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Oil Street – 홍콩 최초의 예술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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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ica 댓글 0건 조회 1,904회 작성일 14-02-1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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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미(홍콩거주 문화평론가)
홍콩섬의 North Point(北角) 지역에는 Oil Street(油街)라는 이름의 길이 있다. 백 오십 미터 남짓한 거리의 이 길은 대로와 수직으로 놓여 북쪽의 바닷가를 향하고 있는데, 서쪽으로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AIA 타워와 5성급 호텔인 하버플라자 호텔이 있다. 전철역과도 가까이 있어서 인근 주민들과 직장인, 관광객 등 다양한 종류의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다. 반면 이 길의 동쪽으로는 현재 2층짜리 낡은 건물만을 제외하고 텅 빈 큰 땅이 있는데, 얼마전까지 이곳에 있었던 건물의 철거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이곳에 원래 있었던 9층짜리 건물은 10년 가까이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로 버려져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하늘을 찌르는 홍콩섬의 북쪽 지역인데다가 바닷가와 인접하고, 고급 호텔과 번쩍번쩍한 고층타워를 마주보고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은 오랜시간 동안 그렇게 으스스한 모습으로 그자리에 있었다. 이곳이 한때는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Oil Street Arts Village(油街藝術村)로 불렸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문화재 보존 건물로 지정된 2층짜리 건물(전Royal Hong Kong Yacht Clubㆍ香港遊艇會)은 유일하게 이 땅에 남게 되었지만, 그 뒤쪽으로는 황량한 빈 땅이다. 1908년에 로열홍콩요트클럽이 이 부지의 전체를 사용하다가 1939년, 정부의 물류부(현재 명칭: Government Logistics Departmentㆍ政府物流服務署)가 요트클럽 건물 북쪽에 9층 건물을 세우고 그 후 약 60 년간 머물렀다. 훗날 물류부는 98년에 부서를 확장하며 이 건물을 떠났고, 정부는 이 부지를 상업지역 용도로 바꿔 경매에 부치려고 했다. 그러나 97년부터 찾아온 경제 불황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을 고려한 정부는 이 부지의 경매를 보류하게 되었다. 결국 이 낡은 건물들을 텅 빈 채로 남겨두는 대신, 싼 가격으로 예술가들에게 임시로 빌려주게 되었는데, 이때 홍콩 최초의 예술가 마을이 생기게 된 것이다.
1제곱미터당 2.5달러밖에 되지 않는 저렴한 월세 덕분에, 예술가들은 도시 중심의 금싸라기 땅에서 둥지를 틀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원래 물류부의 사무실/창고 용도로 사용되었던 이 건물을 개조해 작업 공간은 물론, 워크숍과 전시를 할 수 있는 널찍한 공용의 공간도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려 30여 개의 전시기능을 갖춘 스튜디오가 생겼고, 각종 예술 관련 단체들도 이곳에 사무실을 열었다. 97년에 설립된 홍콩의 예술단체 ‘Artist Commune’도 이곳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곳 예술가들은 틈틈히 전시와 퍼포먼스 이벤트를 열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았고,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가꿨다. 99년에 열린 공동 전시도 관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문화예술공간이 부족하기만 하던 홍콩에서 이 예술가 집단이 이곳에 계속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는 정부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불과 2년 만에 강력한 예술가 커뮤니티와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었다.그러나 정부는 이 장소를 ‘임시적’으로 빌려준 것뿐이었다. 예술가들은 2년 만에 이 건물을 떠나야만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많은 걸 해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정리해야 했다. 예술가들은 S.O.S.(Save Oil Street)라는 구호를 내걸고 이 장소가 계속 예술가 마을로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의 방침을 철회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러나 정부가 예술가들을 위해 이 땅의 판매를 포기하기에는 이 부지의 금전적 가치가 너무 높았다. 정부는 이를 통해 문화예술 분야 지원을 위해 예술가들에게 특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마타우콕(馬頭角) 지역에 있는 대형 도살장 단지를 개조해 새롭게 예술가 마을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12 Oil Street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도시 중심가에서 접근성이 좋은 ‘위치’였는데, 새로 지정된 마을은 전철역에서 한참 떨어진 변두리지역이라 이전만큼 많은 관객들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곳을 떠난 예술가들은 마타우콕 지역의 Cattle Depot Artist Village(牛棚藝術村- 이하 CDAV)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정부가 임시적으로 제공한 창샤완(長沙灣)에 있는 또 다른 도살장 건물, 전 카이탁공항(啟德機場) 부지 등으로 이동해 머무르다가, 2001년에 드디어 CDAV 건물 개조 작업이 마무리되며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CDAV가 있는 마타우콕 지역에 가려면 전철역에서 내려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를 더 가야한다. 