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계 중국, 그들의 올림픽과 중화사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30회 작성일 10-10-08 08:57
본문
최첨단과 태고의 원시가 공존하는 세계
중국은 ‘국가(國家)’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세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 약 2,000년 전, 실크로드가 개척되기 이전의 중국 대륙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차단된 ‘닫힌 세계’였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와 파미르고원, 타클라마칸사막과 고비사막, 그 뒤로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동토가 원을 그리며 이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 남으로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울창한 밀림이, 동쪽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무서운 바다인 태평양이 가로막고 있다.
극한의 자연환경으로 외부 세계와 차단되었던 이 작은 세계를 우리는 흔히 ‘동양’이라고 불렀다. 이 세계는 비록 ‘고립된 작은 세계’였으나, 독자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탄생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 땅덩어리를 지니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명멸했다. 그리고 1949년 이후로는 한족(漢族) 중심의 ‘중국’이라는 국가가 그 대부분의 땅을 차지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의 중국 영토와 그 문화에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모든 현상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그것도 모르고 중국에 대해 조금 공부하고 여행이라도 몇 번 다녀오면, 사람들은 누구나 전문가가 되어 한두 마디로 중국을 단정 짓고 평가하려 한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많은 오해와 편견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13억 인구의 중국에는 잘사는 사람도 수없이 많고, 못사는 사람은 더욱 많다. 깨끗한 사람도 많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부득불 깨끗하게 지낼 수 없는 사람이 더욱 많다. 수천 년의 역사를 이끌어온 지성인 그룹의 차원 높은 문화가 존재하는가 하면, 본능에 충실한 밑바닥 인생의 하층 문화도 존재한다. 21세기 최첨단의 세계와 태고의 원시가 공존하는 세계, 그곳이 중국이다. 그것을 어찌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무엇으로 하나 되게 할 것인가
그렇다 보니 지금 현재 ‘중국’이라는 국가 안에 사는 민족 또한 각양각색이다. 우리처럼 황인종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얗고 까만 피부와 푸른 눈동자를 소유한 천차만별의 56개 민족들이 별의별 기구한 사연으로 대륙 땅 여기저기 서로 엉켜 모여 산다. 그 인구의 90%에 달하는 절대다수가 한족이다. 나머지 55개 소수민족을 모두 합치면 10억 명이 넘는 엄청난 인구다. 소수민족 거주 지역은 심지어 광활한 중국 대륙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중국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으로 56개의 민족을 하나 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제시한 답은 ‘대(大) 중화사상’이다. ‘중화사상’이란 원래 1,300년 전 중당(中唐) 시대의 문인인 한유(韓愈)가 주창한 것이다. 당시의 중국은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 등 외래 사상이 크게 흥성하고, 이민족 출신의 변방 절도사들이 중앙정부의 통제에 따르지 않아 큰 혼란에 빠진 시기였다. 이에 한유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이 이민족과 외래 사상에 반감을 드러내며 불교를 배척하고 공맹(孔孟) 이래 명맥이 끊겼던 중국 고유의 유학(儒學)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는 운동을 펼친다. 일종의 ‘우리 것 되찾기 운동’인 셈이었다.
그 결과 기세등등하던 불교의 기세가 꺾였다. 송명(宋明) 시대에는 이학(理學)이 만개하여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중국인에게는 강렬한 민족적 자부심, 즉 ‘중화사상’이 생겼고, 주변의 일부 소수민족에게는 그를 흠모하는 이른바 ‘모화(慕華)사상’이 생기기도 했다. 혹자는 그러한 경향을 종교에 빗대어 ‘중국교(中國敎)’라고 칭하며, 한유를 교주로 숭배하고, 그러한 성향을 농후하게 지닌 사람들을 ‘중국교도’라고 풍자하기도 했다.
