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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요새(要塞) 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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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81회 작성일 10-10-1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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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민족사의 상징

아브라함, 그리스도, 마호메트로 집약되는 4천년 이스라엘의 역사는 신의 축복을 받음과 동시에 수난과 고통의 역사로 이루어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받은 곳이라고 하는 이 자그마한 땅의 남쪽, 사해를 면한 언덕에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문화속에 지워지지 않는 자유와 존엄의 상징인 '마사다(Masada)'요새가 있다.
'산의 성'을 의미하는 '메쓰다'에서 그 어원이 유래한 마사다는 해발 40m의 높이밖에 되지 않지만 주변의 사해(死海) 인근지역이 바다표면보다 400m가 낮은 연유로 마사다의 실질적인 높이는 440m가 되어 밑에서 쳐다보면 가파르기 그지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러므로 마사다의 요새를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데, 정상에 올라 보면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르고 황폐한 환경과 멀리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사해만이 시야에 들어와 철저한 군사요새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마사다성 안에는 두 개의 궁전이 있는데 건축의 방법이 매우 다양하여 매우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 궁전은 원래 유대의 건축왕으로 불리던 헤롯대왕이 여름별장으로 계획된 연유로 언덕의 꼭대기에는 테라스와 풀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온탕, 냉탕, 스팀시설까지 갖추어진 목욕탕이 있다.
이 목욕탕은 당시 로마제국에서 사용하던 욕탕과 동일한 형식으로 바닥의 화려한 모자이크는 2천년전의 생활상을 아련하게 짐작시켜 준다.
또한 군사요새라는 기능에 걸맞게 입구를 찾기 어렵도록 만들어진 창고도 있는데 이 안에서는 포도주, 기름, 밀가루와 같은 식품을 저장하는 독특한 모양의 용기도 다수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숭고한 역사의 맥을 잇는 이스라엘 문화

크리스마스 시즌에 방영이 된 적 있는 '마사다'라는 제목의 영화는 이스라엘의 역사가인 요세푸스(Flavius Josephsi)가 쓴 『유대 전쟁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는데 그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다. A.D. 70년 로마의 티루스(Tirus)장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유대인들은 마사다에 집결하여 최후의 항전을 벌였다. 깎아지른 마사다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로마의 10군단은 성벽의 주변에 8개의 진지를 구축하고 노예를 동원하여 인공능선을 만들었다.

외부와 완전히 고립되고 식량과 물이 고갈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3년간을 버티던 유대인들에게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 로마군이 쳐들어오기 하루 전날 구원의 희망과 탈출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유대인의 지도자 엘리아 자르벤 야이르(Elenzarben Yair)는 다음과 같이 연설을 하였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로마인의 노예가 되어 우리의 가족들이 능멸을 당하느니 하나님의 종으로써 자유로운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여 하나님 곁으로 갑시다…우리가 식량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위해서 우리의 식량은 남깁시다…."
이러한 결의를 마친후 이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가슴에 안고, 애무하고, 아이들을 안아 눈물을 흘리면서 최후의 키스를 주고 받은 후 전원

이 차례로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제 손으로 죽였다. 그리고 열사람씩 다시모여 제비뽑기를 통해서 한사람이 아홉명을 죽이는 방법으로 죽음의 의식을 마친 후 최후의 한 사람은 전원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성에 불을 지른 후 자결을 하였다.
다음날 성으로 진격한 로마군은 타다 남은 재속에 놓여 있는 960구의 시체와 죽음의 침묵만이 흐르는 처참한 광경에 망연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이것이 마사다의 최후였다. 이 끔찍한 일을 피한 것은 5명의 아이들과 함께 지하도에 숨어 있던 2명의 여인뿐이었다.

이들이 로마군에게 당시의 상황을 수시간에 걸쳐서 이야기를 함으로써 마사다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독일의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고 후에 예루살렘 소재의 히브류대학 고고학과 교수를 지냈던 이가엘 야딘( Igael Jadin )에 의해 최초로 마사다가 발굴되었을 당시 요새내부에는 목이 잘린 시체들과 여자들의 머리카락이 흩어져있어 당시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마사다를 기억하자 !", "두번 다시 마사다를 잃지 않겠다 !"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호는 오늘날 그들이 세계의 강대국으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각군 사관학교 생도들은 임관전에 반드시 찾아와서 자신들의 뼈저린 역사를 기억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의식을 가지는 장소, 현재는 폐허로 남아 과거의 처절한 비극의 역사만을 간직한 채 묵묵히 사해를 내려다 보고 있는 마사다. 이 마사다는 이스라엘 국민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가장 영웅적이고 교훈적인 장소로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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