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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의 사교장, nice한 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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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94회 작성일 10-10-1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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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Nice)는 파리 리옹 역에서 니스빌(Nice-Ville) 역행 TGV로 약 5시간 40분 소요되며 파리에서 코트 다쥐르 공항까지 1시간 30분 ,공항에서 니스 시내까지는 20여분 걸린다. 필자는 파리에서 TGV로도, 비행기로도 여행한 바 있으나 이번에는 모나코에서 열차를 타보기로 했다. 이 열차는 이탈리아 벤티밀리아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는 완행열차다. 시간에 쫓길 것도 없어 가는 도중 아름다운 패라 곶(Cap Ferrat)과 빌프랑슈 쉬르 메르(Villefranche-sur-Mer)를 들러볼까 했지만 일단 니스의 숙소에 짐을 맡기고 여행에 나서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 같아 곧 바로 니스로 향했다.
요즘 유럽 여행은 9·11테러 사건 이후 검문·검색 강화, 수화물 보관소 폐쇄 등 테러에 대비한 보안 문제로 불편해진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니스 국철역도 코인을 넣고 짐을 맡기는 로커나 짐을 맡기는 수화물보관소를 아예 페쇄하여 여행객들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모나코에서 니스로 가는 방법은 승용차로 태양의 고속도로 7번(A7 고속도로)을 이용하거나 고속도로와 함께 달리는 7번 국도(N7)을 탈 수도 있고 경관도 좋다. 물론 기차로 가는 길의 경관도 뛰어나다.
그러면 기원전 4세기경에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역사 깊은 도시 니스의 도심 속으로, 니스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피서지로, 피한지로, 요양지로


니스는 알프 마리팀(Alpes-Martimes)의 주도이자, 프랑스 제2공항이 있는 인구 35만 명의 도시로 프랑스에서 다섯 번째 큰 도시이다. 코트 다쥐르의 중심이며 많은 국제회의가 열리는 관광과 문화의 도시이다. 니스는 원래 이탈리아에 속해 있다가 프랑스로 합병된 것이 1860년이며, 알프 마르팀의 북동에 위치한 소오주(Saorge)와 떵드(Tende) 지역은 1947년에 공식적으로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은 아직도 음식이나 건축 양식, 삶의 방식 등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리베리아 관광의 중심지로 화려하게 발전하였지만 니스가 가난을 벗어난 것은 20세기 들어서이다. 그 전까지는 북쪽으로 알프 마르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막힌 고립된 지역으로 야채와 과일, 곡물을 제배하는 영세한 농민과 원시적인 고기잡이에 의존하는 가난한 어민들로 이루어진 지역이었다.
이러한 니스가 크게 휴양지로 발전하게 된 것은 영국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올리브와 아그뤼므(agrumes, 서양 자두)의 수확이 추위로 큰 손실을 보게 되었을 때 영국인들은 19세기 ‘영국인의 길’을 만드는 건설비용을 자연재해를 당한 농민을 돕기 위해 쓰기도 했다.’(《프로방스 문화예술산책》, 196쪽) 그만큼 니스에 대한 영국인의 관심은 대단하다. 니스는 영국에서 1300㎞ 떨어진, 기차나 페리로 15일 이상 걸리는 먼 지방이지만 영국의 왕족 ,귀족, 부호들은 니스를 피서지로, 피한지로, 요양지로 선호하여 즐겨 이곳을 찾았다.

“…… 그래도 니스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빌뇌브 루베가 프랑스 풍이라면, 니스는 이탈리아의 향취가 물씬 풍겼다. 니스 사람들은 단순한 사투리가 아닌 니스어로 말했다. 국제적이고도 마술적인 도시, 꽃의 도시, 니스에는 이국정취가 가득했다. …… 영국인들은 마치 에어쿠션 위를 걷은 것처럼 소리내지 않고 이동했다. 귀부인들은 비단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챙이 어찌나 큰지 어떻게 머리를 똑바로 들고 다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 오귀스트는 산책하는 영국인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우스운 억양으로 말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외눈박이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일까.”
미셀 갈 지음·김도연 옮김,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 20~21쪽

