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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진주, 다마스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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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905회 작성일 10-10-2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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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마스쿠스 전경(위)과 아나니야 교회 내부
 

역사문화도시로서 다마스쿠스의 진면목은 역시 구시가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로마 성벽에 둘러 싸여 있는 구시가지는 우마이야 사원과 하미디야 시장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인류 문화의 보고다. 우마이야 사원은 다마스쿠스 구시가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원의 입구는 아랍의 가장 큰 전통시장인 하미디야 시장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신앙의 장소인 사원과 삶의 공간인 시장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이슬람식 사고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방인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Damascus)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갖는 느낌은 이 도시는 이집트의 카이로에 버금가는 고도(古都)라는 것이다. 회색빛을 띠고 있는 건물에서부터 건물마다 자욱이 내려 앉아 있는 먼지와 이끼의 두께는 이 도시의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웬만한 건물들은 건축 연대가 500년이 넘는다는 현지인들의 설명을 듣고서는 이방인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일찍부터 ‘동양의 진주’라 불린 시리아는 북쪽 터키 고원과 남쪽 아라비아 반도의 완충지대이면서 지중해에 위치하고 있어 동서와 남북을 잇는 육상과 해상의 교통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은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하여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주변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침략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 문화적 잠재력으로 로마 제국 감독 받기도

기원전부터 수천 년에 걸친 지배 민족의 잇따른 교체와 변화는 시리아의 문화적 토양을 다양한 색깔을 띤 복합적 스펙트럼으로 만들었다. 즉, 시리아의 역사와 문화는 단일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주변 국가들이 시리아를 지배하면서 자신들의 흔적을 시리아에 남겨 둠으로써 아람, 이집트,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기독교, 이슬람, 아랍 등 다양한 문화가 누적·융합되어 있는 복합적 문화의 층계를 구성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이러한 복합적인 역사·문화적 스펙트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사의 소리와 문명의 향기를 직접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시리아가 갖는 커다란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다마스쿠스는 예부터 대상(隊商)의 통로가 교차하는 육상교통·교역의 요충지 및 순례지로서 유명하였다. 낙타에 짐을 싣고 멀고 지루한 시리아 동부 사막을 건넌 대상들은 다마스쿠스의 푸른 숲이 보이면 목적지에 도착한 안도의 환성과 함께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도 청년 시절 다마스쿠스에 매료되어 이곳을 지상의 낙원으로 극찬했다고 한다.다마스쿠스란 이름은 원시 셈어인 ‘디마스카(Dimashka)’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마스쿠스의 아랍어 지명인 ‘앗 샴(as-Sham)’은 ‘북쪽’이란 의미로서 아라비아 반도에서 다마스쿠스의 지리적 위치를 의미한다. 다마스쿠스는 B.C. 2000년경 아람인 왕국이었던 다를 미시끄(Dar Misiq)의 중심지였다. 아람인들은 다마스쿠스의 원 거주민들로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지금도 다마스쿠스와 인근 마을에는 아람어로 명명된 지역이 남아 있고, 다마스쿠스 북쪽 50㎞에 있는 마으룰라(Maelulah)는 현    재 지구상에 마지막 남아 있는 아람어 사용 지역이다.

기원전부터 A.D. 7세기 경까지 중근동 지역의 교통어(lingua franca)가 아람어였으며, 아람어가 주로 사용되며 발달된 지역이 다마스쿠스라는 사실은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다마스쿠스의 중심적 위치를 가늠케 한다.로마 시대에 다마스쿠스는 그 지리적 중요성과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했던 문화적 잠재력을 평가받아 로마 제국의 감독은 받지만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독자적 권한을 가진 로마의 10개 데카폴리스(Decapolis) 중 가장 중요한 도시로 발전하기도 했다.

다마스쿠스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의 수도이지만, 비잔틴 제국의 영향으로 인해 기독교의 유적이 산재해 있는 복합적인 종교적 특징을 지닌 도시다. 수많은 이슬람 사원 속에서 소수지만 기독교 교회가 굳건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다마스쿠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마스쿠스는 ‘교회의 핍박자’ 바울이,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 사도 바울로 다시 태어난 바울의 신앙적 탄생지로서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어, 전 세계 기독교도들의 주요 순례지가 되고 있다.



 

▶ 위 왼쪽부터
    01 다마스쿠스 시내 모습. 뒤에 보이는 것이 까시윤 산이다.         
     02 다마스쿠스의 아사드 다리와 버스 정류장         
     03 알하미디야 시장 내부21p :
     04 올드다마스쿠스 성벽.         
     05 우마이야 사원         
     06 우마이야 사원 내 세례 요한 무덤.
 

다마스쿠스는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서의 모습과 함께 서구 사회의 현대적인 도시의 기능도 함께 갖추고 있다. 마을마다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 높이 솟구쳐 있지만, 드물지 않게 교회 십자가가 보이는 도시, 종교적 차이와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하고 상호 공존하는 법을 알고 있는 도시가 다마스쿠스다. 즉 과거와 현재,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도시이다

 

 
▣ 신앙의 장소 사원, 삶의 공간 시장이 공존

역사문화도시로서 다마스쿠스의 진면목은 역시 구시가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로마 성벽에 둘러 싸여 있는 구시가지는 우마이야 사원과 하미디야(Hamidiya) 시장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인류 문화의 보고(寶庫)다.

