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궈녠에 담긴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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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61회 작성일 10-10-1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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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녠은 붉은색과 폭죽소리를 싫어해”
대륙이나 대만이나 홍콩이나 심지어 각국의 화교촌(華僑村)과 같이 중국 한인(漢人)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일년 중 가장 성대한 일이 벌어지는 날이 바로 ‘궈녠(過年)’이다. 우리처럼 중국 대륙에서는 이 날을 전후로 한 달 동안에 인구의 대이동이 일어난다. 특히 먹고 살 만한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이즈음, 중국 대륙의 도시에서는 일년 중에서 가장 큰 명절인 음력 1월 1일을 앞둔 한 달 동안 온통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도시를장식한다. 당연히 황금색은 재복(財福)을 바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붉은색에 대해서는 단지 귀신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정도로 우리의 이해가 짧다. 하지만 이 속에는 무진장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에 ‘녠(年)’이라는 짐승이 살았다. ‘녠’은 길쭉한 머리에 뾰족한 뿔을 하고 있으며, 그 성질이 흉악하기로 유명했다. ‘녠’은 평소에 깊은 바다 속에서 살다가 반드시 정기적으로 한 번씩 육지로 올라와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가축을 잡아먹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녠’이 나타날 즈음 되면 짐을 싸서 깊은 산 속으로 피신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녠’을 피해서 도망을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동쪽에서 백발노인 한 명이 나타나서 늙은 부인 집에 들러, 자신을 하룻밤만 묵게 해주면 ‘녠’이라는 놈을 쫓아 버리겠다고 장담을 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백발노인의 말을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 흉측한 ‘녠’이란 짐승을 이 백발노인이 쫓을 수 있겠는가 하고 모두 의심을 품었다. 늙은 부인 역시 괜한 소리 하지 말고 함께 산으로 가서 숨자고 했다. 그러나 백발노인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혼자서 마을에 남게 되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녠’이 나타났다. 그것을 기다린 백발노인이 ‘녠’을 향해 폭죽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폭죽이 터지자, 그 소리에 ‘녠’은 깜짝 놀라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녠’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절부절하자 이 때 백발노인이 집에서 대문을 활짝 열고서 ‘녠’을 꾸짖었다. 그러자 ‘녠’은 백발노인이 입은 붉은색의 옷을 보고 혼비백산을 하여 줄행랑을 쳤다.
사람들은 다음 날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은 떠나기 전과 변함이 없었다. 백발노인 역시 전혀 해를 입지 않고 건재했다. 노인이 하는 말이 “원래 ‘녠’이란 놈은 붉은색과 폭죽소리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녠’이 나타날 때마다 붉은색의 종이에 검은 묵으로 대구(對句)의 대련(對聯) 글씨를 써서 대문에 붙이고, 밤에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비록 정기적으로 ‘녠’이 사람들을 찾아서 위협을 했지만, 이렇게 장치를 해 두면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로부터 ‘녠’이 나타나는 때를 한 해의 시작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녠(年)’이라 불렀다. 그리고 음력 12월 31일 밤에 반드시 붉은색의 대련을 대문에 붙이고, 온 집에 불을 밝히고, 그믐날 밤에 폭죽을 터뜨리는 풍속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음력 1월 1일을 중심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일을 중국인들은 ‘궈녠(過年)’이라 부른다. 즉 ‘녠’이란 놈을 보낸다는 의미가 이 말에 담겨 있다.
복을 불러오는 ‘닭’
비록 전설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중국인들이 한 해를 생각하는 인식의 세계가 담겼다. 하지만 ‘녠(年)’이란 한자어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곧 ‘녠’은 원래 ‘런(稔, 임)’이란 글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원래 ‘런’이란 글자는 벼가 한 번 익는 기간을 가리킨다. 우리가 춘경(春耕)·하서(夏鋤)·추수(秋收)·동장(冬臧)이라 부르는 한 해의 농사력(農事曆)이 바로 ‘런’의 전체 과정이고, 이 ‘런’이 ‘녠’으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한 해의 첫 날인 음력 1월 1일을 ‘런’ 중에서 처음 맞이하는 날이라 하여 ‘웬단(元旦)’이라고 부른다. 중국인들은 ‘웬단’을 다른 말로 ‘지러(鷄日)’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설 《삼국지(三國志)》의 시대인 삼국 시대 사람들은 ‘정월 1일을 계(鷄), 2일을 구(狗), 3일을 양(羊), 4일을 저(猪), 5일을 우(牛), 6일을 마(馬), 7일을 인(人)’이라 여겼다.
