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 아닌 관광.문화의 도시 주식회사 모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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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72회 작성일 10-10-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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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브륀 카프 마르탱을 떠나 모나코로 가는 차 안에서 독서와 여행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서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은 것 같다. 여행은 세계라는 큰 책을 몸으로 부딪치면서 읽는 독서 행위이다. 물론 여행은 몸으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정독을 하듯 마음으로 느끼고 관조하며 명상과 기도를 통해 온 마음을 열어야 여행의 의미는 더욱 깊고 새로울 수 있을 것이다.
독서를 통해 삶의 지평을 넓히고 사색의 의미를 되새기고 정신적 성숙을 키워가듯 여행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터득해가고 문화의 속살을 들여다봄으로써 많은 체험과 정신적 에너지, 그리고 영감과 활력을 얻는다.
독서를 통해서나 여행을 통해서나 우리는 역사와 문화, 삶의 현장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지식, 낯선 도시와 자연과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진정 여행을 통하여 마지막에 만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성찰이며 자기와의 사색인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씀으로써 독서가 마무리 되듯 여행도 여행기를 정리함으로써 완성된다는 점에서도 독서와 여행은 그 맥을 함께한다. 독서가 없다면 우리의 영혼이 삭막하고 메마르듯 우리 삶에 여행이 없다면 그것은 정지된 삶이나 다름없다. 여행을 꿈꾼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일인가? 얼마나 우리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가?
우리가 보다 의미 있고 감동적으로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역사·문화·지리적 환경, 자연과 자연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그곳 사람들의 생활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여행은 보다 의미 있고 즐겁고 가치 있는 여행이 된다. 문화적 체험, 문화적 감동 없는 여행은 빈껍데기 여행에 불과하다. 문화라는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았을 때, 무덤덤했던 풍경이, 침묵하던 도시와 마을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풍경으로 걸려 있던 미술관, 박물관의 예술작품이 의미 있는 미소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이러한 면에서 모나코 여행은 모나코라는 특별한 도시국가의 도시사(都市史), 즉 모나코라는 작은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알아야 바로 볼 수 있고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나코를 단순히 유럽에 소문난 고급 휴양지나, 유럽의 도박 중심지, 또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레니에 Ⅲ세와 할리우드의 인기 스타 그레이스 켈리의 세기적 로맨스 정도로만 머리에 담고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나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상의 세련된 문화와 예술이 있고 국제 비즈니스와 무역으로 활기 넘치는 도시이며, 스포츠 이벤트, 다양한 문화·예술축제와 문화 인프라, 컨벤션 산업이 이 도시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제로 이 도시에서 카지노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세입의 4~5%에 불과하며 관광산업의 내실화와 무역업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한 문화·스포츠 분야의 메가 이벤트를 더욱 활성화하여 미래의 모나코 관광산업과 경제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도시의 이미지도 업그레이드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는것이다.
작고도 큰 나라 모나코
그러면 모나코의 현황과 도시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모나코의 공식 명칭은 모나코 공국(Principaute’ Monaco)로 코트 다쥐르의 중심 도시인 니스에서 서쪽으로 18㎞, 동쪽의 이탈리아 국경으로부터 8㎞ 떨어진, 북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구릉지대의 바위산과 해변가에 위치해 있다.
모나코의 면적은 1.95㎢(참고 : 파리 시 면적 105㎢, 서울특별시 605.5㎢, 뉴욕 시 787㎢)로 뉴욕의 센트럴파크 면적 보다도 작다. 바티칸시티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며, 독도의 9.8배 크기이다. 인구는 32만 명, 인구밀도는 1만 6700명이다. 종교는 가톨릭(국교)이며 프랑스 인(47%), 이탈리아 인(16%), 모나코 인(16%)으로 구성되어 있다. GDP는 10억 달러, 국민1인당소득은 3만 달러에 가깝지만 세금은 전혀 없는 천국(?)이다. 연간 국가예산은 6억 달러 정도 통화는 유로를 사용한다.
이처럼 모나코는 작은 나라지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휴양지이자, 리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고급 리조트와 호화 호텔로 국제적 명성이 높다. 유럽의 카지노의 중심으로 지중해에서 마리팀 알프스 산맥의 툭 튀어나온 기슭에 있는 내안 절벽까지 고층 호텔과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다.
잠깐 모나코의 역사를 살펴보자. 고대에는 페니키아 인이 최초로 진출했으며 그 후 그리스인들의 정착지였다가 로마인들에 의해 통치를 받았고 1524년에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1641년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1861년 독립하였다. 1911년에는 제노바 인에 의해 다시 점령되어 요새를 구축하는 등 많은 수난을 겪기도 했다(《세계연구 2》,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편)
모나코는 1297년 제노바의 명문 그리말디(Grimald) 가의 영지가 된 후 7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1524~1641년을 제외하고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프랑스의 보호를 받고 있다. 현재도 방위는 프랑스가 책임을 지고 있어 방위 예산이 없다. 그러다가 1793년 프랑스 혁명 정부가 그리말디 가를 추방하고 모나코를 프랑스에 합병시켰다. 그러나 나폴레옹 Ⅰ세의 몰락과 함께 다시 독립을 되찾고 1815년 사르데냐 왕국의 보호 하에 놓였으며, 1888년 다시 프랑스에 영토를 빼앗겨 나라가 크게 축소되었으나 1861년 체결된 프랑스-모나코 조약에 의거해 다시 독립국가로 부활하는 등 험난한 역사를 거쳤다. 최근에도 국민회의 해산(1959), 소득세 부과 문제(1962) 등으로 프랑스 정부와 충돌, 관계가 악화되는 등 험난한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레니에 Ⅲ세의 노련한 정치 수완으로 합병 위기를 잘 버텨왔다.