이슬람교 제4의 성적(聖蹟)으로 알려져 있는 우마이야 사원은 A.D. 705년 당시의 칼리파였던 알 왈리드 이븐 압둘 말리크(Al-Walid ibn Abdul Malik)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다마스쿠스 구 시가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원의 입구는 아랍의 가장 큰 전통 시장인 하미디야 시장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신앙의 장소인 사원과 삶의 공간인 시장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이슬람식 사고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마이야 사원은 시리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으로서, 예루살렘의 바위 돔 사원(Dome of Rock)과 함께 아랍 건축물의 대표적인 형태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우마이야 사원의 세 개의 첨탑은 아유비 왕조와 맘룩 왕조, 오스만 터키 시대에 보수된 것으로서 각기 다른 형태와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다양한 시대에 걸친 복합적인 건축 양식을 우마이야 사원에서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건축물과 구분되는 우마이야 사원의 특징으로서, 이 사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게 된 동기 중 한 가지이기도 하다. 우마이야 사원은 규모뿐만 아니라 사원 안팎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우마이야 사원의 모자이크는 아랍 모자이크 예술의 백미(白眉)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사원은 현재 이슬람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남아 있지만, 처음부터 이슬람 사원은 아니었으며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 왔다. 원래 이 사원이 서있는 자리는 원주민 아람인들의 하다드(Hadad) 신전이 있던 곳이다. 하다드는 비를 주관하고 땅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고대 시리아의 최고신이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 하다드 신전이 있던 자리에는 로마인들을 위한 주피터(Jupiter) 신전이 건축되었고, 그 후 기독교 시대였던 비잔틴 제국 때는 세례 요한 교회로 전환되었다. 이슬람 시대였던 우마이야 왕조 때 세례 요한 교회는 우마이야 사원으로 바뀌었다. 그 후 화재로 소실되고 재건되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마이야 사원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헤롯 안티파스 왕에게 참수 당했던 세례 요한의 머리가 이 사원 안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마이야 사원을 건설할 때 사원 자리에 있던 세례 요한의 무덤을 이장하지 않은 까닭에 이슬람 사원의 중앙에 기독교 성자의 유해가 안치된 것이다. 기독교 성자의 유해가 이슬람 사원에 안치되어 있다는 것은 대립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21세기의 기독교와 이슬람의 관계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적과의 동침’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성자들을 하나님의 사도(使徒)로 인정하는 전통을 이해한다면 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21세기 양대 갈등의 축인 이슬람과 기독교의 화해와 공존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유산 보존 위한 체계적 프로그램 아직은 미흡

하미디야 시장은 A.D. 1853년 당시 오스만 터키의 술탄이었던 압둘 하미드(Abdul Hamid)에 의해 세워졌으며, 그의 이름에서 시장 이름이 연유되었다. 이 재래 시장은 현존하는 아랍의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서 각종 수공 제품, 은 세공품, 카페트 등의 면직물로 유명하여 전 아랍 세계의 상인과 외국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특히 중세부터 각종 공예품의 제작, 판매지로서의 명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다마스쿠스 구시가지와 우마이야 사원 등은 현재의 다마스쿠스인들의 성과라기보다는 그들 조상의 업적이자 유산이다.역사적으로 아랍인들의 전성기였던 우마이야 아랍 왕조의 수도에, 당시 주변국들의 문화적 자양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들의 독특한 아랍 문화로 재탄생시키고 이를 구체적인 문화유산으로 다마스쿠스에 남겨 놓은 것은 고대 아랍인들의 지혜이며, 후대의 다마스쿠스인들을 위한 커다란 선물이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에도 이를 보존하기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아직 미흡하다는 것은 커다란 아쉬움이고 우려일 수밖에 없다. 관광객과 상인들에게 노출되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우마이야 사원과 하미디야 시장 등 구시가지의 보존을 위한 다마스쿠스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다마스쿠스의 유산은 다마스쿠스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유산이기 때문에 보존을 위한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

오늘날의 다마스쿠스는 수천 년에 걸친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서의 모습과 함께 서구 사회의 현대적인 도시의 기능도 함께 갖추고 있다. 초고층 건물과 현대식 호텔, 대중화되어 있는 모바일 폰, 이른 아침부터 출근을 서두르는 시민, 길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 경적 소리와 소음 등은 전 세계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는 일반적인 도시의 모습이다.

마을마다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 높이 솟구쳐 있지만, 드물지 않게 교회의 십자가가 보이는 도시, 종교적 차이와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하고 상호 공존하는 법을 알고 있는 도시가 다마스쿠스다. 즉 다마스쿠스는 과거와 현재,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도시로서 동서 문명의 화합을 위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도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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