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열린 두 도시 광장-트라팔가 광장과 팔라먼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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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41회 작성일 10-10-0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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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딜레마를 해결하라
유럽 도시들은 원칙적으로 광장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광장은 종교 행사의 중심이었으며, 통치자의 권위와 상징을 알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광장은 도시 내에서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이와 같이 명실상부하게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소통의 장이라 할 수 있는 ‘기념비적 광장’은 유럽에서 한 도시와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핵심이다. 단일 건축물을 시각적 랜드마크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기념비적 광장은 공간적 랜드마크로 구분하여 정의할 수 있다. 베를린의 포츠담 광장, 바티칸의 산피에트로 광장,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런던은 어떨까? 런던은 녹지율에서 단일 도시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1955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시행한 그린벨트 정책은 물론이고, 하이드 파크, 리젠트 파크, 켄징턴 가든 등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공원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런던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도시를 상징하는 공간적 랜드마크로서의 기념비적 광장이 없다. 유럽 도시에서 광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거나, 일찍이 의회 민주주의를 꽃피운 영국의 수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치인, 사회학자, 도시계획가들이 끊임없이 이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런던이 도시 내에 기념비적 광장을 갖지 못한 것은 큰 딜레마였다. 이러한 딜레마는 20세기 후반을 넘어서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런던의 한복판에 위치한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이 전략적으로 재개발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국회의사당 뒤편의 ‘팔라먼트 광장(Parliament Square)’이 재개발되면서 또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런던의 두 핵심 지역에 위치한 트라팔가 광장과 팔라먼트 광장은 런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적 랜드마크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축제의 장으로 거듭난 트라팔가 광장
트라팔가 광장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트라팔가 광장은 서쪽으로 국가 권위와 행정 중심인 버킹엄 궁전 및 국회의사당과 연결된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채링 크로스를 시작으로 상업·금융 지역으로 뻗어나간다. 다시 말해서, 트라팔가 광장은 런던의 각기 다른 중심인 웨스트민스터와 센트럴 런던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장점은 곧 방문객과 거주자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런던에서 트라팔가 광장의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트라팔가 광장은 1805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이 트라팔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려고 만들었다. 그 이전까지 있었던 광장은 월리엄 4세 광장이다. 이것을 훗날 조지 4세가 되는 리젠트 왕자가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였던 존 나쉬로 하여금 개발하도록 했고, 현재와 같은 전반적인 모습은 1845년에 건축가 찰스 배리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광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넬슨 기념탑도 이 시기에 세워졌다.
지난 200여 년 동안 트라팔가 광장은 런던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 역사는 기쁨보다는 슬픔과 고통이 대부분이다. 앞서 설명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트라팔가 광장은 모든 전쟁의 격전지일 수밖에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는 런던의 상징인 넬슨 기념탑을 베를린으로 옮기려는 비밀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영국 국민과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고 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전쟁은 없었지만, 이후 트라팔가 광장은 정치적 폭동, 집단 행동, 시위 및 집회, 노사 분쟁 등을 위한 집결지로 끊임없이 사용되었다.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도 이곳에서 진행되었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만큼 트라팔가 광장은 런던의 어두운 역사가 점철된 장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암울했던 역사를 뒤로 하고, 20세기 후반부터 트라팔가 광장은 빠르게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핵심은 트라팔가 광장이 영국을 넘어서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적·예술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트라팔가 광장의 변화를 위하여 런던 시가 고안한 핵심 전략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1년 내내 개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트라팔가 광장이 런던을 대표하는 시민 광장이라고 하지만, 유럽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장들과 비교하여 트라팔가 광장은 상징적·건축적 측면에서 결코 매력적이라고 할 수 없다. 광장의 바로 뒤편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초상화박물관 등이 연계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이 역시 크게 주목을 끌 만큼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광장 주변에는 사방으로 차가 오가기 때문에 아늑하거나 아름다운 광장은 고사하고 마치 섬처럼 느껴진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실망스러운 첫인상을 받는 이유다.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이와 같은 트라팔가 광장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새해 첫날인 1월 1일부터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 진행되는 행사 계획을 살펴보면 이곳이 왜 세계인의 광장으로 여겨지는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런던 시장인 켄 리빙스톤이 직접 허가를 내주는 트라팔가 광장의 공연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쉽게 참여하고 즐길 수 있다. 따라서 트라팔가 광장에서 행사를 개최하려면 아주 치밀한 계획서를 제출하고, 몇 단계에 걸친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시청 직원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서 지원한 공연 계획서가 해마다 넘쳐난다고 한다.
