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맞아?_동화속 아름다운 간판 마을 산타바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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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782회 작성일 10-10-1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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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건물, 통일된 간판의 작은 도시
처음 산타바바라의 다운타운에 가보았을 때는 몇 시간 동안 감탄을 멈추지 못할 정도였다. 무척이나 깨끗하고, 아름답고, 아기자기하고, 잘 꾸며진, 맘에 쏙 드는 곳이었다. 두세 시간 정도 다운타운을 헤매고 다녔을 즈음이었을까? 문득 이곳이 정말 미국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다른 주에서 보아온 미국의 분위기, 즉 크고 높은 건물들, 널찍한 거리 등의 큰 스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모든 건물들은 4층 이하로 매우 낮다. 산타바바라는 잦은 지진으로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게 규제한다고 한다(실제로 이곳 산타바바라는 몇 십 년마다 한번씩 꽤 큰 지진이 일어나 지진학과 관련된 큰 연구소들이 상당히 많다). 성냥갑 같은 직사각형의 못생긴 건물들이 아닌 동화 속에 나오는 듯한 지붕이 달린 건물들, 통일된 색상들, 그리고 예쁜 간판들…… .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곳에서 지내며 왜 이곳의 분위기가 미국답지 않은지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매우 재미있었다. 결론만 말하면, 산타바바라에 처음 들어와 정착한 사람들은 스페인 선교사들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국식이 아닌 스페인식 건물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리고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와 많은 교류를 해서 이곳 주거민들의 1/5 정도는 멕시칸이다. 멕시칸과 아메리칸의 2세들이 많아 실제 이곳 언어는 멕시칸의 억양과 스페인의 억양이 섞인 영어발음이 많다.
다시 돌아와, 또 한 번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던 것은 이곳의 간판문화였다. 다운타운이 워낙 작기도 하지만, 건물과 간판들 역시 매우 간소하고 주위 건물과 전체적인 거리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건물 대부분은 4층 이하고, 대부분의 건물 몸체는 흰색 또는 아이보리 등 밝은 색이 주를 이루었다. 크지 않은 지붕은 붉은 벽돌빛이며, 모든 간판들은 비슷한 느낌의 곡선들로 이루어진 보드에 간단하게 이름만이 새겨져 있다. 대부분의 간판들은 가로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더 돋보이기 위해 크게 만들어져 있거나, 튀는 색상의 간판들은 없었다.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로서로 잘 어우러져 있고, 서로서로에게 묻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인다.

네온은 없다! 나무는 있다!
이곳의 간판들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건물 외벽에 설치되어 있는 일정한 크기의 걸이에 간판을 걸게 되어 있고, 그 외에는 각 상점의 문이나 유리막이 추가적으로 간판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점들은 지정 간판 외에 특별히 더 설치하지는 않는다.
일단 외벽에 설치되어 있는 걸이에 간판을 걸어야만 하기 때문에, 상점 주인이 원한다 하더라도 추가적으로 옆 상점 간판보다 크거나 전혀 다른 형태로 설치할 수 없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재질은 나무를 권장하고 있으며, 그에 반하는 간판은 단 하나도 없다. 기본적인 틀을 정해주기 때문에 다운타운의 거리는 한눈에도 통일된 느낌의 정리된 도시 조경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간판들이 비슷한 크기로 되어 있어서 처음 보았을 때는 어디가 어디인지 찾기 어려울 듯했지만,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금방 익숙해졌고, 이내 이런 형태가 훨씬 눈에 잘 들어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조건 자기 간판만 튀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주변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규칙과 통일을 소중히 여기는 이곳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인테리어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한 친구를 알고 있는데, 한국에서 상점을 열 때 상점 주인들이 간판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옆 상점보다 잘 보이는 간판, 즉 조금 더 크고, 화려하고, 밤엔 네온이 더 화려하게 보이는 간판이며, 그래야만 그들이 만족해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는 경우라 깊이 동감을 했다.
한국과 달리 산타바바라의 다운타운에는 사실 네온이란 것이 극히 드물다. 네온사인으로 되어 있는 곳은 간혹 가다 보이는 클럽이나 호텔 등 야간에도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네온사인이나 큰 간판이 없다고 해서 늦은 오후에 상점을 찾을 수 없다거나, 길을 헤매거나 하지도 않는다. 주변 정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일률적이고 작은 간판이긴 하지만 쉽게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도시 전체가 통일된 색상과 디자인으로 되어 있어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첫인상을 받는다. 어느 것 하나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 없어 도시를 걷는 동안 그저 물 흐르는 듯한 시선의 편안함을 느낀다.
사실 어디나 그곳의 기본적인 문화가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문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좀더 정리가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을 타국에서 받을 때는 ‘아, 이것을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다’라는 생각은 한다. 산타바바라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현란한 간판은 우리만의 문화?
대학교 초년생이었을 때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가 영국의 대학가 어느 바에서 한국을 가본 적이 있다는 한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 대한 수많은 느낌들을 말해주었고, 한국의 간판문화에 대해서도 몇 마디 했다. 디자인을 공부하던 학생으로서 나는 한국 간판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그와 또 다른 한국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사람에게 는 한국 간판의 모습이 새롭고도 색다른 문화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번쩍거리고 화려한 간판들은 하나의 한국문화이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너희만이 가진 또 다른 디자인이고, 너희 스타일이다. 그것이 그다지 나쁜 인상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의 문화다.”
물론 그가 살던 유럽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고, 그가 보기에는 재미있었을 것이다. 화려했을 것이고, 신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기적이기까지 한 마음들로 간판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더 자극적이게 된 것이라는 점이 나는 속상한 것이다.

요즘 재건축되는 건물들을 보면 나름대로 그 건물만의 양식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건물 외관에 간판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곳도 있고, 같은 디자인의 보드를 사용한다거나, 같은 크기 또는 최소한 같은 색상을 사용한다든지 해서 그들만의 규칙을 정해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디자인에 관련된 최소한의 규칙과 규제를 서로 엄격히 지켜간다면 우리의 거리문화가 좀 더 성숙되지 않을까?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의 관광객들에게 다시 걷고 싶은 거리,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 듯하다. 더욱 더 정리되고 아름다운 도시의 거리문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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