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의 신데렐라, 노리다케 공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533회 작성일 10-10-25 23:28
본문
일본 나고야 시는 일본 내에서 유서 깊은 도시로 손꼽힌다.17세기 초,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고야 성을 축조하고 그의 아홉째 아들을 성주(城主)로 봉한 뒤 대영주(大領主)의 거성(居城)으로 키우면서 발전의 길을 걸어 온 ‘뼈대 있는 도시’나고야. 이러한 전통에도 불구, 나고야는 볼거리가 비교적 빈약한 도시다. 군수품 공장이 많았던 탓에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십자포화 대상이 되면서 대다수 유적이 파괴된 때문이다.하지만 나고야는 최근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볼거리를 갖추고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불러 모으고 있다. ‘노리다케 공원’이라는 ‘신데렐라’가 지난 2001년 등장, 나고야의 관광안내지도를 새롭게 쓴 것이다.
노리다케 사는 공장 이전이 종료되자 ‘놀라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5억 엔이라는 거액을 투자, 공장 터를 공원으로 조성키로 한 것. 넓디넓은 터인 데다 역세권임에도 회사는 지역 환원을 망설이지 않았다. 기업이 결심한다면 산업 자원이 관광 자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선례가 태어난 것이다. 노리다케는 이 공원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엄청난 기업 홍보 효과를 통해 투자액을 상쇄할 만한 수확을 거둬들이고 있다.
▶ 노리다케 공원 전경
◆ 도자기산업 현장의 이유있는 변신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고궁이 아니라 최근에 조성된 공원이라면 중앙 또는 지방정부의 도시계획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노리다케 공원은 이 같은 ‘일반론’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이채롭다.노리다케 공원은 일본 최대의 요업 전문 업체 ‘노리다케 사(社)’가 자사 공장 터를 공원으로 바꿔 놓으면서 만들었다. 산업 현장이 문화 명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1904년 현재의 노리다케 공원 부지 위에서 창업한 노리다케 사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싼 지가와 노동력을 찾아 일본 규슈 및 스리랑카, 필리핀 등지로 생산 공장을 이전, 나고야의 공장은 점점 더 빈 공간이 늘어났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본사 사무동 정도의 공간만 남고 대부분의 생산시설은 큐슈와 해외로 완전 이전됐다.
노리다케 사는 공장 이전이 종료되자 ‘놀라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5억 엔(260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 공장 터를 공원으로 조성키로 한 것이다. 4만 8000㎡에 이르는 넓디넓은 터인 데다 JR(일본의 고속철인 신칸센) 나고야 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인 역세권임에도 회사는 지역 환원을 망설이지 않았다. 도심 내 공장이 도심 바깥으로 이전하기 무섭게 땅을 팔아 시세 차익을 남기는 우리나라 풍토를 감안할 때 입이 벌어지는 결단.
2001년 10월 5일 이 공원은 문을 열었다. 기업이 결심한다면 산업 자원이 관광 자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선례가 태어난 것이다. 노리다케는 이 공원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엄청난 기업 홍보 효과를 통해 투자액을 상쇄할 만한 수확을 거둬들이고 있다. 개관 이후 연간 평균 55만 명이 이곳을 찾고 있으니 수백만 명의 머리 속에 ‘노리다케’를 이미 심은 것이다. 노리다케 공장 터의 사회 환원을 통해 기업은 기업 홍보 및 이미지 쇄신을 했으며 시민은 휴식처를 획득, 양자가 윈윈(win-win) 효과를 보고 있다. 노리다케 사는 향후 공원 내에 시설을 더 보강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의미다.
일본의 제조 기술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나고야는 일본 최대의 제조업 생산 기지. 노리다케 사는 나고야가 오래 전부터 물건 만드는 기술로 유명한 만큼 산업화에 성공했고, 이제 21세기 뉴 트랜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산업을 문화적 자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산업 현장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 공원을 조성했다는 데에 또 다른 특징이 있다. 20세기 초반 나고야에서 가장 높았다는 45m짜리 굴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창립 첫 해 첫 제품을 구워냈던 가마도 모습을 간직한 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공원 한 켠 벽돌벽에 걸린 접시마다에는 이름이 씌어 있다. 노리다케 공원 펀드 조성에 참여한 시민들이다. 시민들이 나서 “이 공원에 심을 나무를 우리가 구입하자”며 주머니를 털어 펀드를 만든 것이다.
▶ 일본 내 스케치 동호회의 천국이 될 만큼 조경이 빼어나다.
◆ 나고야의 랜드마크로…
필자가 노리다케 공원을 찾은 것은 지난해 11월. 일본 최고의 기업 도요타 자동차의 생산 혁신 기획 취재를 위해 나고야를 찾았을 때였다. 나고야에 도착했을 때 펼쳐든 관광안내지도마다 큼지막한 글자로 소개돼 있는 노리다케 공원. 꼭 찾아보고 싶었던 이곳을 귀국 하루 전에야 겨우 짬을 내 방문할 수 있었다.
