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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으로 보는 프랑스의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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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685회 작성일 10-10-1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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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과는 다르게 싱겁게 끝나버려

연간 치러지는 많은 세시풍속들 가운데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1월 1일은 세계 어느 지역, 어느 민족 할 것 없이 가장 큰 의미가 부여되는 축제일, 더 친숙하게는 설날이다. 어린 시절, 시끌벅적한 연말연시 분위기에 공연히 들뜬 채 12월 31일 자정에 울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기다렸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들뜬 기분이 무색하게 너무도 심심하게 새해는 와버리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기억도……. 필자가 어렸을 때는 정책적으로 신정을 장려하고 설날을 없애려 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두 번 맞이하는 새해 때문에 설날의 설렘이 다소 퇴색하고 ‘새해’라는 시간 구분에 내심 의심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도 설날은 그런 마음 한 구석의 심심함과 의심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한 최고의 명절이었다. 설날이 없었다면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이란 아예 없지 않았을까. 어릴 적 설날 즈음 느꼈던 그 묘한 허전함과 설렘이 인간이 시간을 축으로 만들어낸 풍속의 깊은 의미에 가닿아 있었던 것일까, 그 의미를 한 번 새겨 본다.
세시풍속이란 ‘일상생활에서 계절에 따라 관습적으로 되풀이 되는 민속’을 말한다. 세시풍속이야말로 인간이 일구어 온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들 중 하나일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태어난 지역의 물리적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낸 모든 것들 가운데, 인간에게만 가능한 고도의 정신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대개 세시풍속의 형성 요인으로는 자연적 요인, 인간의 삶과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진 농경문화적 요인, 인간의 운명을 해명하려는 근원적 욕망과 관련된 종교적 요인을 든다. 이 요인들은 모두 인간의 시간 인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지속적으로 시간을 체계화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시간을 인식하고 측정하는 방식은 자연 환경에 따라 또 생존 방식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어떤 문화나 공통적으로 시간의 순환적 성질과 직선적 성질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연계에는 달의 삭망, 낮과 밤의 연속, 계절의 변화 등 시간이 순환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현상들과,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자연물이 쇠락이나 노화 과정을 거치는 것과 같이 시간의 직선적 움직임을 입증하는 현상이 동시에 존재한다. 시간의 이 두 측면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는가 하는 것은 문화마다 다른데, 가령 신의 천지창조를 믿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에서는 시간의 직선적 성질이 우세한 반면, 신을 인간세계와 분리하지 않고 토속성이 강한 문화에서는 시간의 순환적 성질이 우세하다.
이러한 시간 인식을 바탕으로 시간을 체계화하려 한 노력의 대표적인 산물이 달력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달력은 그레고리력이다.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시간의 양상은 다르지만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표준화된 이 시간 체계에 맞추어 삶의 리듬을 조정한다. 이 달력은 삶과 너무도 밀착되어 있어 다른 시간의 흐름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달력이 지금의 달력과 같지는 않았으며, 달력의 체계 또한 지역에 따라 달랐다. 서유럽에서는 로마인들이 만든 율리우스력이 1500년 이상 사용되었다. 이는 고대 이집트력·고대 로마력·그레고리력과 함께 태양력에 속한다. 현재 우리나라와 중국·일본·인도 등지에서 널리 쓰이는 것은 태음태양력이다.

