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전통문화유산 보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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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62회 작성일 10-10-2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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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로부두르 사원
보로부루드 사원의 본격 복구공사는 일본의 지원과 유네스코의 주도로 대규모의 보존과 보수작업이 행해졌다. 돌을 해체하고 클렌징 과정을 거쳐 말린 다음 파손된 것을 수리하고 저장고에 보관, 원래의 형태대로 쌓아올리고, 비가 내리면 복원된 돌들의 연결 강도가 약해지지 않게 하고, 해가 비치면 젖은 벽돌의 습기가 밖으로 배출되는 배수로 체계를 만드는 등 새로운 토목기술을 추가해 복원했다. 이 사원의 복구를 위해서 350여 농가가 강제로 철거되면서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지만, 현재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다.
6월이었지만 이미 더운 여름을 예견하고 있는 듯한 한국의 초여름 날씨를 뒤로 하고 적도 바로 아래에 위치한 인도네시아로 떠날 때는 사실 열대병 예방을 위해 전염병 주사를 맞고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만 앞섰다. 동남아 국가들의 연합인 ASEAN에서 매년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는 ‘People to People Exchange Programme: ASEAN Cultural Interaction at the Grass- root, Phase Ⅲ’에 한국 대표 겸 인솔자로 갑작스레 참여한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ASEAN+3(한·중·일)이 되었으나 이번 프로그램엔 한국만 참여하였다.
그러나 전공은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일까? 내가 직접 본 인도네시아는 더 이상 적도 지역의 더운 나라가 아니었다. 인도네시아는 엄청난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유산의 보유국이자 꿈틀거리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다가와 나를 기죽게 하였고, 경탄하게 하였다. 그와 동시에 이 엄청난 문화유산이 왜 빛을 발하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 아시아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려고 애쓰는 저 수많은 사람들은 어찌하여 생기게 된 것인가를 생각하 게 됐다. 가슴 아픈 아시아의 근·현대사가 뇌리를 스치며 우울해졌으나,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다음에 정리하기로 다짐해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통문화유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다양성 속에서 꽃피는 민족정체성과 문화예술
인도네시아는 500여개의 민족 집단과 지역 언어 그리고 그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복합문화국가이다. 이들 각각의 문화는 나름대로의 전통적인 문화체계를 가지고 있고, 이들 각각의 체계는 기본적인 규범 기준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의 문화가치의 기준은 ‘신’, ‘타인’, ‘자연’과의 관계에 따라서 다르게 규정된다.
첫째, ‘신과의 관계’에서는 신에 대한 예배, 감사, 보은이 표현되는데, 이것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직물(밀납염색을 한 ‘바틱’이라는 직물이 유명하다) 문양에서 자주 나타난다. 삼각뿔·지붕모양의 문양이 신에 대한 숭배를 표현한다. 이슬람 신도인 일반인들이 하루에 5번씩 기도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둘째,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상호부조나 협동이 강조되는데, 이것도 역시 전통가구나 주택의 나무 조각, 직물의 문양 등에서 표현된다. 씨족장에 대한 존경의 표시가 집의 처마 모양이나 대문 앞 장식 등에서 표현되고, 2차 장례를 치르면서 죽은 조상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며 집안에 망자의 사진이나 인형을 세워두기도 한다. 연장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가 예술품에 자주 표현될 정도로 문화 가치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셋째,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사랑과 배려를 중시하며(‘Maulid Belog Ceremony’는 자연물에 음식을 주는 의식으로 개미나 새에게도 먹이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함), 참을성이나 인내 등이 강조된다.
이곳에서는 문화예술 부분에 속한 것들을 다음 과 같이 4가지로 범주화한다. 첫째, ‘정제된 것(refined work)’으로서, 이것은 궁전, 예술학교, 의례, 종교 등에서 강조되는 것이다. 지방 또는 국가의 강력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면서 중·상류 사회계층으로부터 지원받는다. 둘째는 ‘민속적인 것’으로서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서민들의 삶의 토대를 형성한다. 세 번째는 ‘전통적인 스타일’로, 전통적인 요소를 세련된 예술 형태로 표현해낸 것이다. 네 번째 ‘민족적인 스타일(folk style)’ 또한 민속적인 요소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마찬가지로 지역적 또는 국가적 정체성을 표현하며 역시 중간 계층으로부터 지원받으며 발전하고 있다.
▣ 전통문화유산의 보존과 재창조 작업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가 다양한 양상으로 현대적인 요소들과 결합되면서 보존되어 있다. 지면 관계상 몇 가지만 설명해보자.
‘크리스(Kries)’는 철, 강철, 니켈(백동)을 재료로 만든 뱀 모양의 칼로 무거운 것은 10㎏이 넘는다. 이 칼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어서 2007년까지 제작 주문이 밀려 있을 정도다. 하나를 완전히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릴 정도로 수공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세 가지 금속을 각각 1000도의 숯불에 녹여(숯불 작업장 옆에서는 야자수 잎 위에 세 종류의 희고 붉은 꽃을 놓아두는 의례가 곁들여진다) 굳힌 다음 불에 다시 달구어서 두들기고 다시 반으로 전체를 접는다. 이 작업은 140여 겹이 될 때까지 계속된다. 작업이 계속될수록 금속덩어리의 부피는 작아지면서 단단해진다.