20여분간 공원 밖에서 개장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기다려서 들어갈 만큼 가치가 있는 곳일까.’ 발길을 돌리려는 생각 끝에 들어간 곳. 들어서자마자 ‘기다린 보람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물과 나무, 오솔길, 넓은 잔디밭. 1주일간 취재 과정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조경이 너무 아름다워 스케치 여행의 천국이 되고 있다고 방문객들은 입을 모았다. 스케치 여행차 이곳에 왔다는 이사오 다케시다 씨는 “조경이 너무 아름다워 일본 내 스케치 동호인들에게는 유명한 장소”라며 “외국인 친구들이 일본에 와도 꼭 이곳에 데리고 온다”고 했다. 나고야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꼭 찾는 곳이 노리다케 공원인 것이다. 쇼타로 오제키 노리다케 공원 관리 책임자는 “한국 총영사관 가족들도 온 적이 있다”며 “나고야의 외국인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잡았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다보니 노리다케 공원엔 한국어로 된 안내문이 있고 박물관에서는 한국어 안내 방송도 나온다.
중앙에 잔디밭과 조경수로 구성된 조경시설이 있고 미술관과 회사 역사관, 박물관, 노리다케 사의 생산품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게, 레스토랑, 수변공원 등이 있다.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다양한 볼거리에다 쇼핑 기회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회사 연혁을 알 수 있는 역사관에서는 일본 요업기술의 20세기 발전사까지 볼 수 있다. 역사 공부 효과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수공 제작을 기본으로 하던 과거 요업 기기 제작 기구가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때문에 노리다케 사를 퇴직한 직원들이 전국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고 있다. 퇴직 사원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는 것. “50여년 전 할아버지는 이 기계를 갖고 이런 제품을 만들었다”며 손자, 손녀들에게 설명한다.
도자기 체험 프로그램까지 진행돼 이 날 필자의 방문에서도 많은 방문객들이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자기 체험 프로그램에 평균 500여명이 항상 등록돼 있다는 것. 방문객들이 만든 도자기는 이곳 전문시설에서 굽혀 방문객들의 주소지로 배달된다.
노리다케 공원은 산업 현장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 공원을 조성했다는 데에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20세기 초반 나고야에서 가장 높았다는 45m짜리 굴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1904년 창립 첫 해 첫 제품을 구워냈던 가마도 모습을 간직한 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 나고야 공원에는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다양한 볼거리가 있고 쇼핑 기회도 얻을 수
있다.
◆ 지역민들과의 합일…주머니 털어 펀드 조성
노리다케 공원이 조성된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나고야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많은 시민들이 방관자로서의 위치를 거부한 것이다.
공원 한 켠 벽돌벽. 이곳 공장을 부수면서 나온 벽돌을 쌓아 만든 벽이다. 이 벽엔 접시가 가득히 걸려 있다. 그리고 접시마다 이름이 씌어 있다. 어림잡아도 1000여명은 넘는 이름이다. 접시에 기재된 사람들은 노리다케 공원 펀드 조성에 참여한 시민들이다. 노리다케 사가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하자 시민들이 나서 “이 공원에 심을 나무를 우리가 구입하자”며 주머니를 털어 펀드를 만든 것이다. 필자가 방문 당시 이곳을 산책하던 스즈키 씨는 “나고야 시민들이 직접 심은 나무들이라 이곳에 더욱 애착이 간다”며 “외국인 관광객들도 접시에 씌어진 이름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다 공원 조성 과정에서 나고야 시민들이 보여준 협력의 결실이라는 얘기에 모두 놀란다”고 했다.노리다케 사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기업들이 본사를 도쿄로 옮겨가는 일극 집중 현상이 심하지만 노리다케 사는 본사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했다. 기업이 자라온 곳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리다케 사는 특정 지역에서 성장한 기업은 그 지역에 뭔가를 되돌려 줄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노리다케 사의 노리다케 공원 조성으로 나고야는 산업시설의 관광 자원화를 이루고 있다. 산업시설이 역외로 공장을 옮기더라도 공장 터는 보존, 관광객 유입을 통해 지역민들의 주머니를 다시 채워주고 있는 것.
제조업이 문화산업으로 얼굴을 얼마든지 바꿔 지역사회에 새로운 부(富)를 창출시킬 수 있다는 것을 노리다케 공원은 보여 주고 있다.
이밖에 도요타 자동차가 도요타 자동차 생산 공장을 산업기술기념관으로 조성한 것을 비롯, 이 지역 기업들은 모두 24개의 박물관을 만들어 놓고 있다. 나고야 시는 이에 힘입어 나고야상공회의소와 함께 산업관광추진회의까지 결성해 놓고 산업 자원을 관광 자원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리다케 사 : 일본 최고의 요업 전문 업체. 연간 매출이 1181억 엔에 이르는 대형 회사로 우리나라에도 식기 명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모리무라 형제가 1904년 설립했으며 유리그릇으로 시작, 최근엔 고급 그릇뿐만 아니라 치아. 헬멧, 엔지니어링 소재 등 소재 제조 전문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모리무라 형제는 이 회사 창업 전인 1878년 이미 뉴욕에서 앤틱 스타일 그릇 가게를 열어 노리다케의 기반을 닦았다. ■

▶ 나고야 시민들은 공원 조성 당시 방관자로서의 위치를 거부하고 펀드를 조성, 나고야 공원을
필수 관광 코스로 만들었다. 왼쪽은 펀드 조성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을 적은 접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