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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역사는 페스와 함께 시작됐는데 이미 809년에 현재 도시의 원형을 완성했다. 페스는 전통적으로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지성의 요람 역할을 해 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12세기에 문을 연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 대학을 꼽고 있지만, 페스의 까라윈 대학은 놀랍게도 그 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 설립되었다. 이 대학은 투니지아의 자이투나 대학 및 이집트의 아즈하르 대학과 더불어 10세기 무렵에 문을 연 명실공히 세계 최초의 대학 중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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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Fes)는 모로코 내륙에 자리 잡은 인구 30만의 중소 도시로서 천년이 넘는 세월의 기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북아프리카 문화 중심지다. 이 도시는 흔히 ‘시간이 멈춰버린 중세의 도시’로 불리는데, 이는 옛 이슬람 도시의 모습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페스는 크게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뉜다. 신시가지는 1912년 프랑스가 모로코를 식민지로 삼은 후 새롭게 건설한 현대식 구역이다. 반면 구시가지는 프랑스 식민 시기(1912~1956) 이전에 건설된 전통 구역으로서 보통 관광 책자에서 소개하고 있는 페스의 모습이 바로 이곳이다. 페스의 구시가지는 거미줄처럼 얽힌 좁다란 골목이 무려 300㎞ 이상 뻗쳐 있으며, 모스크, 꾸란 학교, 천연염색장, 수끄(아랍 전통시장)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의 중요 건축물들은 14세기부터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수로 시설은 천년 전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페스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역사박물관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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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아프리카 영혼과 지성의 안식처
모로코의 역사는 페스와 함께 시작되었는데, 이곳을 처음 도읍으로 정한 자는 이드리스 1세였다. 그는 모로코 최초의 이슬람 국가인 이드리스조(朝)(789~926)의 건국자로서 이슬람을 창건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손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모로코 원주민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킨 후 페스 강 동쪽에 정착했고, 그의 후계자인 이드리스 2세는 809년에 수도 페스를 건설해 현재 도시의 원형을 완성했다.
모로코인들은 이드리스 2세를 페스의 수호성인(聖人)으로 모시며 그를 기리기 위해 ‘자위야’(Zaouia)라고 불리는 사당을 건립했다. 이드리스 2세의 사당은 페스 구시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의 진입 골목 앞에는 굵직한 통나무가 빗장처럼 가로놓여 있다. 이는 이드리스 2세 사당이 성소이며 잡스러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이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네들, 이제 막 할례 의식을 치른 사내 어린이들, 궁핍에 찌들어 돈을 구걸하는 자들로 사당의 안팎은 북새통을 이룬다. 이드리스 2세는 이들을 보호하고 축복을 선사하는 수호성인이며, 페스가 모로코에서 가장 성스러운 도시로 대접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함께 페스는 전통적으로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지성의 요람 역할을 해 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12세기에 문을 연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 대학을 꼽고 있지만, 페스의 까라윈(Al-Qarawiyyin) 대학은 놀랍게도 그 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 설립되었다. 이 대학은 투니지아의 자이투나(Al-Zaituna) 대학 및 이집트의 아즈하르(Al-Azhar) 대학과 더불어 10세기 무렵에 문을 연, 명실공히 세계 최초의 대학 중 하나다. 이는 또한 중세 동안 이슬람 세계가 서구 유럽보다 학문적으로 한수 우위였음을 확인시켜 주는 좋은 증거이기도 하다.
14세기 무렵 까라윈 대학 도서관은 3만 권의 장서와 1만 필의 필사본 두루마리를 소장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까라윈 대학은 중세 기간 동안 이슬람 학문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유명한 역사가 이븐 칼둔(1332~1406)은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철학자 이븐 루쉬드(1126~1198)도 수년 동안 페스에 머물렀다. 한편 까라윈 대학은 유럽의 학문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10세기 무렵 젊은 시절의 교황 실베스터 2세(Sylvester II, 999~1003년까지 교황 역임)는 까라윈 대학에서 아랍인들을 스승으로 모시며 수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후일 그는 아라비아 숫자와 10진법을 유럽 세계에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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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 보존을 위한 역사적 노력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 가운데 웅장한 기념비나 거대한 건축물은 많다. 그러나 도시 자체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아직까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페스가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과 다른 점은 바로 이 때문이다. 페스가 중세의 도시 모습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정책자들이 기울인 노력의 결실이다.
