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기는 자연에 대한 감사와 기다림 : 이탈리아 그레베 시 사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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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21회 작성일 10-10-1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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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에서 21세기를 오면서 세계적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과도하게 진전된 산업화, 대도시화 등으로 인해 기계적 시간에 쫓겨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잃어버리고 물질만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웰빙’(well-being), ‘웰니스’(wellness), ‘슬로우푸드’(slowfood), ‘느리게 살기운동’(slow movement) 등의 붐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느리게 살기 운동’은 일련의 지구환경 변화에 대한 반동세력이 출현하게 되면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이 식생활에서의 변화였다. 유기농 혹은 저농약, 야채, 유전자 조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식품재료, 그 지역의 식재료를 먹으며 패스트푸드를 멀리하는 움직임이 슬로우푸드 운동이며, 이것이 개개인의 생활 전반에 확대되어 잘 먹고 건강하게 생활하자는 ‘웰빙’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개인의 개념이 확대되어 공동체 문화로 이어지고 있는데, 즉 ‘나’뿐만 아니라 ‘우리’모두가 좋은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좋은 환경체험을 하자는 ‘슬로우시티(커뮤니티)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느리게 살기가 구체적 사회적 운동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1986년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미국의 맥도날드 햄버거가 이탈리아의 로마에 상륙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탈리아에서 시작, 1989년 프랑스의 파리에서 슬로우푸드 선언문을 채택한 이후 오늘날 40여개국으로 확대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슬로우푸드 운동이 슬로우시티 운동으로 이어질 만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친화적이고 전통적 생활방식에 대한 애착이 강한 문화적 특성과 반도국가라는 자연적 특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식문화에서 나타나는 돈독한 가족주의 성향과 신선한 식재료를 활용한 조리법은 그들이 왜 슬로우푸드를 표방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식재료는 그 때 그 때 신선한 재료를 필요한 분량만큼만 인근 가게나 시장에서 구입해서 사용, 음식을 냉장고1> 에 보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그들은 냉동식품 등도 기피하고, 자연에서 얻어낸 건강식품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속도는 늦추되 여유의 시·공간은 확대
이탈리아의 슬로우시티 운동은 파올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 가 끼안티 지역의 그레베 시(Greve in Chianti) 시장으로 취임, 마을 사람들과 세계를 향해 현대사회의 과학과 산업에의 지나친 숭배를 거부하고 느리게 살기 운동의 시작을 선언하면서부터이다.2>
피렌체에서 약 1시간 떨어진 조그만 산골마을인 그레베 시는 인구 1만 4000명의 작은 도시로, 우리로 치면 군단위 마을에 가깝다. 해발 500~700m 산간의 계단식 경작을 하는 포도원과 올리브 재배농업을 주산업으로 하는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에 취임한 파올로 시장은 “우리는 이미 속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으며 주위와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생각과 습관을 망가뜨리고 있다. 또한 가정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패스트푸드를 먹도록 강요하는 바쁜 생활, 즉 음흉한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를 굴복시키고 있다”며 지역 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파올로 시장은 먹거리야말로 인간 삶의 총체적 부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우선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진정한 슬로우푸드 운동이라고 생각하였다.
