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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 개성 : 개성시범관광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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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22회 작성일 10-10-1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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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개성시범관광은 짙은 어둠의 장막이 푸른 서광의 빛으로 교체되는 경복궁에서 시작되었다. 새벽 5시 30분까지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개성시범관광 비용은 19만 5000원이 아니라 택시비 2만 원을 더한 21만 5000원이라 생각하니 약간 아까운 감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서울시내에 살고 있으니까 택시비만 들었지 다른 지역에 사는 분들은 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하루를 숙박해야 하므로 숙박비와 식비 등을 더해야 한다. 이 정도의 금액은 당일관광비용으론 좀 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인 것 같았다. 이번 시범관광은 그렇다 치더라도 본관광 때에는 합리적인 관광비용의 책정으로 많은 남한 국민들이 재차 개성 방문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42-1.jpg당일관광에 복잡한 수속, 시간적 제약 뒤따라

6시 10분경에 경복궁 주차장을 출발해서 우리 측 CIQ에 7시 10분경에 도착하였다. CIQ를 빠져 나오니 약 7시 30분. 북쪽으로 향하는 통문은 8시부터 9시 사이에 열린다 하니 8시까지 그냥 기다려야 한다. 외국을 방문하는 것만큼 복잡한 출입국 수속에, 육로임에도 자유롭게 왕래하지 못하는 시간적 제약이 뒤따랐다. 남북한 간의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장애부터 하루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통문이 열리기까지 내내 들었다. 생태관광의 보고(寶庫)라는 비무장지대를 지나 간이시설로 된 북측 CIQ를 통과하니 아리따운 평양의 아가씨들이 남한에서 온 개성방문객들을 환영하였다. 유람선을 이용해 금강산관광을 다녀온 이래 네 번째인 북한관광에서 발견한 이전과 다른 점은 북측이 관광으로 인해 발생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한층 알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한의 방문객을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북측 판매원은 다소 연세가 있는 방문객들에게 선뜻 멋진 단장(短杖)을 무료로 선사한다. 단장을 마다하는 방문객들에게는 바로 예쁜 모자(帽子)를 선사한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여기서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돌아가실 때는 꼭 물건을 사달라고 청한다. 북한 특산품을 판매하는 현장은 이번 개성관광을 하는 동안 남한의 방문객이 버스에서 내려 관광하는 동안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오전 8시 40분경 북측 안내원 두 명을 태운 버스는 본격적인 개성관광을 시작하기 위해 움직인 버스는 100만 평 규모로 조성되는 개성공단지역을 지나 60,70년대의 조그마한 시가지 모습을 간직한 봉동을 통과하여 9시경에 개성 성균관에 도착하였다. 현재 고려 성균관은 1988년부터 개성부군에서 발굴하고 수집한 1만여 점의 유물들을 소장한 고려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국보급의 다양한 청자와 세계 최초라는 금속활자, 사면에 청룡·백호·주작·현무가 새겨진 검은 빛의 석관, 금동탑, 현화사 7층탑, 현화사비, 흥국사탑, 개국사 석등, 적조사 철불상, 돌로 만든 용머리 등 아름답고 희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감상하는 시간이 짧을 뿐만 아니라 안내 및 해설이 체계적으로 시행되지 않아 궁금증을 더욱 낳게 하였지만 본격적으로 개성관광이 시작되면 북측안내원의 구성진 해설이 남측관광객을 더욱 매료시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성이지만 북한 땅이구나!

10시 30분경 말로만 듣던 선죽교에 왔다. 고려 충신 정몽주(1337~1392)의 흔적은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화강암으로 축조된 선죽교는 길이 6.67m, 너비 2.54m의 아주 조그마한 다리이지만 그 역사적 의미로 조선의 영조(1740년)와 고종(1872년)이 포은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이곳을 찾아와서 거북조각을 한 거대한 기단석 위에 두 개의 표충비를 세웠다. 표충비의 두 개의 기단석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서 그 기상이 넘치는 것 같았다. 그 기상 때문인지 몰라도 거북이의 콧잔등을 쓰다듬어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콧잔등이 반질반질한 것을 보니 많은 북한주민들이 이곳을 다녀간 듯하다. 그 먼 세월 동안 서로 다른 체제에서 떨어져 살아와도 남아를 선호하는 우리 민족의 사상이 북한일지라도 변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거북이의 콧잔등을 만지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민족의 동질성을 조금이라도 찾아본다. 선죽교 인근에 있는 숭양서원은 정몽주의 집터에 지은 조선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숭양서원은 개성시내에 있기 때문에 아파트, 주택 등을 볼 수 있다. 해방 전 숭양서원 입구에 집이 있었다던 한 실향민은 그 당시의 지형과 마을의 모습을 설명해주면서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듯이 한참 동안이나 담 밖의 민가를 응시하였다. 아마 동심의 세계가 이 실향민의 머리 속에 그려졌으리라 생각하면서 담 밖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았는데 갑자기 북측 안내원 한 명이 나를 부르면서 방문 전에 찍은 사진을 좀 보자고 하였다. 그래서 금방 찍은 평범한 주변의 집 모습을 보여줬다. 그 안내원은 카메라의 액정 화면에 나온 두 장의 화면을 확인한 후 이를 삭제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면서 원래는 담 밖에 대해 사진을 찍으면 벌금을 매기고 카메라를 압수할 수도 있다면서 약간의 경고성 발언을 하였다. 그 순간 지금까지 다소 제한적이었지만 그래도 자유스럽게 느껴졌던 개성관광에 이미지가 통제와 억압 그리고 두려움이란 모습으로 엄습해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아, 여기가 개성이지만 북한 땅이구나. 흔히 말하는 관광의 본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떨떠름한 마음으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11시 40분경에 개성민속여관에 도착하였다. 이때 가랑비가 약간씩 흩날리기 시작하여 마음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버스에서 내려 한번 둘러본 개성민속여관은 약 40여 채의 한옥으로 구성된 전통여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옥으로 구성된 마을과 개천, 개천 위에 놓인 홍교형의 다리와 나무 그늘이 나의 마음을 환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12첩 놋그릇 반상기에 정갈하게 담겨진 개성음식들을 음미하고 나니 다시 나의 마음은 관광객 본연으로 돌아왔다. 조미료를 쓰지 않은 반찬은 담백하였고 맛도 있었다. 개성인삼이 유명하다 보니 인삼으로 만든 반찬도 있었고, 인삼주도 한 잔 그득히 담겨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개성에 와서 개성음식을 성대히 차려먹고 보니 그 포만감이 실로 지대하다. 개성시범관광 안내문에 적힌 점심식사비 2만 1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우리 테이블에 앉은 동행인들도 음식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였다. 이 점심식사를 가상적 가치추정법(CVM)으로 하면 과연 얼마에 매길 것인가? 갑자기 직업적인 궁금증이 도발하였다. 특급 호텔의 점심값이 소찬이라도 보통 3~4만 원 정도 하니까 아마 4만 원 정도 값을 매긴다고 하여도 괜찮지 않을까. 비싸게 느껴졌던 개성시범관광비용 19만 5000원이 이 점심식사 때문에 상당히 누그러지는 듯했다.


