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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 디자인, 대중화된 일본의 전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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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14회 작성일 10-10-1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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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동경의 대규모 디자인 전시인 ‘동경 디자이너스 위크(Tokyo Designer′s Week)’에 다녀왔다. ‘디자인이 이 나라를 변화시킵니다’라는 케치프레이즈 아래, 도시 곳곳에서 말 그대로 디자인이 넘쳐나는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여기에 많은 영감과 긴장감 그리고 부러움을 한가득 짊어지고 돌아왔다. 이제는 첨단과학 기술과 어우러져 디자인인지 기술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진화, 발전하는 가전제품 디자인에서 신소재의 발견으로 그 분야가 무궁무진해진 가구 디자인, 첨단 그래픽 기술로 한편의 공상과학 만화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을 일으키는 패키지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디자인에 각 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말을 온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30-1.jpg무릎을 치다!!!

그 수많은 업계, 업종의 디자인 전시, 프로모션, 행사, 심포지엄을 참관하면서 기술 강국에서 이제는 문화 강국으로 당당히 세계 속에 우뚝 선 일본의 저력을 우연히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껏 논리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자국의 이미지를 어떻게 총체적으로 디자인해서 자국민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에게까지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을 해 올 수 있었는가 라는, 쉽게 말해서 일본 문화사업 장치 속의 반도체 회로라 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지난해 4월 완공되어 세계 최고(最高) 미술관인 모리 뮤지엄을 포함, 수백 개의 숍과 레스토랑, 방송국, 영화관 등이 들어선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록뽄기 힐즈 내의 자그마한 회전 스시 집 ‘핀토코나’에서 식사를 할 때였다. 식당 이름이 특이해 여종업원에게 물어 봤더니 일본 전통극 가부키의 남자 주인공이라는 것이었다. 설명과 함께 건넨 팸플릿 안에는 가부키에 관한 설명과 그림이 있었다. 일본 에도 시대의 서민 음식이었던 스시를 먹으며, 동시에 그 나라 음식의 문화적 배경까지 알 수 있게 식당 이름이며 인테리어, 간판, 메뉴판, 일회용 물수건 포장 위의 글자체까지 모든 것이 일관되게 토털 디자인된 것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일본은 겉으로 드러나는 홍보 외에도 일상생활 속 곳곳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친근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일관된 언어로 알리고 있다는 사실에 눈이 뜨인 그 시점부터 나는 개안(開眼)한 자세로 일본을, 그들의 생활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일본은 무엇보다 자국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기모노, 유타카, 게타 등의 의복류와 정갈한 일본 식문화를 꾸준히 뒷받침해 주고 있는 식기와 포장지 그리고 토양에 잘 맞아 대표적인 일본 자재로 인식되고 있는 스기, 대나무 등의 주거환경 소재 등 의식주 모든 면에서 일본을 나타내고 상징하는 상품들이 다양하고 꾸준하게 발전되어 왔다. 그 양상은 철저한 고증과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전통을 고수하는 방식과 현대 생활에 맞게 일본 문화의 원형을 살려 내면서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 두 가지 측면이 사회 주변 곳곳에 적절히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일본 분위기 흠뻑 젖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은 이제 시각적인 모든 요소, 즉 색채, 문양, 모양을 통해서도 후각, 촉각, 미각을 자극시킨다. 예를 들면 음식의 맛, 향(incense)의 냄새, 일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톡톡한 느낌의 면으로 된 수건 등 가장 일본적인 것에 대한 연상작용을 동시다발적으로 일으키게 하고 있다.