이후 단순히 먹거리만을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기보다는 인간 삶의 방식 전환과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판단, 2004년까지 14년간 시장을 지내면서 끼안티 지역의 슬로우푸드 관계자들과 함께 슬로우시티 운동을 전개한다. 그의 신념에 동조한 인근의 도시를 비롯하여 유럽과 세계 전역의 32개의 도시가 이에 동참하고 각 지역 풍토와 여건에 맞는 슬로우시티 운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그것은 시대를 거꾸로 가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물론 주민들이 처음부터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일정 구역의 주차나 차량 진입 금지, 부동산 소유에 관한 법률, 각종 농축산물의 전통적 방식에 의한 재배와 사육 등은 지역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으며 지역민들의 강력한 항의소동과 시위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파올로 시장은 ‘슬로우’라고 하는 것은 불편함이 아닌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다림이란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마침 이 시기 유럽 전역에 일어난 광우병 파동은 인간이 저지른 재앙이야말로 오히려 자연으로의 회귀를 재촉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그레베 시의 슬로우시티 운동은 자전거 이용하기, 소음 제거, 보행자 구역 확대 등 전반적으로 시민 생활의 속도를 늦추는 반면, 여유공간과 시간 확대에 초점을 두면서 7가지의 기본 규정을 통해 각 마을이 갖고 있는 정체성을 발굴하고 찾아가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레베 시 슬로우시티 운동의 7가지 기본 규정>
1) 영토와 도시의 특성을 유지, 발전시키는 환경정책을 추진한다.
2) 영토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단순한 점령의 의미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유도한다.
3) 환경과 도시의 질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기술을 활용한다.
4) 자연친화의 기술로 얻어진 식품의 생산과 활용을 장려한다.
5) 문화와 전통에 접목된 토속생산품을 보호한다.
6) 공동체와의 실질적인 연결을 통해 인적 교류와 접촉을 장려한다.
7) 공동체 시민들 사이에서 슬로우시티에서의 삶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고 취향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 청소년과 이들의 교육환경에 대한 관심을 쏟는다.
인스턴트 자판기는 없다
그레베 시에서는 패스트푸드점이나 대형 할인매장, 백화점 등은 물론이며 청량음료나 인스턴트식품 자판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거대 자본의 패스트푸드나 대형 상점의 입점은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외지인의 부동산매매 거래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이로 인해 지역의 소상공인이 대를 이어가면서 가업을 이을 수 있다고 한다. 마을 어디를 가도 지역민이 경영하는 상점에서 신선한 식품을 구입할 수 있으며 작은 식당에서는 마을만의 따뜻한 온정어린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것은 곧 지역경제로 고스란히 환원되고 있다. 또한 마을 중앙광장에 깔린 보도블록 벽돌과 쓰레기통까지 그 마을에서 전통적 방식으로 빚어진 토기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 마을에는 1000년째 대를 이어 올리브 밭을 가꾼 농부, 계단식 경작법을 30년간 실험하여 포도농사에 성공한 농부, 그림을 그리는 농부가 있는가 하면, 시인이면서 정육점을 30년간 운영하면서 식육점에 마련된 무대에서 모노드라마를 펼치는 사람까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스타인 셈이다. 이런 스타들을 보기 위해, 스타들이 일구어놓은 마을을 보기 위해 외래 관광객들이 마을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는 풍경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레베 시는 슬로우시티 운동이 확산되면서 지역의 지명도 향상으로 인한 관광객의 증대, 마을 인구의 증가, 소득 수준 향상, 완전한 고용, 그리고 지역민들의 지역에 대한 애착심과 애향심의 고취를 가장 큰 수확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유명세를 타고 타 지역으로부터의 인구 유입과 관광객의 증가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역 고유성의 침해와 각종 공해와 문화 충돌이 우려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관광광의 접목, 역발상이 관건
세계 최초의 슬로우시티 그레베 시의 성공요인을 정리해 보자.
첫째, 지역주민이 지역경제 및 산업과 관광의 주체이다. 지자체와 지역주민 협의회를 중심으로 마을의 중요 결정을 내려며 이를 통해 외지인의 토지 거래, 외부 자본 유입 등을 철저하게 막아내어 지역산업과 경제의 주역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지역의 전통적 유무형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전통적 환경 유지 보존에 노력하고 전통적 자원의 다각적인 활용방안을 모색한다. 그레베의 경우처럼 마을에서 나는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마을광장에 깔아 이것조차 관광객에게 스토리텔링이 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마을에 대형 버스나 차량 진입을 제한한 것은 깨끗한 도시라는 이미지의 고착화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셋째, 지역주민과 토착상공인들에게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유지시켜 주었다. 자부심을 고취 혹은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품질관리는 물론 대외적 언론을 통한 홍보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 내 주요 상공인, 농민들의 적극적 언론 노출과 관광객과의 잦은 접촉을 통해 이른바 ‘스타’ 만들기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넷째, 상품화와 네트워크 전략의 확대이다. 슬로우시티 연맹체를 만들어 도시 간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교류와 정보 교환 등을 통해 상품 가치를 높인 것은 슬로우시티의 주요 콘셉트라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상품화와 네트워크 전략을 통해 철저한 품질관리방식을 도입, 일반관광과의 경쟁할 수 있었다.
