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 도시를 위해 노력하는 동방의 진주-중국 대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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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78회 작성일 10-10-1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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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요령(遼寧)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대련(大連)시는 인구 540만, 면적 12만5천㎢의 연해 개방도시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해산물이 풍부하고 볼거리가 많은 관광도시이며, 도심에는 고대로마의 기둥식 건축물과 러시아식 건축물뿐만 아니라 초현대식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1840년 이후 중국이 점차 반식민, 반봉건 사회화되면서 대련지역도 세계 열강의 침략으로 수난을 겪게 된다.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878년 청 조정은 여순을 새로 설계하여 여순대련을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1880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여순에 군항, 조선소, 포대, 해군방위 설비 등을 건설하였다. 이때부터 조선 수리도크를 중심으로 중국 굴지의 공업설비가 배치되어 공업화를 향한 첫발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84∼95년의 청일전쟁의 패배로 자체적인 도시건설 기회를 상실한 채,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청일전쟁이 끝나고 1898년 淸나라 정부는 다시 러시아의 무력에 굴복 <旅大租地條約>을 체결하고 대련지역을 러시아의 조차지로 넘겨주었다. 현재의 대련시 도시구획의 골격은 바로 1898년에서 1905년에 걸친 7년간의 조차시대에 러시아에 의해 프랑스 파리를 모방하여 건설된 것이다.
1905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에게 점령당해 식민지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 기간 중 일본은 만주침략을 위해 동북지구의 철도를 정비하여 중국 제1의 조밀한 철도망을 완성하였고, 대련항 역시 현재의 구항이 점차 형태를 갖춰 화북, 동북, 산동반도, 한반도,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 인천시와 대련시와의 우호교류협정서 체결(94년 4월 2일, 대련시)
1945년 소련군대의 관할하에 대련시, 여순시 정부가 정식 설립되었고, 1949년 신중국 탄생 이후 1953년 대련지역에 중앙인민정부 직속으로 여대시를 설치하였다. 1981년 중국 정부는 여대시의 명칭을 대련시로 바꾸고, 다시 1984년 14개 연해개방도시 중의 하나로 지정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일찍이 외국과의 접촉이 잦았던 대련시는 현재 8개국 11개 도시와 우호자매관계를 맺고 이들과의 긴밀한 협조로 국제화된 도시건설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인천광역시와는 94년 4월 우호협력관계를 맺은 이후 도시녹화, 환경보호, 관광 등의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으며 공무원을 파견하여 교환근무케 하는 등 인적교류를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다. 인천시의회와 대련시인민대표대회가 자매결연을 체결한 바 있으며 기타큐슈시를 포함한 3개 도시의 서예인들이 윤번제로 서화전을 개최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의 9개 도시로 이뤄진 환황해도시회의는 98년도 시장회의를 대련시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 대련 시청앞 광장과 금융구역(위)
● 전문가에 의한 국제교류사업 운영
대련시의 국제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대련시 외사판공실은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일본어, 한국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체적으로 국제교류를 수행할 수 있는 여행사, 호텔 등을 보유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자체적으로 수익사업을 펼칠 수 있는 관계로 이들의 업무의 특성을 이용한 외국과의 합작투자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도 96년 하반기부터는 업무 방향을 '경제외사'로 전환하고 우호도시관계를 최대한 이용한 외국기업체의 투자유치 및 자국상품 홍보를 통해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 하고자 적극적이고 목표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대련시는 꾸준히 국제행사를 개최함으로써 국제화를 서두르고 있는데 성해만 국제회의전시센터에서는 대련의 주종산업인 의류산업을 비롯한 각종 상품전시회가 연중 개최되고 있으며 중국 유일을 모델학교가 있어 패션의 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봄철에는 아카시아꽃 축제를 비롯하여 여름에는 국제복장절 행사, 가을에는 국제마라톤대회, 겨울에는 구정 불꽃대축제 등을 개최하여 연중 외국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련시는 외국인을 유인할 수 있는 요인이 많아 일본, 홍콩, 한국, 프랑스, 싱가폴, 미국 등을 포함한 5천여 개의 외국기업, 상사들이 진출해 있으며 사무실, 호텔 식당과 같은 시설과 은행, 운수, 유통 등 3차산업 분야에도 많이 진출하고 있다. 이것은 대련이 유리한 조건의 항구를 끼고 있고 동북3성의 관문이라는 점에서 투자여건이 기타 지역보다 월등히 좋은 것에 기인할 것이다.
