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빛나는 마을 에즈, 빌뇌브 루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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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029회 작성일 10-10-1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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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는 모나코와 니스의 중간쯤에 있는 해변 마을이자 해발 400여m가 넘는 가파른 바위산을 따라 형성된 산악 마을이다. 니스에서 동쪽으로 11㎞, 모나코에서 서쪽으로 8㎞ 떨어진 곳이다 니스에서 승용차나 기차로 1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며 한때 모나코 공국이었다가 주민들의 뜻에 따라 프랑스로 편입되었다. 에즈에는 볼 만한 관광명소나 역사적 유물, 현대적 관광. 휴양시설이 있는 곳도 아닌데도 최근 들어 많은 휴양객, 관광객이 즐겨 찾고 있다. 프랑스 지중해의 전망대라고 부를 수 있는 에즈는 해발 470m의 정상에서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면 서쪽으로 페라 곶(Cap Ferrat)과 빌프랑쉬 쉬르 메르(Villefranche-sur-Mer)가, 동쪽으로는 모나코와 이탈리아 리비에라 해안까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이면 계속 바삐 걷던 걸음을 다시 멈추고 한나절쯤 쉬어 가리라고 느긋하게 마음을 먹는다.
‘Oldness but Goodness’
해남의 땅끝마을 사자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다도해 국립해상공원의 아름다운 풍광, 이탈리아 소렌토의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 본 나폴리와 지중해의 멋진 경관, 그리스 아테네 근교 수니온 곶(Cape Sounion) 포세이돈 신전에서 바라보던 에게 해의 포말, 산토리니(티라) 섬에서 바라보던 지중해와 피라 마을의 그 산뜻한 색채의 조화가 주는 따뜻했던 감격, ‘일본의 지중해’, ‘일본의 나폴리’로 불리는 이즈 반도의 아타미(熱海) 시, 그곳 하치마야마 정상과 모아(MOA) 미술관에서 내려다보던 태평양의 푸른 파도를 생각하면서 필자는 남다른 감화를 갖고 에즈의 정상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이러한 기분 좋은 추억과 상상으로 여행은 행복하다. 이런 바람 같은 자유로움으로 인해 여행은 즐겁다.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주는 짜릿한 흥분,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여행을 떠나왔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쉬다 마을을 둘러본다. 이곳에는 기원전에 세워진 고대 로마 유적인 거대한 전승 기념비 라 튀르비가 있다. 튀르비는 트로피를 뜻하는 라틴어로 BC 6년에 로마 원로원이 알파인 민족을 무찌른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BC 27~AD 14)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그 후 전쟁 등으로 훼손되었다가 1935년에 부분적으로 복구되었다. 35m나 되는 도리스 방식의 주량과 비석에 44개 정복 민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에즈는 지금 중세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에즈에 대해 어느 관광 책자는 ‘에즈는 중세의 굴뚝, 로마네스크 창문, 옥상의 작은 정원 등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매력적인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 이곳은 중세 시대의 마을 모습을 세심하게 복원한 박물관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야말로 중세의 마을이 여전히 이곳 사람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는 마을이다. 가파른 산 중턱의 바위 언덕에 자리잡은 에즈는 대부분 관광기념품을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와 갤러리, 공예품이나 관광상품을 만드는 다양한 공방들로 이루어져 있다.
매력적이고 작은 골목들, 나무 사이로 바라보이는 지중해의 푸른 바다, 작지만 아름다운 레스토랑, 아담하고 격조 높은 호텔, 누군가의 말처럼 ‘Oldness but Goodness’가 이곳 코트다쥐르의 매력이자 특징이듯 이곳 에즈의 매력 포인트이다.
