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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세계를 묶다, 로리앙 범켈트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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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732회 작성일 10-10-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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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jpg 여름 프랑스 서쪽 끝 브르타뉴 지방에서 개최되는 로리앙 범(凡)켈트 페스티벌(Festival Interceltique de Lorient)을 해부할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매년 축제가 열리는 열흘 동안 5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면서, 현재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이다. 1971년 시작된 후 올해로 35회를 맞이한 범켈트 페스티벌은 켈트 국가 예술가들에게 가장 큰 연례행사이다.
매년 8월 약 4500명에 달하는 예술가들이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항구 로리앙(Lorient)으로 몰려드는데, 그 속에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일 드 만(Ile de Man), 코르누아이유, 아스투리아스, 갈리시아, 브르타뉴를 비롯한 전 세계 예술가들이 골고루 섞여 있다. 로리앙 페스티벌은 지방자치제 차원에서 무수한 축제를 벌이고, 또 준비 중인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행사를 참관하면서 느낀 바를 간략하게 정리하자고자 한다.

1. 로리앙 시의 인구는 7만, 인근 도시 인구까지 포함시키더라도 15만 명에 불과하다. 소규모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10일 동안의 축제 기간에 시 인구의 7~8배에 달하는 방문자를 매년 끌어들인다는 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문화정책 관련한 저서가 인구 7만 명의 도시부터 축제를 도모하기 시작한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놀라운 사항이 아니겠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축제를 주목하고 있는 측면에서는 부러움이 적지 않다. 무수한 사람들이 로리앙을 찾는 이유는 행사가 제공하는 양질의 프로그램에서 기인하지만, 일사불란한 행정체계 역시 좋은 해답이 된다.
행사 성격은 음악 위주의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켈트 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문화제에 오히려 가까웠다. 예를 들어 ‘Club K’가 전 세계에서 이 행사를 찾는 정치인, 경제인들을 위한 만남의 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반면, 포구에 따라 설치된 부스에서는 도서 판매, 미술품 판매, 행사 참가국들의 관광안내소, 켈트 관련 기념품 판매대가 빠짐없이 들어서 있다. 다시 말해 행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켈트 문화에 대한 총체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 행사의 성공은 홍보 전략에서도 기인한다. 브르타뉴 지방에 국한된 축제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페스티벌 측에서는 1993년부터 파리에서 ‘성(聖) 파트릭 데이’를 개최하면서 켈트 음악에 대한 붐을 조성하는데, 현재 이 행사는 2만 명이 공연장을 찾는 거대한 규모로 발전했다.
또 주최 측은 프랑스인들의 켈트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무지에 가깝다는 점에 착안하여 1990년대 초에 《렝테르셀티크(L'Interceltique)》라는 매거진을 창간한 후 중앙에 소재한 언론사 및 파리 소재 각 기업체의 간부들에게 1년에 두 번씩 발송하고 있다. 잡지 속에는 켈트 문학, 역사, 음악, 미술 등 다채롭고도 격조 있는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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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공을 거두기 위해 무작정 수도 파리로 상경하는 브르타뉴 지역 음악인들을 잡아두려는 노력 역시 로리앙 페스티벌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축제는 연중 수천 명의 음악가들을 양성하는 학교들을 활성화시켰으며, 그를 통해 배출된 양질의 음악인들이 자신의 음악 세계를 표출해낼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브르타뉴 지역에서 배출된 얀 티에르센(Yann TIERSEN, 영화 <아멜리에> 영화음악 담당), 드네즈 프리장(Denez PRIGENT), 디디에 스키방(Didier SQUIBAN) 같은 음악인들은 오늘날 가장 브르타뉴적인 동시에 가장 세계적인 음악인이 되었다. 또 켈트 음악 및 문학을 체계적으로 보급하려는 시도는 렌에 소재한 ‘켈티아 뮤직’ 사를 통해 본격화되고 있다.


4. 축제를 치르는 공간은 기존의 시설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유명 음악인들의 콘서트가 주로 열린 장소는 별도로 마련한 공연장이 아니라 케르바릭(Kervaric) 스포츠센터다. 또 경기장, 포구(浦口), 상공회의소 건물 등 건축미학적으로도 평범한 시설들이 모두 가동되고 있었고, 부족한 공연 관련 시설들은 가설무대나 부스가 보완한다. 어떤 의미에서 2차대전 당시 건물의 93%가 파괴되었다는 로리앙 시는 도시의 하드웨어적인 측면보다 소프트웨어적 측면을 통해 장소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5. 로리앙 페스티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행사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행사가 1971년에 시작되어 이미 35년째를 맞이했을지라도, 로리앙 페스티벌은 켈트 문화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축제의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문화적 정체성 차원에서 아직도 그 연계 고리가 미약하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및 프랑스 브르타뉴 사이의 네트워크가 공식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것은 로리앙 페스티벌과 더불어서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캐나다의 아카디아, 호주 및 뉴질랜드, 심지어 일본을 아우르는 쪽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악기를 행사에 도입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마치 화교권(華僑圈)이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듯 켈트 민족들은 이 행사를 통해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역사를 뛰어넘어 하나됨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축제에도 충분히 세계적 시각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연장되었다. 다시 말해 전 세계에 골고루 산재해 있는 한민족을 아우르는 문화 행사나, 아시아 음악제 같은 것을 통해 아시아인들의 정체성을 묶으려는 시도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비록 형태는 변질되었을지라도 재외 동포들이 산출해내는 문화의 모습은 얼마나 다채로운가?
타국에서 표출되는 한민족의 제 문화를 포용하는 일은 우리 문화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한반도에 국한되는 우리의 심리적, 물리적 지평을 확대시키는 일임에 틀림없다. 또 그러한 확대된 지평에서 바라보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이 우리 문화를 더욱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6. 켈트 정체성을 하나로 묶고, 그것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작업에는 필연적으로 전략이 가미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페스티벌에서 관의 역할은 기술 지원 등 우회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방문 후 확인한 바로는 로리앙 시청이 페스티벌 운영을 전적으로 조직위원회에 일임하고 있었다. 시와 조직위원회 사이의 관계가 적대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관의 지나친 개입이 종종 페스티벌을 파행으로 몰고 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방식이 바람직해 보였다. 또 하나의 페스티벌이 장기적으로 자구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그러한 방식은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로리앙 페스티벌의 예산은 40억 원 정도이지만, 자체 예산 비율이 75%에 달하는 데다가 그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공공보조금 비중이 24%이고 그 중 23%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액으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유럽연합의 문화지원 프로그램인 ‘칼레이도스코프’가 총 예산의 1%를, 프랑스 정부가 0.4%를 지원하는 데 그칠 정도로 페스티벌이 정부 및 유럽연합에 기대는 바도 거의 없다. 올해의 경우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 항공이 유일하게 로리앙 페스티벌의 스폰서로 참가했는데, 페스티벌 측은 오히려 다양한 파트너십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로리앙 페스티벌은 지역 정체성의 확보, 관민 협력, 축제 성공에 대한 지역주민의 의지, 장-피에르 피샤르를 위시한 조직위원회의 노력, 행사에 참가하는 각 국가간의 유기적 협조, 이익을 따지기 이전에 행복권을 우선시하는 프랑스인들의 사고 등 이 모든 것이 행복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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