이 글은 미셀 갈이 지은 20세기 최고의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의 전기 중 일부로, 한 레스토랑에서 요리 견습생으로 일하던 어린 에스코피어의 눈에 비친 1860년대 니스의 모습이다. 이보다 약 70여년 전인 1787년, 니스에는 영국인들의 여름 별장이 115개나 있었다는 기록을 보아 니스는 이미 영국인들을 휴양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국인들은 요양을 하거나 만성적인 우울증을 달래거나 환상을 떨쳐 버리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니스 사람들은 생각했다. 특히 니스에는 많은 저명한 인사들의 방문도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1895년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하여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 소설가만해도 D. H.로렌스, 올더스 헉슬리, 로렌스 .G 더널(Lawrence George Durrell),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여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 서모싯 몸(W.Somerset Maugham) 등이 그들이다.
특히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싯 몸은 이곳에서 화려한 사교생활을 했으며, 향년 91세로 니스에서 눈을 감았다. 그레이엄 그린은 니스에서 조금 떨어진 앙티브에 살면서 <나는 비난한다 니스의 어두운 모습을>이라는 작품을 통해 니스의 부패를 비난하고 1990년 니스 시장 자크 메드 생의 몰락을 둘러싼 스캔들을 예견하기도 했다. 또 <아들과 여인>,
<채털레 부인의 사랑>, <사랑하는 여인들>로 유명한 로렌스는 늘 병약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곳 니스에서 요양하다 인근 작은 도시 방스(Vence)에서 45세 일기로 눈을 감았다.
니스는 북유럽의 러시아, 독일 등의 귀족이나 군인들도 많이 찾았다. 1856년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니콜라스 1세 미망인이 방문하기도 했으며, 특히 니스 인근의 빌프랑스 쉬르 메르는 수심이 가장 깊은 자연항으로 프랑스 함대는 물론 러시아와 미국 군함 등이 자주 정박하여 니스에서도 영국인, 러시아 군인들을 포함한 외국군인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에도 익숙한 니스 화파

62-1.jpg그러나 니스는 무엇보다도 20세기 전반기 미술을 대표하는 도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티스 미술관(Mus'ee Matisse), 샤갈 미술관(Mus'e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니스(쥘 세레) 미술관(Mus'ee des Beaux-Arts Jules Ch'eret), 아시아예술박물관, 니스 근·현대미술관, 미술역사박물관(마세나 궁전) 등 훌륭한 미술관이 많을 뿐만 아니라 니스를 중심으로 주변 5~20㎞ 범위에 있는 방스·생폴드 방스, 비오, 그라스, 앙티브, 발로리스 등에도 좋은 미술관이 산재하여 있다. 코트 다쥐르 지방에 있는 60여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값싸고 편리하게 관람하려면 코트 다쥐르 카르트 뮤제(Carte Mus'ee Co'te d'Azur')를 이용하면 된다. 1일 패스, 3일 패스, 7일 패스(15일간 유효)를 끊으면 그 기간 중에는 몇 번이든 출입할 수 있으며, 상설전시뿐만 아니라 기획전까지 볼 수 있다.
니스와 니스 주변 도시들이 미술의 중심지가 된 것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카소, 마티스, 샤갈, 르누아르을 비롯하여 많은 수의 야수파 작가들이 둥지를 틀고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니스 화파라 불리는 이곳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이브 클라인(Ives Klein), 아르망(Arman)을 비롯하여 그의 동료들인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 장 탱글리(Jean Tinguely), 세자르(C'esar), 마르시알 레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 다니엘 스포에리(Daniel Spoerri), 자크 뒤프렌드(Jacques Dufre'ne), 엥스(Hains), 라이스(Raysse) 등이 니스를 중심으로 하여 파리, 뉴욕, 밀라노 등에서 신사실주의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을 주도한 미술평론가는 피에르 레스타니로, 1988년 올림픽 조각공원 조성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으며 조각가 문신 등 한국의 여러 작가와도 친분을 맺었다. 또 사실주의 화가에 속하는 세자르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올림픽 조각공원 등에 상설전시되어 있고,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코오롱 본사 건물 등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스위스 로잔에 있는 올림픽 박물관 구경하다 박물관 동쪽 정원에 축구경기를 하는 선수를 작품화한 생팔의 조각을 보고 반갑게 카메라에 담은 적이 있다. 물론 그녀의 대표작은 스톡홀롬 현대미술관에 있는 <혼>(길이 23.5m, 높이 6m, 무게 6t, 1986년 작품)과 퐁피두센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광장 분수(남편 팅겔리와 공동 제작) 등으로 우리와 자주 만날 수 있는 인기 있는 조각가다.
아르망의 여러 작품도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전시도 되고 거래도 되고 있고 이브 클라인 등 니스 화파의 작가들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고 인기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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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에서 이탈리아를 만나다