44-1.jpg절기를 고려한 ‘야심 찬’ 혁명력

역사적 전통과 문화면에서 명실공이 유럽의 중심임을 자처하는 프랑스의 역사를 훑어보면 프랑스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달력이 하나 있다. 프랑스는 애초에 고대 로마력을 사용하다가 1582년 11월까지는 율리우스력을, 1582년 11월 20일부터 1792년 9월 21일까지는 그레고리력을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9월 22일부터 1805년 12월 31일까지 일시적으로 혁명력이란 것을 사용한 적이 있다. 이것은 대혁명 이후 들어선 혁명 정부가 공식적으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채택한 달력이다. 혁명력은 당시 사용되던 시간체계를 버리고 1792년을 공화국 수립 원년으로, 공화국 수립일이자 추분인 9월 22일을 원일(元日)로 삼았다. 그레고리력이 하루를 24시간, 주 단위의 달을 31·30·28일(윤년에는 29)로 배열하고 각 달에 성자의 이름을 붙인 데 반해, 혁명력은 세수(歲首)를 파리에서 태양이 추분점을 통과하는 날로 정하고 1년은 12달, 한 달은 30일, 하루는 10시간, 1시간은 100분, 1분은 100초로 정하였다. 또 첫 9일은 평일로, 열 번째 날을 휴일로 주 단위도 바꾸었다. 1년을 30일씩 12달로 할 때 연말에 남게 되는 5일은 마지막 달에 붙여 ‘미덕·재능·근로·여론·보상’이라는 이름의 공화국 축제일로 삼았다.
혁명력은 절기를 고려하여 포도월(葡萄月)(9월 22~10월 21일)·무월(霧月)·상월(霜月)·설월(雪月)·우월(雨月)·풍월(風月)·아월(芽月)·화월(花月)·초월(草月)·수확월(收穫月)·열월(熱月)·실월(實月)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다. 혁명기 공포정치의 주역인 로베스피에르를 권좌에서 내몬 ‘테르미도르 반동’의 테르미도르는 열월을 일컬으며, 탄광촌을 배경으로 광부들의 파업을 그린 에밀 졸라의 소설 <제르미날>에서 제르미날은 식물의 싹이 트는 아월을 말한다. 이 명칭들은 프랑스가 오랜 전통의 농경사회로, 국민의 생활이 농사 절기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음을 반영한다.
혁명력은 각 달의 명칭과 순서에 현실성을 부여한 점에서는 돋보이지만, 시간을 10진법으로 한 것이 부적당했고, 주7일의 폐지 또한 대부분 기독교도인 국민의 반목을 샀다. 무엇보다 달의 명칭이 프랑스 절기에만 연관되어 있고 세수를 파리의 자오선에 맞춰 계산함으로써 다른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그레고리력과 일치하지 않아 사용하기에 불편이 컸다. 결국 이 야심 찬 혁명력은 나폴레옹 제국이 들어서면서 폐지되고 만다.
실상 한 민족이 오래 써오던 시간 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전통적인 일상의 틀을 바꾸는 일인 만큼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사회체제 전반을 전복시키는 혁명 상황이란 지속적일 수 없다. 그러나 혁명력은 혁명의 산물인 공화국이 민중의 일상과 밀착된 시간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인권과 평등사상에 기초한 혁명정신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 준 사례라 하겠다. 폐지되고 난 후에도 혁명력은 공화정·왕정·제정을 오락가락한 19세기 내내 혁명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시기면 어김없이 다시 등장하곤 했다.
그런데 민중의 생활 리듬을 달력에 반영하고자 한 혁명력이 추분을 새해 첫 날로 삼은 연유는 무엇일까. 어느 문명이든 본질적인 축제는 신년을 축하하는 데 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는 재생의례·속죄의례 등이 때맞춰 치러질 수 있도록 한 시기의 끝과 다음 시기의 시작을 결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농촌 생활에서는 사실상 두 계절만 존재한다. 곡식과 과일을 추수함으로써 풍요를 누리는 ‘성수기의 계절’과 태양이 기울어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사람들의 활동이 뜸해지는 ‘비수기의 계절’이 그것이다.
계절을 구분하는 시점은 기후와 문화적 전통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남부 유럽에서는 대개 춘분을 기점으로 만물이 죽음에서 재생한다고 여김으로써 봄 축제인 부활절을 그 해의 본질적 축하 행사로 삼았다. 반대로 북유럽으로 갈수록 동지를 의례생활의 진정한 극점으로 여기고 성탄절부터 그 해의 주요 축제 기간이 시작되는 경향을 보인다. 프랑스는 후자의 전통에 속한다. ‘밤샘(veille′e)의 계절’이라고 불린 비수기 동안 사람들은 땅 속에 씨앗을 뿌리고 망자와 조상을 경배하는 의례를 치렀다. 이는 아마도 인간이 매년 씨뿌리기를 되풀이하면서 그 씨앗을 통해 생명과 죽음을 상상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첫 새싹들은 마치 조상들이 후손의 몸에 잉태되어 다시 태어나는 아기로 여겼던 것이다.
이 시기의 세시풍속에서 다산의 상징인 남근이 등장하거나 정력이 강하고 다산이라 알려진 황소·염소·돼지 등의 동물로 변장하는 풍습이 형성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여하튼 농경생활에서 생산의 주기는 출생이 아니라 이미 잉태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프랑스의 세시풍속은 대개 추수와 더불어 시작되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동지 무렵에 집중되어 있다. 혁명력은 이러한 민속을 그대로 반영하여 추분을 세수로 삼은 것이다.

