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얼굴의 뉴욕 : 신보수, 예술 보통 가족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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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49회 작성일 10-10-1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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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살아 있다. 그것도 세 가지의 얼굴로 살아 있다.
뉴욕에는 눈요기를 할 수 있는 건물, 포스터, 디스플레이들이 즐비하다. 디스플레이도 예술이다. 예술만을 위한 예술이 아닐 뿐이다. 하나하나 감탄하면서, 들여다보면서 한 블록씩 천천히 걷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길게 맘먹고 도심지를 산책하려면 삶의 주머니 속에 시간을 하염없이 넣어 가지고 다녀야 하겠지만, ‘그저 그런 것들’을 보듯이 조금은 냉랭한 눈초리로 쉬엄쉬엄 혹은 슬슬 보면서 ‘별것 없네’ 하는 덤덤한 표정으로 뉴욕 시내를 지나치자면 시내 중심도로―이른바 현란한 네온사인이 있는 번화가 브로드웨이―는 끝에서 끝까지 천천히 걸어도 두어 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우리는 이국적인 맛과 멋을 풍기는 우리 이외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길이나 시장(市場)이나 도시나 국가에 대해서는 그 예외적인 모습을 일상적인 모습으로 착각하곤 한다. 보고 있는 그 순간의 자신의 기분이나 정서가 그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니,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풍광들을 내일 혹은 며칠 후에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서,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심리적 결과물일 수도 있다. ‘뉴욕은 예술이 살아 있는 도시이지. 예술적 얼굴의 뉴욕. 화려한 조명은 대단해. 박물관의 규모는 또 어떻고. 미국 상류층들이 살고 있다는 센트럴 파크 주변가의 맨션 가격이란?’ 등등. 이런 상식 아닌 상식들 때문에 고가의 세계 명품들이 진열된 거리인‘5번가’ 거리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는다. 게다가 뉴욕은 우리가 관객으로서 잠시 머물고 돌아와야 하는 곳으로, 엄밀히 말해서 우리의 현실은 아니다. 우리의 절실한 체감 범위 안에 있지 않다.
교회에 걸려 있는 성조기?
어찌되었든 뉴욕은 미국의 중심이다. 미국에는 중심이 많다.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등 나름대로 중심이 될 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뉴욕은 미국 예술의 중심만은 아니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월 스트리트가 있고, 세계의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국제기구로서 국제연합(UN) 본부도 있다. 뉴욕이 세계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라는 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뉴욕은 미국의 주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상징들을 충분히 보여 줄 만한 얼굴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주류 이데올로기란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신보수주의이다. 이 신보수주의적 얼굴이 뉴욕의 두 번째 얼굴이다. 신보수주의의 내용은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지 않다. 나라마다 보수해야 할 가치와 이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보수해야 할 혹은 버려야 할 역사적 유산들이 각 나라마다 다른 탓이다. 우리의 각자 삶의 역사가 다르듯이. 그러나 어떤 내력을 가진 삶의 여정이더라도 무시될 수 없는 것처럼 각 국가의 역사도 현재를 비추어주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신보수주의는 미국의 경제와 정치와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복지와 대외원조에 치우친 결과 나타난 내부 재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으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장자유주의의 강력한 복원을 시도하는 신보수주의!* 미국의 청교도 정신을 회복하려는 기독교 강화 정책들! 세계에서 유일한 강대국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한 근거로서 군사력 우위를 유지하려는 정치군사적 신보수주의! 뉴욕의 교회에 걸려 있는 성조기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적 얼굴을 대변한다. 신앙의 자유가 있는 민주 국가의 종교기관이 미국 국기를 휘날리고 있다는 사실은 사상과 종교와 양심과 문화에도 국적을 새겨 넣으려고 하는 국가주의적 발상의 일면인 것이다.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마치 미국을 위해서 기독교가 존재한다는 선언을 하는 것으로 교회의 성조기가 해석되었다. 즉 그 교회는 미국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국가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앙의 자유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표출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4년 전 9·11테러로 뉴욕의 무역센터 빌딩이 폭파당했던 그 기억으로 인해 미국인들이 좀 더 국가와 인종 개념에 집착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이 현실적인 국력을 측량하는 척도로서 군사력을 중시하는 신보수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게 된 것은 비록 1980년대부터였지만, 2001년의 9·11테러는 그 관점에 쐐기를 박아 준 셈이다. 미국의 신보수주의는 워싱턴의 펜타곤에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뉴욕의 한 중심가에 있는 교회의 성조기에서도 펄럭거리며 살아 있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살아 있는 도시 실감