20세기에 이르러 공산당이 집권하자 중화사상을 대신해 공산주의가 새로운 국가 이념으로 등장했다가, 작은 거인 덩샤오핑이 공산주의에 한계를 느끼고 점차 개방정책을 펼치면서 그에 대체할 이념으로 다시 중화사상을 들고 나온다. 그러나 과거의 중화사상과 다른 점이 있다. 한유 이래의 중화사상이 한족 위주의 순수 혈통을 중시한 국수주의적 성격이 특징이라면, 덩샤오핑 이후의 대 중화사상은 주변의 동아시아 민족 전체를 ‘중국’ 안에 포괄하는 확대 지향적인 것으로 다분히 패권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점이 대조적이다
대 중화사상의 실천, 베이징올림픽
아울러 중국은 그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일련의 역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를 주요 대상으로 한 ‘서북공정’, 티베트를 대상으로 한 ‘서남공정’과 만주를 대상으로 한 ‘동북공정’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동북공정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상당한 경계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중국 편에 서서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한 소비에트연방이 어느 날 갑자기 와해되는 현상을 목격한 중국 당국으로서는, 자칫 소수민족 지역 하나가 떨어져나가는 순간 국가 전체가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의 질서가 혼란에 빠지면 우리에게도 큰 타격이 되므로, 중국의 역사 프로젝트는 우리에게도 양면성을 지닌 미묘한 문제다.
역사 프로젝트가 대 중화사상의 이론이라면, 베이징올림픽은 대 중화사상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당면한 모든 ‘잠재적 위기’를 극복하고 56개 민족이 하나로 뭉쳐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거대한 정치적 행사다. 지금 중국 정부 당국에게 올림픽은 국가의 흥성과 도약 여부를 넘어 심지어 존립과 관계된 엄청나게 중대한 문제다. 중국이 왜 전시체제를 마다하지 않고 베이징올림픽을 치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중국 정부가 자신감을 가지고 좀 더 대국적인 풍도(風度)와 여유를 보이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소수민족의 다양한 문화를 관광용으로 박물관에 박제해 보관하려 하지만 말고, 소수민족 편에 서서 세상을 파악하고 그들의 세계관을 실감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다. 중국과 한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중국의 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이며, 중국의 안정은 바로 곧 우리의 안정이다.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은 곧 우리의 성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국가(國家)’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세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 약 2,000년 전, 실크로드가 개척되기 이전의 중국 대륙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차단된 ‘닫힌 세계’였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와 파미르고원, 타클라마칸사막과 고비사막, 그 뒤로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동토가 원을 그리며 이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 남으로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울창한 밀림이, 동쪽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무서운 바다인 태평양이 가로막고 있다.
극한의 자연환경으로 외부 세계와 차단되었던 이 작은 세계를 우리는 흔히 ‘동양’이라고 불렀다. 이 세계는 비록 ‘고립된 작은 세계’였으나, 독자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탄생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 땅덩어리를 지니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명멸했다. 그리고 1949년 이후로는 한족(漢族) 중심의 ‘중국’이라는 국가가 그 대부분의 땅을 차지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의 중국 영토와 그 문화에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모든 현상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그것도 모르고 중국에 대해 조금 공부하고 여행이라도 몇 번 다녀오면, 사람들은 누구나 전문가가 되어 한두 마디로 중국을 단정 짓고 평가하려 한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많은 오해와 편견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13억 인구의 중국에는 잘사는 사람도 수없이 많고, 못사는 사람은 더욱 많다. 깨끗한 사람도 많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부득불 깨끗하게 지낼 수 없는 사람이 더욱 많다. 수천 년의 역사를 이끌어온 지성인 그룹의 차원 높은 문화가 존재하는가 하면, 본능에 충실한 밑바닥 인생의 하층 문화도 존재한다. 21세기 최첨단의 세계와 태고의 원시가 공존하는 세계, 그곳이 중국이다. 그것을 어찌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무엇으로 하나 되게 할 것인가
그렇다 보니 지금 현재 ‘중국’이라는 국가 안에 사는 민족 또한 각양각색이다. 우리처럼 황인종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얗고 까만 피부와 푸른 눈동자를 소유한 천차만별의 56개 민족들이 별의별 기구한 사연으로 대륙 땅 여기저기 서로 엉켜 모여 산다. 그 인구의 90%에 달하는 절대다수가 한족이다. 나머지 55개 소수민족을 모두 합치면 10억 명이 넘는 엄청난 인구다. 소수민족 거주 지역은 심지어 광활한 중국 대륙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중국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으로 56개의 민족을 하나 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제시한 답은 ‘대(大) 중화사상’이다. ‘중화사상’이란 원래 1,300년 전 중당(中唐) 시대의 문인인 한유(韓愈)가 주창한 것이다. 당시의 중국은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 등 외래 사상이 크게 흥성하고, 이민족 출신의 변방 절도사들이 중앙정부의 통제에 따르지 않아 큰 혼란에 빠진 시기였다. 이에 한유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이 이민족과 외래 사상에 반감을 드러내며 불교를 배척하고 공맹(孔孟) 이래 명맥이 끊겼던 중국 고유의 유학(儒學)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는 운동을 펼친다. 일종의 ‘우리 것 되찾기 운동’인 셈이었다.
