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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문화 중심 꿈꾸는 크라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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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633회 작성일 10-10-1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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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곳곳에 배인 역사의 채취
내가 사는 이 땅의 역사를 역사책이나 박물관을 찾지 않아도 산책길에서 관공서, 학교 건물 혹은 도심 곳곳에서 누릴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도시, 크라코프의 10월은 초겨울 날씨다. 넓은 성곽과 도심 공원 나무들은 오래된 도시의 여유를 그대로 닮아 있다. 삶의 속도라는 것도 도시 경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의 흐름을 관통하는 듯한 진중한 느낌이 우러나는 것은 도시경관이 주는 역사적인 무게 때문이리라.
1609년 지그문트 3세가 왕궁을 바르샤바로 옮기기까지 크라코프는 폴란드의 수도이자 유럽문화의 중심지였다. 폴란드도 그 역사적인 권위를 인정해 대관식과 왕의 장례식,왕실묘를 안치하는 일은 지금의 수도 바르샤바가 아닌 이곳 크라코프에서 거행한다. 크라코프는 여전히 폴란드의 정신적인 수도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61.jpg유럽문화 2000, 문화도시로 거듭나다
‘유럽문화2000’을 치르면서 크라코프는 문화적으로 특별한 도시로 거듭난다. EU에 가입하면서 프랑스·영국 등 서유럽에 치우쳐 있던 유럽문화의 주도권이 조금씩 옮겨오고 있다고 자부한다. 유럽문화도시 2000은 본래 유럽경제연합에 가입한 국가들을 축하하고자 기획되었다. 9개의 도시가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되었는데, 아비뇽(프랑스)·브뤼셀(벨기에)·베르겐(노르웨이)·볼로냐(이탈리아)·프라하(체코)·크라코프(폴란드)·헬싱키(핀란드)·레이크자빅(아이스란드)·산디아고 드 콤포스텔라(스페인) 등이다.
사실 크라코프는 전쟁 후 중세유럽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경제적 사회적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992년 공산주의 치하를 벗어나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면서 도시 활성화를 위해 유럽문화수도 2000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동안 서유럽 문화에 치우쳐 있던 유럽의 이미지를 보다 폭넓게 확장시키자는 데 EU가 동의했고 중앙정부가 국가적인 지원을 계획했으며 크라코프 시는 5개년 계획으로 문화예술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했다.
1996년 폴란드 영화축제를 시작으로 그 다음 해엔 문학축제, 1998년에는 음악, 1999년 도시축제 2000년엔 종합문화축제로, 5개년에 거쳐 시행된 유럽문화수도 2000은 마침내 크라코프를 동유럽의 문화중심지로 거듭난다.
주목할 만한 것은 5년 동안의 축제를 추진하면서 축제를 위한 시설은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 크라코프 시에서 유럽문화 2000 페스티벌을 준비할 때만 해도 주민들은 그 의미를 공유하지 못했다. 행사를 통해 문화예술인들이 몰려오자 지역주민들 스스로 민박 운영을 자처하며 부족한 숙박 문제를 해결했고, 도로나 기반시설 확충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문화예술인들의 프로젝트에 의해, 예를 들면 그동안 빈민가였던 유대인들의 거리가 갤러리 거리로 탈바꿈했다.

62.jpg오래된 도시가 활력을 찾기까지…
크라코프의 상징은 구시가지(역사지구, 세계문화유산 1978년 지정)다. 광장은 한창 정비공사가 진행 중인데도 시가지 주변 야외 카페는 꽃과 젊은 연인, 악사들로 축제 분위기다. 광장의 입구에 자리한 3㎞ 규모의 플로리안 문과 성모마리아 성당은 중세도시에 걸맞는 위용을 자랑한다.
광장은 열려 있다.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것은 역사 속에서 이 광장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열정이 자연스럽게 내 몸 안에 스며들기 때문이리라.
이 광장이 크라코프 2000년 프로젝트의 중심 공간이었다. 영화인과, 시인, 도시건축가, 음악인등 각 분야의 문화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 도시가 지니고 있는 역사문화의 깊이를 공유하고 부활시킴으로서 미래 도시로서의 가능성을 활짝 열수 있었다. 이러한 행사가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역사 속에서 굳건히 자리해온 문화예술교육도시로서의 자긍심이었다.
페스티벌 크라코프 2000을 통해 크라코프에서는 5년 동안 121개의 프로젝트와 656개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크라코프를 찾은 관광객들은 동유럽 최고의 관광지인 프라하와 크라코프를 비교할 정도로 크라코프의 가치에 눈 뜨기 시작했다.
도시를 찾는 관광객이 3배나 증가함에 따라 문화유산의 관리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무엇보다 큰 성과는 시민들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의 힘에 눈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재 71%의 시민들이 문화도시 선정을 지지하며 지속적인 프로젝트 운영을 요구할 정도로 문화행사 참여율이 높아졌다.

