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는 따뜻했다" 쇳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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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66회 작성일 10-10-0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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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대. 평소 긴 끈에 열쇠를 주렁주렁 매달아 허리에 질끈 묶고 다니셨던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 옷을 챙겨 입으시며 눈만 겨우 뜬 손주 녀석에게 ‘쇳대’를 가져오라 심부름을 시키셨다. 쇳대가 뭔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어린 손주는 그 심부름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그것이 열쇠인 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한 번쯤은 들어봤을 ‘쇳대’라는 단어에 대한 기억은 2003년 쇳대박물관이 개관할 당시 서서히 살아났다.
20년 넘도록 철을 다루는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사라져가는 한국의 자물쇠를 수집하고, 보존하고, 연구하였다. 처음에는 취미였다. 그동안 그 남자는 오랫동안 아끼던 자물쇠들을 한자리에 모아 세상에 내놓을 구상을 끊임없이 했고, 2003년 비로소 꿈을 실현시켰다. 논현동에서 ‘최가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홍규 대표가 바로 그 남자다. 일찍이 실용적이면서도 디자인적 감성이 가미되고 예술성이 풍부한 그의 철물은 하나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업계(?)에선, 아니 분야를 초월해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그런 그가 철물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서 애정과 젊음을 쏟아 부었던,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철물인 전통 쇳대에 대한 고집과 열정으로 쇳대박물관을 만들어냈다.

동숭동 대학로에 자리한 쇳대박물관은 그 이름 하나만으로 과거로의 여행, 사라져가는 우리 것으로의 추억여행, 문화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한 건축가의 작품을 감상하게 할 박물관임을 알게 한다. 대체 예술성 있는 열쇠와 자물쇠를 모아봐야 얼마나 모을 것이며, 그것들을 어떻게 전시해둔 것일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뒷문으로 나와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쇳대박물관은 붉은색이다. 부식시킨 강판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차가울 것만 같은 철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켜준다. 철을 예술적으로 만지는 장인과 철을 좋아하는 건축가 승효상이 의기투합해 만든 쇳대박물관. 목재와 유리와 돌, 그리고 스틸 박스 세 개의 조화 속에는 그들의 신념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매서운 겨울 바람, 썰렁해진 대학로의 문화 바람을 따뜻하고 넉넉하게 감싸 안을 것만 같다.

5,000원이라는 다소 ‘센’ 입장료를 지불해야 전시를 관람할 수 있지만, 고려·조선 시대 자물쇠, 비밀 자물쇠, 두석장, 대형 자물쇠, 은입사 자물쇠, 북통형 자물쇠, 빗장, 열쇠패, 세계 자물쇠, 목가구 등이 1, 2, 3 전시실로 이어지고 ‘조분조분’ ‘차근차근’ 눈높이에 맞는 설명이 있어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 특히 카페테리아 아트숍, 이벤트홀,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등 작지만 다이내믹한 공간연출을 감상하는 것은 그 이상의 가치가 충분하다.

또 한번 철은 따뜻했다. 지난해 한글날을 맞이하여 조각가 금누리 국민대 교수와 디자이너 안상수 홍익대 교수가 고안하여 설치한 ‘한글 담쟁이’에서 또 한번 훈기를 느낀 것. 한글 자음을 넝쿨 열매처럼 매단 작품으로, 설치 과정이 재밌다. 철과 철이 만났으니, 접착 재료는 ‘자석’. 물론 건물과 작품에 손상을 주지 않고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다. 철은 또 그렇게 문화의 한 부분을 품어 안으며 자신의 가슴을 내주고 있었다.
또 하나, 이벤트홀 아래 있는 아트숍은 또 하나의 기획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최 대표가 모아둔 앤티크한 작품들과 골동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래서 가격표가 붙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으니 잘 살펴야 한다.
취재 동안 ‘자연을 생각하는 스틸하우스’라는 한 기업의 광고 카피가 생각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벼운 건물이 들어서고, 휘황찬란한 간판을 바꿔 다는 대학로에서 꿋꿋이 자신의 색을 안고 서 있는 묵중한 스틸하우스, 문화로 꿈꾸고 상상하고 실천하며 스스로를 붉게 불살라가는 따뜻한 스틸하우스 쇳대박물관을 우리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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