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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있어서 「급진성」과 「기능주의」의 조화, 페르낭 레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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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92회 작성일 10-10-09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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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서쪽에 해당하는 지방은 'Alpes-Maritimes'지방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이름 그대로 알프스산맥이 바다쪽으로 접한 지대이기 때문이다. 이 지방을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으로는‘앙띠브(Antibes)’시의 〈피카소 미술관〉과‘비오(Biot)’시의〈페르낭 레제 미술관〉이 있다. 〈페르낭 레제 미술관〉은 1955년 작고한 작가를 위해 그의 부인인 나디아 레제(NadiaLeger)가 세운 것이다. 1960년에 개관하여 67년부터는 국가에 귀속되었다. 미술관 건축은 앙드레 스베친(Andre Svetchine)에 의한 것으로서, 레제의 예술에 맞게 매우 모던하고 기능적이며, 레제의 두 가지 작품이 기념비적 방식으로 돋보이도록 설계되었다. 500평방미터에 이르는 전면에는 레제가 원래 하노버(Hanover)의 한 운동경기장을 위해 제작했던 구성적 작품 프로젝트가 모자이크와 세라믹으로 제작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레제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된 대형 스태인드글라스가 발견된다.

▼페르낭 레제 미술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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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는 미술관 면적이 거의 두 배 가까이 확장되어, 소장중인 348점의 작품 거의 모두를 전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소장 작품은 페르낭 레제의 전 작품에 대한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레제는 입체파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었다. 1912년 작 〈푸른 여인〉은 곡선과 직선, 평면과 입체면, 강한 색조와 중간 색조 등의 체계적 대비라는 특성을 통해 이러한 회화적 탐구의 한 결말을 보여준다. 1차대전을 맞아 레제는,“태양아래 솟구쳐 있는 75미리 대포의 모습은 세계의 모든 미술관보다도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고 말하며 새롭게 출현한 미래주의자들의 급진적 주장에 화답한다. 1923년 작〈큰 예인차 Le Grand Remorqueur〉는 전쟁 전의 실험들로부터 단절함과 동시에 일상 생활속에서 기계의 도입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벽화를 통한 대규모의 구성적 경향의 작품들에 전념하였으며, 더욱 진전된 건축 연구를 계속하면서 한때는 르코 르뷔지에와 함께 작업하기도 하였다. 1930년 작〈열쇠를 가지고 있는 모나리자〉는 레제 자신에 의하면, “극적으로 대비된 사물이란 관점에서 보면 가장 모험적인 그림”인데, 그 이유는 하나의 추상적 배경 속에서 유명한 명화의 주인공을 열쇠 꾸러미, 정어리 통조림과 함께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대전 동안 레제는 미국에서 머문다. 이 시기의 작품들을 보면 인물들이 그 실제적 장소의 공간구조에 상관없이 자유로이 배치되어 있으며, 1942년 작〈原色 다이빙 서수>는 그 전형적 예로 보인다. 프랑스로 돌아와서 레제는 현대적 삶의 취향을 정치 사회적 의미와 결합시키는 경향의 작업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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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레제 작「건축노동자들」(1950)

〈붉은 바탕 위의 여가, 1949〉,〈캠핑하는 사람들, 1954〉등은 이런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역시 말년작으로서 다양한 원색의 도판(陶板)으로 제작한 부조물인〈앵무새를 가지고 있는 여인, 1952〉도 눈에 띈다. 레제는 도시 및 주거 환경 속에서의 예술의 기능에 대해서도 열정적 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회화뿐만 아니라, <목욕하는 여인들과 프랑스의 하늘> 같은 타피스리 작품, 나아가 브론즈, 모자이크, 스테인드 글라스 등을 다수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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