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러시아, 그 진앙지 '붉은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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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722회 작성일 10-10-1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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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크렘린 궁을 에워싸고 있는 여러 개의 순환도로가 원을 그리며 외곽으로 계속 확장되어 나가며 발전한 소위 말하는 방사선 도시이다. 이 방사선 도시의 최중심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바로 러시아의 심장 크렘린 궁이다.
붉은 광장이란 이 크렘린 궁 동북쪽 성벽에 면한 직사각형 모양의 널따란, 돌로 포장된 공간을 일컫는 명칭이다.
처음에는 그곳에 시장이 들어섰다고 해서 ‘토르그’라고 불리던 이곳이 붉은 광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7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 당시 ‘붉은’이라는 표현에 정치적 의미는 전혀 없었고 그저 ‘아름답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아름다운 붉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크렘린 궁 동북쪽 성벽과 평행선을 이루며 서있는 길이 200m 가량의 3층 건물인 굼(직영백화점), 하늘을 향한 불꽃모양의 돔을 가진 성 바실리성당, 그리고 붉은 벽돌로 지은 역사박물관 등이다.
광장의 실제 크기는 폭이 100m, 길이가 400m 쯤 되지만, 무슨 까닭인지 붉은 광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광장의 실제 면적보다 몇배나 더 넓은 공간에 서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크렘린 궁 성체 곳곳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탑들과 성 바실리 성당의 위용도 그렇지만, 붉은 광장이라는 러시아 역사의 진앙지가 담지하고 있는 무거운 상징적 의미가 우리를 압도해 오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는 황제가 러시아 국민을 향해 칙령을 발표하고, 러시아 정교회 축일에 다양한 종교행사가 열리던 정치적, 종교적 중심 공간이었던 붉은 광장은 역사적 흐름과 함께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러시아 고유의 교회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성 바실리 성당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각기 다른 모양의 돔을 가진 모두 9개의 교회 건물이 하나의 건축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몽고 세력의 지배하에 있던 카잔지역을 정복하여 러시아 영토로 편입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건축한 이 성당은 한 러시아 전제군주의 포악한 성격의 일면을 보여 주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이 성당의 건축을 명한 이반 4세는 1561년 공사가 끝난 후 성 바실리성당의 아름다움에 탄복한 나머지, 이와 똑같은 교회가 다시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건축물의 설계자 두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 바로 그 전설의 내용이다.
성 바실리성당 앞에는, 러시아의 국운이 쇠퇴했던 17세기초 폴란드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니즈니 노브고르드 출신, 시민 미닌과 포자르스키 두 사람을 기념하는 동상이 서 있다. 원래 붉은 광장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이 동상은 1936년 크렘린 궁 성벽 중앙에 대리석으로 된 레닌의 묘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
1924년에 사망한 혁명가 레닌은 자신의 시체를 땅속에 매장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지만, 그의 뜻과는 달리 스탈린을 비롯한 당시 소련의 지도자들은 정치적 목적에서 레닌의 우상화 작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곳에 시장이 들어섰다고 해서 ‘토르그’라고 불리던 이곳이 붉은 광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7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 당시 ‘붉은’이라는 표현에 정치적 의미는 전혀 없었고 그저 ‘아름답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아름다운 붉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크렘린 궁 동북쪽 성벽과 평행선을 이루며 서있는 길이 200m 가량의 3층 건물인 굼(직영백화점), 하늘을 향한 불꽃모양의 돔을 가진 성 바실리성당, 그리고 붉은 벽돌로 지은 역사박물관 등이다.
광장의 실제 크기는 폭이 100m, 길이가 400m 쯤 되지만, 무슨 까닭인지 붉은 광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광장의 실제 면적보다 몇배나 더 넓은 공간에 서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크렘린 궁 성체 곳곳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탑들과 성 바실리 성당의 위용도 그렇지만, 붉은 광장이라는 러시아 역사의 진앙지가 담지하고 있는 무거운 상징적 의미가 우리를 압도해 오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는 황제가 러시아 국민을 향해 칙령을 발표하고, 러시아 정교회 축일에 다양한 종교행사가 열리던 정치적, 종교적 중심 공간이었던 붉은 광장은 역사적 흐름과 함께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러시아 고유의 교회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성 바실리 성당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각기 다른 모양의 돔을 가진 모두 9개의 교회 건물이 하나의 건축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몽고 세력의 지배하에 있던 카잔지역을 정복하여 러시아 영토로 편입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건축한 이 성당은 한 러시아 전제군주의 포악한 성격의 일면을 보여 주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이 성당의 건축을 명한 이반 4세는 1561년 공사가 끝난 후 성 바실리성당의 아름다움에 탄복한 나머지, 이와 똑같은 교회가 다시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건축물의 설계자 두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 바로 그 전설의 내용이다.