그 결과 기세등등하던 불교의 기세가 꺾였다. 송명(宋明) 시대에는 이학(理學)이 만개하여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중국인에게는 강렬한 민족적 자부심, 즉 ‘중화사상’이 생겼고, 주변의 일부 소수민족에게는 그를 흠모하는 이른바 ‘모화(慕華)사상’이 생기기도 했다. 혹자는 그러한 경향을 종교에 빗대어 ‘중국교(中國敎)’라고 칭하며, 한유를 교주로 숭배하고, 그러한 성향을 농후하게 지닌 사람들을 ‘중국교도’라고 풍자하기도 했다.
20세기에 이르러 공산당이 집권하자 중화사상을 대신해 공산주의가 새로운 국가 이념으로 등장했다가, 작은 거인 덩샤오핑이 공산주의에 한계를 느끼고 점차 개방정책을 펼치면서 그에 대체할 이념으로 다시 중화사상을 들고 나온다. 그러나 과거의 중화사상과 다른 점이 있다. 한유 이래의 중화사상이 한족 위주의 순수 혈통을 중시한 국수주의적 성격이 특징이라면, 덩샤오핑 이후의 대 중화사상은 주변의 동아시아 민족 전체를 ‘중국’ 안에 포괄하는 확대 지향적인 것으로 다분히 패권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점이 대조적이다
대 중화사상의 실천, 베이징올림픽
아울러 중국은 그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일련의 역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를 주요 대상으로 한 ‘서북공정’, 티베트를 대상으로 한 ‘서남공정’과 만주를 대상으로 한 ‘동북공정’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동북공정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상당한 경계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중국 편에 서서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한 소비에트연방이 어느 날 갑자기 와해되는 현상을 목격한 중국 당국으로서는, 자칫 소수민족 지역 하나가 떨어져나가는 순간 국가 전체가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의 질서가 혼란에 빠지면 우리에게도 큰 타격이 되므로, 중국의 역사 프로젝트는 우리에게도 양면성을 지닌 미묘한 문제다.
역사 프로젝트가 대 중화사상의 이론이라면, 베이징올림픽은 대 중화사상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당면한 모든 ‘잠재적 위기’를 극복하고 56개 민족이 하나로 뭉쳐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거대한 정치적 행사다. 지금 중국 정부 당국에게 올림픽은 국가의 흥성과 도약 여부를 넘어 심지어 존립과 관계된 엄청나게 중대한 문제다. 중국이 왜 전시체제를 마다하지 않고 베이징올림픽을 치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중국 정부가 자신감을 가지고 좀 더 대국적인 풍도(風度)와 여유를 보이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소수민족의 다양한 문화를 관광용으로 박물관에 박제해 보관하려 하지만 말고, 소수민족 편에 서서 세상을 파악하고 그들의 세계관을 실감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다. 중국과 한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중국의 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이며, 중국의 안정은 바로 곧 우리의 안정이다.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은 곧 우리의 성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