철학자의 길
에즈를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니체의 길’이다. 니체는 1844년 독일 작센 지방 뢰겐에서 태어나 22세 때 스위스 바젤 대학 고전문학과 고전어 교수가 되었지만, 1897년 건강 악화로 강의를 중단한 후로는 남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떠돌며 요양과 글쓰기 작업을 계속하였다. 특히 니체가 그의 대표적인 저술활동을 할 때인 1882년부터 1887년까지 매년 겨울을 니스와 에즈에서 저술에 따른 구상과 왕성한 글쓰기 작업을 하던 때였다. 이 때 쓴 책이 유명한 <모든 가치의 전도>(나중에 이 책의 일부를 <Der Antichrist>로 출간하였다. 1888년)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등을 구상하고 집필했던 중요한 시기였다. 에즈의 ‘니체의 길’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처음으로 구상한 산책로로 널리 알려져 있다(그러나 학문적으로 정리된 니체의 연보에 의하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제노아, 베니스 등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할 때 첫 부분을 구상한 것으로 되어 있다). 국철 에즈 슈르 메르 역에서 내리면 곧 산길인 니체의 길을 통해 마을로 연결되는데, 과연 이렇게 좁고 가파른 ‘뱀길’에서 철학적 사색이 가능했을까 궁금하다.
이곳 에즈의 니체의 길 이 외에도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일본의 교토에 있는 철학자의 길로 유명하다. 필자도 여러 차례 여행한 이 두 도시의 철학자의 길과 에즈의 길은 사뭇 차이가 있다. 하이델베르크의 필로조 펜벡(Philosophenweg, 철학자의 길)은 괴테, 헤겔, 칼 야스퍼스, 에른스트 블로흐 등 많은 철학자, 문인 등이 산책을 즐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이델베르크의 대표적인 산 하일리겐베르크(Heiligenberg), 가이스베르크(Geisberg)와 아름다운 네카르 강(Neckar)과 네카르비제(네카르 강변의 풀밭), 하이델베르크의 고성이 다 잘 보이는 해발 200m의 이 산책길은 시인, 철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산책길이다. 하이델베르크의 명물 칼 데오도르 다리를 건너 슈링겐의 언덕길을 오르면 나타나는 이 산책길은 길 주변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철학자의 동산, 법학도이자 시인인 요세프 폰 아이헨도르프의 동상, 하이델베르크의 송가를 지은 프리드리히 흴더린의 동산, 하이델베르크를 사랑한 리제롯데 폰 팔츠의 비석, 동판화작가 메리안의 조망(Merianblick) 등이 산책길을 따라 연이어 있다.
또 교토에 있는 데츠카쿠노 미치(철학자의 길)은 일본의 저명한 철학자 니시다 이쿠타로(西田幾太郞)와 다나베 하지매 등이 즐겨 사색을 하며 걸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다. 은각사(銀閣寺)-철학자의 길-에이칸도(永觀堂)-난젠지-헤이안진구(平安神宮)로 이어지는 멋진 이 길 옆에는 실개천이 함께 흐르고 있어 더욱 아름답다. 특히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녹음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이 길은 자연보호단체와 많은 시민들이 아름답게 가꾸고 보호하는 시민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부럽기도 하였다.
너무 샛길로 벗어난 것 같으니 다시 에즈로 돌아가자. 그 외 에즈에 볼 만한 것으로는 산꼭대기 옛 성터에 열대식물원이 있고, 여기에서 바라보는 지중해 전망이 매우 아름다워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하나의 관광명소 에자 성(Cha^teau Eza)은 400년의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 건물로 스웨덴의 윌리엄 왕자가 고급 호텔로 개조하였다. 이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경관 역시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음식 또한 맛있기로 세계적으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일반 여행객에게는 비싼 것이 흠이다. 이밖에 호텔 라쉐보르도 성도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간 구조, 전망 좋은 테라스와 멋진 야외수영장 등으로 격조 높기로 정평이 나있다.