사상, 영혼, 창조력
오래된 도시가 시도한 문화혁신은 당대의 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 문화로 도시를 혁신시킨 크라코프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우선적으로 배치 운영하여 그 계기로 도시 경관이나 서비스 기반시설을 확충해나가는 성공사례를 창출했다. 크라코프의 슬로건인 사상, 영혼, 창조력을 바탕으로 문화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그것을 혁신의 동력으로 활용할 때 도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크라코프로 향하는 도로 주변은 각종 서비스 시설이 들어서고 있었다. 문화도시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시민들이 직접 체험하고 느끼면서 스스로 도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도시와 함께 성장한 야기엘로 대학이 있다. 1364년, 유럽에서는 볼로냐 대학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야기엘로 대학은 도시의 정신적인 지주다. 코페르니쿠스를 배출한 대학으로도 유명한 이곳 야기엘로 대학은 그 존재만으로 크라코프의 역사적인 자존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의 박물관은 그대로 도시가 걸어온 역사다.
대학과 도시를 구분 짓는 담장도 없다. 도시 속에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지역과 흥망성세를 함께하며 이제는 문화를 통한 지역혁신의 구심점이 되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 대학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다시 한번 되짚게 한다. 유서 깊은 대학과 각종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젊은이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는 도시. 오래된 도시와 젊음이 빚어내는 하모니는 그 무엇보다도 빛나는 힘을 지닌다.

63.jpg아우슈비츠 수용소 운영이 주는 교훈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 하에 폴란드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죽음을 당했다. 그 중 유대인의 수가 약 300만 명으로 당시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던 거의 모든 유대인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크라코프에서 1시간 정도 달려가면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다. 1945년 히틀러의 침공 당시 지어진 이곳은 당시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이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청원서를 냄으로써 지금은 전 세계인이 전쟁의 참혹함을 깨닫는 교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수용소를 구석구석 관심 있게 둘러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평상의 마음으로 그 처참한 흔적을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고 “이것이 참으로 진실인가”인간의 잔인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0㏊에 이르는 대규모 수용소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50만 명에 이른다. 전액 국비로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Jery Wrobleswski 관장은 역사적인 비극의 현장을 이용해 돈을 벌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아우슈비츠라는 곳을 통해서 세계인 모두 전쟁의 참화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에 폴란드인들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그래서 관리 운영을 위한 국비 지원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역사학과 학생들의 실습과 2차 세계대전 관련 연구자들과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진다. 실제로 수용소 주변은 매우 허름한 휴게식당 외에는 관광 편의시설이 없다. “관광지가 아니라 교육공간이다”는 이미지를 전체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관광 수익 창출을 위해 문화와 역사를 이용하는 정책은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없다. 아우슈비츠처럼 그 유적의 본질을 바로 계승하는 것, 그것만이 역사와 문화가 국가적인 경쟁력이라는 표현에 합당한 정책일 것이다.
그렇게 합당한 정책을 통해 아우슈비츠는 인류 전체에게 전쟁의 상처, 그 많은 희생자들이 죽음으로서 남긴 전쟁의 무모함, 악랄함의 현장을 역사로 남겨 그 희생이 헛되지 않게 되갚아 주고자 하는 폴란드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감동 깊은 공간으로 자리한다.
“당신들은 그렇게 무참하게 희생되었지만 지금은 물론 후대손손 앞으로의 인류에게도 참으로 잊지 못할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아우슈비츠는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문화와 관광의 혼동, 문화도시의 숙제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명제 앞에 지금 우리나라 도시들은 모두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그 지향점에는 언제나 관광 수익 창출이라는 목적이 자리한다. 이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지속가능한 문화도시를 순방하면서 그들은 문화와 역사를 관광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문화를 즐기며 쾌적한 도시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관광객을 위해서 뭔가를 인위적으로 배려하기보다는 도시민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삶, 그 자체가 무엇보다도 값진 관광자원이라는 것을 배운다.
역사가 그렇듯이 문화 역시 당대의 짧은 삶의 흔적이 아니기에 문화도시 정책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지향을 어떻게 설정해 나갈 것인가의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문화도시를 꿈꾸는 많은 지역들이 과연 그렇게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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