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표현의 억제와 외적 평정심의 인도네이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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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94회 작성일 10-10-1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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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의 베란다’ 아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부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파가 동남아 국가뿐만 아니라 서남아 국가에 커다란 피해를 가져 왔음은 이들 국가의 지리적 근접성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 지리적 가까움과 달리 이들 국가 사이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태국을 제외한 동남아 국가 모두는 서양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그 식민 종주국은 영국·미국·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 등으로 차이를 보였다. 종교적으로도 이슬람교·힌두교·불교·천주교 우세 지역이 모자이크를 이루듯 산재되어 있다. 동남아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적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인도네시아, 특히 인구·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바 문화의 특징만을 간략하게 소개할 것이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수마트라 섬 북부의 아체(Aceh) 지역에는 10여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체는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 지역이다. 인도네시아 사람 중 90% 정도가 신봉하는 이슬람이 가장 먼저 도입된 곳으로서 ‘메카의 베란다’라고 불릴 정도로 이슬람의 중심지로 간주되어 왔다. 또한 수백년에 걸친 네덜란드와의 항쟁의 역사를 가졌던 지역으로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특별한 위상으로 인해 아체는 독립 이후 신설된 두 개의 자치주 중 하나로서의 특권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아체에서의 피해가 보도된 후 인도네시아 국내에서 전개된 상황은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과는 차이를 보였다. 피해 복구를 위한 모금이 이루어지고, 일부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자원봉사자가 파견되었지만, 이러한 활동은 온 나라가 들썩거릴 정도로 요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재가 발생하면 온 국민이 앞다투어 모금운동에 참여하고 그와 관련된 보도가 매스컴을 가득 채우는 모습에 익숙한 우리에게 있어, 인도네시아의 상황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해 보이기까지 한다.
외부 원조와 관련된 논란 역시 우리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에서 수해가 나서 외국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면, 그 많고 적음이나 방법론상의 문제와는 관계없이 원조 자체를 고맙게 여기는 의견이 주를 이룰 것이다.
인도네시아 상황은 이것과 달랐다. 주요 선진국으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정부가 적절한 교섭력을 보이지 못하였다는 문제, 외국 군대가 복구 과정에 직접 참여하였다는 문제, 외국 기독교 단체가 대규모 원조를 하고 있다는 문제 등이 주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원조를 받아내야 하고, 원조가 가져 올 여파에 대해서 고려해야 함은 부정될 수 없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격앙될 수 있을 대재앙 와중에서 이러한 논의가 부각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체 지진해일 이후에 전개된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 사람, 특히 자바 사람의 문화적 특성을 검토해야 한다.
예의바른, 그러나 낯설지 않은…
인도네시아를 처음 방문하여 받게 되는 인상은 그곳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거리에서 웃음 띤 얼굴을 찾아보기가 힘든 우리와 달리, 자연스러운 웃음을 얼굴에 담고 있는 사람을 어디에서건 쉽게 만날 수 있다. 도심 거리를 걷다 보면 우리의 걷는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챌 것이며, 뛰어가거나 빠른 속도로 걷는 사람을 이곳에서 발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낯선 사람, 특히 외국인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이러한 인상을 가져다준다. 길을 묻는 외국인을 귀찮아하는 사람보다는 지도를 그려주거나 직접 길안내를 해주는 것과 같이 과분할 정도의 친절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다.
인도네시아 사람의 삶에서 나타나는 여유로움은 예절을 강조하는 인도네시아 문화, 특히 자바 문화와도 관련된다. 전통 자바 사회에서는 사람 사이의 적절한 행동을 규정하는 예절이 매우 발달했었는데, 낯선 사람이나 나이 많은 사람을 존대해 주는 관행과 격식을 차려 행동하는 규범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서양 사람을 접할 때 느끼는 자유분방함을 자바 사람과의 만남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으며, 이러한 모습은 낯설지 않은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
인도네시아를 일회적으로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사람에 대한 호의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었던 한국 사람에게 있어 이러한 인상은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아 보인다. 이들 사이에서는 인도네시아 사람의 여유로움을 나태함으로, 친절함과 예절바름을 가식적 행동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발견된다. 또한 이들 중 상당수는 인도네시아 문화의 특징을 신뢰할 수 없음, 혹은 의리 없음이라 지적하는데, 인도네시아 사람을 신뢰하게 되면 나중에 후회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평가는 극단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 제한적인 타당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데, 이는 우리 문화와 자바 문화 사이에 나타나는 표면적인 유사성과 실제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표리부동하는 자바인
자바 문화에서 중시되는 행동 양식 중 하나는 자기감정의 통제이다. 즐거움,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고 외적인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지만, 그 적용 영역과 방식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자바의 농촌 마을에서 조사를 하면서 필자는 주민들이 싸우거나 화내거나 울거나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목소리를 높여가며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부부간에 언성을 높이거나 아이들이 큰 소리를 내며 다투는 경우도 없었다. 필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자바인들의 삶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갑갑한 것이었으며, 큰 소리로 외치며 말해 보고 싶은 충동을 솟아오르게 만드는 분위기였다.
