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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트라이데가세와 대학광장을 이어주는 통로가 있는 집들
유럽의 심장이라고 하는 오스트리아. 그 오스트리아 문화의 중심이라는 이유로, 잘츠부르크(Salzburg)는 중심의 중심이라고 불린다. 잘츠부르크는 무엇보다도 세계의 불후의 명작이 되었고, 언제 다시 보아도 지루하지 않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을 통해 음악의 도시, 맑고 넓은 호수와 수려한 산이 있는 자연풍경, 성과 공원과 수도원이 많은 도시로 온 세계인의 마음에 애틋하게 남아 있다.
오늘날 화려하고 광대했던 과거를 지닌 작고 앙증맞은 문화대국으로서의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보석이라 할 수 있다. 그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특징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듯한 잘츠부르크는 한 도시의 역사가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뛰는 심장과도 같다. 문화란 한 자리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쾌적함에 대한 열망이 분출된 모습이다. 개개인이 살고 있는 집들은 깨끗하고 독특하고 아름다우며, 한 사람이 하루를 영위하기 위해 들고 나는 다양한 장소들과 거리들은 편안하고 단아하고, 자연이 그들의 오늘 하루를 품어 주는 곳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그 자리에는 문화가 제대로 살아 있다고 할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어디를 둘러 보아도 그처럼 사람들이 아름답고 품위있는 삶의 터전을 가꿀 수 있었던 자기들의 성과를 바라보며 기특해 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사는 일이 수선스럽게 느껴지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부질없이 바쁜 일정들에 쫓기면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진하게 들 때, 우리는 한번쯤 다시금 그리운 타인들 속에 서 있고 싶어진다. 이러한 느낌을 최대한으로 전해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잘츠부르크의 쇼핑가 게트라이데가세(Getreidegasse)이다. 모차르트 생가가 있고 구시청이 있는 이곳 게트라이데가세는 오스트리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쇼핑가로, 잘츠부르크의 문화적 특성과 매력이 함축되어 있는 즐거운 거리이다. 이 길은 대성당과 레지덴쯔, 성 미카엘 교회, 프란치스카너 교회, 화랑, 박물관 등이 웅대하게 모여 서 있는 구역에서도 도시의 상징이 된 호헨잘츠부르크(Hohensalzburg) 요새 쪽으로 나 있는 골목길이다.
 
게트라이데가 세의 모짜르트 생가(왼쪽)와 태어난 방(오른쪽)
그 거리를 좁다란 낭만적인 골목들이 에워싸고 있고,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자리 곳곳에는 광장들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주는 고귀한 역할을 한다. 이 거리에는 보석가게, 꽃집, 옷가게, 커피숍들이 줄지어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유럽의 최첨단 의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통의상과, 수공예품, 악기, 옷가지, 아이스크림, 커피와 케익 등 오스트리아의 전통적인 취향이 흠뻑 깃들어 있는 물건들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상품들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오스트리아인들의 귀한 전통으로 생각해 온 가치들을 고스란히 전시하고 있는 쇼핑가이다.
