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호주 국립도서관, 그들의 변신은 무죄 > 이색도시 문화탐방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이색도시 문화탐방


 

[호주] 호주 국립도서관, 그들의 변신은 무죄

페이지 정보

작성자 angelica 댓글 0건 조회 1,987회 작성일 14-02-15 11:55

본문

글 : 차신영(호주 Macquarie University 대학원생)

‘도서관에서는 절대 정숙해 주세요(Please be quiet in the Library).’
한국이나 호주나 도서관에 가봤던 이들이라면 곳곳에 붙어있던 절대정숙 문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혹자는 도서를 대여하기 위해 혹은 독서를 위해 도서관을 찾은 이들은 고요함과 정적이 지배하는 도서관에서 까치발을 한 채 종종걸음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7월의 첫째 주 <사랑과 헌신(Love and Devotion)> 전시회가 개최 중이던 빅토리아주립도서관(the State Library of Victoria)은 마치 현대 갤러리에서나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생동감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탁 트인 장소에서 열띤 독서토론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관현악 콘서트,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서점, 그리고 도서관 곳곳에 자리 잡은 커피 향 가득한 카페까지…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검색이 손쉬워지고 최근 전자책 시장이 인기를 더해가면서 과거 도서관의 주요 역할이었던 도서 대출이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도서관을 찾을 이유가 점차 줄어들고 도서관의 위기론까지 심심치 않게 대두되고 있지만 지금 호주의 도서관들은 제 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정적이 흘렀던 호주의 도서관들은 이제 정보 및 지역사회의 큐레이터로서 각종 문화행사를 주최하고, 자기계발과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지역사회의 소통의 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빅토리아주립도서관 사서 수 로버트(Sue Roberts)는 자신을 비단 2백만 권의 책을 관리하는 사서가 아닌 새로운 도서관 풍토를 조성하는 신세대 사서로 소개하며 영국과 뉴질랜드의 ‘전략적 도서관 리더십’(Strategic Library Leadership) 프로그램을 본 따 호주 도서관에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략적 도서관 리더십 프로그램은 단지 거실에 앉아 인터넷에서 정보를 다운로드하여 정보를 수용하는 행위가 상호간 토론의 기회를 빼앗아 고립을 자초한다는 위기의식을 담고 있다. 따라서 과거부터 정보제공자의 역할을 도맡아왔던 도서관이 시민 개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통해 문화적 소통을 도모하고 시민들이 직접 책을 읽고, 듣고, 탐구하는 물리적 장소를 제공하여 도서관에 발길을 들여놓는 이들로 하여금 지역 커뮤니티에 동참하고 배움을 선사하는 것이 전략적 도서관 프로그램의 주요 골자이다.
로버트 씨는 21세기 도서관이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최우선 역할은 지역 커뮤니티의 형성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거 시민들이 정보의 습득을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면 이제 도서관은 주체적으로 지역사회 및 그 커뮤니티에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이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교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도서관은 지역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지역사회가 진정 원하는 예술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시민들의 창의력을 자극하여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할 진귀한 아이디어 창출을 돕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도서관이 부여받은 새로운 사명이라고 그는 밝혔다.

▲ <사랑과 헌신(Love and Devotion)>전, 빅토리아주립도서관 주최(왼쪽) / ▲ <홍수(Floodlines)>전, 퀸즈랜드주립도서관 주최(오른쪽)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많은 호주 국립도서관들은 시민들의 발길을 끌기 위한 다채로운 전시회를 기획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활발하게 소통하기 위한 각종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빅토리아주립도서관이 최근 선보인 <사랑과 헌신(Love and Devotion)> 전시회의 경우 빅토리아주 최초로 이란 작가의 작품을 전시해 호주 내 이란계 커뮤니티와 문화적 소통을 꾀했고, 이로서 두 커뮤니티 간에 문화적 이해를 증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호주주립도서관(State Library of Western Australia)은 일러스트작가인 지니 베이커(Jeannie Baker)의 아동소설에 실렸던 콜라주 원본을 전시회 <거울(Mirror)>를 통해 선보였다. 이 작품은 남부 모로코 소년과 호주 도시 소년의 교감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도서관측은 작가가 직접 아이들에게 작품을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세션도 마련했다.
또, 뉴사우스웨일즈주립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은 현재 저널리즘과 관련하여 <시드니 모닝 헤럴드 사진전(Sydney Morning Herald Photos 1440)>과 <월드 프레스 사진전 2012(the World Press Photo 2012)> 두 편을 개최하고 있으며, 퀸즈랜드주립도서관(State Library Of Queensland)은 1893년 브리스번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삶을 주제로 전시회 <홍수(Floodlines)>를 개최하고 있다.

▲ <거울(Mirror)>전, 서호주주립도서관 주최

이런 전시회를 통해 관객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물론 박물관이나 갤러리도 많은 전시회를 개최하고는 있지만, 주립 도서관들은 지역사회의 중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관객들에게 선별적으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찾을 수 있다.
한때 도서관이 수만 권의 책을 보관하는 저장고의 역할을 했다면 현재 호주의 도서관들은 최첨단 디지털미디어 장비들을 구비하고 다양한 문화행사와 사교행사로 시민들의 눈길과 발길을 돌리고 있다. 그렇다고 도서관들이 그들의 본연의 역할을 저버린 건 아니다. 고서들은 결코 디지털화가 되지 않을 뿐더러 우리는 이러한 도서들을 안전하게 후세에 전승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수 있을지 의견이 분분한 요즘 빅토리아주립도서관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전자책의 보급덕분에 도서관을 방문하는 시민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사실이다. 빅토리아주립도서관은 소장도서의 약 20퍼센트가 전자책으로 출판되어 있어 독자들은 손쉽게 인터넷상에서 전자책을 열람할 수 있다. 이러한 전자책의 쉬운 접근성 덕분에 종이책으로 출판된 적이 없던 네드 켈리(Ned Kelly)의 <제릴더리 편지(Jerilderie Letter)>같은 보물을 우연히 접한 독자들이 직접 도서관을 방문해 꾸준히 도서 열람을 신청하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여 디지털 시대가 본격적으로 온다고 해도 도서의 수집, 보존 및 전승이라는 도서관 본연의 역할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의 홍수에 맞서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문화적 유산을 보존해 나갈지는 현대 도서관이 안고 있는 숙제라고 로버트 씨는 말한다. 디지털 시대 속에서 도서관 본연의 역할과 함께 지역 커뮤니티의 형성,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 및 전시회 개최, 개개인의 창의성 자극이라는 목표로 지속적인 변신을 꾀하고 있는 호주의 도서관들, 그들의 변신은 아름답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