감정의 통제라는 문화적 강제는 개인의 감정이 고양될 수 있는 상황에도 적용되었다. 그 좋은 예가 장례식인데, 자바의 장례식에서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으며, 흐느끼거나 눈시울이 빨개진 사람 역시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이는 이들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려서부터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이성 관계나 친구 관계 역시 비슷하다. 목숨을 바쳐 이성을 사랑하거나 사랑을 얻기 위해 이성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식의 러브스토리는 자바인에게 익숙하지 않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경향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친분관계 역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을 통해 보면, 조사지에서 주민 간의 관계를 일부나마 파악하게 된 때는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였다.
소문을 통해 들은 내용은 놀라웠다. 서로 친한 사이라 여겨졌던 주민 중 몇몇이 좋지 않은 관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계가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를 유사하게 대하는 행동 양식으로 인해 우리는 자바 사람의 인간관계를 무미건조한 것처럼 느끼게 되며, 이들과의 관계에서 무언가 허전함을 받게 된다. 우리에게 있어 가까운 관계가 자신의 감정과 실제 모습을 솔직하게 보일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면, 자바 사람과 이러한 식의 관계를 발전시키기는 쉽지 않다.
감정의 통제와 관련되어 우리와 차이를 보이는 또 다른 측면은 내면 세계와 외적 표현 사이의 관계이다. 표리부동이라는 말에서 보이듯 우리에게 있어 내면적인 상태와 외적인 표현 사이의 불일치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지만, 자바 문화에서 양자 간의 일치 여부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우리는 인도네시아 사람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과정에서 부정적 인상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을 처음 접하게 되면 이들의 친절함과 예절바름에 의해 쉽게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그에 따라 보통 이상의 관심과 배려를 제공한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면 양자 간의 관계는 무리 없이 지속될 것이다. 반면 우리에게 문제가 생길 때, 그 관계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친하다고 느끼고 보통 이상의 관심과 배려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마치 한국 사람에게 하듯 이들에게 보통 이상의 것을 부탁한다. 예를 들어 임금이나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조금만 참아줄 것을 부탁할 것이다. 대다수의 경우에 있어 이러한 부탁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우리는 서운함, 나아가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동양인에 대한 이해가 더 어려울 수 있어
이런 식의 느낌은 이들의 문화적 특성을 적절하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앞서 지적된 대로 이들은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대하기 때문에 이들이 우리에게 보인 친근함은 일반적인 관계 이상의 의미를 반드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이들이 받는 보통 이상의 관심과 배려 역시 감정적인 빚이나 특별한 관계로 이해되지 않으며,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에 기초하고 있기보다는 계약적 성격을 많이 띠고 있다. 따라서 보통 이상의 관심을 통해 정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그것에 감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인도네시아 사람 사이에서는 오해의 여지가 상존하며, 이러한 오해로 인해 우리는 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인도네시아 사람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평가는 동양 사람에 대한 이해가 서양 사람에 대한 이해보다 더욱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확연히 드러나는 외적인 차이로 인해 우리는 서양 문화를 보다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그에 따라 오해의 가능성 역시 적어진다.
