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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정열적인 이미지는 그들이 치르는 축제 양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한 해 동안 공들여 만든 거대한 조형물들을 하루저녁에 불태우거나, 잘 익은 토마토를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집어 던지거나, 죽음을 무릅쓰고 소떼와 내달리기도 한다. 또한 축제 기간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축제에만 몰두하는 그들에게서 진정 축제에 미친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카니발 가장행렬을 펼치는 사모라 아베헤라(Abejera)의 새해부터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고 요란하게 폭죽을 터트리는 바르셀로나 센떼예스(Centelles)의 섣달그믐까지, 스페인 전역에서는 연간 10만회 이상의 축제가 열린다. 비록 대부분의 지역 축제들이 밀집되어 있는 시기가 바로 초여름이나 늦여름이지만, 각 계절마다 독특한 축제의 양상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스페인이다. 다른 기독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겨울은 성탄축제로 시작해서 연말축제, 2월 카니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겨울축제들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원주민들인 이베로 족과 켈트 족 전통과 더불어, 그리스·로마·아시아 등에서 유래된 문화가 함께 녹아들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봄을 맞이하는 준비로서의 축제
예로부터 주민들의 생활 속에 뿌리 박혀 있는 종교와 신앙 그리고 세시풍습에서 내려오는 놀이 등은 지역민들을 하나로 묶기도 하고 나누기도 해 왔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지역축제는 세시풍습과 관련을 맺어 왔던 것이다. 세시에 벌어지는 축제는 일상의 리듬과 매듭을 가져오는 생활의 지혜였으며,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장이었다. 스페인에서는 성탄축제와 연말축제,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축제인 동방박사의 날(1월 6일)이 지나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새해의 일상생활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한 일상생활이 시작되는 단계에 성 세바스티안 축일을 맞아 축제를 거행하는 지역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스페인 카세레스 지방의 작은 마을, 아세우체(Acehuche)의 괴물가면축제(Fiesta de las Carantonas)이다. 성 세바스티안은 아세우체 마을의 수호성인이며, 그를 기리는 괴물가면축제는 1월 19일에서 21일까지 3일에 걸쳐 치러진다. 이 축제의 명칭으로 쓰이는 괴물가면(carantona)은 짐승의 가죽을 이용해 만든 아주 무섭고 사나운 형상이 그 특징인,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이다. 이 특이한 축제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종교적인 측면과 세속적인 측면으로 이야기할 수가 있는데, 종교적인 측면의 기원은 이렇다. 오랜 옛날에 지독한 페스트 전염병이 이웃 마을들을 지나 아세우체로 넘어올 무렵, 마을 주민들은 그 전염병이 자신들의 마을로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고 성 세바스티안에게 간청했다. 그들의 소원이 실제로 이뤄지자 그 성인을 기리기 위한 축제를 거행하며 감사했다고 한다. 순교자 성 세바스티안이 화살을 맞고 난 후에, 숲 속 야수들은 그를 공격하는 대신에 그가 성자이기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괴물가면은 그 야수들을 상징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앞에서 행진한다. 괴물가면축제의 세속적인 측면은 풍요로움이나 봄이 도래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사람들이 야생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변장하는 것은 지중해 주변의 여러 지역에 공통된 전통이다. 이들 지역에서 가죽을 걸친 사람들은 자신의 춤과 동작으로 짝짓기와 기념의식을 연희했으며, 분명히 그런 세속적인 측면은 풍요로움, 도래하는 봄이 의미하는 삶의 순환 과정, 들판에서 싹트는 곡식 등을 의미했다. 이러한 세속적인 의식이 기독교에 의해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성 세바스티안의 이야기가 덧붙었을 수 있다.축제는 괴물가면꾼들, 북 치는 사람, 집사(주최자), 흩뿌리는 여인들, 총잡이들 등으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먼저 괴물가면 변장은 남자들의 몸통에 염소나 양과 같은 동물 가죽을 끈으로 단단히 동여매고 가죽으로 만든 가면을 머리에 덮어 쓴다. 가면에는 피망, 짐승의 귀, 송곳니와 같은 것을 매달지만, 뿔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옛날에 괴물가면꾼들은 길이가 1m 정도 되고 뾰족한 돌기들이 달린 길쭉한 막대기를 손에 들고 다녔지만, 요즘은 아세우체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야생 올리브의 마른 나뭇가지를 들고 다닌다. 북 치는 사람, 즉 ‘고수(tamborilero)’는 배제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피리와 북소리로 모든 의식에 있어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며, 축제 기간 내내 자신의 멜로디를 반복해서 연주한다. 집사부(mayordomia)는 축제의 중심 기관이며 축제 기간 동안 날마다 집사가 바뀐다. 집사들은 일반적으로 ‘성자 모시는(servir al Santo)’ 사람으로 불리는데, 축제 비용을 후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비용을 후원하는 집사가 없을 경우에는 ‘성 세바스티안 신도단’이 그 임무를 맡고, 추첨을 통해 선출된 신자가 집사 역을 수행한다. 또 다른 주요 인물들은 바로 ‘흩뿌리는 여인들(regaoras)’로 다수의 젊은 여자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그녀들은 ‘바예따(bayeta)’로 불리는 지역의 전통 복식을 차려 입고 노래와 춤으로 축제에 흥겨운 색조를 가미한다. 그리고 ‘총잡이들(tiraores)’은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엽총으로 예포를 쏘는 지역 젊은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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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행사 연계…주민들 역할 분담
