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속의 장례식 : 독일 남서부 알레만 지역을 중심으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837회 작성일 10-10-09 02:10
본문
장례식은 영결의례를 통해 죽은 이를 현재 삶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산 자들은 이 의식을 통해 일상 현실의 삶으로 복귀하는 구조를 지녔다. 인류의 여러 문화권에서 이와 공통된 내용을 다양한 양식과 모습으로 치러왔다.
독일에서도 통과의례의 중요 행사 중 하나인 장례식이 오랜 세월 전승·계승되어 왔다. 주술 의미를 근간으로 하는 민간 양식에서 현재 크리스트교 의식까지 게르만 민족의 독특한 생활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구체적으로 독일 남서부 알레만 지역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사육제 속의 장례식을 조명하며, 축제 속의 장례식이 갖는 의례 유형과 상징 가치체계에 접근하여 민속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민속제의와 결합되어 있는 축제
독일은 지역에 따라 여러 장례식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임종 시 타종 관습(Totenglocke), 입관 의례, 상례 행렬, 상복, 3일장, 탈상 의례 그리고 화장법 등과 같은 원초적인 의례 모습은 일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보편적으로 크리스트교식 상례를 보이고 있으며, 이전의 의례 특징은 전통 민간축제 안에서 일부 확인되고 있다.
특히 크리스트교 전파 이전부터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세시 행사인 사육제는 이런 전통요소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사육제는 생명을 위협하던 추위와 어둠의 계절인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이 도래하는 기쁨에서 행하는 봄맞이 전통과 다가오는 새해의 풍작 기원 축제였다. 라인 지방에선 통상 한 해의 밭일이 끝나는 성 마틴의 날인 11월 11일에 이듬해 사육제 준비위원회를 조직하며 행사를 기획한다. 남부에서는 주현절인 1월 6일 혹은 성촉절인 2월 2일에 시작한다. 축제의 주요한 행사로 우리의 전통 탈놀이와 탈춤을 연상시키는 가면놀이와 전통적인 장례식을 들 수 있으며, 행사가 끝나는 사순절 직전의 3일 동안에 연행이 집중되어 있다. 축제는 자연의 생명과 번영을 지배하는 힘을 모방하고 죽음과 부활의 변화를 이끄는 민속제의와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 알레만 지역 필링엔, 로트바일과 프라이부르크 사육제는 초자연적인 신령한 힘을 얻어서 식물 성장과 풍농을 기원하고자 의인화된 계절 간 대결 모습을 띠고 있다. 겨울 역할을 맡은 뷔에쉬트들이 쫓겨남으로써 행사는 절정에 이르며, 여름과 겨울을 담당했던 상징적인 그룹의 연희자와 관중들은 일몰 후 도시 광장 앞에 다시 모여 여름의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와 함께 행사 참여자들이 입었던 짚, 가면과 복장을 태우고 사육제 인물의 장례식을 끝으로 축제는 막을 내린다.
부활을 위한 예비조건으로서 장례식과 죽음
오베른도르프 시 사육제 속 장례식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모의적인 죽음이 중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축제의 마지막 순서로 군중 행렬은 시가를 누비고 돌아다니다가 입관된 축제 인형을 마을 광장까지 운구한다. 남부 알레만 지역의 상례에서는 예로부터 ‘토텐브레트(Totenbrett)’라고 부르는 판자 형태의 나무로 된 가마나 상여를 사용해왔다. 판자 위에 누워 있는 고인은 사육제를 표현한 인형으로, 짚이나 그와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진다. 겨울을 의인화한 인형 소재로 사용되는 짚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 죽음, 허약함과 무가치를 상징한다.
한 사람의 고수 혹은 마을 대표가 앞장서면 참석한 광대들이 주검 행렬을 이루어 뒤따른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우는 모습을 보이며 슬픔을 강조한다. 군중들은 상복을 입고 슬픈 표정을 짓고 통곡과 비탄의 소리를 높이 내며 행렬을 이룬다. 참석자들은 정말 죽어가는 사람의 슬픈 운명을 대하듯이 눈물을 짜는 시늉을 하며 사육제 허수아비를 따라간다. 길가 건물 혹은 발코니, 또는 창문에서 열고 내려다보는 동네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혼곡을 부르는 장례 행렬은 광장에 멈추어 선다. 죽음의 인형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주제의 극적인 표현을 보이기 위해 도착 후 관에서 꺼내져 다음 상례 절차에 임한다.
바트제킹엔에서는 ‘휠러추크’라는 통곡의 장례 행진을 볼 수 있다. 이 장례식에는 축제 연희자와 행사를 즐기기 위해 모인 주민들이 모두 하얀색의 상복을 입고 얼굴에까지 하얀 분칠을 한다. 볼파흐의 볼아우프 행렬에서도 하얀 잠옷과 잠옷 모자를 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남부 지역의 전통적인 장례식에서 상복은 흰색으로 통일된다. 흰색 복장은 이승에서의 어두움과 혼란함을 정리하고 저승에서의 새로운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16세기 초 스페인 복식 양식의 영향력으로 예식 때 검은 색 상복으로 바뀌기 전까지 오랫동안 유지되어왔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짚으로 만든 모의 시체에 입혔던 흰색 의상이 벗겨지고, 모의 시체는 장작불이 쌓인 화장터에 놓인다. 군중들의 슬픔과 거친 애통 속에 누군가가 인형에 불을 붙인다. 군중들의 아우성 속에 사육제를 표현한 인형이 장작불에 타기 시작하면 상황은 급반전되어 사육제의 죽음을 노래하고 사람들은 그 주위를 뛰어다니며 즐거워한다. 사육제는 그 인물과 함께 죽고 매장되는 것이다.
