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향해 열린 도시-상트 페테르부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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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77회 작성일 10-10-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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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의 베니스’로 이름난 물의 도시 
◀ 스몰리 수도원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러시아연방 북서부의 북위 60도에 위치한 해양도시이자 러시아 제2의 도시로서 모스크바에서 640㎞ 거리에 있으며, 인구 480만명, 면적 85,900㎢의 거대도시이다. 도시 중앙으로는 깊이 20m의 네바(Neva)강을 비롯하여 분류·지류·운하까지 포함하면 65개의 강이 흐르고 있고, 섬의 수는 100개 이상이며 365개의 다리에 의해 연결된 물의 도시로서 ‘북쪽의 베니스’로 불린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 북서쪽 발틱해 연안에 위치하여 러시아내 다른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 폴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헝가리, 독일 등 외국도시와도 경제적, 문화적 유대관계를 발전시켜 온 중동부유럽의 거점도시로서 과학, 산업 및 교통의 중심지이다. 이 도시는 백야(白夜)로 유명하여 5월 25일에서 7월 16일까지 계속되는 백야는 가장 긴 시간이 18시간 53분으로 세계 각 지역에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문화유산으로는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에르미타쥬 박물관, 모스크바 볼쇼이극장과 쌍벽을 이루는 마린스키(키로프)극장 등이 산재해 있는 유서깊은 문화·예술, 과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건설한 피터 대제는 러시아의 경제를 진보시켰고, 선진 유럽국가들과 긴밀한 경제·문화·기술적 관계를 맺었다. 1712년에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옮겨온 이래 1918년까지 재정러시아의 수도로서의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과학, 산업, 문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의 이름은 러시아 정교(기독교)의 성인인 사도 페트로(베드로)와 대제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하여 상트 페테르부르그라고 했다. 시인 푸쉬긴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고 표현했듯이 상트 페테르그부르그는 유럽의 건축양식뿐만 아니라 문화사상을 받아들인 도시이다. 이것이 나중에 러시아 제정을 붕괴한 동란의 진원지가 되었다. 1825년에 일어난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은 농노제 폐지와 전제정치 폐지를 위한 것이었는데,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새로운 사상풍조는 계속 받아들여졌다. 19세기 전반 러시아는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문화의 개화기에 해당되는데 각 분야에 눈부신 발전과 근대화를 이룩하였다. 그중에서도 1861년 농노제가 폐지되었으며 나로드니키(인민주의자)의 혁명운동은 1870∼80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는 상트 페테르부르그가 고도의 생산설비를 갖춘 주요 자본도시로 발전하는데 기여했고 또한 국제적인 금융, 산업 및 전문가 훈련중심지로 발전했다.
▶ 과학 아카데미
19세기말 이 도시는 혁명운동의 중심이 되었는데 이 운동은 1917년 3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스 2세의 퇴위를 초래했다. 1905년 ‘피의 일요일’에 식량과 자유를 원하는 민중은 네프스키 대로를 행진했고 궁전광장에서 제2차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다. 1917년의 2월 혁명,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정붕괴를 실현시킨 10월 혁명에 의해 레닌을 지도자로 하는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소비에트 정권이 탄생했던 것이다. 1918년 3월 1일, 10월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볼세비키 인민위원회는 수도를 모스크바로 이동했다.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시 상트 페테르부르그라는 독일 이름에서 러시아어인 페트로그라드로 바꾸고 1924년에는 레닌의 혁명과 공적을 기리는 도시 레닌그라드가 되었다. 1941년 7월 8일 제2차 세계대전시 최초로 독일에서 레닌그라드에 포탄을 투하하였으며, 역사상 유일무이한 900일간의 레닌그라드 포위공격이 시작되었다. 