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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박물관으로 이룬 미 항구도시 미스틱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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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978회 작성일 10-10-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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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지내다 보면 이곳 사람들이 역사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대부분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 조상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기보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작은 역사적 진실과 인연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처럼 미국의 역사 인식을 설명하는 것은 이를 빼고선 해양박물관 유치로 지역을 되살린 미스틱의 신화를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코네티컷 주 남동부에 있는 조그만 항구도시 미스틱은 역사적 인연을 지역 발전으로 승화시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역 유지, 박물관 후원 위해 뭉치다
미스틱 강(江) 하구와 대서양의 롱아일랜드 해협이 마주치는 이곳에 백인들이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654년 무렵. 코네티컷은 인근 메인,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등과 함께 뉴잉글랜드로 불린다. 이 지역은 이름에서 보듯 영국인들이 이민 초기에 정착한 곳이다.
미스틱은 영국인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1620년 미국의 플리머스에 도착한 이후 불과 20여 년 만에 옮겨와 살기 시작한, 나름의 깊은 유서를 지니고 있는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백인들의 이민 초기를 돌이켜보면 황량하기 그지없는 바닷가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향에서 배웠던 대로 나무로 배를 만들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것과 척박한 농토를 가꾸는 일, 산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을까? 이것이 오늘날 미스틱이 미국의 해양 산업을 기록하는 역사적 현장으로 남아 있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미스틱은 포경선을 만들고 수리하는 기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또 인근의 뉴런던, 뉴헤이번, 세이블럭 등과 함께 군함을 제조하고 잠수함을 만드는 미국 동부의 군수 산업 기지로 자리 잡게 된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이 무렵 이곳에는 600여개의 건물들이 들어서 선박과 어업 관련 일을 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영광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위기에 직면, 서서히 침몰하는 군함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포경이 금지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군수 기지로서의 명성도 빛이 바랬기 때문이다. 더욱이 1920년대 미국의 대공황까지 몰아닥쳐 조선소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아야 했고, 목조 선박은 더 이상 효용 가치를 잃게 됐다. 자연히 많은 지역주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떠났고, 남은 자들도 다시 적막 속에 휩싸인 삶의 터전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해야 했다.
이 무렵 주민들 사이에서는 폐허로 변해가는 고향을 더는 손 놓고 볼 수만은 없다는 각오가 싹트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칼 C . 카트러, 에드워드 E . 브래들리, 카벌러스 K. 스틸맨 등 지역 유지 3명은 1929년 미 동부 지역에 흩어져 있는 해양 유물을 보존하고 이를 통해 지역을 되살리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은 ‘해양역사협회’(The Marine Historical Association)를 창설하고 자신들의 조선소나 집을 출연했다.
이들이 시작한 해양역사협회에는 오늘날 세계 30여개국에서 15만 명의 회원들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양사료관의 시초가 된 미스틱항구박물관(Mystic Seaport Museum 또는 The Museum of America and the Sea)의 출발이자 세계 최초의 박물관 후원회 결성의 초석이었다.

당시 교회, 학교 모습 그대로가 박물관 일부분
뉴욕에서 미스틱을 찾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미 동부 대표적인 도시인 뉴욕과 보스턴을 연결하는 I-95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 50분가량 달리다 보면 90번 출구가 나온다. 보스턴에서는 반대로 남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다. 고속도로에서
나와 진입로를 통해 미스틱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관광안내소도, 흔히 보게 되는 ‘월컴유’(Welcome You)라고 쓰인 대형 입간판도 아니었다. 1만 기가 족히 넘어 보이는 묘비가 군사들이 도열하듯 늘어선 공원묘지였다. 왜 이곳에 묘지가 들어서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미스틱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아 오히려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공원묘지와 이웃한 바닷가에 정박해 있는 수십 척의 돛단배와 각기 다른 독특한 모양의 고색창연한 건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관광안내소 입구 뒤편에 정박된 포경선인 찰스 W. 모건(Charles W. Morgan) 호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포경선으로 알려진 이 배 안에 오르면 선원들의 작업 광경은 물론 톱(감시소)에 올라가거나, 선박 키를 조작하고 포경포(捕鯨砲)를 만져볼 수도 있다. 모건 호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지금이라도 검푸른 물결을 헤치고 나가 산더미만 한 고래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될 것만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 안에는 선장과 선원들이 쓰던 식기는 물론, 침구와 작살 등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미국의 독립전쟁 중에 압수한 무기밀무역선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호는 이와 상반되게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채 관람객들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 박물관 측은 이를 통해 1800년대 목조 선박의 골격과 구조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또 1882년 건조된 군사훈련선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호는 작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이처럼 크고 작은 선박 100여 개가 바다에 떠 있거나 육지에서 항해를 기다리고 있다. 또 이와 별도로 박물관 주변 15만㎡의 넓은 지역에 60개의 해양 관련 전문 전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미스틱의 항구박물관은 한두 동의 큰 건물에 관련 유물을 시대별로 전시하는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는 주민들이 살던 집과 학교 공장을 그대로 전시실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살던 가옥을 협회에 기증함으로써 소유자들의 이름을 딴 전시장으로 탈바꿈해 각각의 독특한 특색을 그대로 지니도록 했다. 또 교회와 학교도 건축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면서 박물관의 한 부분으로 유지되도록 했다.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투자
미스틱항구박물관은 지난 300년간의 선박을 전시하고 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청소년을 훈련시키고 동호회원들을 모아 요트 경기를 연다. 또 관람객이 실제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군사훈련선 조셉 콘래드 호는 매년 여름마다 13~18세 청소년들을 태우고 10일간 캐나다 해안까지 오가는 해양훈련에 이용되고 있다. 관람객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는 연중 계속된다. 1월 스페셜 가이드 투어를 시작으로 어린이 도서관의 날, 보트 만들기, 독립기념일 축제 등이 그것이다. 특히 6월에 열리는 바다 음악축제(Sea Music Festival)와 매년 8월의 미스틱 야외축제(Mystic Outdoor Festival)는 예술과 박물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올해로 49회째를 맞이하는 야외축제에는 미국 전역에서 300명의 예술인들이 참가해 해양을 주제로 한 10만 점 이상의 유화와 수채화, 사진 등을 전시·판매한다.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이어지는 여름철이면 미스틱에 있는 22개의 호텔과 모텔 들은 2년 전부터 예약 손님을 받는 등 만원사례를 이룬다.
미스틱항구박물관 매니저 폴 레바서(Paul Lebasseur)씨는 “미스틱은 단순히 선박과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하면 관람객이나 회원 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느냐에 많은 노력과 투자를 기울이고 있다”면서 “이것이 박물관을 탄생시킨 해양역사협회의 당초 취지이자 목적이다”고 말했다.
박물관을 벗어난 관람객들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불과 5분 거리에 미국 동부 지역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아쿠아리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상어 등 2,000여 종의 희귀 어종을 확보하고 있는 미스틱해양수족관(Mystic Aquarium)은 돌고래와 바다사자의 쇼로 잘 알려져 있어, 뉴욕과 보스턴은 물론 미 동부 지역에서 꼭 봐야 할 주요 관광 시설로 지정돼 있다.
박물관이 바다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이라면, 수족관은 오늘날의 미지의 바다 속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현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미스틱의 항구박물관과 수족관을 찾는 사람은 연간 100만 명. 이는 이 지역 인구 2만 5,000명의 무려 40배에 해당된다.
여느 어촌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조그만 항구도시 미스틱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수없이 많다. 주민들의 협력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고 이를 통해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 이것만이라도 미스틱은 우리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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