축제 준비 작업은 1월 19일에 시작한다. 이날 집사와 그 친지들은 가까운 농장으로 나가 로즈메리 꽃을 채집한다. 이 로즈메리 꽃은 성당에서 집사들의 집까지 이어지는 길을 비롯해 퍼레이드가 지나갈 길에 깔기 위한 것이다. 날이 저물 무렵, 주로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로 구성된 수많은 마을 사람들은 ‘고론 블랑꼬(Gorron Blanco)’라는 곳까지 순례한다. 외곽도로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옆에 있는 그 장소에서, 마을 사람들은 ‘고수’를 맞이한다. 20일 날이 밝을 무렵 ‘알 알보라(al albora)’가 시작된다. 이는 고수와 집사가 괴물가면으로 변장할 사람들을 잠에서 깨우며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그 순회를 마치고 나면, 그 행렬에 참여한 사람들은 집사의 집으로 가서 맛난 미가스(migas, 물에 적셔 튀긴 빵 부스러기 요리)와 커피, 혹은 술 몇 잔을 음미하게 된다. 그 후 집사들이 그 전 날 채집한 ‘로즈메리 꽃을 흩뿌리기’를 하는 동안, 젊은이들은 괴물가면과 복식으로 변장한다. 변장하는 과정이 무척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오전 10시 30분경에 괴물가면꾼, 흩뿌리는 여인들, 총잡이들, 고수를 비롯한 일반인들은 집사의 주택 가까이 모여, 그곳에서 퍼레이드에 사용할 성자 상을 꺼내기 위해 성당으로 걸어간다. 성당 내에서(이곳은 괴물가면꾼들이 들어올 수 없다) 성 세바스티안에 대한 찬송의식을 거친 후, 밖으로 성자상을 꺼내는 순간 총잡이들이 예포를 쏘는 동시에 흩뿌리는 여인들은 다량의 사탕을 비가 쏟아지듯 던지고, 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른다.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괴물가면꾼들은 성자 앞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둘씩 짝지어 가며 세 걸음마다 한 번씩 ‘따라마(tarama, 나뭇가지)’를 바닥에 끌며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아주 독특하고 신비스런 ‘구(gu)-’ 소리를 발음한다.퍼레이드가 끝나면 미사를 올린다. 그 후 흩뿌리는 여인들과 괴물가면꾼들은 성당 광장에서 그 고장의 ‘호따(jota)’ 춤을 추고, 밀가루·우유·설탕으로 만든 음식인 ‘빠빠스(papas)’를 ‘까란또니냐(carantonina, 가장 어린 괴물가면꾼)’에게 먼저 주고 나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 또 다른 인물인 ‘바까또라(vaca-tora, 뿔 달린 암소)’는 괴물가면꾼들과 사람들에게 들이받기를 하면서 축제가 끝났음을 알리는 임무를 맡는다. 마지막으로 축제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알 꼰비떼(al convite, 뒤풀이)’로 향하는데, 여기에 집사는 아주 맛있고 달콤한 음식과 포도주를 비롯한 먹거리를 마련해 둔다. 다음 날인 21일에는 집사만 다른 사람이 맡을 뿐,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축제를 치른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본 괴물가면축제는 성자상 퍼레이드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의식과 행사들을 연계하고 있으며, 모든 주민들이 각자 형편에 맞게 역할을 분담하여 축제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축제의 집약성이 잘 드러나며 행사 비용 또한 마을 규모에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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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치르는 축제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축제를 통해, 오랜 세월 동안 꺼지지 않는 전통의 숨결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전통행사를 통해 세대 간 벽을 허물고 공동체 의식을 고양할 뿐만 아니라, 지역민들과 방문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축제를 치르는 모습 속에서 포용과 융화의 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춰 볼 때 우리의 지역문화나 세시풍속은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의 여파로 상당 부분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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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황에 맞는 문화 복원·창출 필요
아세우체는 그리 큰 마을이 아니며 그들이 치루는 축제 또한 규모가 크지 않지만,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축제를 통해, 오랜 세월 동안 꺼지지 않는 전통의 숨결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전통행사를 통해 세대 간 벽을 허물고 공동체의식을 고양할 뿐만 아니라, 지역민들과 방문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축제를 치르는 모습 속에서 포용과 융화의 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춰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지역문화나 세시풍속은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의 여파로 상당 부분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물론, 잊혀졌거나 뒷전으로 밀린 지역문화나 세시풍속들을 되살려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복원과 삶의 여유가 필수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뀜에 따라 문화와 풍속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고, 또한 시간적 깊이가 쌓여 역사성을 지닐 때 새로이 형성된 문화나 풍속은 정착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지역문화를 되살려 축제의 장을 열고자 사라진 과거 전통을 복원하기에만 매달리기보다는, 현재 상황에 알맞은 새로운 문화를 포착하고 장려하는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