시끌벅적한 Oil Street와 달리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이다. 1908년에 지어진 이 낮은 벽돌건물들은 1999년까지만 하더라도 돼지와 양을 도축하는 다소 섬짓한 장소였지만, 지금은 문화유산 보존건물로 지정되어 특별관리되고 있고, 예술가들의 스튜디오와 전시공간으로 꾸며져 사용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Artist Commune’을 포함한 예술단체들, 그리고 ‘1a space’와 같은 갤러리들도 과거 12 Oil Street에서 이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현재 이곳에는 20여 개의 아티스트 그룹이 있는데, 대부분 작가들의 스튜디오는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지만, 전시장과 극장, 예술단체 사무실들은 전시와 워크숍으로 항상 대중들에게 열려 있다. 물론,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이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건물들이 모두 단층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효율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9층 건물이었던 12 Oil Street에 비해 극히 제한적인 숫자의 예술가들밖에 수용할 수 없다. 게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곳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쉽지 않은데, 다행히도 2015년에 인근에 새로 개통예정인 토과완 전철역이 있어 접근성 문제를 해소해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CDAV는 젊은 신인 예술가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장소이다. 수용인원이 워낙 제한적이다 보니 자연스레 월세도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고,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도 복잡하기 때문에 굳이 이곳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 CDVA와 함께 또 다른 예술가 마을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포탄(火炭) 지역이다. 이곳은 거리상으로는 CDVA에 비해 도시 중심가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전철역과 가깝고, 홍콩 중문대와는 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이다. 게다가 산으로 둘러쌓인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저렴한 월세도 큰 장점이다. 원래는 산업단지였기 때문에 건물 내부의 층고가 높은 편인데, 이는 널찍한 전시공간이나 작업공간으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많은 스튜디오들이 각 공간을 복층으로 개조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동네에는 무려 50여 개의 스튜디오와 180여 명의 예술가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데,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은 지역이름인 ‘Fo Tan’을 따와 그들 스스로를 포타니안(Fotanian)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곳은 예술가들이 각자가 모여들어 형성한 군락이라 그런지 커뮤니티를 위한 활동과 이벤트가 그렇게 풍부하진 않다. 개인의 작업실은 대부분 공개되지 않고, 갤러리와 예술단체가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닫혀 있다. 외부에서 보면 간판하나 없는 산업용 건물들만 즐비하게 서있기 때문에,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날에 가면 이곳이 ‘예술가 마을’이라는 근거는 찾기 힘들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홍콩의 현재 대표적인 예술가 마을은 이렇게 CDAV와 포탄이라고 할 수 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12 Oil Street를 잊지 못하고 당시를 그리워한다. 정부는 당시 땅을 팔아야만 한다며 예술가들을 내보내고도, 그 후 10년 동안 부지의 용도 변경 승인을 위해 계속 판매를 미루며 10년 이상 텅 빈채로 이 건물을 방치했다. 그리고 올해 가을을 마지막으로 예술가들이 살던 그 둥지는 철거되었고, 그 장소에는 곧 호텔과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다행히 부분적으로 살아남은 로열요트클럽 건물은 갤러리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조만간 이 건물의 개조 작업을 시작해 오는 2013년에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이제 더 이상 이곳에는 예술가들이 거주할 공간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곳을 더 이상 ‘예술가 마을’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이 갤러리를 통해 적어도 그 당시의 기억을 간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갤러리 공간은 아직 없지만 웹사이트를 통한 온라인 전시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이 온라인 갤러리에 가면 다양한 작가들이 담은 12 Oil Street의 옛 모습과 이곳에서 찍은 퍼포먼스 비디오 작업, 그리고 주변 이웃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 12 Oil Street 온라인 갤러리: http://www.lcsd.gov.hk/12oilstreet/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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