42-2.jpg말로만 듣던 박연폭포 보고 있자니

박연폭포. 서경덕, 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고 불리는 박연폭포는 성거산과 천마산 사이의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쳐져서 약 37m 정도의 병풍 같이 둘러쳐진 바위절벽에서 떨어지며 절경을 이룬다.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덟 폭 병풍이 둘러쳐진 가운데 황진이의 치마가 바람에 흩날리듯 가느다랗고 하얀 물타래가 풀어 헤쳐지면서 온몸을 감싼다. 폭포 아래 용바위 위에 올라서서 박연폭포의 기상을 보노라니 황진이가 머리채를 풀어 초서체로 일필(一筆)에 썼다던 이태백의 시 구절이 더욱 나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飛流直下 三千尺 擬視銀河 落九千 (비류직하 삼천척 의시은하 낙구천)

폭포수가 날아 삼천 척 아래로 떨어지니 마치 은하수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것 같이 보이는구나.


춤추는 황진이의 춤을 감상하려는지 박연폭포 앞의 넓은 바위 위에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북측에서 남측의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에 잔치상을 차린 것이다. 지지고 볶는 냄새가 계곡을 진동시킨다. 모두들 서화담이라도 되고 싶은 양 한 잔 술에 흠뻑 젖으면서 흥에 겨워한다. 이러한 모습은 1차 개성시범관광 때에는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이라 한다. 1차 시범관광 때 이곳을 찾은 남측 관광객들이 경치 좋은 이곳에서 약간의 음식을 먹게 해주면 더욱 좋겠다는 의견이 반영되어서 이렇게 잔치판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금강산관광에서 보지 못했던 북측의 재빠른 상술의 변화를 읽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박연폭포의 물은 고모담 옆 서쪽 기슭에 있는 범사정(泛斯亭)의 바위 아래를 돌아 오조천으로 내려간다. 범사정에서 박연폭포를 옆에 끼고 고색창연한 돌이끼가 가득한 바닥돌을 밟으면서 200m 쯤 올라가면 대흥산성 북문에 도착하고, 여기서 약 1㎞ 정도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관음사에 다다른다. 관음사는 고려 광종 21년(970년) 법인국사라는 스님이 현재 관음굴이라 불리는 굴 안에 관음보살상 한 쌍을 놓기 시작한 때부터 연유한다. 현존하는 대웅전은 조선 인조 24년(1646년)년 개?보수한 것으로 잘 다듬은 기단석 위에 자연석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배흘림 기둥양식을 사용하여 균형미를 강조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붕의 형태가 사찰건물의 지붕으로 흔하게 사용하지 않은 우진각 형태로 되어 있어 더욱 특이한 감을 갖게 하였다. 더욱이 지금까지 개성관광에서 보아왔던 그 은은함과 상반되게 꽃무늬와 격자무늬를 투각한 대웅전의 문과 불단 위의 닫집은 매우 화려하였다.


체험관광, 도시관광 가능한 그 날을 기다리며

개성시범관광은 개성공단의 현재와 미래를 확인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미래의 소망을 염원하면서 탑돌이를 하는 것처럼 버스는 가동 중인 개성공단을 한 바퀴 돌았다. 이 구간만큼은 버스 안에서 자유롭게 사진촬영이 허락되었다. 우리의 기술로 조성된 공단이기에 남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단의 모습이었지만 한 순간의 모습이라도 놓일세라 쉴 새 없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현재 2만 5000여평으로 개발, 운영되고 있는 공단이 100만 평으로 확장, 운영될 때 오늘 경험한 통제된 관광은 더욱 자유롭고 재미있으며 유익한 관광이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당일관광이 아니라 1박2일, 2박3일, 3박4일 아니 장기체제의 체험관광과 도시관광이 가능할 것이다. 남북한의 관광기업이 합작하여 개성의 특성을 반영한 기념품과 쾌적하고 매력 있는 다양한 관광상품이 개발될 것이다. 몽상에 젖어 복잡한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버스는 어느새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기 시작한 쭉 뻗은 자유로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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