해외투자유치사업의 주관 부서인 대외경제무역위원회의 주요 부서로서는 외자관리처 및 대외련락처가 있다. 외자관리처에서는 정책수립 투자허가 비준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대외연락처는 투자 유치사업 전개, 통역, 홍보, 연결사업 등을 추진하는 부서로써 실질적인 유치사업은 모두 대외연락처에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대외연락처에는 각 국가 언어권별 조직이 있으며 한국파트에는 한국어를 전공한 4명(최근 2명의 여자 직원을 보충했음)이 있고, 일본, 홍콩, 마카오, 동남아, 영어권, 불어권, 독어권, 스페인어권 등으로 나눠져 있으며 모두 언어전문가로 구성되어 투자유치사업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주요 투자국을 살펴보면 홍콩, 마카오, 일본, 한국, 대만, 미국, 유럽의 순위로 단연 홍콩의 투자가 많으며 주변 국가인 일본, 한국, 대만의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신규투자는 한국이 일본을 앞서고 있다. 일본의 투자역사는 오래되어 안정되어 있는 반면 한국은 89년을 시작으로 574개 업체가 투자를 하였으나 현재는 200여 개 정도의 업체가 가동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로 30만 불 미만의 소규모 투자업체들로서 이는 국내 경영환경의 악화, 인건비의 상승 등의 이유로 공장을 이전해 온 업체들로서 까다로운 행정규제, 경영능력 부족, 시장정보 미약 등의 이유로 30%정도의 투자성공률을 보이고 있어 현재는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국외환은행이 진출해 있으며 조흥은행이 진출 준비를 하고 있으며 진도컨테이너, LG산전, 포항제철 등의 대그룹과 한진해운 등 10여 개의 해운대리점과 현대, 삼성, 엘지 등 각 종합상사가 진출해 있다.
▲ 중국 예술절 대련의 여름행사
● 쾌적한 환경조성과 투자유치 전략
중국은 기본적으로 토지가 국유화되었기 때문에 공단개발 등이 비교적 쉬워 정부가 주도적으로 투자유치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초가 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대외개발선도구를 지정하여 일괄적인 투자유치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는 일반적인 행정구역상의 구와 똑같이 독립적인 운영형태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자기업투자유치를 위한 특별한 세제 및 행정상의 우대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대련의 예를 들어보면 대련경제개발기술구, 대련보세구, 대련금석탄 국가 관광휴가촌(관광특구), 대련하이테크 산업단지, 대련시경제개발소구가 지정되어 있으며 이들은 독자적인 관리위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대련시의 외자기업 유치 정책은
① 토지매각을 통한 수입증대
② 고용의 창출
③ 도시의 재개발을 통환 환경정비
④ 신기술, 자본의 유입으로 경제개발 수준 향상 등을 위하여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쾌적한 환경조성과 투자유치를 통해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대련시는 중국 동북지방 개방의 선도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고 있으며 성공적인 도시건설로 인해 박희래 시장은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인민로를 따라서 형성된 30층 이상의 스카이라인, 수많은 고급 호텔과 음식점들, 세련되고 활기에 찬 젊은이들에게서 중국식 사회주의의 발전 가망성을 짐작케 할 수 있다. 남방에 비해 비교적 개방속도가 미흡하기는 하지만 제2의 홍콩의 건설을 꿈꾸고 있는 대련시는 스스로가 동방의 진주라고 자칭하리 만큼 자신감에 넘치는 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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