44-3.jpg우리의 호랑이와 같은 프랑스의 수탉


물론 오늘날 프랑스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1월 1일을 설날로 삼고 있다. 프랑스는 설날에 전통적으로 ‘에트렌느’라고 하는 행운의 선물을 교환하고 덕담을 나누며, 아이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어른들에게 선물 혹은 동전을 요구하는 풍속이 있다. 우리의 세뱃돈 같은 것이다. 그리고 새해를 알리는 자정 시계소리를 기다려 새해의 소망을 빌고 서로 포옹하며 손에는 겨우살이 가지를 든 채 환희에 찬 덕담을 나눈다. 겨우살이는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아, 고대 프랑스 땅을 차지했던 켈트 족의 신관들이 영혼 불멸의 상징으로서 특별히 숭상하였던 식물이다. 그 전통이 남아 지금도 노르망디에서는 겨우살이를 집안에 두면 벌레를 쫓을 수 있고, 꿈에 이 식물을 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민간신앙이 있다.
프로방스에서는 설날에 수탉을 먹는 풍습이 있다. 수탉은 고대로부터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겼다.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수탉은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서 용기와 지혜를 상징한다. 영국과 독일 등 프랑스와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수탉의 어리석음과 호전적이며 음탕한 성질을 내세워 프랑스를 조롱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수탉은 우리의 호랑이처럼 프랑스에서 사랑받는 동물이다.
설날이면 모습이 기이한 수탉을 골라잡아 그 속에 암탉의 간, 송로나 밤을 다져넣어 요리하는 것은 이 지방 고유 풍습이다. 부잣집에서는 수탉에 자고새 12마리, 검은 송로 30개, 계란 30개를 곁들이기도 하는데, 수탉은 한 해를, 자고새는 열두 달을, 송로는 밤을, 계란은 낮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독특하고 상징적인 음식 앞에 인사를 하며 새해의 즐거움을 나눈다.
프랑스에도 설날과 관련된 많은 속설들이 있다. 마자르그에서는 설날 새벽이 맑으면 과일 풍년이 든다 하고, 브리뇰에서는 설날에 뭔가 특별한 일을 하면 일년 내내 그 일을 하게 되므로 설날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또한 브레올에서는 저장해 둔 포도를 설날에 먹으면 일년 내내 돈이 잘 붙는다 하고, 설날 첫 번째로 총각을 만나는 처녀는 그 해 반드시 결혼하게 된다는 속설도 있다. 또 설날이 무슨 요일인가에 따라 그 해의 날씨를 점치기도 하는데, 일요일이면 그 해 겨울이 따뜻하고 봄은 습하며 여름과 가을은 바람이 많다, 월요일이면 겨울이 따뜻하고 봄과 여름이 습하고 홍수가 진다는 식이다. 어디나 한 해의 길흉화복을 점쳐보고 미리 대비하거나 마음을 다지고픈 바람이 있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설날에는 정열을 다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때로는 아낌없이 소모하며 ‘살아 있음’을 만끽하려 한다. 현실적이든 허구적이든 상상에서 싹 트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행운을 기원하는 인간의 원초적 희구의 표출이리라. 이러한 설날의 풍요로움과 희구 속에는 인간 의지와 상관없이 가고 오는 시간을 한껏 인간의 삶 속에 끌어들여 다시 살아갈 힘을 내려는 오랜 삶의 지혜와 고단함이 스며 있을 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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