그런데 왜 ‘웬단’을 두고 닭의 날이라 불렀을까? 당시 사람들은 닭이 양(陽)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닭은 태양의 남쪽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이로 인해서 새벽에 동이 틀 때 닭이 가장 먼저 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때 닭을 잡아 문에 걸거나 닭이 그려 진 그림을 문에 붙이면 나쁜 액운을 막는다 여겼다.
사실 ‘지러’의 경우, 길상(吉祥)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그들이 쓰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가지고 발음이 유사한 것을 통해서 상징을 부여하는 해음(諧音)을 즐기는 편이다. 닭을 의미하는 한자 ‘계(鷄)’는 중국어로 ‘지’이며, 길상의 길(吉) 역시 ‘지’로 읽는다. 그래서 음력 1월 1일이 ‘지러’가 된 것은 다른 의미로 ‘지러(吉日)’와 같기 때문이다. 특히 닭은 ‘웬단’을 상징하는 동물로 중국인에게는 오덕(五德)을 지닌 동물로 여겨진다. 즉 닭의 머리에 있는 관(冠)은 문(文), 발은 무(武),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은 용(勇), 무리를 이루어 사는 모습은 인(仁), 밤을 지키는 모습은 신(信)과 같다 하여 그 의미가 후대에 덧붙여지기도 했다.
따라서 ‘녠’ 전설이 액을 막는 의미가 있다면, 닭은 복을 들어오게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복(福)은 중국인의 삶에서 재물과 수명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래서 복은 재복(財福)을 동시에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음력 1월 1일이 되면, 중국인들은 대문이나 방문 혹은 부엌문에 사각형의 붉은색 종이에 복(福)이란 글씨를 쓴 종이를 반드시 거꾸로 붙여둔다. 중국어로 ‘거꾸로’를 뜻하는 글자는 ‘도(倒)’이다. 그런데 이것의 발음과 도착하다는 의미의 ‘도(到)’는 모두 ‘따오’로 똑같다. 그러니 ‘복’자를 거꾸로 붙인 것은 곧 ‘복이 도착하다’는 뜻으로 통한다. 이쯤에 오면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글자로 얼마나 ‘해음’ 장난을 심하게 치는지 알 만하다.
또 다른 ‘해음’ 한 가지를 더 소개하자. 중국 화북(華北) 지방 사람들은 음력 12월 31일 밤에 자지 않고 ‘쟈오즈(餃子)’를 만든다. 그런데 쟈오즈를 만들 때 밀가루를 잘 반죽해야 맛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두고 ‘허멘(和麵)’이라 부른다. 사실 ‘허(和)’는 ‘허(合)’과 같은 발음이라 이를 통해서 온 가족이 합한다는 의미가 붙는다. ‘쟈오즈’의 ‘쟈오’ 역시 ‘쟈오(交)’와 같은 발음이다. 그래서 흩어져 살던 가족이 모두 모여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쟈오(交)와 허(合)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12월 그믐날 밤에 온 가족이 모여서 ‘쟈오즈’를 만들고, 아침에 함께 ‘쟈오즈’를 먹는다.
이에 비해 화남(華南) 지방 사람들은 새해 아침에 ‘녠까오(年 )’라는 떡과 탕위엔(湯圓)이라는 국을 먹는 풍속이 있다. ‘녠까오’는 ‘녠녠성까오(年年升高)’와 비슷하게 들리고, 그 의미가 해마다 나아진다는 것이니 이 떡을 먹지 않을 수 없다. ‘탕위엔’은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취엔쟈투안위엔(全家團圓)’과 발음이 비슷하게 들리니, 충분히 일 년의 소망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1월 15일 지나야 비로소 새해 끝!
재복을 비는 마음에서 중국인들이 새해 아침에 붙이는 그림도 있다. 음력 12월 그믐날 밤에 집안의 조상의 위패를 모신 대청(大廳)을 깨끗하게 청소한 후 동서(東西) 양쪽 벽에 일명 ‘녠화(年畵)’라는 그림을 붙인다. 보통 ‘녠화’에는 잉어를 안고 있는 아기, 반으로 자른 수박을 들고 있는 아기, 복숭아·포도·앵두와 같은 열매 속에서 잉어를 안고 있는 아기 등이 소재가 된다. 아기와 잉어는 수명장수(壽命長壽)를 의미하며, 복숭아·포도·앵두·수박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가족들이 항상 모이는 장소이면서 손님을 맞이하여 접대를 하는 장소인 대청에 이들 그림을 붙여 두어 재복을 바라는 중국인들은 우리에 비해서 무척 솔직하다고 할 수 있다.