하지만 같은 동양 문화, 특히 동남아시아 문화의 경우 외적인 유사성에 의해 친숙한 느낌을 쉽게 받게 되며, 그로 인해 문화적 차이를 관찰자적 시각에서 바라보기 어려워진다. 이와 같이 유사성을 띠는 문화가 그렇지 않은 문화보다 오히려 높은 오해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음을 인도네시아 사례는 보여 주고 있다. ●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부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파가 동남아 국가뿐만 아니라 서남아 국가에 커다란 피해를 가져 왔음은 이들 국가의 지리적 근접성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 지리적 가까움과 달리 이들 국가 사이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태국을 제외한 동남아 국가 모두는 서양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그 식민 종주국은 영국·미국·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 등으로 차이를 보였다. 종교적으로도 이슬람교·힌두교·불교·천주교 우세 지역이 모자이크를 이루듯 산재되어 있다. 동남아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적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인도네시아, 특히 인구·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바 문화의 특징만을 간략하게 소개할 것이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수마트라 섬 북부의 아체(Aceh) 지역에는 10여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체는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 지역이다. 인도네시아 사람 중 90% 정도가 신봉하는 이슬람이 가장 먼저 도입된 곳으로서 ‘메카의 베란다’라고 불릴 정도로 이슬람의 중심지로 간주되어 왔다. 또한 수백년에 걸친 네덜란드와의 항쟁의 역사를 가졌던 지역으로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특별한 위상으로 인해 아체는 독립 이후 신설된 두 개의 자치주 중 하나로서의 특권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아체에서의 피해가 보도된 후 인도네시아 국내에서 전개된 상황은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과는 차이를 보였다. 피해 복구를 위한 모금이 이루어지고, 일부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자원봉사자가 파견되었지만, 이러한 활동은 온 나라가 들썩거릴 정도로 요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재가 발생하면 온 국민이 앞다투어 모금운동에 참여하고 그와 관련된 보도가 매스컴을 가득 채우는 모습에 익숙한 우리에게 있어, 인도네시아의 상황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해 보이기까지 한다.
외부 원조와 관련된 논란 역시 우리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에서 수해가 나서 외국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면, 그 많고 적음이나 방법론상의 문제와는 관계없이 원조 자체를 고맙게 여기는 의견이 주를 이룰 것이다.
인도네시아 상황은 이것과 달랐다. 주요 선진국으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정부가 적절한 교섭력을 보이지 못하였다는 문제, 외국 군대가 복구 과정에 직접 참여하였다는 문제, 외국 기독교 단체가 대규모 원조를 하고 있다는 문제 등이 주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원조를 받아내야 하고, 원조가 가져 올 여파에 대해서 고려해야 함은 부정될 수 없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격앙될 수 있을 대재앙 와중에서 이러한 논의가 부각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체 지진해일 이후에 전개된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 사람, 특히 자바 사람의 문화적 특성을 검토해야 한다.
예의바른, 그러나 낯설지 않은… 인도네시아를 처음 방문하여 받게 되는 인상은 그곳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거리에서 웃음 띤 얼굴을 찾아보기가 힘든 우리와 달리, 자연스러운 웃음을 얼굴에 담고 있는 사람을 어디에서건 쉽게 만날 수 있다. 도심 거리를 걷다 보면 우리의 걷는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챌 것이며, 뛰어가거나 빠른 속도로 걷는 사람을 이곳에서 발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낯선 사람, 특히 외국인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이러한 인상을 가져다준다. 길을 묻는 외국인을 귀찮아하는 사람보다는 지도를 그려주거나 직접 길안내를 해주는 것과 같이 과분할 정도의 친절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다.
인도네시아 사람의 삶에서 나타나는 여유로움은 예절을 강조하는 인도네시아 문화, 특히 자바 문화와도 관련된다. 전통 자바 사회에서는 사람 사이의 적절한 행동을 규정하는 예절이 매우 발달했었는데, 낯선 사람이나 나이 많은 사람을 존대해 주는 관행과 격식을 차려 행동하는 규범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서양 사람을 접할 때 느끼는 자유분방함을 자바 사람과의 만남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으며, 이러한 모습은 낯설지 않은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
인도네시아를 일회적으로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사람에 대한 호의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었던 한국 사람에게 있어 이러한 인상은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아 보인다. 이들 사이에서는 인도네시아 사람의 여유로움을 나태함으로, 친절함과 예절바름을 가식적 행동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발견된다. 또한 이들 중 상당수는 인도네시아 문화의 특징을 신뢰할 수 없음, 혹은 의리 없음이라 지적하는데, 인도네시아 사람을 신뢰하게 되면 나중에 후회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평가는 극단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 제한적인 타당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데, 이는 우리 문화와 자바 문화 사이에 나타나는 표면적인 유사성과 실제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표리부동하는 자바인
자바 문화에서 중시되는 행동 양식 중 하나는 자기감정의 통제이다. 즐거움,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고 외적인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지만, 그 적용 영역과 방식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자바의 농촌 마을에서 조사를 하면서 필자는 주민들이 싸우거나 화내거나 울거나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목소리를 높여가며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부부간에 언성을 높이거나 아이들이 큰 소리를 내며 다투는 경우도 없었다. 필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자바인들의 삶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갑갑한 것이었으며, 큰 소리로 외치며 말해 보고 싶은 충동을 솟아오르게 만드는 분위기였다.
