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되어버린 세인트 버나드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08회 작성일 10-10-10 21:46
본문
유럽의 지붕, 알프스에는 생 베르나르 고개라는 곳이 있다. 영어식으로 읽으면 세인트 버나드(Saint Bernard)가 된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을 넘는 지름길이다. 일찍이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이 길을 통해 알프스를 넘었고 한니발, 나폴레옹도 이곳을 거쳐 갔다. 하지만 요즘처럼 첨단의 등산장비가 있는 것도 아닌 시대에 추위와 눈보라의 알프스를 넘는 일이 쉽지는 아니었을 터, 많은 이들이 조난당하고 생명을 잃었다. 세인트 버나드는 이렇게 조난당한 이들을 구하기 위해 수사들에 의해 특별히 훈련된 개다. 11세기 무렵 수도원에서 수사들이 구조견으로 길르기 시작했다는 세인트 버나드는 예민한 후각과 뛰어난 체력으로 지금까지 무려 2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구해냈다고 한다.그런 세인트 버나드 개 한 마리를 프랑스의 샤모니에서 만났다. 구조견처럼 포도주통을 목에 걸지는 않았지만, 의젓하게 등산기차 복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옆에는 개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한 명 앉아 있었고, 노인과 개는 우리와 함께 등산기차를 타고 빙하평원 Mer De Glace까지 같이 갔다. 그러나 ‘주인과 함께 아침산책이라도 나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던 내 푸근한 추측은 보기 좋게 깨졌으니. 개의 사진을 찍는 우리들에게 노인은 1분 동안 사진 찍는 값이 6유로라고 말했다. 그 개는 관광객에게 모델을 취해 주고, 노인은 그 모델료를 챙기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돈을 내고 정식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시대의 흐름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나에겐 제법 오래도록 그 개의 모습이 남았다. 박제가 되어버린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아니 만사가 귀찮은 얼굴로관광객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는 세인트 버나드의 모습이……. 뭘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개는. 그 옛날 알프스를 누비며 조난자들을 구해내던 조상들의 시절, 박제가 되기 이전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