모로코의 역대 술탄들은 페스를 도읍으로 정할 때마다 선대의 문화유적을 절대로 허물어뜨리는 법이 없었다. 14세기 모로코 출신의 역사가 이븐 칼둔은 자신의 역저 《역사서설(Muqaddimah)》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후대의 왕조들은 위대한 건축 기념물을 파손하지 않는다. 파손이 건설보다 쉽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파손은 원점, 즉 비존재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는 일찍부터 모로코 역사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이다.근대 시기에 이르러 페스가 현대식 개발의 급류에 휩싸이지 않고 그 형태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프랑스 식민통치 덕택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입장에서 볼 때 페스는 식민지 수도로서 적합하지 않았다. 모로코의 얼과 자긍심이 배어 있는 이곳을 식민지 수도로 삼게 되면 본토인들의 심정을 자극하게 되고, 그럴 경우 그들의 저항은 격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페스는 모로코 내륙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와의 해상 연락도 용이치 않았다. 결국 프랑스 당국은 페스 대신 라바트와 카사블랑카를 정치와 경제 중심지로 삼고 근대식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한편 초대 총독을 역임했던 료테 장군(General Lyautey)은 모로코 전통문화에 유달리 애착이 많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알제리와 마다가스카르에서 프랑스 식민 당국이 시행한 무분별한 개발정책으로 인해 유서 깊은 유물들이 파손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그는 이와 같은 실수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신시가지를 페스의 전통 구역 외곽에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료테 장군의 관심과 노력 덕분에 페스의 성곽, 도로, 건축물 등은 그 외형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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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왼쪽부터 01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페스 전경(사진·감마통신). 02 페스의 한 건축물. 03 페스의 공동묘지. 04 야자열매를 파는 전통시장. 05 지난 2003년 청주세계공연비엔날레에서 전통 수공예를 선보이는 모로코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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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술탄들은 선대의 문화유적을 절대로 허물어뜨리는 법이 없었다. 모로코 출신 역사가 이븐 칼둔은 《역사서설》에서 “후대의 왕조들은 위대한 건축 기념물을 파손하지 않는다. 파손이 건설보다 쉽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파손은 원점 즉 비존재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는 일찍부터 모로코 역사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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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 태어난 페스
프랑스의 문화보호 정책 덕분에 페스는 유적지 파괴라는 폐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정책에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개발이 억제되고 경제적 활력소를 잃게 되면서 페스의 주민들은 점차 생기를 잃어 갔다. 페스의 주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하나 둘씩 현대식 도시로 떠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56년 독립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1970년대에 이르러 페스는 시대에 뒤쳐진 빈민굴로 전락해 버렸다.
당시 하싼 2세 국왕은 이러한 악순환을 타개하기 위해 국내외 각종 단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호소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유네스코(UNESCO)를 통해 결실을 보게 되었다. 1980년 아마두 마흐타르 엠보우(Amadou-Mahtar M'Bow) 유네스코 사무국장은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도시 중 하나인 페스를 구하자’는 모로코 국왕의 호소에 동참했다.
1981년 페스는 드디어 아랍·이슬람 세계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국의 경우 1995년에 이르러서야 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처음으로 등록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의 쾌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페스가 국경을 초월한 인류 보편 유산임을 세계 각계각층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폭제가 되었다. 유엔개발계획(UNDP)을 비롯하여 아랍의 정부들과 덴마크의 마가레트 2세 여왕은 페스를 되살리기 위해 막대한 기부금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1989년 모로코 당국은 국내외에서 거두어들인 기부금을 바탕으로 약칭 ‘ADER-Fes’라고 불리는‘페스복원기구’를 발족했다.
이 기구는 ‘지리정보 시스템’(The Geographical Information System)과 같은 첨단 자료 축적 기술을 활용하여 1만 3385채에 달하는 페스의 각종 건축물에 대한 정보를 세부 항목별로 분류해 놓은 상태다. 현재 모로코 당국이 추구하고 있는 페스의 복원 계획은 매우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복원’의 개념은 단순히 파손된 건물을 다시 세우는 것을 넘어 과거 페스가 담당했던 문화적 중심지로서의 기능까지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이 복원하고자 하는 페스는 영혼이 깃들어 살아 꿈틀거리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현재 20년 이상 ‘페스 복원기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알 핫자미(Al Hajjami)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복원 작업은 총체적인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건축물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도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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