그러나 1918년 프랑스와 체결된 조약에 의하면 그리말디 왕가의 대가 끊길 경우 모나코 공국은 프랑스에 합병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모나코를 통치하고 있는 알베르 공이 50세가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신이어서 앞으로 모나코가 프랑스에 합병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모나코는 몬테카를로(Monte-Carlo), 모나코 빌 등 6개 지구로 나뉘어 있다. 그 중가장 번화하고 관광지로 유명한 지구는 몬테카를로와 모나코빌 지구이며, 최근 신항만 개발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풍비에이유(Fontvieille) 지구에도 볼 만한 것이 많다.
몬테카를로는 그랑 카지노(Grand Casino), 국제회의장(Centre de congre´s Auditorium), 국립인형박물관, 국제스포츠클럽, 몬테카를로 팔라소테라피, 고급 호텔, 고층 아파트 등이 밀집되어 있으며 그랑 카지노 안에는 오페라 극장이 있다.
일본정원(Jardin Japonais)에서 마르탱 해변으로 이어지는 해변 산책로인 그레이스 왕비거리(av. Princess Grace)는 경관이 아름다워 산책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모나코 빌 지구는 대공궁전, 역사박물관, 모나코 박물관, 모나코 역사박물관, 해양학박물관과 수족관, 법원, 시청사 등이 모여 있어 문화와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하얀 모래사장,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잘 어울리는 경관이 뛰어나 바다에 인접해 있는 해양학박물관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의 모습을 아름답기 그지없다.
풍비에이유 지구는 경공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최근에는 활발한 항만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레니오 대공 클래식카 컬렉션(Collection de Voitures Anciennes de S.AS le Prince de Monaco), 선박박물관(Muse´e Naval), 우표와 동전 박물관과 풍비에이유 쇼핑센터 등 부티크와 현대식 상가가 많아 모나코의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볼거리도 많고 운치도 있다.
(주)모나코 CEO의 치밀한 비지니스 전략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Dubai)의 개발계획이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4개인 인공섬 개발(52.51㎢), 두바이랜드(디즈니랜드의 8배), 버즈 두바이(세계 최고의 빌딩), 버스 알 아랍(최고급 호텔), 제 벨 알리 국제공항 신축 등 ‘사막 속 맨해튼’을 건설하여 세계 관광·금융·비즈니스의 허브로 육성하려는 야심 찬 계획이 성공리에 추진되고 있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지만 이러한 프로젝트의 원조는 모나코가 아닌가 생각한다.
1856년 샤를 Ⅲ세가 쓸모없는 바위산에 그랑 카지노를 세워 황량한 몬테카를로를 아름다운 휴양도시로 만들고, 그 후 레니에 Ⅲ세 등이 침체에 빠져 있던 모나코를 다시 관광산업의 부흥 등을 통해 부국으로 만든 것은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요즘 말하는 끊임없는 블루오션 전략이 성공적 수익 모델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나코가 오늘 날 같이 높은 소득과 세계적인 관광 부국이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레니에 Ⅲ세(Rainier Ⅲ, 1949~2005)는 60여년간 모나코를 통치하면서 즉위 다음 해인 1950년도에는 세계 F1 그랑프리인 몬테카를로 국제자동차경주대회를 창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제서커스축제, 국제불꽃축제, 모나코국제축제(모나코 기념일, Fe´te Naionale Mone´gasgue, 11월 19일), 국제경주대회, 국제적인 발레 및 음악축제 등 문화·스포츠 분야의 메가 이벤트를 개발하는 한편, 최고 수준의 탈라소테라피(해수를 이용한 제트 샤워, 마사지 등 심신치료 방법)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또한 해저관광, 산레모 등과의 페리호 운항을 관광산업과 연계시키는 한편, 생트디보트 축제(st. De´vot, 1월 27일), 모든 성인들의 축제(Toussaint, 11월 1일), 로마 가톨릭 축일 등을 문화상품화하여 축제화하고 일본정원, 이국정원, 그레이스 왕비정원과 같은 작지만 아름답고 인상적인 문화·관광 분야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레니어 Ⅲ세가 할리우드의 최고 스타 그레이스 켈리와의 세계적인 로맨스, 그리고 화려한 결혼도 전 세계에 모나코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최고의 홍보 전략이었으며 세계적인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경쟁관계, 히치콕 감독과의 친분 등도 그의 타고난 쇼맨십이자 주식회사 모나코의 CEO로서 탁월한 비즈니스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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