‘녠’이란 짐승이 싫어했던 폭죽은 액을 물리치고 재복을 바라는 마음을 극단적으로 밖으로 드러내는 행동이다. 최근 중국대륙에서 이 폭죽을 터뜨리는 새해 새벽을 구경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지만, 국가에서 금지를 시킨 1996년 이전까지도 새해의 새벽은 폭죽소리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녠’이 폭죽을 싫어하기도 했지만, 다른 의미에서 살아 있는 귀신이 전염병을 퍼뜨린다고 생각하여 이를 막기 위해서 폭죽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화약으로 폭죽을 만들지만, 원래는 대나무를 이용했다. 대나무를 불에 태우면 마디마디가 불에 타면서 큰 소리를 내는데, 그래서 폭죽의 한자도 대나무를 터뜨린다는 ‘爆竹’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중국인의 새해맞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은 음력으로 12월 24일부터 부엌신인 조왕에게 제사를 지내서 옥황상제의 환심으로 사려하고, 1월 1일을 추이(初一)라 하여 반드시 사위는 장인 집에 가서 세배를 해야 하고, 2·3·4일 역시 친척과 친구, 그리고 이웃들과 즐겁게 논다. 그리고 추우(初五)가 되면 그동안 버리지 않았던 쓰레기도 모아서 버린다. 그 이전까지 모인 쓰레기는 복(福)이었지만, 이 날 버리는 쓰레기는 빈궁(貧窮)의 궁(窮)이라 여긴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리면서도 송궁(送窮)이라 부른다. 재복을 바라는 마음이 쓰레기에까지 의미를 부여한다.
이어서 1월 15일 원소절(元宵節)을 지내야 비로소 한 해의 사악함을 물리치고 재복을 바라는 중국인의 새해 풍속이 끝난다. 곧 중국인의 ‘궈녠(過年)’은 거의 한 달을 갈 정도로 그들의 일 년 중에서 가장 많이 재복을 바라고, 사악한 액운을 물리치는 기원이 담겨 있다. 이런 면에서 중국인들은 우리와 달리 훨씬 솔직하게 재복을 바라는 현실주의자들이라 해야 옳다. 이것이 중국인의 궈녠(過年)에 담긴 상징이다. ●
대륙이나 대만이나 홍콩이나 심지어 각국의 화교촌(華僑村)과 같이 중국 한인(漢人)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일년 중 가장 성대한 일이 벌어지는 날이 바로 ‘궈녠(過年)’이다. 우리처럼 중국 대륙에서는 이 날을 전후로 한 달 동안에 인구의 대이동이 일어난다. 특히 먹고 살 만한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이즈음, 중국 대륙의 도시에서는 일년 중에서 가장 큰 명절인 음력 1월 1일을 앞둔 한 달 동안 온통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도시를장식한다. 당연히 황금색은 재복(財福)을 바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붉은색에 대해서는 단지 귀신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정도로 우리의 이해가 짧다. 하지만 이 속에는 무진장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에 ‘녠(年)’이라는 짐승이 살았다. ‘녠’은 길쭉한 머리에 뾰족한 뿔을 하고 있으며, 그 성질이 흉악하기로 유명했다. ‘녠’은 평소에 깊은 바다 속에서 살다가 반드시 정기적으로 한 번씩 육지로 올라와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가축을 잡아먹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녠’이 나타날 즈음 되면 짐을 싸서 깊은 산 속으로 피신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녠’을 피해서 도망을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동쪽에서 백발노인 한 명이 나타나서 늙은 부인 집에 들러, 자신을 하룻밤만 묵게 해주면 ‘녠’이라는 놈을 쫓아 버리겠다고 장담을 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백발노인의 말을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 흉측한 ‘녠’이란 짐승을 이 백발노인이 쫓을 수 있겠는가 하고 모두 의심을 품었다. 늙은 부인 역시 괜한 소리 하지 말고 함께 산으로 가서 숨자고 했다. 그러나 백발노인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혼자서 마을에 남게 되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녠’이 나타났다. 그것을 기다린 백발노인이 ‘녠’을 향해 폭죽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폭죽이 터지자, 그 소리에 ‘녠’은 깜짝 놀라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녠’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절부절하자 이 때 백발노인이 집에서 대문을 활짝 열고서 ‘녠’을 꾸짖었다. 그러자 ‘녠’은 백발노인이 입은 붉은색의 옷을 보고 혼비백산을 하여 줄행랑을 쳤다.