뉴욕은 이러한 신보수주의적인 둘째 얼굴 외에도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보통 시민이 살아 있는 도시, 그 보통 시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들이 숨쉬고 있는 얼굴이 그 셋째이다. 뉴욕의 렉싱턴 가에 있는 한 문화시설에는 보통의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구비되고 있다.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모 되기’ 강좌, 6개월 미만의 아이를 동반하고 오는 문화시설 이용 고객을 위한 ‘수유’ 프로그램도 있고, 2년 미만의 아이들을 동반하는 고객을 위한 ‘베이비시터’ 프로그램도 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1년 미만의 아이들을 총괄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고, 2~5개월 미만의 어린이, 5~10개월 미만의 어린이, 10~13개월의 어린이 등으로 나누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쌍둥이를 둔 어머니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또한 미국은 가족 공동체가 붕괴되고 마치 핵가족을 넘어서서 자신 한 사람의 고립체가 가족을 대신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미국이 가족 공동체를 파괴하는 불량 국가인 것처럼 생각해왔지만, 이곳의 프로그램은 그러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체조,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체조 프로그램이 있다. 게다가 3세대가 함께 사는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할아버지와 손자의 요리교실’도 있다. 요리를 같이 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배우게 해준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그저 혈연으로 인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무조건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우리들의 방식인 무조건적인 공동체는 아닌 셈이다. 60세가 넘은 남성과 여성을 위해서는 문학, 합창, 브릿지 게임, 성인 초보자를 위한 피아노 교실, 데생, 조각, 도예, 요가, 토론 프로그램들이 기다리고 있다. 공동체로서 부모와 아이, 조부모와 아이, 부부 등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독신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홀로 안전하게 여행을 하고 싶은 여성과 남성을 위한 ‘싱글 여행’ 프로그램이 운영되기도 한다. 홀로 여행을 할 때 직면하게 되는 장애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 교육이 이루어진다. 물론 이들을 싱글에서 탈출시키려는 데이트와 대화 프로그램들도 주말에 마련되어 맥주와 함께 하는 데이트, 댄스와 함께 하는 데이트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문화기반시설에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러한 프로그램은 주로 경제적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결혼중매업체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비용이 높고,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직업교육 프로그램도 이 문화기반시설에서 운영한다. 보석세공과 보석감정을 목표로 하는 문화교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수시설에서나 학습할 수 있는 예술적인 직업교육이 일반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보통의 문화기반시설에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주목되는 점은 수강생들이 디자인한 보석을 촬영한 사진들이 게시판에 다양하게 걸려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창조한 작품들을 게시판에 자유자재로 게시하고 감상하는 것이다. 이런 시설들을 운영하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주인이고 이용하는 고객이 그야말로 손님인 우리네 현실과는 아주 다른 점이 있다. 즉, 우리의 문화기반시설은 일단 문을 들어서면 권위주의적 냄새가 난다. 고객을 위축되게 만든다. 문이 있고, 벽이 있고, 다시 문이 있어서 열고 들어가면 사각형의 교실이 있고 책상이 있다. 복도의 벽은 흰 페인트의 밋밋한 면을 밋밋한 줄도 모르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풍경이 우리에게는 아주 자연스럽다. 그만큼 우리는 성장론을 앞세운 발전적 심성을 갖고 경쟁 대열에서 오로지 앞으로, 앞으로만 외치는 삭막한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밋밋함을 밋밋함으로 느끼지 못한다.
성숙한 시민 될 수 있도록 문화 프로그램 으로 선도
뉴욕 렉싱턴 가의 이 문화시설 벽면은 게시판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게시판들은 문화시설을 이용하는 고객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공지사항이 A4지로 붙어 있는 것이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곳의 각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교실들은 대부분 고정되어 있다. 우리처럼 한 공간에서 이 프로그램도 하고 저 프로그램도 하고 책상을 뒤로 밀었다 앞으로 배치했다 하는 전천후 교실이 아니다. 그 고정된 문화교실의 문 밖에 커다란 게시판들이 있고, 그 게시판에는 소비자인 일반 뉴욕 시민들의 작품들이 다양한 형태로 붙어 있다. 전시되어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문화시설의 주인이 프로그램 운영 주체인 직원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직원들은 그야말로 지원인력이라는 점이 직원들의 얼굴에도 쓰여 있다. 신보수주의의 강력한 군사력,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기독교적 문화를 교육의 현장에 강화하려는 움직임 등 미국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제하는 폐쇄적인 비문화적 국가로 퇴보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반면 뉴욕의 보통의 문화시설들은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들도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직업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이들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시설의 벽면을 최대한 제공하고, 진정한 가족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부모, 조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프로그램, 결혼 권유 프로그램, 결혼하여 출산을 앞두고 부모가 되려는 부부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각 인생의 시기별로 적절히 배치하고 있어서, 보통의 시민들이 인생의 각 절기에 맞는 협력적 가치관과 실천력을 구비하여 미국의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선도하고 있다. 이것이 11월에 내가 본 뉴욕의 얼굴은 세 가지였다. 정치적인 얼굴 하나와 문화적인 얼굴 둘. 정치적인 신보수주의적 얼굴은 벤치마킹할 일이 없지만, 문화적인 얼굴 둘은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과 함께 비추어본다. 예술적인 얼굴, 보통 시민들이 주인인 문화기반시설과 성 평등과 진정한 가족 공동체, 독신도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훈련받을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들을 구비한 뉴욕의 얼굴을 닮아가야 하리라. ●
* 미국의 신보수주의와 보수주의는 시장과 경제의 자유를 보장하고 유지하려는 것이 공통점인데 비해, 보수주의는 시장과 경제의 자유를 보장하고 유지하는 주체가 시장과 개인 자신인 데 반해, 신보수주의는 시장과 경제의 자유를 보장하고 유지하는 주체가 시장과 개인이 아니고, 국가가 주체로 다시 개입해서 이미 복지정책에 의해 위축된 시장과 경제의 자유를 풀고 발전시키려는 점이 차이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신보수주의의 내용 중 경제적인 부문만을 언급하는 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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