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대한 자긍심으로 역사를 세우다: 폴란드 바르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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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03회 작성일 10-10-1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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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댄스를 허하노라
2005년 10월 1일, 필자가 방문할 당시 폴란드는 대선을 치르는 중이었다.
실업률 17.7%, 공공부채 4440억 즈워티(약 140조 원)에 달하는 최악의 경제 상황. 즈워티의 유로화 전환 시점과 재정적자 축소 시기 등을 놓고 심각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는 정치권 등, 지금 폴란드에서 문화를 통한 혁신을 논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낭만적인 주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텔에 여장을 풀고 간단한 저녁식사 마친 후 찾은 허름한 카페에서 바르샤바의 저력을 발견했다고 하면 과장된 평가일까.
50평 남짓한 카페는 우리의 허름한 맥주홀을 연상시키는 공간, 홀에서는 이미 라틴댄스 강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특별한 조명도 그럴싸한 음향기기도 없지만 능숙한 강사가 라틴댄스의 기본 스텝을 명쾌하게 가르친다.
일행 9명도 이곳에서 난생 처음 라틴댄스의 기본 스텝을 익힌다. 언어도 문화도 낯설지만 춤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빠르게 서로를 하나의 공감대로 묶는다. 9시까지의 강연이 끝나면 이후로는 프로급 댄서들과 아마추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라틴댄스의 진수를 뿜어낸다. 바르샤바의 댄스 카페는 일종의 교육기관인 셈이다. 일행 중 한 명은 두 시간만에 그곳에서 처음 만난 폴란드 남성과 멋진 댄스를 선보인다.
바르샤바가 자랑하는 문화시설도 아니었고 관광객을 위해 배려된 관광 코스도 아니었다. 그러나 식사 후 간단하게 맥주 한잔 나누자는 제의에 무턱대고 찾은 도심의 카페 거리에서 우리는 바르샤바의 일상을 만났고, 일상의 윤기가 되는 문화의 힘을 확인했다. 최악의 경제상황에서도 바르샤바인들은 그렇게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다.
일상 속에서 숨쉬는 문화재
폴란드의 국가예산 중 문화 관련 예산 비율은 아직 1%를 넘지 못한다. 그나마 예산의 50%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쓰인다.
바르샤바의 구시가 광장은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마침 거리는 문화유산 지정 25주년을 기념하는 마라톤이 한창이고 노란 유니폼을 입은 젊은 마라토너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바르샤바의 구시가 광장은 사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금의 구시가 성곽과 광장은 그 이후에 복원된, 정확히 말하자면 지은 지 25년 된 건물이다. 그럼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이유는 역사를 소중히 지키고자 했던 폴란드인의 정신 때문이다. 바르바칸 성이 폴란드인에 의해 파괴된 것이 아니라 전쟁 중에 독일인이 계획적으로 폭파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완벽하게 복원한 지금의 성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유네스코를 설득했다. 유네스코 역시 전쟁에 의해 파괴된 역사를 온 국민이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그 철학과 정신을 인정,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폴란드 인들은 바르바칸 성과 성벽을 완전하게 복원하기 위해 관련 사진과 설계도, 그림들을 총동원하였고 본래의 벽돌을 그대로 활용하여 다시 쌓는 방식으로 역사를 충실하게 복원하였다. 그들이 내세우는 ‘완벽복원’이라는 단어는 그러한 작업 과정에 대한 자긍심이 배여 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바로 바르바칸에 세계인들이 모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복원된 바르바칸 성 안에는 각종 병·의원과 사회단체 사무실, 박물관, 개인 집무실, 식당 등이 들어서 있다. 물론 광장에선 언제나 크고 작은 공연이 펼쳐지고 구도심 시가지를 둘러볼 수 있는 마차들이 대기 중이다바르샤바 사람들은 이곳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외형의 복원에 충실하되, 그 공간을 지금도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걸 우리는 부러워만 해야 하는가. 우리의 목조 건물과는 달리 웅장하고 튼튼한 석축물인 덕이라고 위안받기에는 우리 노력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폴란드의 경우 문화재 활용을 위해 그림(명화)등을 관리하는 부서, 자연적인 재해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는 부서, 고대의 유물을 보존하는 기관 등 세분화된 차원에서 문화재 활용 정책을 수립하고, 중앙정부의 주도 아래 철저히 관리된다.