이 의례들은 무속적인 민간의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예로부터 자연의 정령이 노쇠했기 때문에 죽어서 새로운 형태로 갱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어왔던 것이다. 봄이 되어 사육제를 맞아 식물 정령의 대표를 죽이는 것은 식물의 생육을 촉진하고 또 활기 있게 하는 절차로 생각하여왔다. 축제를 통해 식물 정령의 대표자를 매년 봄이 되면 죽이는 관습은 더욱 새로이 활동적인 형태로 자연이 재생하고 부활한다는 속신과 관련 있는 것이다.
행사 현장 주변에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횃불을 들고 모여 있다. 횃불은 죽음의 어둠을 밝히고 내세에 빛을 주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이 축제에서 사람들이 불기운을 비추고 주변을 밝히는 것은 새롭게 다가오는 봄에 힘을 보태는 상징행위로, 풍농과 다산의 생명력을 기원한다. 알레만의 사육제에는 겨울을 추방하는 놀이를 통해 자연의 부활을 돕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주술적인 의식이 저변에 자리 잡고 있다.
장례식과 죽음은 부활을 위해 필요한 예비조건으로, 겨울의 죽음과 매장을 연출함으로써 음침한 계절을 추방하고 따뜻한 봄이 되돌아오기 위한 길을 마련한다고 믿는 오랜 전통에서 유래하였다. 장례식을 통해 겨울인간이 죽었음을 선포하는 것은 자연의 변화무쌍하고 때로는 위협적인 양상에 대해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주술의 효과로도 볼 수 있다. 추위, 어둠과 공포의 계절이 도래하는 것을 멈춰 서게 하려는 노력은 장례식의 집행을 통해 겨울을 추방하고 여름을 맞이하기 위한 주술적 연극을 꾸미게 한다. 겨울이란 것은 본래 수목의 정령을 위해 매년 봄에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육제 인물은 계절의 놀라운 변화를 인격화한 생명체이며, 장례식은 다시 소생하는 식물을 부활시키기 위한 극적 표현으로, 이를 통해 태양을 빛나게 하고 토지의 생육을 자극시켜 수확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소산인 것이다.

그리고 일상으로의 복귀…
알레만 주변 지역은 다른 모습의 장례식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오펜부르크와 키르히자르텐 장례식은 사육제를 표현했던 인형을 광장으로 끌고 나와 처형하는 의례를 치른다. 남루한 옷을 입히고 낡은 모자를 씌운 사육제 인물이 끌려나와 광장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진행자는 그에게 부득이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연설을 한 뒤,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이 죄수를 사형집행인에게 인도하여 나무막대기 끝에 목매단다. 주민들은 땅을 두들기며 사형수를 위해서 통곡한다. 이 인형은 사람들의 애도를 받으며 수의가 입혀진 뒤 퇴비 위에 내동댕이쳐지고 불에 탄다. 그리고 남은 잔해는 매장해버리는 것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이것을 진행할 때 라틴어 “memento mori”라는 문구를 사육제 인물과 가면에 쓴다. 이는 “죽음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죽은 고인의 임종시간을 가리키며 시계를 멈추어놓는 오랜 장례식 관습에서 왔다. 이 멈춰진 시간은 고인이 이승에서 시간이 없는 신의 영원한 세계로 불려간 징표로 받아들여지며, 정지된 시계는 생명의 시간이 끝났음을 보이고 불쌍한 영혼이 정처 없이 계속 헤매는 것을 막는다고 민간에서 믿고 있다. 이 축제에서는 사육제와 사순절의 분명한 구분을 표시한 지침의 의미를 갖는다.
이 사육제의 장례식은 자연의 소생을 위한 전통적인 무속적인 예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크리스트교의 믿음체계와 가치규범에 따른 종교적 행사로 변하였음이 확인된다. 크리스트교 전파 이후 그에 따르는 준거의 틀에 따르면 사육제는 종교 생활로부터 이탈하고 일상 규범과 금기를 거부하는 혼돈과 무질서의 유희 세계를 보이는 장이었다. 정상적인 생의 과정에서는 규명될 수 없는 행위 양상들이 축제를 통해 표출되었다. 이 축제는 크리스트교와 사회 일상의 틀이 해체되고 거꾸로 된 무질서의 세계를 보이도록 용인된 것이었다. 일상 속에서 어렵고 힘든 주민들은 축제를 즐기며 쌓여 있던 격정의 감정을 분출하였다.
축제는 가면을 수단으로 하여 일상의 본모습을 감추고 다수의 사람들과 접촉하며 사회적 허위의식을 물리치고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는 감정의 환기 배출구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불만의 감정을 표출하였던 반항예식은 장례식과 함께 끝난다. 장례식은 짧은 일탈과 방종의 생애를 표현한 축제가 끝났고, 사순절을 맞이하는 절차가 시작됨을 알린다.
어둡고 무서운 혼돈의 난장판은 멈춰지고, 사육제 인형은 단죄된다. 장례식 이후 참가자들은 일상으로 복귀하고 40일간 금욕의 절기를 거쳐 부활절을 준비한다. 이 장례식에서 보인 사육제 인형의 죽음은 민중이 행한 일체의 죄과를 짊어져야 하는 공적 속죄양이기도 하다.
독일 지역 전통 세시의례와 장례식은 크리스트교 영향력과 계몽사상의 문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문화의 상당부분이 단절·소실되었고, 문헌을 통해 적은 행사 기록만이 발견되고 있다. 그 가운데 독일 알레만 지역 사육제는 오랜 전통과 습속을 잘 전승하고 있다. 어둠의 계절인 겨울을 추방하고 수목의 새 생명력을 부활시키는 이 전통축제 속에서 장례식은 게르만 민족의 독특한 죽음의식과 민속의례를 흥미 있게 보여주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