사람들은 다음 날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은 떠나기 전과 변함이 없었다. 백발노인 역시 전혀 해를 입지 않고 건재했다. 노인이 하는 말이 “원래 ‘녠’이란 놈은 붉은색과 폭죽소리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녠’이 나타날 때마다 붉은색의 종이에 검은 묵으로 대구(對句)의 대련(對聯) 글씨를 써서 대문에 붙이고, 밤에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비록 정기적으로 ‘녠’이 사람들을 찾아서 위협을 했지만, 이렇게 장치를 해 두면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로부터 ‘녠’이 나타나는 때를 한 해의 시작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녠(年)’이라 불렀다. 그리고 음력 12월 31일 밤에 반드시 붉은색의 대련을 대문에 붙이고, 온 집에 불을 밝히고, 그믐날 밤에 폭죽을 터뜨리는 풍속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음력 1월 1일을 중심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일을 중국인들은 ‘궈녠(過年)’이라 부른다. 즉 ‘녠’이란 놈을 보낸다는 의미가 이 말에 담겨 있다.
복을 불러오는 ‘닭’ 비록 전설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중국인들이 한 해를 생각하는 인식의 세계가 담겼다. 하지만 ‘녠(年)’이란 한자어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곧 ‘녠’은 원래 ‘런(稔, 임)’이란 글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원래 ‘런’이란 글자는 벼가 한 번 익는 기간을 가리킨다. 우리가 춘경(春耕)·하서(夏鋤)·추수(秋收)·동장(冬臧)이라 부르는 한 해의 농사력(農事曆)이 바로 ‘런’의 전체 과정이고, 이 ‘런’이 ‘녠’으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한 해의 첫 날인 음력 1월 1일을 ‘런’ 중에서 처음 맞이하는 날이라 하여 ‘웬단(元旦)’이라고 부른다. 중국인들은 ‘웬단’을 다른 말로 ‘지러(鷄日)’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설 《삼국지(三國志)》의 시대인 삼국 시대 사람들은 ‘정월 1일을 계(鷄), 2일을 구(狗), 3일을 양(羊), 4일을 저(猪), 5일을 우(牛), 6일을 마(馬), 7일을 인(人)’이라 여겼다.
그런데 왜 ‘웬단’을 두고 닭의 날이라 불렀을까? 당시 사람들은 닭이 양(陽)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닭은 태양의 남쪽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이로 인해서 새벽에 동이 틀 때 닭이 가장 먼저 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때 닭을 잡아 문에 걸거나 닭이 그려 진 그림을 문에 붙이면 나쁜 액운을 막는다 여겼다.
사실 ‘지러’의 경우, 길상(吉祥)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그들이 쓰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가지고 발음이 유사한 것을 통해서 상징을 부여하는 해음(諧音)을 즐기는 편이다. 닭을 의미하는 한자 ‘계(鷄)’는 중국어로 ‘지’이며, 길상의 길(吉) 역시 ‘지’로 읽는다. 그래서 음력 1월 1일이 ‘지러’가 된 것은 다른 의미로 ‘지러(吉日)’와 같기 때문이다. 특히 닭은 ‘웬단’을 상징하는 동물로 중국인에게는 오덕(五德)을 지닌 동물로 여겨진다. 즉 닭의 머리에 있는 관(冠)은 문(文), 발은 무(武),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은 용(勇), 무리를 이루어 사는 모습은 인(仁), 밤을 지키는 모습은 신(信)과 같다 하여 그 의미가 후대에 덧붙여지기도 했다.
따라서 ‘녠’ 전설이 액을 막는 의미가 있다면, 닭은 복을 들어오게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복(福)은 중국인의 삶에서 재물과 수명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래서 복은 재복(財福)을 동시에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음력 1월 1일이 되면, 중국인들은 대문이나 방문 혹은 부엌문에 사각형의 붉은색 종이에 복(福)이란 글씨를 쓴 종이를 반드시 거꾸로 붙여둔다. 중국어로 ‘거꾸로’를 뜻하는 글자는 ‘도(倒)’이다. 그런데 이것의 발음과 도착하다는 의미의 ‘도(到)’는 모두 ‘따오’로 똑같다. 그러니 ‘복’자를 거꾸로 붙인 것은 곧 ‘복이 도착하다’는 뜻으로 통한다. 이쯤에 오면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글자로 얼마나 ‘해음’ 장난을 심하게 치는지 알 만하다.