우선 폴란드에서는 1945년 이전에 만들어진 제품은 무조건 해외 반출이 금지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너무 많이 잃었다는 자각의 결과이다. 쓸모없는 고철덩어리라 치부할 수 있는 다리미까지도 그것이 1945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해외반출 금지 품목이다.
건축물에 대한 개·보수 지침도 철저하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의 개·보수 책임은 국가가 진다. 우리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폴란드 국민들은 문화재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들은 외형상 옛 모습 그대로 개·보수 된다. 다만 안의 구조들은 현대인이 사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계속해서 리모델링된다. 증축을 하거나 수리하는 과정에서 문화재가 나오거나 페인트칠 중 지하실의 벽화가 발견될 경우 집 주인은 즉시 정부에 신고하고 문화재로서 보호받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지지 덕에 건설부의 모든 업무에서 문화재 보호법이 최우선된다. 고풍스런 성곽과 광장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펼치고 성곽주변 도로를 마라톤 코스로 즐기며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도 역사를 호흡하며 하나의 풍경이 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저력에서 나온다.
문화, 일상을 일으키다
출발하기 전에 일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쇼팽 콩쿠르의 개막작 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람석에 앉으면서 기대는 반으로 접혔다.
쇼팽 콩쿠르가 열리는 문화과학 궁전의 공연 홀은 낡을 대로 낡은 1000여석 규모의 공연장. 그나마 1층은 계단식 공연장이 아니라 널따란 홀에 이동식 의자를 옮겨놓은 곳이어서 쾌적하게 공연을 감상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게다가 마지막까지 남은 우리의 좌석은 홀 가운데 커다란 기둥이 가로막힌 터라 이리 저리 고개를 옮겨가며 공연을 흘깃거려야 했다.
그럼에도 공연장 분위기는 기억에 남는 몇 장면 중 하나다. “이런 곳에서 세계3대 콩쿠르로 알려진 그 유명한 개막작을 공연하다니……. 참, 나……” 했던 건방진 태도는 공연이 시작되면서 부끄러움으로 변했고, 공연 중간의 휴식시간 동안 품격 있게 오가며 교류하는 분위기에 취해 그만 콩쿠르 관련 티셔츠, 열쇠고리, 책자, 팸플릿을 몽땅 구입했다. 되도록 관광상품 구입은 외면해 왔는데도 그곳의 분위기와 이미지는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옮겨오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인 것이었다. 남루한 문화시설도 빛나게 하는 문화향유력. 문화시설을 짓고 세우는 것보다 우선은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과 자질을 키우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폴란드의 문화시설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폴란드는 모든 예술교육을 공교육이 담당한다. 예술학교와 발레 학교 등 특화된 예술학교는 물론이며 일반 초·중·고등학생들도 방과후에 예술학교를 다니며 예술 감각을 익힌다. 사회주의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폴란드는 어려운 국가 재정에서도 문화복지로서의 예술교육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동식 의자에 앉아서도 세계 3대 콩쿠르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러한 교육이 일상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둘러본 것에 한정한다면 폴란드에서는 지금 문화시설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폴란드의 국립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사실주의 유화가 가득 들어선 이곳도 마루바닥이 삐걱거려 내내 감정선을 건들이기 일쑤였다. 몇 개 국어로 번역한 안내서도 없다. 전시실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안내원들은 대부분 노년층으로 친절한 미소를 기대하기 힘든 표정이다.
그럼에도 이곳 전시관이 쇼팽 콩쿠르에 이어 손꼽을 수 있는 풍경으로 남은 것은 명작들, 그곳을 채우는 작품들 때문이었다. 그 중 하나가 jozef simmiller(1823~1868)의 1860년 작품 <왕비의 죽음>. 37세의 나이에 어떻게 저렇듯 슬픈 눈동자를 그렸을까. 죽은 왕비를 바라보는 왕의 눈빛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래, 사랑이 끝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슬픈 일이다.
지니고 있는 것의 가치는 아무리 우겨도 언젠가는 누구나 눈치 채게 마련이다. 폴란드 국립박물관이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에 친절한 안내서 한 장 없이도 인상적인 공간으로 남는 것은 ‘지니고 있는 것의 가치’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화자산은 잘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그곳을 채울 작품이라는 것, 그것이 실업률 17.7%, 공공부채 4440억 즈워티에 달하는 폴란드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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