소비되는 전통문화가 부럽다

전통음식, 가구, 의복 등, 의식주 제품 전 분야의 장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제품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소중히 사용하는 모습 속에서 참 일본의 맛이 전해지며 이러한 그들의 생활상이 외국의 눈에는 조직적으로 잘 짜여진 하나의 ‘product model house’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 일본 문양과 색채만 띤다고 다 사랑받고 팔리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히 집어내고 그 요구에 맞는 상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한다. 그 상품의 용도, 놓일 자리, 함께 쓰일 다른 상품과의 조화까지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대부분의 제품들이 서로 훌륭히 어울릴 수 가 있는 것이고, 이러한 총체적인 모습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자랑스러운 일본 상품으로 꾸준히 애용되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감탄한 것은 그들의 전통공예보다 현대 일본인들의 일상적인 삶에 파고들어 자유롭게 숨쉬고 있는 ‘생활 속 일본 디자인, 대중화된 일본 전통문화’이다.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보이고, 이용되고, 소중히 여기고, 그러므로 인해 끊임없이 연구·개발되는 그들의 부러운 ‘소비되는 전통문화’인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각 나라의 문화, 역사, 전통에 따라 다르지만,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적용되는 미(美)에 대한 기준으로 ‘조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적인 것이 풍기는 멋스러움의 이면에도 이 조화의 미(美)가 존재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그들의 것을 살펴보면, 자주 발견되는 규칙이 있다. 우선, 다양한 일본 색채군이 있다. 에도 시대 일본의 우끼요에(浮世繪)의 거장 호쿠사이의 짙푸른 청색, 히노마루(일장기)의 순도 높은 빨강, 대나무의 연두, 은행잎의 노랑, 일본왕실의 로열색인 핑크 등, 전통적으로 혹은 그들의 뛰어난 상술에 이미 일본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진 색들을 둘, 셋씩 조합하여 음식의 밑재료처럼 구비해 놓는다. 정교하게 고안된 이 색 조합을 기본으로 현대적인 문양인 스트라이프, 체크, 물방울, 플로랄 등 기본적인 패턴부터 보다 더 모던한 기하학적 패턴까지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간다. 또 하나의 규칙으로는, 오랜 기간 동안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 국내외로 홍보되고 인식되어 온 일본 문화의 상징을 간단한 도안으로 만들어 어디에나 인쇄하고 부착하고 매달 수 있는 패턴을 만든다. 예를 들면 잔잔한 파도 무늬, 우산 무늬, 벚꽃 무늬 등으로 디자인하여 재료화해 놓는다. 이렇게 색채나 문양 중 한 가지만이라도 일본적인 ‘재료’가 사용되기만 하면 쉽게 일본 냄새를, 맛을 그리고 멋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메탈 실버의 컷팅에지(cutting edge)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의 날렵한 티스푼 맨 끝자락에 벚꽃 문양이 살포시 얹혀 있으면 그 누가 일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지……. 이 두 가지 재료, 즉 색 조합과 문양만 있으면 그것을 테이블 네프킨, 앞치마, 엽서, 명함, 간판, 포장지, 스티커 등 무궁무진하게 여러 생활 용품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30-2.jpg 고정관념 깨고 5도만 비스듬히 보자

이러한 ‘재료’의 구비를 위해서는 나라가 전통 문양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해 정부 주도의 문화사업이 조직적이고 면밀하게 정책화되어 차근차근 진행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의 생활화, 대중화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즉 소비의 주체가 되는 국민들의 폭넓은 공감과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도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의 경우 국민 누구나가 경복궁 내 박물관 기념품 숍이나 인사동의 상점 등 한정된 공간이 아닌 슈퍼마켓, 레스토랑, 학교처럼 가장 일상적인 장소에서 우리의 것을 보고 만질 수 있게 된다면 즐겁게 소비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애국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우리만의 독특함으로 문화교역 시대에 훌륭한 경제적인 효과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문양은 책 속에, 박물관 전시관 속에, 그리고 인사동의 전통찻집과 그 일대의 상점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한국으로의 첫 관문인 공항에서 조차 한국적인 것을 느낄 수 없다. 