다 두들긴 칼은 일주일 동안 매끈매끈할 정도로 갈고 다듬는다. 칼 하나를 완전히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데는 7년 정도의 견습생활이 필요한데, 공식적인 과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가족간에 생업에 종사하면서 취미생활로 전통기술을 익힌다고 한다. 약간의 정부보조금은 신청 절차가 까다로워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일종의 타악기 퍼포먼스인 ‘가믈란(Gamelan)’은 북(Gong)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타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다. 이 연주에 사용되는 악기를 만드는 과정이 공개되었다. 구리를 주재료로 사용하여 만든 대야 모양의 통을 직접 숯불에 달궈서 나무와 쇠로 된 도구로 바닥을 두들기고, 끌로 깎아가며 징 모양의 악기를 직접 손으로 만든다. 가믈란 음악의 경향은 전통적인 것에서 현대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기록된 악보는 없으며 주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멜로디에 맞춰서 즉석에서 연주하는 경우도 많으나, 처음 듣는 이에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 위 왼쪽부터
01 복원이 진행중인 쁘람바난 사원
02 03 보로부두르 사원 보수 공사 현장과 복원된 부조
04 그림자 인형극
전통과 현대가 일상 속에서 공존하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있어서 역사문화유적의 복원은 주민들의 반발과 경제적인 어려움, 정치적인 혼란, 복원과 보존의 우선순위 등에서 지속적인 문제와 논의 그리고 방법 결정 등의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이 길고도 먼 길이라는 생각을 뒤로 하며, 한국행 비행기를 탄 나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가슴 저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유형문화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도 많고 규모도 거대했다. ‘보로부두르(Boro- budur) 사원’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과 쌍벽을 이루는 장엄한 건축물로 세계 최대 최고의 불교유적이다. 이 사원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천 년 이상이나 숲 속에서 화산재로 뒤덮여 있다가 발견되었다.
높이 42m 둘레가 124m인 정방형의 안산암(安山巖) 벽돌 100만 개를 쌓아 올려 지은 것으로 내부에 공간이 없는 것이 다른 사원과 다른 점이다. 2500면 이상의 부조로 등장인물만 1만 명. 건물 전체에 석가의 생애와 가르침이 화려한 예술적 영감을 통해서 찬란하게 표현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축조물이 1814년 흙 속에서 발견되기까지 잊혀져 있을 수 있었는지, 용도가 무엇인지 등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왕의 무덤, 사원, 왕조의 사당, 승방, 우주 삼계의 구상물 등 설이 분분하다).
보로부두르는 1814년 당시 자바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의 총독 라플즈에 의해 발굴되었고, 그 후 네덜란드 당국에 의해 관리되어 1907년부터 복구공사가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복구공사가 진행된 것은 1973년부터로, 일본의 지원과 유네스코의 주도로 대규모의 보존과 보수작업이 행해졌다. 돌들을 해체하고 클렌징 과정을 거쳐 말린 다음, 파손된 것을 수리하고 저장고에 보관, 다시 원래 형태대로 쌓아올리는 과학적인 방법과, 비가 내리면 내부의 수로를 통해서 빗물이 밖으로 빠져나가서 복원된 돌들의 연결 강도가 약해지지 않게 하고, 해가 비치면 젖은 벽돌의 습기가 밖으로 배출되는 배수로 체계가 만들어지는 등 새로운 토목기술이 추가되어 복원되었다.
이 복구를 위해서 반경 300여m의 350여농가가 강제로 철거되면서 엄청난 비난에 휩싸이는 등 많은 난관을 거쳤지만, 거의 복원의 완성단계에 와 있다. 현재는 유네스코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 지원금으로만 마무리 복원이 진행되고 있어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쁘람바난 사원’은 동남아 최대의 힌두교 사원으로 200여개의 작은 사당과 3개의 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1953년에 1차 복원이 끝나고, 지금도 복원은 계속 되고 있다. 중앙에 우뚝 솟은 시바 신전 외벽의 섬세한 부조는 보는 이들을 제압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사원의 꼭대기 부분은 손상이 심해서 시멘트와 모르타르로 보강되었는데, 이것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이 사용되었던 보로부두르의 복원 방식이 채택되기 이전에 시행되었던 탓에 현재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고 한다.
쁘람바난 사원의 북동쪽으로 2㎞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플로산 사원은 172개의 작은 템플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10세기에 일어난 지진으로 무너져 흩어진 무너진 돌들이 사원 마당에 즐비한 모습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다. 5세기까지는 불교가, 그 이후에는 힌두교, 13세기부터는 이슬람이 인도네시아에 전파되어 불교, 힌두교, 이슬람은 인도네시아에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하게 되었다. 이 사원은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종교역사를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다. 특히 플로산 템플은 불교와 힌두교의 융합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불교와 힌두교를 숭배하던 부부의 사원이 세워져 있다.
▣ 아시아 역사문화유산의 장대함을 뒤로 하며
인도네시아는 무한한 역사문화유적의 보고라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한 편으로는 그 장엄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아직도 수십 년이 걸려야 복원이 끝날 것 같은 사원의 마당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돌들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저 돌 하나를 깎고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감사와 경애를 표현하며 하나둘씩 쌓아 올렸을 그들 선조들의 땀방울이 후손들에게 와서 이렇게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단지 인도네시아 정부만을 탓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가 일상 속에서 공존하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있어서 역사문화유적의 복원은 주민들의 반발과 경제적인 어려움, 정치적인 혼란, 복원과 보존의 우선순위 등에서 지속적인 문제와 논의 그리고 방법 결정 등의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이 길고도 먼 길이라는 생각을 뒤로 하며, 한국행 비행기를 탄 나는 다시 내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가슴 저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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