 지은 이름으로 큰 라파-‘라파’는 고유명사로 섬 이름이다-를 의미한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이 섬을 ‘세계의 배꼽(Te Pito o Te Heuna)’이라 불렀다. 라파누이에는 수백 개의 대형 조각물 ‘모아이(Moai)’ 석상과 수천 점의 암각화가 흩어져 있어 세계 최대의 야외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라파누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부터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담벼락에 새 모양의 특이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주민들은 탐스러운 노란색의 꽃목걸이를 가져와 여행자들을 반겼다. 첫날 도착하자마자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박물관을 향했다. 거리 풍경을 보니 이 섬은 우리 제주도와 흡사했다. 집에 문 대신 나뭇가지를 걸쳐놓았고 현무암으로 울타리를 쌓았다. 또 모아이도 우리의 돌하르방과 비슷하다. 땡볕을 30여 분을 걸어 거의 지칠 무렵 드디어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빨간 지붕 인 아담한 박물관이 보였다.
이 섬은 1722년 네덜란드 탐험가 로게벤(Jacob Roggeveen)이 발견했다. 마침 그날이 부활절이라 이스터 아일랜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유럽의 여러 선박이 이곳을 다녀갔으며 이 섬에 이리저리 흩어져 뒹구는 거대한 조각상들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끝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섬의 모아이들이 지금처럼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 중 사제 세바스천 잉글러트(Sebastian Englert)와 윌리엄 멀로이(William Mulloy)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세바스천 잉글러트 신부는 독일 출생으로 1935년 전도를 위해 라파누이에 온 이후 줄곧 이 섬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는 모아이 석상의 제례용 기단인 아후(Ahu)를 연구하고 섬의 언어와 전통에 관한 귀한 자료를 남겼다. 그의 공로를 기려 1973년 그의 이름을 딴
인류학 박물관이 개관했다. 한편 미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멀로이는 1955년 라파누이를 처음으로 다녀간 이후 이 섬을 스무 차례 넘게 드나들며 섬 여러 지역의 모아이 유적들과 새 사람(bird man)의 암각화가 있는 오롱고(Orongo) 마을을 복원했다. 그는 라파누이 최고의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으며 그의 유해는 그가 복원한 타하이 유적(Thahi Complex)과 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에 묻혀 있다. 3,00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책들은 박물관 안의 ‘윌리엄 멀로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 현재 라파누이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사제 세바스천 잉글러트 인류학 박물관(MuseoAntropo-logio P. Sebastian Englert, Isla de Pascua, Chile)’은 하나의 전시공간에 지도, 모아이, 제작 도구, 나무 조각품, 유적지와 신화에 관한 설명 등 라파누이의 역사와 문화를 전반적으로 보여준다. 이 박물관에는 모아이의 눈, 여성 모아이, 상형문자판인 ‘롱고롱고’라는 특별한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모아이는 이곳의 씨족을 지켜주는 조상의 상으로 대부분 해안가에 바다를 등지고 마을을 향해 서 있다. 눈 부분이 움푹 파여 있어 사람들은 모아이가 눈동자를 가진 것을 몰랐다고 한다. 이곳에 전시된 여성 모아이는 이 섬에서 유일한 것으로서 전설에 따르면 이 모아이는 라파누이 최초의 왕 호투 마투아(Hotu Matu′a)의 여동생인 아바 레이 푸아(Ava Rie Pua)를 상징한다고 한다. 최초의 왕이 가지고 들어왔다는 목재 상형문자판 롱고롱고는 아직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문자의 방향이 줄마다 거꾸로 되어 있어 한 줄을 읽으면 그 다음 줄은 반대 방향에서 읽거나 판을 돌려서 읽어야 하는데다 문장에서 어떤 부분이 생략되어 나중에 글을 읽는 사람이 그 부분을 창작해서 넣어야 하기 때문에 해독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아쉽게도 롱고롱고의 원품은 모두 다른 나라로 반출되었고 이곳에는 복제품만 전시되어 있다. 역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박물관 밖의 실제 모아이들이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감동받은 곳은 라노라라쿠 화산(Rano Raraku)이다. 400여 개의 모아이가 이 동산에 다양한 자세로 묻혀 있다. 운반하다 실수한 것인지 엎어져 있는 것에서 부터 미완성으로 남은 것까지 여러 단계의 모아이 상들은 마치 당시 제작 현장을 보여주는 듯했다. 20m에 달하는 초대형 모아이도 누운 채로 있었다. 이 동산을 거닐며 이보다 더 극적인 자연 조각공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면 커다란 분화구가 있고, 섬 밖으로는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이 섬의 신비감을 더했다.

이렇듯 웅장한 규모의 모아이 제작이 끊긴 이면에는 라파누이의 슬픈 역사가 숨어 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선사시대의 이 섬은 아열대 지역의 나무가 울창한 풍요로운 곳이었다. 16세기부터 인구가 늘고 자연을 남용하면서 먹을 것이 없어 결국에는 사람까지 잡아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모아이 제작에 쓰이던 단단한 돌 흑요암은 씨족 간의 전쟁을 위한 무기로 바뀌었고, 조상신 모아이들은 모두 파괴되었다. 폴리네시아 말로 나무를 뜻하는 ‘라카우(rakau)’가 라파누이에서는 ‘부(富)’를 의미했다고 한다. 나무가 없어 카누를 만들어 바다에 나갈 수도 없었고, 오직 ‘새 사람’의 종교에 의지해야 했던 이들의 절박한 상황은 인간의 자연 남용이 지구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교훈을 비장하게 전한다.
참고 자료 박물관 홈페이지 www.museorapanui.cl
홍미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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