성 바실리성당 앞에는, 러시아의 국운이 쇠퇴했던 17세기초 폴란드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니즈니 노브고르드 출신, 시민 미닌과 포자르스키 두 사람을 기념하는 동상이 서 있다. 원래 붉은 광장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이 동상은 1936년 크렘린 궁 성벽 중앙에 대리석으로 된 레닌의 묘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
1924년에 사망한 혁명가 레닌은 자신의 시체를 땅속에 매장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지만, 그의 뜻과는 달리 스탈린을 비롯한 당시 소련의 지도자들은 정치적 목적에서 레닌의 우상화 작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곳에 시장이 들어섰다고 해서 ‘토르그’라고 불리던 이곳이 붉은 광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7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 당시 ‘붉은’이라는 표현에 정치적 의미는 전혀 없었고 그저 ‘아름답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아름다운 붉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크렘린 궁 동북쪽 성벽과 평행선을 이루며 서있는 길이 200m 가량의 3층 건물인 굼(직영백화점), 하늘을 향한 불꽃모양의 돔을 가진 성 바실리성당, 그리고 붉은 벽돌로 지은 역사박물관 등이다.
광장의 실제 크기는 폭이 100m, 길이가 400m 쯤 되지만, 무슨 까닭인지 붉은 광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광장의 실제 면적보다 몇배나 더 넓은 공간에 서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크렘린 궁 성체 곳곳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탑들과 성 바실리 성당의 위용도 그렇지만, 붉은 광장이라는 러시아 역사의 진앙지가 담지하고 있는 무거운 상징적 의미가 우리를 압도해 오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는 황제가 러시아 국민을 향해 칙령을 발표하고, 러시아 정교회 축일에 다양한 종교행사가 열리던 정치적, 종교적 중심 공간이었던 붉은 광장은 역사적 흐름과 함께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러시아 고유의 교회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성 바실리 성당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각기 다른 모양의 돔을 가진 모두 9개의 교회 건물이 하나의 건축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몽고 세력의 지배하에 있던 카잔지역을 정복하여 러시아 영토로 편입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건축한 이 성당은 한 러시아 전제군주의 포악한 성격의 일면을 보여 주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이 성당의 건축을 명한 이반 4세는 1561년 공사가 끝난 후 성 바실리성당의 아름다움에 탄복한 나머지, 이와 똑같은 교회가 다시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건축물의 설계자 두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 바로 그 전설의 내용이다.
성 바실리성당 앞에는, 러시아의 국운이 쇠퇴했던 17세기초 폴란드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니즈니 노브고르드 출신, 시민 미닌과 포자르스키 두 사람을 기념하는 동상이 서 있다. 원래 붉은 광장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이 동상은 1936년 크렘린 궁 성벽 중앙에 대리석으로 된 레닌의 묘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
1924년에 사망한 혁명가 레닌은 자신의 시체를 땅속에 매장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지만, 그의 뜻과는 달리 스탈린을 비롯한 당시 소련의 지도자들은 정치적 목적에서 레닌의 우상화 작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아름답다고 해서 붉은 광장으로 불리던 이 광장은 러시아 역사의 격변기마다 그 위에 피가 뿌려진 투쟁과 혁명의 공간이기도 했다. 18세기 초 러시아를 서구식으로 개혁하기 위해 사회 전반에 걸친 혁명적 변화를 추구했던 표드르 대제가 반대세력을 공개 처형했던 곳이 크렘린 궁 담장 옆 붉은 광장이었으며. 에카데리나 2세 시대 러시아 남부지역에서 농민반란을 일으킨 스텐카 라진이 참수형을 당한 곳도 바로 여기였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후 국제 정치 무대에서 위상이 강화된 소련이 막강한 군사력을 국내외에 과시하는 퍼레이드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사회주의 승리를 외치며 화려한 메이데이 축제를 열던 곳도 붉은 광장이었다.
화강암 조각으로 포장된 붉은 광장 이곳 저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노라면 곳곳에서 러시아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있다. 850여년전 시작된,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러시아 국가 건설 역사의 중요한 순간 순간들이 모두 이 붉은 광장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크렘린 담장 옆 혁명가 묘역을 둘러보면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리드의 무덤도 눈에 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 관한 고전적 기록문학 작품인 『세계를 뒤흔든 10일』을 남긴 이 유명한 미국의 사회주의자는 도대체 어떤 연유로 붉은 광장 옆에 묻히게 되었을까?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소련이 과거에 누리던 공산세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던 1990년대초 어느 해에는 독일의 어떤 젊은이가 조종하는 경비행기가 경비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붉은 광장에 소련의 방공 레이다 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뿐히 내려 앉은 사건이 발생했다.
철의 장막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전세계를 향해 다시 한 번 확인 시켜준 이 시대의 해프닝이 일어난 곳 또한 격동하는 러시아 역사의 진앙지인 이 붉은 광장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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