그러나 이 쇼핑거리는 갈 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미운 마음에 실수인 척 발이라도 꾹 밟아 주고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서는 곳이 아니다. 그동안 묵혀 온 증오를 낯선 사람을 향해 토해내며, 그 자신은 조금 더 강팍해진 마음으로 가슴 속에 사막을 담고 뿔뿔이 돌아서는 곳도 아니다. 상점과 사람들이 몰려 있는 이곳은 이상하게도 소란스럽거나 그악스럽지가 않다. 활기가 있으되 꼭 그만큼만 활기찰 뿐 흥청거리질 않는다. 잔잔하게 또 찰랑찰랑 밀려와 발을 적시는 금빛 파도의 한 자락처럼 주변의 것이 모두 가볍고 경쾌하기만 하다. 쇼핑가가 이렇게 쾌적하고 여유로운 산책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오랜만에 타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오래오래 만끽할 수 있고,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문득 따뜻하고 정답게 느껴지는 곳. 그래서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그에게 미소라도 지어 보이고 싶어지는 쇼핑가가 바로 이곳이다. 이는 돈이 흘러다니고 소비욕구와 상술이 첨예하게 부닥치는 상업적인 무대에서 돈과 술수가 아닌 ‘사람’이 여전히 중심에 서 있는 풍경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관심사가 충돌하는 이곳에서 서로에 대한 증오를 다시 한번 새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떠나서 홀로 살아온 일상 속에서 고독해졌던 가슴을 푸근한 공동체 의식으로 한번쯤 쓸어주고 돌아설 수 있다면, 타인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청량제일 수 있으며 그같은 경험을 제공해 주는 그 자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이겠는가. 아마도 쇼핑거리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은 상점들 앞의 허공을 장식하고 있는 멋진 간판들과도 상관이 있을지 모른다. 분수가 한 나라의 특징을 이루는가 하면, 가로등이 유난히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 게트라이데가세는 다름 아닌 간판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 거리들 중 하나다. 수공업을 중시하는 오스트리아인들은 집과 도시의 안팎을 오랜 시간을 두고 꼼꼼하게 다듬어 왔다. 한결같이 특색있고 장식성이 강한 이 간판들은 그들의 장인정신 내지는 미적 감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요소인 것이다.
게트라이데가세의 간판들
빙둘러서 있는 건물마다 안쪽으로 넓은 뜨락이 자리해 있는 집들이 게트라이데가세를 대학광장(Universitaetsplatz)과 이어준다. 이 집들의 아름다운 통로를 가로질러 가면, 그곳에 대학광장이 나타난다. 꽃과 화초가 아담하고 단정하게 가꾸어져 있는 안쪽 뜨락에서, 사람들이 많은 상점에서 잠깐 비켜나 커피나 맥주 한잔을 앞에 놓고 피곤해진 다리를 쉬고 동요된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고요와 느긋함을 맛볼 수 있다. 콜레기엔 교회(Kollegien- kirche) 앞의 대학광장에서는 ‘그린시장(Gruenmarkt)’이 열린다. 농부들이 손수 재배한 꽃이며 약초, 채소와 과일, 직접 구워서 가져나온 빵과 소세지, 햄, 베이컨 등이 거래되는 직거래장인 셈이다. 싱그러운 야채를 한자리에서 보며 풋풋한 시골 사람들의 어느 곳에서나 다를 바 없는 사사로운 대화를 듣고 있으면,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일년 내내 길에 박힌 깨진 돌멩이 하나하나를 새로이 손으로 섬세하게 두드려 박고, 망가지거나 더러워진 건물을 깨끗하게 수선하거나 색칠하고, 집과 도시의 흐트러진 모퉁이를 다듬어 꽃이나 나무를 심는다. 개인의 방이며 집과 도시 전체에 화초가 넘쳐나고, 유서깊은 옛 물건들이 즐비하다.
게트라이데가세 구석구석에서 만나게 되는 빈틈없이 잘 다듬어진 건물이며, 길이며, 간판이며, 꽃이며, 화초들은 오스트리아인들의 손으로 창조된 그들만의 문화이다. 고급문화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그 헛된 지배욕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을 가꿈으로써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자기 몫을 기여해야 한다고 믿는 문화가 바로 고급문화이다. 이때 현대와 전통은 서로 대립된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전통은 현대의 도전을 받으며 새로운 방향으로 다채로워져 가고, 현대는 전통에서 지혜를 배움으로써 서로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있고,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며, 사람들이 어울려 있을 때 살 맛을 느끼는 곳이 문화적이며 미학적인 곳이다. 내가 오늘도 걷게 될 길들이 편안해야 하고, 거리는 사람들을 뿔뿔이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내가 맡은 냄새들이 악취가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상큼하고 쾌적하며, 내가 들을 소리들이 소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소리라면 그 나라는 문화국이다. 게트라이데가세에 가면 그런 생각이 든다.
콜레기엔 교회 앞 대학광장에 열린 야채시장
지금쯤 잘츠부르크에는 몇 차례 눈발이 펄펄 날렸을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리 곳곳에는 지금쯤 아마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글뤼와인(Gluewein)포도주를 여러 가지 양념과 함께 끓인 것)이 피곤한 행인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군밤장수의 모습도 보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