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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인터넷 서핑 즐기는 기술사회 신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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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90회 작성일 10-10-09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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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이 올려다 보이는 샹 드 마르스 공원과 건너편의 트로카데로 공원에서 파리지엥들은 벤치에 걸터앉아 노트북으로 무선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다. 이는 최근 파리시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풍속도이다. 파리시는 얼마 전부터 도심 내 공원지역에서 공중 무선랜망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사회당 소속의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파리 와이파이(Wi-Fi) 서비스’ 계획에 따라 파리시에는 공원, 박물관, 도서관 등 시내 260여 곳에 400여 개의 무료 무선랜망이 설치됐다. 이제 파리시민들은 공원의 자연을 즐기며 첨단 정보통신의 총화인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공중 무선랜망이 설치된 곳에는 ‘파리 와이파이’라는 안내표시판이 붙어 있고, 이곳에서 시민들은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무료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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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자연공원의 공존
우리나라에서도 안산시 상록구에 무선인터넷서핑공원이 설치되어 운영 중이다. 상록구청은 주민이 많이 이용하는 공원 1개소를 무선인터넷공원으로 선정해, 주민들이 언제라도 공원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무선인터넷 서비스시스템을 구축했다. 도심 속에 갇혀 있는 대도시의 시민들에게 녹음에 둘러싸인 공원은 자연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자 특별한 기쁨을 주는 곳이다. 도심의 공원에서 인터넷을 즐기는 모습은 얼핏 보면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기술을 만들고 지배해온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도적 노력이 빚은 기술사회의 새로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첨단기술과, 공원이라는 자연공간의 공존은 우리에게 현대기술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철학적으로 따져보면 문화(culture)의 상대어는 자연(nature)이다. 자연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땀과 노력, 지혜로 만들어진 모든 산물이 문화이다. 과학과 기술도 문화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칸트의 문화 해석에 따르면 문화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실현이다. 칸트는 성경에 나타난 천지창조와 인류의 출현 과정을 통해 문화의 기원을 논했다. 성서에 따르면 하느님은 인간에게 에덴 동산의 선악과는 절대 따먹지 말라고 명령했으나 인간은 뱀의 유혹에 못 이겨 선악과를 따먹었고, 그로 인해 결국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신화, 종교, 예술, 언어, 과학, 규범, 기술 등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문화이다.

문화는 자연의 보호 상태에서 자유 상태로의 이행
신의 관점에서 볼 때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느님의 명을 어긴 죄였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 스스로 내린 결정이고 결단행위였기에 ‘인간 자유의지의 실현’이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그리고 에덴 동산으로부터 추방되지 않았다면 인간은 결코 인간의 세계, 인간의 문화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결론적으로 “문화는 자연의 보호 상태(에덴 동산)로부터 자유의 상태로의 이행”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칸트의 역사철학>).
오늘날 테크놀로지(technology)는 사회 변화와 문화 변동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이다. 새로운 발명이나 신기술은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고 우리 삶을 바꾸기도 한다. 기술 또한 문화의 한 부분이다. 기술을 의미하는 테크놀로지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온 말이다. ‘테크네’는 물건이나 작품을 만드는 능력을 뜻한다. 인간의 행위나 이를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는 프락시스와 테크네가 있다. 이 중 프락시스는 인간이 인간이나 사회에 대해 행하는 행위나 지식을 가리키므로 인문사회학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고, 테크네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행위, 기술 및 지식이므로 기술에 해당한다.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면서 아울러 다른 인간과 함께 사회적 삶을 산다.

과학은 앎의 방식, 기술은 삶의 방식
자연과 함께 살면서 인간은 과학을 통해 자연의 이치와 법칙을 밝혀내고 이해해왔다. 또한 기술을 통해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터득해왔다. 요컨대 과학은 자연에 대한 ‘앎의 방식’이고, 기술은 과학지식에 기반해서 역사를 개척해온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매개체이고,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고리인 것이다.
흔히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 자연이 파괴되고 자연과 인간의 거리가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인간역사의 산물인 과학기술은 인간이 자연을 인지하고 함께 공존하면서 만들어낸 유무형의 자산을 말한다. 인간은 과학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기술을 통해 자연과 공존한다. 과학과 기술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자연과의 공존을 전제로 이루어진 지적 산물들이다. 기술은 결코 자연을 대체할 수 없다. 자연은 자연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활동에 의해 위축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오만에 불과하다. 어떤 위대한 기술도 대자연을 위협할 수는 없다. 기술이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한다면 자연을 파괴하거나 위협하는 기술은 인간적이지 않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적 미디어는 인간의 연장
인간이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적인 미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우선 인간의 능력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연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기술적 매개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문명비평가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1)은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의 연장(prolongation)”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감각이 유한하므로 그 감각을 연장시키기 위해 만든 기술적 산물이 미디어라는 것이다. 맥루한에 의하면 옷은 피부의 연장이고, 피부의 연장으로서의 옷은 기술적 매개체이다. 자동차는 인간 다리의 연장이고 도끼는 손의 연장이며, 안경은 눈의 연장이다. 전화는 귀와 입의 연장이고, 텔레비전은 눈과 귀의 연장이다. 이런 기술적 매개체 덕분에 인간은 자신의 감각 능력을 확장할 수 있고, 자연에 더 다가갈 수 있다. 기술적 미디어로 인해 인간은 부족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감각을 통해 연결되는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부락을 만들 수 있다.

자연에 다가가기 위해 오히려 기술이 필요
한번 생각해보자. 기술이 없는 인간의 삶은 어떠할까. 기술이 없으면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자연을 더 즐길 수 있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기술의 산물인 미디어가 없으면 오히려 인간과 자연의 자연스런 교감과 조화가 가능하지 않다. 교통수단, 통신기기, 인간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이기(利器) 없는 현대인의 삶은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자연은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경외감의 대상이기도 하다. 대자연의 위대함은 인간의 제한적인 감각으로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 다가서기 위해 오히려 기술이 필요하다. 태생적으로 기술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였으니까 말이다. 비행기나 탐험 장비 없이 알래스카 오지나 북극의 신비함, 알프스 산맥이나 융프라우의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는가. 자연에 다가서려면 더 많은 기술적 매개체가 필요하다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열망은 기술적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기술과 자연을 대치시키는 구태의연한 생각은 과감하게 벗어버려야 한다. 인간이 에덴 동산시절로 돌아가 자연의 보호 상태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면 인간은 인류역사의 산물이기도 한 문화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자연과 문화의 공존과 조화, 인간과 자연의 하모니야말로 인간 사회가 추구해야 할 미래상이다. 자연의 보호 상태가 아니라 자연과의 공존 속에서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은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것이지, 자연을 위협하거나 대체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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