요리사이자 예술가이며 과학자이자 의사
에즈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늦게 빌뇌브 루베로 향한다. 니스에서 칸(Cann)으로 가는 길에 있는 간이역 빌뇌브 루베가 있다. 이 마을은 ‘영원한 요리사의 왕’, ‘천재적인 요리 예술가’, ‘현대 요리의 아버지’, ‘요리의 거장’ 등 온갖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현대식 요리 및 현대식 레스토랑의 창시자 조르쥬 어거스트 에스코피에(George Auguste Escoffier)의 고향이다. 1966년는 이곳에 그의 생가를 개축하여 이 위대한 요리사를 기리기 위한 요리예술박물관(Musee de l' art Culinaire)가 세워졌다. 또 그의 묘소도 발뇌브 루베 가족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옛 성터가 있는 조용하고 촌스럽던 이 마을은 박물관이 세워진 후 요리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고 최근 해안가에는 거대한 현대식 빌딩이 들어서는 등 변화를 맞고 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당대의 뛰어난 요리사로서의 위대함도 있으려니와, 특히 그의 동료이자 요리 전문가인 길버트(P.Gilbert), 페튜(E. Fetu)와 함께 쓴 요리학의 결정판 <요리의 길잡이>(Le Guide Culinaire, 1903년, 영어로는 <Escoffier Cookbook>)와 <메뉴 책>(Le livre des menus, 1912년) 등 요리책 발간으로도 유명하다. 이 책들은 그동안 경험에 의한 요리를 정확한 수치를 이용한 요리법을 통하여 음식을 만드는 과학적, 체계적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현대 요리의 규범과 기초를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이와 같은 과학적 조리법과 함께 레스토랑의 서브 순서 등 고품위 서비스 개념을 도입한 현대식 레스토랑 운영을 혁신한 사람이다.
특히 그가 쓴 요리책은 <현대 조리법의 신약성서>, <요리사의 성경>이라고 불릴 만큼 지금도 요리서의 전범이 되고 있다. 그는 낭비적인 과도한 데코레이션을 버리고 단순한 요리, 맛과 영양에 치중한 요리를 추구하였다. 오늘날 저명한 서양 요리 연구가나 조리사 등도 에스코피에가 만들어낸 조리법을 이용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그의 평전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미셀 갈 지음, 김도연 옮김, 다우출판사, 2005년)가 출판되어 널리 소개되고 있지만, 그 이전에도 요리사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인물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학회와 협회가 있는가 하면 파리에 있는 에스코피에 호텔학교에 매년 여러 사람이 요리를 배우는 등 살아 있는 그의 명성은 신화 그 자체이다. 예를 들면 에스코피에가 죽은 후에도 요리사들은 큰 훈장을 받은 사실보다 그에게 요리를 배웠다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명함에 표시하였다고 한다. 지금 프랑스에는 에스코피에 재단이 있어 그의 위업과 정신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에스코피에 평전에 나타난 그의 삶에 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자. 그는 ‘위대한 요리사는 시인이자 예술가이며, 과학자이자 의사이다’라는 생각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1846년 빌뇌브 루베에서 태어나 1935년 90세로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생을 마감할 때가지 끊임없는 사회활동과 저술활동 그리고 당시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일개 요리사(?)가 빈곤 퇴치를 위한 구제사업 계획서(1910년)를 만들고 사회공헌 활동 주창하였고, 몸소 호텔의 남은 음식을 고아원에 보내는 등 자선사업에도 관심을 쏟았다.
에스코피에가 영원한 요리사의 왕으로 추앙받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엘 그레코가 조각가, 화가의 신분을 석공이나 약종상에서 예술가로 끌어올리고 권익을 위해 지대한 노력을 했듯이 에스코피에는 요리사의 사회적 지위를 크게 향상시켰고 또 이를 위해 많은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에스코피에는 191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받은 데 이어 1928년에도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을 받고, 이어 귀족협회 정회원이 되어 조리사들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한편 조리사들이 퇴근할 때는 훌륭한 정장으로 갈아입도록 하는 등 조리사들에게 품위 있는 행동을 주문하고 사회적 평가와 인식을 높이는 데 힘썼다.
에스코피에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베트남을 통일한 호치민이 파리에서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에스코피에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후일 호치민이 전쟁에 지친 장교나 병사를 사기 진작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해준 것도 떠돌이 유학 시절 파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운 요리 솜씨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에스코피에는 여객선에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를 두 차례 만났는데 빌헬름 황제는 ‘나는 독일의 황제지만 당신은 요리의 황제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가 그냥 지나치려다 이 작은 마을 빌뇌브 루베를 찾은 것은 위대한 요리사의 왕, 에스코피에를 정중히 참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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