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속의 유럽 상트 페테르부르그, 그 대동맥 넵스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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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693회 작성일 10-10-1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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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야, 수많은 운하와 다리 그리고 아름다운 건축물 등으로 널리 알려진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그가 위치한 곳은 광활한 러시아 영토의 최서단.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세상에서 가장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도시"라고 정의한 이 인공도시는 맨 처음에 피터-폴 요새의 건축에서 출발하여, 곧게 뻗은 거리, 광장, 궁전, 정원, 높은 첨탑, 동상 그리고 운하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문화공간을 형성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자연스럽게 성장한 모스크바와 달리 인공도시 상타 페테르부르그의 건축과 토목 계획의 기본원칙은 철저한 합리성에 기초하고 있었다. 예상치 않게 막다른 골목으로 끝나는 것이 모스크바의 길이라며, 상타 페테르부르그의 모든 도로는 직선으로 뻗어 있으며 항상 다른 도로와 연결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에서 가장 유럽적인 특징이 강한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중심가는 다름 아닌 넵스키거리이다. 해군성 건물에서 시작해서 알렉산드르 넵스키 수도원에 이르는 총 연장 4.5㎞의 이 직선대로는 러시아 문화와 예술의 혼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거리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넵스키거리는 과거 러시아 제국의 정치, 경제, 군사 그리소 문화분야의 모든 에너지가 응축된 공간이었다. hr이 최소 25m에서 최대 60m에 달하는 이 훤하게 뚫린 길 양편으로 수많은 정부기관, 궁전, 상점, 박물관, 교회 등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채살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넵스키거리와 다른 주요 도로들이 서로 만나는 접점에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대표적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해군성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1704년에 건설된 후 19세기 초 러시아의 유명한 건축가 자하로프가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완성한 이 건축물의 첨탑은 우리가 시내 어느 곳에 있더라도 서 있는 곳의 위치와 방향을 알 수 있는 도시의 좌표 역할을 하고 있다.
최초에는 해군본부 및 조선소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해군대학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이 위풍당당한 건물의 첨탑 끝에는 돛단배 모양의 순금제 풍향제가 달려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시의 상징적 문장이 되다시피 한 이 ?ㅄ炳兀? 핸군력을 증강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국력 신장을 도모하려던 제정 러시아의 군사력 강화 노력과 외국과의 활발한 문화교류를 원했던 러시아의 개방 성향을 암시하고 있는 조형물이다.
현재 넵스키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건축물들은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저명한 이태리 및 러시아 출신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된 것들이다. 특히 라스트렐리, 몽페랑, 로시 등이 상트 페테르부르그시의 외관을 로마풍의 고전양식응로 통일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여러 나라 출신의 외국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던 국제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넵스키거리는 가히 종교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다양한 종교 및 교파에 속하는 사원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넵스키거리를 걷다 보면 러시아 정교회 사원은 물론 이 아르메니아 정교회, 루터 교회, 불교 사원, 회교 사원, 유태교 사원 등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교회 건물은 넵스키거리와 그리보에도프 운하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웅장한 자태의 카잔 성당이다. 1801년부터 1811년 사이에 건축가 보로니힌에 의해 완성된 이 대규모 성당은 이태리의 플로렌스에 있는 교회 건축물의 외관은 본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핀란드 산 대형 돌기둥과
화려한 문양의 대리석으로 장식한 바닥 그리고 탁월한 솜씨의 벽면 부조 등과 같은 실내장식도 유명하거니와 카잔 성당 입구 오른편에 있는 나폴레옹 전쟁의 영웅 쿠투조프 장군의 묘지도 이 성당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종교활동이 탄압받고 금지당하던 소비에트 시대에는 무신론을 선전하기 위한 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된 아이러니컬한 과거를 지니고 있는 이 카잔성당은 러시아 정교회 부침의 역사를 목격한 산 증인인 셈이다.
넵스키거리와 그리보에도프 운하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1883년부터 1907년 사이에 건설된,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러시아풍의 교회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1881년 3월 1일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에 의해 살해된 장소에 세워진 이 사원의 명칭은 '피 위에 세워진 구세주 사원'이다.
화가 네스테로프와 바스네초프의 벽화로 건물 외벽과 내부를 장식한 이 사원 건물이 왠지 상트 페테르부르그 풍경 속에서 더욱 쓸쓸해 보이는 것은, 러시아 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던 해방 군주 알렉산드르 2세가 맞이한 비극적 죽음 때문은 아닐까?
그리보에도프 운하 근처를 걷다 보면 모던풍의 철제 조각으로 지붕이 장식된, 시내에게 가장 큰 서점 '책의 집'이 당당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원래는 미국의 유명한 싱거 미싱회사가 11층 건물을 지으려고 계획했었는데, 황제의 동궁보다 더 높은 개인 소유 건물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당시의 관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추어 지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러시아 최초의 철골구조 건물로 기록되어 있는 '책의 집'은 1917년 혁명 이전에 외국 자본이 러시아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주목할 만한 역사적 유물로 남아 있다.
그외에 관심을 갖고 살펴볼 필요가 있는 상가 건물로는 18세기 후반에 건설된 시내 최대의 상가 건물 고스찌느이 드보르와 20세기 초에 세워진 시내 최고의 식료품 가게 엘리세예프 상점을 들 수 있다. 특히 파격적인 실내장식으로 페테르부르그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엘레세에프 식료품전 2층에는 유서깊은 코메디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식료품점 바로 옆 폰탄카강을 가로지르는 아니치코프 다리의 네 모서리에는 1841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조각가 클로트가 완성한, 젊은 청년이 말을 길들이는 생명력 넘치는 조각품이 멋진 조형미를 연출하며 서 있다. 제2차 세계대전중 이 도시가 독일 공군의 폭격을 받게 되자 클로트의 조각품이 손상될 것을 우려한 시민들이 이 조각품을 다리에서 분리하여 땅 속 깊이 묻어 두었다가 다시 세워 놓았다는 이야기는 아니치코프 다리의 조각품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숙연하게 만든다.
넵스키거리의 맨 끝에 도달하면 18세기 초 피터대제의 지시에 따라 트레시니가 설계한 알렉산드르 넵스키 수도원이 있다. 1240년에 러시아의 넵스키공이 스웨덴 세력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그 전투 장소에 세워진 이 수도원은 중심 건물인 성 삼위일체 사원,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 묘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8세기 묘역과 19세기 묘역의 두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는 널찍한 수도원에 들어서면 도스토예프스키, 글린카, 무소로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보로딘, 차이코프스키, 루빈슈타인 등등 일일이 헤아릴 수조차 없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 문화예술계 거장들의 묘지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대동맥 넵스키거리. 그곳에 가면 18세기 초 이후부터 서구 문물을 활발히 받아들이면서 세계적 수준의 고유문화를 탄생시킨 러시아 문화의 살아있는 맥박과 호흡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소비에트 시대에 들어서면서도 이 도시가 러시아 제2의 지방도시로 전락해 버렸고 모든 분야에서 모스크바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약간은 한가해 보이는 넵스키거리의 외관만 보고 판단하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넵스키거리 건물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역사적 의미와 미학적 가치,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이 도시 사람들의 전통을 사랑하는 태도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문화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위상을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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