선별된 행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각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전통 공연이다. 여기에는 런던에 거주하는 해당 국가 사람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다민족 간의 화합을 이루려는 정치적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비싼 표를 사야만 볼 수 있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와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부터 연극, 어린이 뮤지컬 등이 포함되고, 계절별 축제, 서커스 등도 해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행사다. 우리나라도 작년에 유럽에서는 최초로 ‘단오축제’를 이곳에서 개최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개한 바 있다.
지난 20세기에 런던은 금융 및 보험 산업을 기반으로 ‘세계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의 런던은 그만큼 다국적 기업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가 하면 런던은 현재 300여 개의 언어가 사용될 정도로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트라팔가 광장은 이러한 런던만의 독특한 사회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이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21세기 트라팔가 광장이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런던을 대표하는 공간적 랜드마크인 이유다.
세계의 상징으로 향하는 팔라먼트 광장
트라팔가 광장과 더불어서 도시 광장으로 런던 시가 적극적으로 개발을 모색하고 있는 광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국회의사당 북서쪽에 위치한 팔라먼트 광장이다. 트라팔가 광장이 최근 10여 년 동안 새로운 이미지를 갖추면서 런던의 상징적 공간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면, 팔라먼트 광장은 이제 막 변화의 첫걸음을 뗐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사당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안쪽에 위치한 팔라먼트 광장은 적어도 장소가 갖는 중요성만큼은 트라팔가 광장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능가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팔라먼트 광장은 초기부터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위한 장치로 만들어졌다. 1868년에 트라팔가 광장과 마찬가지로 찰스 배리의 책임 아래 계획되었고, 지난 1950년에는 조지 그레이 워넘이 당시의 교통상황에 맞게 전체적으로 다시 디자인했다. 비록 팔라먼트 광장이 지난 150여 년 동안 런던에서 가장 혼잡한 웨스트민스터 지역의 교통 소통을 위한 기능적 공간으로 존재했다고는 하지만, 영국 정치 일번지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장소라서 이곳에서도 트라팔가 광장 못지않게 사회적·정치적 집회와 극렬한 폭동 등이 끊이질 않았다. 따라서 팔라먼트 광장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머무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공공공간디자인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런던 시는 기능적 목적으로만 여겨졌던 팔라먼트 광장의 잠재적 가능성에 크게 주목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건축적으로 볼 때 팔라먼트 광장은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국회의사당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항상 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는 곳이다. 둘째, 북쪽으로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와 버킹엄 궁전, 남쪽으로는 템스 강이 불과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즉, 팔라먼트 광장의 재생에는 기존에 단절된 템스 강에서 버킹엄 궁전에 이르는 권역을 전체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런던 시는 몇 단계에 걸친 팔라먼트 개발 계획안을 수립해서 현재 실행 중이다. 이 계획안을 보면 초기 단계에는 광장으로의 접근성을 단계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통하여 거주자와 방문객이 머물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차량 흐름을 재편하여 광장과 그 주변을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꾼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차량을 적절히 우회시켜서 사람들이 머물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늑한 도시 광장으로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템스 강변에서 팔라먼트 광장을 지나 세인트 제임스 파크와 버킹엄 궁전까지 연계되는 강력한 ‘보행자 축’을 완성하는 것이다.
팔라먼트 광장에는 물리적 재개발 계획과는 별도로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동상이 작년 8월, 이곳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팔라먼트 광장 주변에는 이미 에이브러햄 링컨, 윈스턴 처칠 그리고 영국을 대표하는 몇몇 수상들의 동상이 세워져서 정치 일번지로서의 상징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어서 만델라 동상을 세운 것은 더욱 넓은 차원에서 열린 세계로 향하는 런던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만델라가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할지라도, 런던에서 가장 강한 상징성을 띠는 공간에 외국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링컨을 제외하면 모두 영국 수상들의 동상뿐인 팔라먼트 광장에 국적과 인종을 초월하여 존경을 받는, 살아 있는 인물의 동상을 세움으로써 세계로 향하려는 런던의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의미와 이벤트가 어우러진 공간적 랜드마크
지난 연재에서도 강조했듯이 런던은 하나의 일관된 도시계획에 따라 완성된 도시가 아니다. 런던이 기념비적 도시 광장을 갖지 못한 이유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21세기 런던은 이와 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트라팔가 광장과 팔라먼트 광장은 성격, 규모, 위치 등의 조건이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화려한 건축적 특성을 지녀서가 아니라 나름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끊임없는 이벤트를 열어서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21세기 런던의 공간적 랜드마크를 만드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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