현대적인 외관과 어울리게 내부 역시 같은 컨셉으로 일관되게 디자인하였는지 몰라도, 공항은 그 특수한 장소가 내포하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외국의 여러 나라 사람들을 처음 우리나라로 맞이하는, 말하자면 오리엔테이션 공간이다. 동시에 우리나라를 마지막으로 느끼고 떠나는 최후의 장소이기에 한국을 알리는 강한 임팩트가 절실히 필요한 곳인 것이다. 전통기왓장으로 지붕을 올리고 흙으로 벽을 바르는 등의 고정화된 ‘소재→장소’의 규칙을 떠나 화장실 세면대에서 혹은 삼성, LG의 광고 프레임, 음식점의 안내판 등에서도 충분히 한국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너무 기능적인 방향으로만 디자인을 풀어나가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많은 이들이, 심지어 한국인들조차도 박물관 숍에 가면 돈을 들고서도 살 상품이 하나도 없어 안타깝다고 한다. 진열대 위의 많은 전통상품들이 완벽하게 전통을 고수한 것도, 현대 생활에 맞게 디자인, 기능적인 면에서 변형을 시도한 것도 아니어서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양새를 띠어 의도와는 달리 진열대 자체가 유물전시대로 탈바꿈해버린 느낌이다. 문제는 ‘전통적인’이라는 키워드를 고정된 시각으로 편협하게 해석하고 풀어나가는 데에 있다고 본다. 그 아름다운 조선 시대 쪽보자기의 기하학적인 공간 분할과 감탄할 만한 색채의 조합을 꼭 보자기라는 특정 상품에만 적용시키고, 수많은 궁의 대청에 칠해 있는 아름다운 색과 창호의 완자무늬를 대청마루에만 혹은 한옥 내부에서만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둘러보면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훌륭한 전통 문양과 색이 존재한다. 집집마다 하나쯤은 대대로 내려오는 도자기 속에도,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물려준 가락지나 반짇고리에도 놓치기 아까운 문양과 색채가 가득하다. 고정관념을 깨고 시각을 5도만 비스듬히 바꿔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담양의 대나무를 돗자리나 방석의 재료로만 보지 말고 그 자체로 훌륭한 스크린으로, 창호의 완자무늬나 아(亞)자 무늬를 따와 훌륭한 침대 헤드 보드로, 유명 사찰이나 궁의 현판에 쓰여 있는 서체를 한식당의 간판과 메뉴, 혹은 음식 포장지 위에, 단청의 화려한 색 조합을 포장지나 스카프에, 여러 민화에 나오는 귀여운 동식물 문양을 벽지 혹은 엽서로, 통영, 나주 소반의 다리 모양을 모티브로 쟁반, 테이블, 의자의 라인으로, 고려청자의 색과 질감을 조명 갓으로……. 한편에 전통문양과 색을 나열 하고 한편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여러 상품을 열거해서 어느 문양과 색채든 어떤 상품에도 접목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디자인을 변형, 적용시키면 서서히 전통문양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깨어나 확산되리라 확신한다. 문화예술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사람으로 일본의 모습은 실로 부러운 것이었다. 뜬금없이 남의 나라 역사를 자기네 것이라 우겨대는 중국을 두고 부랴부랴 고구려 관련 문화 행사나 책 출판이 기획되고, 고구려 다시 알기라는 운동 아닌 운동이 전개되는 요즈음, 우리의 생활 속에 진작부터 우리의 전통문화가 깃들어 있었다면, 1년 365일, 10년 3650일 동안 꾸준히, 마치 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이 저 아래 깊숙이 박힌 뿌리로부터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받듯, 우리도 5000년 넘는 긴 역사의 한 쪽 끝에서 옛 선조들의 여유로운 삶의 멋과 정신을 우리의 삶 속에 녹여냈다면 이렇게 당황하지도, 갑자기 역사를 되찾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도 않았을 텐데 하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전통문화는 우리의 역사적, 민족적 정체성을 확고히 해 줌과 동시에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켜주고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쓰이고 있다. 알면 알수록,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그 활용방안이 늘어날 이 소중한 자원을 더욱 더 대중화 시키는데 많은 기업, 언론, 국민의 동참이 절실한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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