62-3.jpg니스는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made des Anglais)’를 산책해야 니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니스의 멋진 해안선을 따라 꽃과 종려나무로 장식된 이 큰길은, 좀 더 지중해 가까이에서 산책을 즐기고 싶었던 영국인들이 1822년 만들었다. 8차선 도로에 약 5㎞에 이르는 이 해안 산책로에는 호화스런 호텔,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와 부티크, 고층 아파트가 해변을 바라보며 늘어서 있다. 니스는 부유한 영국, 북유럽, 미국인을 즐겨 찾기 때문에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우아하고 호화스런 호텔과 레스토랑이 많고, 특히 이 해안선에 많이 자리잡고 있다. 니스는 1860년까지 이탈리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구시가지의 파스텔풍 퍼사드와 발코니 등은 19~20세기 초까지의 제노아식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이탈리아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또한 골목길 허름한 식당에서는 북아프리카의 강한 향신료가 코끝을 싸하게 하는 중세 프로방스의 정취를 만날 수도 있어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살레이야 광장(cours Saleya)에서는 매일 아침 아름답고 풍성한 꽃시장과 야채시장이 열려 또 하나의 즐거운 구경거리를 즐길 수 있다. 산책길 동쪽 끝 절벽처럼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성터(Le Chateau)를 힘겹게 올라가면 아름다운 니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멋지고 상쾌한 맛을 느낄 수 있어 힘들었지만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성터는 전망도 좋을 뿐만 아니라 크고 아름다운 수목이 우거져 산책에도 좋다. 이곳 성터에는 니스에서 작곡을 했다는 남프랑스 리코트 생앙트레 출신인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 1803~1869년)의 작은 기념물이 있다. 베를리오즈는 낭만파 시대 프랑스의 위대한 작곡가이 한 사람으로 표제음악을 창시했으며 관현악법에 대한 이론으로도 뛰어나 이 분야에도 큰 업적을 남긴 음악가이다.
베를리오즈의 기념물을 보고 떠오른 것이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리는 천재 바이오린 연주자 니코로 파가니니(Nicolo Paganini, 1782~1840)이다. 매력적인 아우라로 1830년대 대중을 사로잡았던 바이올린 연주의 귀재 파가니니는 <G현의 선율>로 전 유럽을 집단 히스테리에 휩싸이게 했던 인물이다. 그는 불치의 병 후두결핵으로 심한 고통을 겪다가 고향 제노바의 춥고 습한 겨울을 피해 니스로 요양을 왔으나 7개월의 투병 끝에 1840년 5월 27일 향년 58세로 14살 된 어린 아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악마가 씌웠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가톨릭 교회의 매장 허가서를 얻지 못해 니스의 백작이자 상원의원인 후원자 디 체졸레(di Cessole)의 저택 지하실, 빌리프랑카 군병원 지하실, 무인도 등으로 4년간을 옮겨 다니다 겨우 그의 모국인 이탈리아로 운구되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기독교 땅이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내세운 부패된 교권의 횡포로 교회 공동묘지에 묻히지 못하다가, 사후 36년만에 겨우 편법으로 매장된다. 파가니니는 그의 삶도 그의 죽음도 경악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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