80만명의 민간인들이 추위, 기아, 폭격으로 죽었지만 900일간의 레닌그라드 포위(1941-43)를 견뎌내고 승리와 영예를 얻었다. 전쟁 후 도시경제, 박물관 그리고 도서관 시설의 복구가 즉시 시작되었으며 레닌그라드의 이러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 도시는 영웅도시(Hero-City)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과거를 지닌 가운데 신속히 복구되어 잘 정돈된 거리는 문학과 예술의 도시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 도시의 원래 명칭인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1991년 6월 구 소련연방이 해체되면서 되찾았으나, 과거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레닌그라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문화도시로 육성 보전하기 위한 노력
◀ 네바강 전경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과학 및 문화도시로 발전되었다. 수많은 유명한 건축가들이 이 도시의 건설에 참여했고 러시아의 문화를 만든 거장들인 푸쉬킨, 고고르, 글린카, 도스토예프스키, 무소로그스키 등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구(舊) 해군성, 네프스키 대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주변 등에 수많은 유적들이 있으며 특히 에르미타쥬 박물관, 마린스키 극장 등이 유명하다. 1825년 12월에 전제정치와 농노제에 반대한 청년귀족들이 구 해군성 주변의 광장에서 혁명을 시도했으며 데카브리스트란 ‘12월에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데카브리스트 광장은 그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름붙여졌다. 이사크 성당은 1818년부터 40년간에 걸쳐 지어진 건축물로 길이 111.2m, 폭 97.6m, 높이 101.5m로 세계적으로 거대한 성당이다. 내부장식에는 22명의 예술가에 의해 꾸며졌는데 300점 이상의 동상과 모자이크화,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궁전광장은 겨울궁전 에르미타쥬, 구 참모본부, 반원형의 개선 아치를 갖춘 건물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광장의 중앙에는 1812년 조국전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만든 높이 50m의 알렉산드르 원기둥이 서 있다. 구(舊) 해군성에서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수도원까지 4.5km에 걸쳐 뻗어있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중심지로 19세기 중엽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카잔성당은 보르니헨에 의해 1801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은 아름다운 성당으로 내부에는 프랑스군으로부터 탈취한 군기가 장식되어 있다.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으며 반원형의 회랑에는 9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늘어서 있다. 스몰리 수도원은 19세기 초엽 에카테리나 2세에 의해 귀족 딸들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로 설립되었으며,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레닌을 중심으로 하는 작전본부가 설치되고 소비에트 정권수립이 행해졌다. 현재 상트 페테르부르그 시청이 이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시청 2층 서편에는 레닌의 집무실이 보존되어 있다. 네바강의 강폭이 가장 넓어지는 하구의 델타 지대에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가 남아 있는데 표트로 대제가 스웨덴 군으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기 위하여 건설했다. 표트로 대제에서 알렉산드르 3세까지의 역대황제가 매장되어 있는 페트로 파블로프스키 성당은 1712년부터 건설되어 1733년에 완성되었다. 혁명의 순양함 오로라는 러시아혁명(1917년 10월혁명)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겨울 궁전을 향하여 발포한 순양함이다. 현재는 혁명을 기념하는 해군 중앙박물관의 분관이 되었다. 1917년 2월 혁명에서 희생된 180명의 혁명전사가 묻혀 있는 마르스 광장에는 혁명직전 이 광장에서 민중집회와 데모가 행해졌으며 현재는 혁명 전사의 기념비가 있고, 영원의 불이 타오르고 있다. 에르미타쥬 박물관은 러시아 최대의 박물관이자 세계 3대 미술관중의 하나이다.