또 다른 ‘해음’ 한 가지를 더 소개하자. 중국 화북(華北) 지방 사람들은 음력 12월 31일 밤에 자지 않고 ‘쟈오즈(餃子)’를 만든다. 그런데 쟈오즈를 만들 때 밀가루를 잘 반죽해야 맛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두고 ‘허멘(和麵)’이라 부른다. 사실 ‘허(和)’는 ‘허(合)’과 같은 발음이라 이를 통해서 온 가족이 합한다는 의미가 붙는다. ‘쟈오즈’의 ‘쟈오’ 역시 ‘쟈오(交)’와 같은 발음이다. 그래서 흩어져 살던 가족이 모두 모여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쟈오(交)와 허(合)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12월 그믐날 밤에 온 가족이 모여서 ‘쟈오즈’를 만들고, 아침에 함께 ‘쟈오즈’를 먹는다.
이에 비해 화남(華南) 지방 사람들은 새해 아침에 ‘녠까오(年 )’라는 떡과 탕위엔(湯圓)이라는 국을 먹는 풍속이 있다. ‘녠까오’는 ‘녠녠성까오(年年升高)’와 비슷하게 들리고, 그 의미가 해마다 나아진다는 것이니 이 떡을 먹지 않을 수 없다. ‘탕위엔’은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취엔쟈투안위엔(全家團圓)’과 발음이 비슷하게 들리니, 충분히 일 년의 소망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1월 15일 지나야 비로소 새해 끝! 재복을 비는 마음에서 중국인들이 새해 아침에 붙이는 그림도 있다. 음력 12월 그믐날 밤에 집안의 조상의 위패를 모신 대청(大廳)을 깨끗하게 청소한 후 동서(東西) 양쪽 벽에 일명 ‘녠화(年畵)’라는 그림을 붙인다. 보통 ‘녠화’에는 잉어를 안고 있는 아기, 반으로 자른 수박을 들고 있는 아기, 복숭아·포도·앵두와 같은 열매 속에서 잉어를 안고 있는 아기 등이 소재가 된다. 아기와 잉어는 수명장수(壽命長壽)를 의미하며, 복숭아·포도·앵두·수박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가족들이 항상 모이는 장소이면서 손님을 맞이하여 접대를 하는 장소인 대청에 이들 그림을 붙여 두어 재복을 바라는 중국인들은 우리에 비해서 무척 솔직하다고 할 수 있다.
‘녠’이란 짐승이 싫어했던 폭죽은 액을 물리치고 재복을 바라는 마음을 극단적으로 밖으로 드러내는 행동이다. 최근 중국대륙에서 이 폭죽을 터뜨리는 새해 새벽을 구경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지만, 국가에서 금지를 시킨 1996년 이전까지도 새해의 새벽은 폭죽소리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녠’이 폭죽을 싫어하기도 했지만, 다른 의미에서 살아 있는 귀신이 전염병을 퍼뜨린다고 생각하여 이를 막기 위해서 폭죽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화약으로 폭죽을 만들지만, 원래는 대나무를 이용했다. 대나무를 불에 태우면 마디마디가 불에 타면서 큰 소리를 내는데, 그래서 폭죽의 한자도 대나무를 터뜨린다는 ‘爆竹’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중국인의 새해맞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은 음력으로 12월 24일부터 부엌신인 조왕에게 제사를 지내서 옥황상제의 환심으로 사려하고, 1월 1일을 추이(初一)라 하여 반드시 사위는 장인 집에 가서 세배를 해야 하고, 2·3·4일 역시 친척과 친구, 그리고 이웃들과 즐겁게 논다. 그리고 추우(初五)가 되면 그동안 버리지 않았던 쓰레기도 모아서 버린다. 그 이전까지 모인 쓰레기는 복(福)이었지만, 이 날 버리는 쓰레기는 빈궁(貧窮)의 궁(窮)이라 여긴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리면서도 송궁(送窮)이라 부른다. 재복을 바라는 마음이 쓰레기에까지 의미를 부여한다.
이어서 1월 15일 원소절(元宵節)을 지내야 비로소 한 해의 사악함을 물리치고 재복을 바라는 중국인의 새해 풍속이 끝난다. 곧 중국인의 ‘궈녠(過年)’은 거의 한 달을 갈 정도로 그들의 일 년 중에서 가장 많이 재복을 바라고, 사악한 액운을 물리치는 기원이 담겨 있다. 이런 면에서 중국인들은 우리와 달리 훨씬 솔직하게 재복을 바라는 현실주의자들이라 해야 옳다. 이것이 중국인의 궈녠(過年)에 담긴 상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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