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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그로노블(Grenoble)문화의 집과 그 주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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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679회 작성일 10-10-09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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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대혁명의 진원지 그로노블
프랑스의 론 알프(Rhone-Alpes) 지방을 굳이 우리한국의 지역과 비교하자면 경상북도에 해당한다. 산모양과 공업단지들 때문이며, 이 지방의 중추 도시인 리용(Lyon)을 섬유산업의 맥카라는 면에서 보면 경북의 중심도시인 대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방에 이에 못지 않는 21세기 프랑스 미래첨단산업도시가 있는데 그 도시가 바로 그로노블이다. 리용에서 동남쪽으로 150㎞ 떨어져 있는 그로노블은 위치로 보아 경북의 포항과 닮았으나 만년설의 산세로 보아 강원도 설악산의 속초에 견줄만 하다. 다른것은 속초는 항구이나 그로노블은 북부 이태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알프스산맥에 있다는 점이다.

「기와장 전쟁」(Guerre de tuiles)이라고 불리우는 그로노블시민들의 봉기로 그로노블은 프랑스 대혁명(1789. 7.14)의 진원지로 프랑스 근대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적과 흑」,「파르마의 승원」,「연애론」등의 명작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스텡달 (Stendhal)의 고향이기도 한 그로노블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이태리와 스위스 문물등의 영향을 받아 진취적 기상의 지식인들에 의해 교육열이 높아 일찍부터 기술혁신 관련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알프스발원의 이제르(xere)강이 흐르고 있는 그로노블은 풍부한 역사와 예술의 간직한 시서도 1968년초에 치러진 제10회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전에는 세계의 이목을 받지 못하는 프랑스사람들의 겨울스포츠 고장정도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나 1963년 그로노블시장이된 뒤 부두(Duboudout)에 의해 강변의 구시가지를 멀리하고 남쪽의 공공부지나 공장지대를 재개발하여 21세기를 준비하는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노바리나(Novarina)와 웰티(Welti) 등에 도시의 마스터틀랜을 만들도록하여 새로운 거리와 도로가 조성되었으며 이 당시 공공건물인 체육관, 시청사, 올림픽촌 등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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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노블의 명물 문화의 집

그들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그로노블의 명물로 칭하는 「문화 의 집」 건물이다. 건물의 모양 때문에 일명 「화물선」(Le Cargo)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문화의 집은 도시중심지와 올림픽촌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1968년 동계 올림픽에 맞추어 앙드레 말로(A. Malraux)에 의해 개관식을 가진 이 문화의 집은 앙드레 말로의 문화정책(창작과 복급, 지방문화의 활성화, 청소년의 문화교육, 소외계층의 문화향수 등)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건축상으로 그로노블 문화의집은 독특하고 독창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입체적인 원통형을 띄고 있어 용적기를 포개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1981년 미테랑 정부의 쟉끄 랑(J. Lang) 문화부 장관은 그전 우파 정부의 문화의 집 활동이 문화예술부문 중 고급미술전시나 공연등에 치중하였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문화정책을 지방에 정착시키기위해 기존의 문화의 집, 문화활동센터, 문화발전센터 등을한데 묶어 전국 문화의 장(場) (Scenes Nationales)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전국 60개의 문화예술공간은 위에서 언급한 공간명칭을 그래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역특성에 맞게 문화 ·예술 활동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창작과 문화향수를 위해 힘쓰고 있다. 전국문화의 장으로 명명된 문화·예술공간은 쟉끄 랑에 의해 대중연극과 영화등의 공연/상연 등에 중점을 두게 되었으며 청소년들을 위해 첨단영상교육과 창작장을 설치토록 하였다. 특히 미래주역세대인 청소년들의 관심이 비디오클립(Video Clip), 록(Roc), 재쯔 등에 있고, 부담없이 문화의 집을 이용토록 하기 위해 문호를 개방하고는 있으나 그로노블 문화의 집의 경우 창작기획을 위한 전반적 문제를 해결치 못해 공익 보조금에 의해 영상물 보급이나 자료관 확충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형편이다. 그로노블 문화의 집은 1901년 협회설립법에 의해 협회로 구성되어 관장이 사무국을 두고 총30명내외의 인원으로 자체프로그램개발과 구성, 집행 등을 독자적 판단에 대해 운영하고는 있으나 공익자금이나 재정보조금을 공공기관에서 받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지방문화행정조직인 지방문화국(Direction Regionale d’Action Culturelle)의 감사를 받고 있다.

그로노블 문화의 집은 1980년대 초까지 전위미술품 전시 전위음악, 현대무용등에 신경을 썼고 특히 공업도시답게 과학과 기술등을 접목한 전자음악 페스티발을 많이 개최하였다. 또 1981∼1995년동안 미테랑 대통령 재직때는 연극기획과 공연 장려정책으로 프랑스 고전극보다 많은 실험작품을 많이 무대에 올렸으며, 연극의 대중화와 일반화를 위해 이를 비디오로 찍어 영화와 함께 상연함으로써 남녀노소나 직업에 상관없이 문화의 대중화에 공헌하였다. 특히 문화의 집은 매년 3월18일∼17일까지 열리는 재쯔 축제때 재쯔콘서트를 주관하여 그로노블 젊음이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으며, 국제교류 확대 차원에서 북미대륙(주로 미국 캐나다) 국가 도시들과 문화 협력을 강화하여 지방작가의 전통음악과 전위미술제와 전시회등을 년 1회 이상씩 개최하고 있다. 1995년 기준으로 그로노블 인구 16만명 중 2/3이상이 문화의 집을 년 1회이상 이용하고 있어, 문화의 집은 그로노블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하겠다. 참고로 그로노블 문화의 집 소재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불어 명칭 : Maison de la Culture de Grenoble “Le Carogo” 소재지 : 4, rue Paul Claudel B.P.7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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