▶ 러시아 박물관
전시실은 1,050개로서 총면적은 4만 6천㎡, 전시실을 이으면 총 길이는 27㎞에 달한다. 이 거대한 건물안에 소장되어 있는 회화, 조각, 발굴품은 약 250만점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는 작품 하나를 보는데 1분씩 잡고 하루 8시간 관람하면 5년간 보아야 모두 관람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에르미타쥬는 피터대제의 딸 엘리자베드 파블로바가 1852∼1864년 사이 12년간 지은 겨울궁전이다. 나중에 에카테리나 2세가 방 하나를 ‘보물을 숨긴 곳’이라는 뜻으로 에르미타쥬(hermitage)라 불렀다. 서구 미술품으로는 러시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터키, 인도, 중국, 비잔틴 등 세계의 고대 유물과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또한 지하 보물실에는 제정 러시아의 보석과 왕관 등이 무수히 많다. 마린스키(키로프) 극장은 러시아 발레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그 기원은 1847년, 이 장소에 서커스 극장이 세워지면서 부터이다. 당시에는 말의 재주나 판토마임·음악회·촌극 등이 공연되었다. 1859년 화재 후에 재건되면서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왕비 이름을 따서 마린스키 극장이 되었다.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글린카의 작품을 초연하였으며, 러시아 예술가에 의한 러시아 발레와 음악의 중심이 되었다. 러시아 발레를 빛낸 천재적인 발레리나 브라노바, 두딘스카야, 세르게프 등이 이 극장 출신이다. 현재 이 극장의 예술단으로는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과 쌍벽을 이룬다는 키로프 발레단이 유명하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시는 러시아에서 모스크바 다음 가는 큰 도시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러시아 제1의 도시이다. 18세기초부터 20세기초까지 200여년 동안 제정러시아의 수도였던 이 도시의 건물들은 주로 석제건물이며 도시미관을 살리기 위해 모든 건물 신축시는 옆 건물과 외관이 달라야만 건축허가를 내주고 있을 정도로 건축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3층 건물인 경우는 지붕 모양은 말할 것도 없고 1층, 2층, 3층의 창문마저도 다 다르게 할 만큼 건축물의 예술적·미적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건물 하나하나가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시에는 200여개나 되는 박물관이 있다. 러시아 연방정부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시를 문화도시로 육성 보존하기 위하여 개도 300주년이 되는 2003년에는 세계문화도시로 선포하고 세계적인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 대구시와의 교류
◀ 카잔 성당
대구시는 산업연관성과 발전가능성 등의 면에서 교류증대가 예상되는 세계주요 도시와의 자매결연을 통하여 국제적 협력기반을 확충해 나가고 있으며, 특히 중동부유럽 거점확보와 러시아와 실질적 교류협력 증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어 이를 적극 추진한 결과, 97년 11월 3일 대구시장을 비롯한 대표단이 상트 페테르부르그 현지를 방문하여 양도시간 자매결연을 체결하였다. 그후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양도시간에는 각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가 있어 왔다. 먼저 문화 예술면에서는 98년 4월, 5개국 7개팀이 참가한 대구국제무용제에 상트 페테르부르그시의 키로프 발레단이 참가하여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돈키호테> 등 뛰어난 공연으로 많은 시민들의 갈채를 받았는데 키로프 발레단의 대구공연은 상트 페테르부르그시를 대구시민에게 알리고 러시아의 수준높은 예술을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98년 2월, 4월, 6월 3회에 걸쳐 상트 페테르부르그 경제인 13명이 대구를 방문 지역특산품인 섬유, 안경테, 우산, 가죽제품업체 등 35개 업체와 상품수입상담을 벌여 358,000달러를 수입하는 등 비교적 활발한 교역이 있었다. 대구시는 앞으로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에르미타쥬 박물관, 모스크바 볼쇼이극장과 쌍벽을 이루는 마린스키 극장 등 유명한 문화시설의 운영·관리 노하우를 도입하여 우리 시에 반영하고, 대구시의 오페라단, 교향악단 등 6개 예술단과 상트 페테르부르그 예술단의 상호교환 공연 등 민간예술단체 차원의 교류도 적극 추진할 계획으로 있다. 또한 에르미타쥬 박물관의 고미술품 대구전시회 개최 추진 등의 문화교류를 통해 대구의 문화수준 향상과 시민의 국제화마인드 향상에도 기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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