슬로우시티 운동은 결국 다양한 자연과 인간성 회복, 향수로의 회귀, 자연친화, 웰빙, 인간미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또한 슬로우시티는 대도시에 대한 대비적인 표현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이것은 농촌관광뿐만 아니라 어촌, 산촌, 중소도시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콘셉트이다. 단순히 농촌관광이라는 표현보다는 느리고 편안한 삶을 구가할 수 있는 마을이라는 명칭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중요 브랜드가 될 수 있다. 한편 대도시에 비해 뒤처진다고 간주될 수 있는 점들을 ‘느림의 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은 빠름을 강조하는 시대에 느림의 미학 커뮤니티,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커뮤니티가 슬로우커뮤니티의 주요 콘셉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슬로우시티 개념을 우리나라 농어촌관광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특징과 제한적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여 적절하게 응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지역의 산업, 즉 농업과 토착자본의 소상공인이 마을경제의 주축이 될 수 있도록 외부로부터의 각종 자본 유입을 제한해야 한다. 슬로우 커뮤니티의 농촌관광으로 발생된 이익이 모두 지역사회에 고스란히 흡수될 수 있는 방법은 지역산업에 기반을 둔 활성화이다. 둘째, 대도시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에 철저하게 반대되는 역발상으로 상품개발을 해야 한다. 즉 숙박시설 확충이나 도로 확대 등을 제한하여 ‘전통’, ‘꼬불꼬불’, ‘아늑함’, ‘예스러움’ 등의 이미지 구축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대도시민들이 농촌지역에 방문하여 겪게 될 물리적 불편함을 새로운 슬로우커뮤니티에서의 체험상품으로 연출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상품화 전략을 통하여 지역 정체성과 이미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를 개발하고 그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넷째, 네트워크화하여 연계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슬로우커뮤니티 연맹체, 농촌관광숙박시설의 네트워크인 ‘지트’ 등과 같은 네트워크가 있을 수 있다. 다섯째, 단계적 시장 확대가 필요하다. 초기에는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한 소수시장을 공략하여 점차적으로 시장이 확대되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제도와 행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지자체나 기초단체의 수준에서 결정할 수 있는 제도와 행정, 법적인 권한이 따라야 한다. 일곱째, 다양한 슬로우커뮤니티의 형태가 있을 수 있음을 인식, 각자의 지역 특성에 맞게 다양성을 갖추고 다른 도시나 지역과는 차별되는 슬로우 커뮤니티 콘셉트의 활용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하여 품질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일정 수준의 지역주민의 삶(슬로우커뮤니티)의 질은 물론이며 관광상품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느리게 살기 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없지는 않다. 유기농, 무농약, 수제품 등으로 대변되는 슬로우푸드는 고소득층, 상류층이 향유할 수 있으며 천혜의 자연자원이 숨쉬는 곳에서의 휴식과 생활,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리듬 역시 일반 노동자나 저소득층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문화 코드로, 새로운 계층 간 분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면성은 인정되지만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 물질본능에서 자연·인간본능으로의 회귀, 그리고 너(방문객A관광객)와 나(지역주민), 나아가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21세기의 주요 문화적 코드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느림’은 인간다워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이며 자연에 대한 기다림, 인간이 주체가 되는 세상의 키워드라는 의미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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