감정의 통제라는 문화적 강제는 개인의 감정이 고양될 수 있는 상황에도 적용되었다. 그 좋은 예가 장례식인데, 자바의 장례식에서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으며, 흐느끼거나 눈시울이 빨개진 사람 역시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이는 이들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려서부터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이성 관계나 친구 관계 역시 비슷하다. 목숨을 바쳐 이성을 사랑하거나 사랑을 얻기 위해 이성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식의 러브스토리는 자바인에게 익숙하지 않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경향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친분관계 역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을 통해 보면, 조사지에서 주민 간의 관계를 일부나마 파악하게 된 때는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였다.
소문을 통해 들은 내용은 놀라웠다. 서로 친한 사이라 여겨졌던 주민 중 몇몇이 좋지 않은 관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계가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를 유사하게 대하는 행동 양식으로 인해 우리는 자바 사람의 인간관계를 무미건조한 것처럼 느끼게 되며, 이들과의 관계에서 무언가 허전함을 받게 된다. 우리에게 있어 가까운 관계가 자신의 감정과 실제 모습을 솔직하게 보일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면, 자바 사람과 이러한 식의 관계를 발전시키기는 쉽지 않다.
감정의 통제와 관련되어 우리와 차이를 보이는 또 다른 측면은 내면 세계와 외적 표현 사이의 관계이다. 표리부동이라는 말에서 보이듯 우리에게 있어 내면적인 상태와 외적인 표현 사이의 불일치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지만, 자바 문화에서 양자 간의 일치 여부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우리는 인도네시아 사람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과정에서 부정적 인상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을 처음 접하게 되면 이들의 친절함과 예절바름에 의해 쉽게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그에 따라 보통 이상의 관심과 배려를 제공한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면 양자 간의 관계는 무리 없이 지속될 것이다. 반면 우리에게 문제가 생길 때, 그 관계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친하다고 느끼고 보통 이상의 관심과 배려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마치 한국 사람에게 하듯 이들에게 보통 이상의 것을 부탁한다. 예를 들어 임금이나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조금만 참아줄 것을 부탁할 것이다. 대다수의 경우에 있어 이러한 부탁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우리는 서운함, 나아가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동양인에 대한 이해가 더 어려울 수 있어 이런 식의 느낌은 이들의 문화적 특성을 적절하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앞서 지적된 대로 이들은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대하기 때문에 이들이 우리에게 보인 친근함은 일반적인 관계 이상의 의미를 반드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이들이 받는 보통 이상의 관심과 배려 역시 감정적인 빚이나 특별한 관계로 이해되지 않으며,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에 기초하고 있기보다는 계약적 성격을 많이 띠고 있다. 따라서 보통 이상의 관심을 통해 정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그것에 감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인도네시아 사람 사이에서는 오해의 여지가 상존하며, 이러한 오해로 인해 우리는 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인도네시아 사람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평가는 동양 사람에 대한 이해가 서양 사람에 대한 이해보다 더욱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확연히 드러나는 외적인 차이로 인해 우리는 서양 문화를 보다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그에 따라 오해의 가능성 역시 적어진다.
하지만 같은 동양 문화, 특히 동남아시아 문화의 경우 외적인 유사성에 의해 친숙한 느낌을 쉽게 받게 되며, 그로 인해 문화적 차이를 관찰자적 시각에서 바라보기 어려워진다. 이와 같이 유사성을 띠는 문화가 그렇지 않은 문화보다 오히려 높은 오해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음을 인도네시아 사례는 보여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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